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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화 〉종장[終章], 괄목혈봉[刮目血鳳] 3 (122/130)



〈 122화 〉종장[終章], 괄목혈봉[刮目血鳳] 3

쿠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있던 수문이 열렸다. 고여있던 독기가 격류에 짓이겨지고, 으깨지며 되다만 찌꺼기들을 뱉어낸다. 거센 물살은 거품을 뱉으며 독기를 쓸어냈다. 도강언 또한 수천 년의 세월 동안 그래왔듯, 시간을 흘려 도시에 얽힌 찌꺼기들을 쓸어냈다.

살려달라는 비명도, 윽박지르는 고함도. 치솟던 연기도, 바닥을 기던 독기도. 시간의 물결에 딸려온 어둠에 덮여 침묵했다.

“…….”

이빙각의 삼 층을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백진오. 고문의 흔적 위론 붕대가 감겨있었다. 당가의 제약당에서 파견나온 의원들의 손길이었다. 안정을 취하라는 그들의 말에도, 백진오는 다시 이빙각으로 걸음을 옮겨 자신이 고문을 받던 그 의자에앉았다. 그는 일렁이는 감정을 삼키며 도강언을 내려다 봤다.

“이 실패는 쓰군.”


백진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의자의 팔걸이 부분을 매만졌다. 검붉은 색으로 말라붙은 핏자국이 눈에 밟혔다. 고문으로 비단 육신의 피가 흐른 것만이 아니었다. 원정에 돌아온 간부들이 그의 실패를 어떤 방식으로 비웃을지, 그의 아버지는 또 자신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할지. 상단주 대행인 자신의 정신에도 멎지 않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서희가 내 대신이 되겠는걸.”


백진오는 팔걸이를 가볍게 내리쳤다. 질투심 같은 것은 없었다. 상인으로서는 자신이 뛰어나다는 것쯤은 인지하고 있었기에. 다만, 검을 쥐고 싱글거리던 동생의 모습이 아른거릴 뿐이었다.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만으로도 깔리는 중압감은 그의 존재감을 역력하게 드러냈다. 백진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당가의 정복을 차려입은 당진천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먼저 찾아뵀어야 했는데, 결례를 범했습니다.”

“상심이 큰  같군.”


고저가 없는 음성은 백진오의 긴장을 잡아당겼다. 백진오는 태연함을 덮어쓰고 고개를 숙였다.

“면목 없습니다.귀 가문에게 받았던 은혜는, 반드시  곱절을 쳐서라도 갚겠습니다.”

“뭐, 그것도 이야기해야 할 문제긴 하지만, 그 이야기만을 하고자 찾아온 것이 아니네.”

“허면…?”

“내가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라네.”


당진천은 바닥에 모로 누워있는 의자를 세워 그곳에 앉았다. 그리고 백진오에게 자리에 다시 앉으라는 손짓을 보냈다. 백진오가 자리에 앉자, 당진천은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꺼내 들었다.


“왜 도시가 습격을 받았는데, 관군은 침묵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의견을 좀 나누고자 왔지.”

“…….”

“그것도 그냥 도시가 아니잖은가. 무려 백성의 삶과 직결되는 수원지를 공격했으니, 들불처럼 일어나 덮쳐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쯤은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백진오는 당진천의 말에 눈가가 절로 찌푸려졌다. 자신이 관리들에게 내외로 찔러넣었던 금전을 하나하나 세어본다면, 백능상단의 새 지부를 차려도 한참 남을 금액이었다.


‘더군다나요 국[國]은 행정을 담당하는 관부와 군사를 담당하는 관부가 나뉘어  곱절의 금액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억울해서 팔짝 뛰고 싶었지만, 서둘러 감정을 추스르고 헛기침을 했다. 언제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실책으로 이어지고, 실책은 곧 손해였으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백능상단이 관부에 찔러넣은 돈만 해도  무역로를 하나 더 개척할 정도입니다. 관부가 응답하지 않은 것은 저희와 관계가 없습니다.”

“그걸 어찌 믿겠나? 자네가 당가의 전력을 깎아 먹기 위해 그들과 야합을 했을 수도 있지 않겠나?”

당진천의 매서운 시선이 백진오를 훑었다. 백진오가 얼굴에 발라둔 태연자약함이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당진천은 그 표정을 보며 웃었다.

“영 분위기가 좋지 않아, 농담을 한번 해본 것이라네. 관에게 책임을 묻는 자리는 차후에 자네가 마련토록 해주게.”

“하하….”


