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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화 〉십칠장[十七章], 성하유랑[星下流浪] 14 (118/130)



〈 118화 〉십칠장[十七章], 성하유랑[星下流浪] 14

당혁은 주저앉아 울고 있는 당소소에게 다가가 몸을 수그렸다. 공포에 젖어 헐떡이는 숨결이 그의 가슴을 간질였다. 그는 입을 벌려 당소소의 오른쪽 뺨을 핥았다.건조한 혀는 나무껍질 같은 촉감이 들었다.

“맛은 그럭저럭. 불순물은 없어 보이는군. 혹여 신체의 변질이 있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당가의 핏줄이라 그런지 말짱하구나.”

그리곤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이모저모를뜯어봤다.

“소소야.”

“…….”

“소소야.”

“…….”

당소소는  몸에서 솟아오르는 불쾌감에 젖어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짜악!

가볍게 휘두른 손이 고개를 힘껏 젖힌다. 훅 끼쳐오는 고통에 당소소는 당혁을 바라봤다.


“이 오라비가 말하고 있잖느냐. 대꾸를 하지 않고 무얼 하는 게냐?”

“네, 네….”

“아직 주제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미물을 보는 눈빛이었다. 당소소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시선을 피해 뒤를 돌아봤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마교도들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백서희와 녹풍대. 이곳의 일을 신경  겨를이 없어보였다. 그런 그녀의 옆으로 화살 여러 개가 박힌 녹풍 삼호가 나뒹굴었다.


“으윽…. 죄송합니다, 아가씨….”


당소소는 그 말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만전상태의 녹풍대였다면 아마 이렇게 고전하진 않았을 것이다. 당가의 고수들은 독과 암기를 사용한다는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난전에 강하고, 단기전에 강했다. 서로의 살을 깎아먹는 소모전에서도 당연히 강한 면모를 지녔다.

‘도강언의 정상화를 위해서 소모한 자원이 너무 많았다.’


도강언의 곳곳을 점령한 독룡대를제압하기 위해 많은 암기를 사용했고, 살포해놓은독을 중화시키기 위해 녹풍대의 독을 사용했다. 그렇기에 실질적으로 맨손으로 적과 겨뤄야 하는 상황. 온몸이 강철 같아진 독각천시와는 상성이 맞질 않았다. 거기에 시인과 묵객은 보통의 낭인들과는 다른, 낭인왕의 수하였던 과거가 있는 자들이었다.


‘애초에 쌍검무쌍에서도천마신교 사천지부의 수장을 맡았던 자들이니까.’


당소소는 고개를 푹 숙이고 원전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마교가 태동하고, 사천성이 가장 먼저 마교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그동안 사업을 확장한 백능상단은 이미 중원에 진출해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청성파와 아미파는 그렇지 못했다.

갑작스레 나타난 시인과 묵객은 사천성을 집어 삼키고, 낭인왕의 복수를 하겠다며 낭인회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마교전의 시작이었다. 원작 당소소가 모습을 감춘 것도 그 이후였다.

‘백능상단에서 기생하고 있다가, 백능상단의 세력을 마교에게 바치고 자리를 얻은 거야.’

지식과 경험이 맞물려 결과를 도출해냈다. 본격적인 기연쟁탈전의 시작이기도 했다.  시작은 낭인왕의 묘지. 승자는 마교였고, 그 결과 불사마존[不死魔尊]이라는 골치 아픈 존재가 탄생했다.

뚜둑.

당소소의 손톱이 나무 바닥을 긁었다. 이제 생각해야했다. 타개책은 무엇일까. 나만이 알 수 있는 지식과, 나만이 할 수 있는 행동들은 과연 이 암담한 상황을 구제할 수 있을까.

“…죄송합니다, 오라버니.”

“넌 내 실험체일 뿐이야. 나랑 대등한 생물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란 말이야. 알아들었어?”

그녀는 움켜쥔 손을 풀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을 떠올려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계책을 떠올려야 했다. 그렇기에 눈물자국이 선명한 뺨을 들어 웃었다.


“예. 당연히….”


당혁은 그런 당소소의 태도가 흡족했는지, 몸을 일으켜당소소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백진오를 걷어차 의자에서 떨어뜨린 후, 그 의자에 앉아 손짓했다.


“컥!”

“그렇다면 이리로 기어오너라.”

당소소는 망설이지 않았다.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고, 다시 왼손.  무릎으로 바닥을 쓸며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당혁은 고개를뒤로 젖히며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백진오.”

“…….”

“상황은 끝났다. 죽기 싫다면 금고를 넘겨라.”

“하하….”