백진오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의 감각은 상대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었다. 사천당가의 독천이라는 거인을 상대로 협상하기엔, 지금의 자신은 너무나도 심약해져 있었다. 거기에 애초부터 명분조차 사천당가에게 있었으니, 지금 백진오가 할 수 있는 것은그저 상대가 조금이나마 자비를 내려달라 부처든, 천신이든 빌 수 있는 상대에게 모두 비는 것뿐.

‘사천교류회…. 사천교류회가 문제였다. 무지한 자들이 잠룡의 역린을 건드렸어.’

백진오가 침을 삼켰다. 당진천이 내미는 다음 협상안이 들려왔다.

“다음으로 논해야 할 것은 도강언과 백능상단을 지키기 위해 희생되었던 우리 식구들에 대해서인데.”

“사상자의 치료나 염습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당연히 저희의 금전에서 나갈 것입니다.”

“난 누군가를 겁박하는 취미가 없네.”


당진천은 눈썹을 긁으며 백진오를 바라봤다. 그의 말이 숨긴 저의가 무엇인지, 백진오는 최대한 머리를 굴려 고심해야 했다.


‘무슨 뜻이지? 알아서 토해낼 것은 다 토해내라? 아니면 피해자 처지의 나에게 큰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다는 건가?’


당진천은 백진오의 눈을 직시했다.

“이 사건이 이대로 흘러간다면, 자네는 어떻게 되는 것이지?”

“…….”

“도강언의 전소를 막았다지만, 백능상단의 본가는 불탔고 꽤 많은 직원이 죽었다. 기반시설도 꽤 파괴된 것으로 아는데.”

백진오는 눈을 찌푸렸다. 고민 중이던 사안인지라, 불편한 심기를 감출 겨를조차 없었다. 당진천은 그 눈빛을 놓치지 않고 백진오를 노려봤다. 백진오는 눈을 감으며 한숨을 쉬었다.


“전 대방의 자리를 잃고, 상단주 대행이라는 위치에서도 내려갈 겁니다. 아마 제 자리는 제 누이가 받게 되겠지요.”

“자네의 누이가 그걸 좋아하겠나?”

“호불호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백진오는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고자 하면, 그렇게 될 일인 것을.”

“춘부장의 강직한 성향을 고려한다면, 자네의 말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군.”

“아마 배상과 관련해선 제가 처리를 할 것이고, 이후의 책임소재를 판가름하는 문제에서는  아버지가 담당하게  것입니다.”

“난 책임소재도 자네가 담당했으면 좋겠는데.”

당진천이 웃으며 백진오에게 말했다.

‘어찌 보면 나보다 더 상인 같은 구석이 있으시군.’

“제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구는 내가 해야 하는 것이라네. 아니면….”

웃음이 지워졌다.


“두 명 모두에게 받아도 무방하겠군.”

“…제 아버지는 완고한 면이 있으셔서.”

“난 자네에게 묻고 있거늘.”

백진오는 당진천의 은근한 엄포에 표정을 굳혔다.


“일단…. 무엇을 받고자 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만.”

“자네는 무엇을 잃기 싫지?”


당진천의 선문답. 백진오는 또다시 고심에 빠졌다.  상대하기 버거운 상대였다. 그에겐 부족한 것이 없었다. 금력, 무력, 인력. 그 어떤 것이든. 이런 부류의 인물에겐 자신의 주도가 통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흐름을 따라가, 더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모든 것을 잃기 싫지요. 금전, 가문, 직위. 비록 혈통의 후광으로 얻은것들이라곤 하나,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

“하나를 택한다면?”

“금전.”


백진오의 대답은 거침없었다. 팔걸이를 두드리던 당진천의 손이 멎었다.


“거짓이군.”

“진실입니다.”

“난 자네가 왜 철혜검봉을 내게 들이밀었는지 알고 있다네. 정 그리 부정한다면….”


당진천은 자리에서일어났다.

“절차대로 진행하도록 하지.”

“…직위입니다.”

“어째서지?”


당진천의 시선이 내리꽂혔다. 백진오는 그 물음에 실소를 지었다.그는 결국 능수능란하게 자신을 요리하는 당진천에게 감정을 감추는 것을 포기했다.


“멍청한 제 여동생이 지독한 아버지에게 쥐어짜이는 꼴이 보기 싫기때문입니다. 상재는 한 톨도 없는 녀석이니, 가문을 망치지 말고 그리 좋아하는 칼이나 가지고 놀게 했었는데. 이젠 그 둔한 녀석이 와서 가문을 망칠 생각을 하니, 영 심기가 불편하더군요.”

백진오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푹 쉬었다.

“미련한 것.”

“직위라.”