백진오는 부들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당혁의 시선이 그를 거만하게 훑었다.


“말하면 무엇인가 달라지나?”

“널 살려주도록 하지.”

“멀쩡히 살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네 신분은 독각혈가의 소가주인 내가 증명해주도록 하지. 이 정도면 괜찮은 거래 아닌가?”

툭.

당혁의다리를 건드는 당소소. 당혁의 눈이 꿈틀거린다. 무릎을 꿇고 네 발로 엎드려있는 그녀를 걷어찼다. 당소소가 바닥을 나뒹굴며 백진오의 곁으로 날아갔다. 마른기침 몇 번. 그리고, 다시 당혁의 곁으로 기어갔다.

“쿨럭, 쿨럭….”

“쯧쯧. 배알 없는 이런 꼴이란. 그래서 네가 내 품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게다. 소소야.”

“죄송해요, 살려만…. 살려만 주세요.”


백진오는 차게 식은 눈으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약간의 경멸이 담긴 듯 했다. 단혼사가 죽음으로 살린 그녀의 꼴이 너무 역겨웠기에. 당소소는 그가 그런 시선을 던지거나 말거나, 당혁의 곁으로 가 몸을 웅크렸다. 당혁은 그런 당소소의 머리를 잠시 쓰다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백진오에게로 다가갔다.

퍽!


“컥!”

가벼운 발길질에 백진오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당혁은 그의 멱살을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거래를 좋아한다고 했지?”

“글쎄다….”

“마지막 기회다. 금고의 위치를 불어라. 아니면….”

당혁은 시인에게 눈짓했다. 그가 들고있는 작은 각궁이 휘어졌다. 화살촉은 멀리서 분투를 벌이는 중인 백서희에게 겨눠졌다. 백진오의 표정이 굳어갔다. 당혁은 웃었다.


“합리적인 거래 아닌가?”

“그래, 말하마. 네가 서희를 살려준다면.”

백진오의 입이 떨어지자 당혁은 손을 들어 시인의 손을 늦췄다. 그는 백진오의 멱살을 놓아주며 말했다.


“좋다. 살려줄 것을 맹세하마. 내가 부흥시킬 당가의 이름을 걸고.”

“금고는 본가의 잔해 밑에 있을 것이다. 열쇠는….”


백진오는 눈을 찌푸렸다. 자신이 죽더라도 백서희는 살아야 했다. 그녀가 자신보다 더 가치가 있으니까. 그렇다면, 살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줘야했다.

“…백서희가 가지고 있다.”

“좋아.거래는 성사되었다.”

당혁은 손을 내리며 눈짓했다. 시인은 백서희를 잡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백진오의 앞에 서서 물었다.

“남길 말은 있나? 마신의 영전 아래에 무릎 꿇는다면 살려줄 용의는 있다만.”

“뭐, 언제는 날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었나?”

허탈하게 웃는 백진오. 당혁은 그 웃음을 웃음으로 받는다.


“맹세를 하지 않았잖아.”

“그렇군. 계약서는 필수였지. 내 패착이군.”


당혁의 발이 뒤로 젖혀진다. 백진오의 머리를 걷어차 으스러뜨리기 위해 곧장 뻗어나갔다.

뿌득!


“아학!”

비명조차 없을 거라 예상하던 행동에, 낯선 비명이 끼어들었다. 당소소가 그의 발길질에 얻어맞아 창가로 날아갔다. 그녀는 배를 움켜쥐며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아흑, 으으윽!”

“뭐하는 짓이지? 감히? 실험체 따위가.”

“흑, 학! 아파, 아파….”


갈비뼈가 부러져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할딱이는 숨결에 고통이 묻어나왔다. 몸을 가눌  없기에 바르르 떠는  밖에 할  없었다. 백진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이게, 무슨 짓이지. 난 어차피죽는다. 네가 손해를 감수하며 뛰어들 이유는 없는데.”

“윽, 으윽….”


당소소는 고통으로 몸을 웅크렸다. 가격된곳은 단전이었다. 뇌린은루로 증축해둔 단전의 근간이 으스러지고 있었다. 움켜쥔 손바닥으로 손톱이 파고들었다. 당혁은 멍하니 당소소를 바라보는 백진오을 내버려두고 당소소에게로 다가갔다.

“아직 완전히 정신 차리지 못했구나, 우리 귀여운 소소.”

“헉, 허억….”

“교육을  해줘야겠어.”

당혁이 다가오자 난데없이 하늘이 명멸하며 우렛소리가 들려왔다. 그 우렛소리에 당혁은 걸음을 멈추고 웃었다.

“들리느냐, 소소야?”

“…우그윽.”

“들리느냐고.  스승이 형편없이 짓이겨지는 소리가. 저 편에는 독마와 요마가 가있다. 네가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구주십이천에 비견된다는 십계십마의 둘이지. 제아무리 번개를 부리는 괴물이더라도, 둘의 협공에는 맥을 추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의 말에 호응하듯 벼락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그러다 종국에는, 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 웅크리고 있는 당소소의 머리를 쓸었다. 날아간 통에 부러진 비녀가 드러났다. 당소소는 어깨를 떨었다. 당혁은 턱을 쓰다듬으며 그 꼴을 감상했다.

“뭐, 그럴 수 있지.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으니. 그럼 처음은 백련지독으로 시작할까?”

“흐….”

어깨의 떨림은 곧 흔들림으로 변했다. 신음은 곧, 웃음소리로 변했다.


“흐흣.”

당소소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분명 일어서지 못할 상처임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 으음?”


반대로 분명 쓰러지지 못할 힘을 가졌음에도, 당혁이 비틀거렸다. 당혁은 서둘러 시큰해진 코끝을 훑었다. 피가 묻어나왔다. 시종일관 거만하던 그의 눈이 떨렸다.  떨리는 눈은 당소소의 얼굴로 향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녀는 당소소였다.

그녀는 당소소가 아니었다.

당혁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물었다.


“…너, 누구야.”


당소소는  물음에 웃음을 지우고 그를 바라봤다.


“나?”


그녀는 무언가의 잔해로 더러워진 손을 털고, 부러진 비녀를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에선 어떤약향이 퍼지는  했다.

그가 물었다.

 누구냐고.

‘난 누구냐고?’

나는 무너진 가정 속에서 살던 김수환이다.


‘나는 독천의 딸 당소소야.’

나는 일용직을 전전하던 김수환이다.

‘나는 당가의 혈족인 당소소야.’


나는 패배자인 김수환이다.


‘난 가문에서 버려진 당소소야.’


그럼

‘그럼.’

 누구인가.

팟.

난립하는 생각 속에서 부러진 비녀가 허공에 던져졌다.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 않지.’

중요해.


‘정말 중요한건, 내가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거야.’

그것보다 중요한건 어머니가 도망갔다는 거야.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형제들조차  버렸다는 거야.’

아니, 더 중요한건 내가 사회에게서 버려졌다는 거야.

‘아니라니까. 난 가문의 천덕꾸러기였어. 가문이 날 버렸다고.’


버림받아 굶어 죽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쓸쓸한  안에서.

‘난 칠혼독을 먹었어.’

당소소는 소매를 찢어 긴 천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어떻지?’

…넌 그래서, 어떻지?

탁, 타닥.

비녀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흐트러진 머리가 무척이나 거슬렸다. 그녀는 머리를 그러모아, 천으로 동여맸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야. 내가 누구인지, 너는 무엇인지.’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지.

‘진짜로 중요한 것은,’

“진짜로 중요한 것은,”


당소소의 자색 눈이 비틀거리는 당혁을 바라봤다.

‘비로소 깨달았다는 거야.’

“비로소 깨달았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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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소는 머리를 묶고 손을 내렸다. 내가 무엇인가에 관한 고민은 영원토록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이 생이 다하도록  고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그녀가 화가 났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가족, 사회,하인, 사장, 돈, 불우, 죽음,배고픔, 아픔, 고통, 상실.

그 모든 것이, 그녀를 화나게 했다.

그 모든 것에, 그녀는 화가 나 있었다.

으스러진 단전에서 방전이 튀었다. 뇌람심공이 길을 잃고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그러나 만류귀원신공으로 그어진 선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 선을 따라, 내공은 움직인다. 열 두 곳의 혈맥을 훑고, 근골에 스민다.

그저 내공을 움직일 수 있는 삼류를 넘어, 근골에 내공을 깃들이는 경지.

이류의 초입이었다.


“쿨럭, 네, 네년이 감히…!”


당혁은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당소소는 그런 그에게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당혁은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실험체는 실험체답게, 바닥을 기라고!”

당소소는 입에 고인 피를 뱉었다.

“순천단이라는거야. 물에도, 공기에도 퍼뜨릴  있지. 느낌이 어때?”


그녀는 허리춤에 묶여있던 빈 가죽주머니를바닥에 떨어뜨렸다. 당혁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네 귀여운 동생이 묻고 있잖아.”

그녀는 품에서 회룡피갑을 꺼내 손에 끼웠다.


“대꾸하지 않고 뭘 하고 있어?”

“빌어먹을 년…!”



그럴 리 없는, 그래선 안 되는 둘의 시선이 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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