당진천은 탁자 위에 손을 올렸다.


“자네에게 받을 것을 정했네.”

백진오가 고개를 들어 당진천을 바라봤다.

“…예?”

“곧 상단주 대행에서 물러나게 된다고 했었지.”

“예, 맞습니다만….”

“아마 물러나게 되면 한직으로 물러날 테고?”

백진오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당진천은  태도에 웃었다.

“성도로 오게.”

“예?”

“자네에게서 직위를 받겠네. 백능상단주에겐 보상 대신 자네를 백능상단의 성도지부장으로 임명하는 것을 대가로 요구하지.”

“그게 무슨 의미를…. 아.”

백진오는 감탄을 내뱉었다. 당진천은 손을 내민 것이었다.

“당문상단의 아래로 들어가라는 것입니까?”

“당가의 장로가 이끄는 상단에 자네가 들어갈 수 있나?”

“그럼….”

“그들과 경쟁하게. 독점권을 걸고.”

그 손은, 백진오를 아귀다툼의 틈바구니에 던져넣는 손이었다. 백진오는 당진천의 그 말에 더 이상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키득거리는 웃음은, 어깨를 들썩이는 웃음으로 변해 방안을 울렸다.


“다시 말해 저더러 근 백년간 귀 가문과 독점으로 거래해온 당문상단을 적지에서 밀어내라는 뜻입니까?”

“왜, 또 실패할 것 같은가?”

당진천의 얇아진 눈초리가 백진오를 훑었다. 백진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을 내밀었다.

“가주님은 무인이 아니었으면, 상인이 되셨을 겁니다.”

“칭찬으로 듣지.”


당진천은 그의 손을 맞잡아 악수하고, 백진오의 손을 놓았다. 하고자 한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백능상단의 상당한 재화를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가의 장로들 또한 파견에서 입은 손해를 좋게 보지는 않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당진천은 그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 걸음 나아가고자 했다.

“가주님.”


마치, 자신을 살리고 적을 무너뜨린 그녀처럼. 모든 손해를 이득으로 바꾸던 아름다운 그녀 말이다. 그 정도 외모라면, 그리고 그 정도 배경과 자신 정도 되는 배경이 합쳐진다면. 중원  어느 곳에서도 손해 보는 일은 없을 터였다.

“말하게.”

몸에 남아있는 고문의 흔적과 당진천과의 지난한 협상은 백진오의 이성을 마모시켰다. 항상 쓰고 다녔던 가면을 벗어던진 김에, 백진오는 썩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불쑥 솟은 감정을 토로했다.


“혹시 귀 가문과 본 상단의 긴밀한 공조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은 있으신지?”

“그게 무엇인가?”

“그러니까 정략….”


우직!

탁자가 그대로 찢겨나가며 바닥으로  꺼졌다. 백진오는 침을 삼켰다.당진천은 탁자를 찢어버린 자세 그대로 물었다.


“정략?”

“…아닙니다.”

“아니, 괜찮네. 말해보게.”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 싱거운 사람이구만.”


당진천은 손을 거두며 웃었다.


“그리고 또 하나 해줘야 할 것이 있네.”

“…무, 무엇인지?”

백진오가 말을 더듬으며 묻자, 당진천이 뒤돌아서며 말했다.


“자네에게 뇌물을 받아먹었던 자들의 명단을 오늘 중으로 내게 가져오게.”


은은한 분노가 방안을 울렸다.

“내 딸과 스승님에게 꽤 큰 실례를 저지르신 분들이시니까.”

*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흔들렸다. 마차 뒤편에는 심드렁한 얼굴로 턱을 괴고 있는 사마문이, 그 맞은편에는 장패군과 입에 재갈을 물린 노인이 있었다.노인은 몸을 비틀어대며 소리를 냈다.


“크흣, 읍!”

“강호유람은 어떠셨는지요? 소교주님.”

“그럭저럭.”

사마문은 장패군의 말에 건성으로 답했다.


“독마는….”

“읍, 읍! 흡!”

노인의 숨죽인 비명에 사마문은 콱 인상을 쓰며 그의 발등을 짓밟았다. 노인은 시뻘게진 얼굴로 숨죽여 소리쳤다.


“으읍! 윽! 읍!”

“쯧, 정말 죽여버리고 싶군.”


사마문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리자, 장패군이 그를 달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독마는곧 합류할 것입니다.”

장패군의 말에 사마문의 고개가 돌아가 그의 다음 말을 요구했다. 장패군은 가볍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사천당가의 시선을 독각혈가에 집중시키는  또한 성공했습니다. 당혁을 그들의 손에 쥐여줌으로써.”

“흥, 스스로 독무후와의 일전을 자처했다던데.”

“당혁이라는 달콤한  하나를 먹으니, 시루째로 먹고 싶었던 게지요.”

사마문은 장패군의 설명에 턱을 괸 손으로 볼을 두드리며 읊조렸다.


“연군의 지원을 받아 사천성으로 출정한다. 그리고 군부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확답을 받고 사천성을 들쑤신다. 그 환란을 이용해 그가 가장 성가셔하던 이를 잡아간다.”

“필연적으로 끌리게 되는 이목은당혁을 대가로 합류한 독각혈가에 몰아주고, 저희는 그들을 부리며  노인….”

장패군은 노인의 입에 물린 재갈을 벗겼다. 노인이 크게 호통쳤다.


“이놈들, 감히 이 사천성주에게 무슨 짓이더냐!”

“사천성 행정부를 지휘하는 사천성주를 납치한다. 다소 잡음이 있었으나, 교의 지령을 훌륭하게 완수하셨습니다. 소교주님.”

“연군? 이 계획에 연군  배은망덕한 놈이…. 읍, 읍!”


사마문이 그 노인을 지그시 노려보자, 장패군은 서둘러  노인의 입에 다시 재갈을 물렸다. 사마문은 흥미가 가신 듯, 다시 턱을 괴고 마차의 창밖을 바라봤다.

“지령을 모두 완수하셔서 기뻐하셔도 무방하실 터인데, 무엇이 그리 심란하신 겁니까?”

“심란? 이 감정을 넌 심란이라고 하나?”

사마문이 물었다. 장패군은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독화를 가지지 못해아쉬운 것이 아닌지?”

“그런가.”

사마문은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게 심란이라고 하는 건가.”

“무엇이 소교주님을 그리 매료시켰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겐 그저 얼굴이 반반한 계집으로만 보이는데.”

“정말 그렇게만 보이나?”

사마문은 조소를 지으며 물었다. 장패군은 말에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절정을 넘어선 자신의 환술을 파훼하고 독각천시를 익힌 당혁을 무너뜨린 시점부터, 그녀는 이미 세상이 기억하고 있는 독화가 아니었다.

“실언이었습니다.”

“그녀에 대해서 들어본 바는 있나?”

“예. 사천당가의 정보는 대부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사마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하소소[唐下素笑]. 독천이 애지중지하는 고명딸이면서도, 타고난 무능과 고약한 심성은 그 권위를 쫓지 못한다는 말이었지. 청성의 제자로 잠복하고 있던 내게 치근덕대던 그 시절을 떠올린다면,  말은 부정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점점 입꼬리를 올린다.


“그러나 어느 순간 눈을 비벼보니 다른 것이 앉아있더군.”

달라진 말투. 점소이를 살리기 위해 감히 자신에게 대들던 모습. 열흘간의 고문에도 꺾이지 않던 의지. 무공 한 줌 없는 몸으로 두 절정고수를 패퇴시킨 기지. 장패군의 마수에 굴하지않고, 자신을 실험체로 썼던 상대를 쓰러뜨린 뒤 결국 펼쳐버린 투박한 날개.

사마문은 오하아몽이라는 말장난에서 유래한, 또 다른 말장난이 떠올랐다.

“괄목[刮目]하니, 피에 젖은[血] 봉황이 있더라[鳳].”

“혈봉[血鳳]….  처자에게는 꽤 어울리는 별호군요.”

“그치? 재밌는 물건이라니까.”

“…말을 아끼겠습니다.”

장패군은 선시요화안을 파훼하던 그녀의 귀기 어린 광기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사마문은 킬킬 웃으며 창밖을바라봤다. 매  마리가 호선을 그리며 날아들고 있었다.


“교의 전서응[傳書鷹]?”

사마문이 팔을 내밀자, 매가 그의 팔에 내려앉으며 깃을 추슬렀다. 그 매의 다리에는 자그마한 통이 매달려 있었다. 사마문이 그 통을 다리에서 풀자, 매는 크게 날갯짓을 하며 마차를 떠나갔다. 장패군은 떠나가는 매를 바라보며 말했다.


“시기상 교의 다음 지령이겠군요.”

“빌어먹을 새끼들, 너무 부려먹는군.”

사마문이 통을 열자 돌돌 말린 쪽지 하나가 들어있었다. 그는 쪽지를 꺼내 펼쳐봤다.


-정천무관[正天武關].

-멸살[滅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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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독심[一片毒心] - 일막[一幕], 사천혈봉편[四川血鳳編]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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