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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화 〉이막[二幕], 일장[一章] 시우해빙[始雨解氷] 3 (125/130)



〈 125화 〉이막[二幕], 일장[一章] 시우해빙[始雨解氷] 3

이막[二幕], 일장[一章] 시우해빙[始雨解氷] 3

당회의 표정이 당혹으로 젖어들었다.


“네가, 정천무관에?”

“어.”

당회는 태연하게 대답하는 당소소를 보며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정파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이나, 변두리의 별난 가문으로 취급받을 때는 정천무관의 일반생도로 입학한다면. 그때는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걸 너 따위…. 으흠. 아니, 네가 어떻게 갈 생각이지? 넌 지금 단전도 부서진 상태라고 하지 않았나?”

“…….”

그러나 문제는, 선대의 가주들이 너무 유능했다는 것이었다. 한때 사파라 불리며 멸시받던 사천당가는, 전대 가주와 독천 당진천의 활약으로 오대세가의 반열에 올라버렸다. 오대세가라는 명성을 갖게 된 이상,  명성에 따른 권력을 가진 이상. 그에 걸맞은 자격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더 높은 강도의 조롱과 멸시가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누리는 권리는 결국 힘에서 나오는 법이니.


“네가 정천무관으로 향하고자 한다면, 무조건 유력문파전형으로 가야해. 우린 오대세가의 일원이니까. 그리고 유력문파전형은 일류무인부터 받을 수 있다. 알고 있어?”

“알고 있어.”

“유력문파전형을 받지 못하면, 네게 쏟아질 멸시의 시선을 생각해봐. 정천무관에서 갖은 혜택을 누리는 오대세가의 제자가, 왜 유력문파전형으로 들어오지 않았지? 사천당가, 사실 별  없는 문파 아닌가?”

“…….”

“그렇게 된다면 이제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야. 가문의 위신에 관한 문제지.”



무어라 반박할 여지가 없는 정론이었다. 당소소는 사천당가의 일원이었고, 자의든 타의든 권리와 혜택을 누렸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자격 또한 보여야 옳았다.


“알아.  알고 있어.”

“무공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몸도 박살이 난 녀석이…. 그만둬라.”


원작의 당소소가 어떤대우를 받았었는지. 사천당가의 위세를 뿌리고 다니는 통에 앞에선아무런 말을 듣지 않았었지만 뒤에선 어떤 말을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당소소 자신이 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분하지만 인정해야했다. 단전이 무너진 그녀는 절대 일 년 안에 일류고수가 되지 못한다. 설령 기적적으로 단전이 복구된다한들 그녀는 이류고수일 것이고, 일류고수로 가는 길은 요원했다.

그래도 당소소는 가야했다.


“방법은…, 있어. 다만, 지금 여기서 말할 수 없을 뿐이야.”

“칠혼독을 먹고 깨어난 넌…. 가끔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단 말이지.”


당소소의 몸이 흠칫 떨렸다. 당회는 정원에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진작 포기하고 애월루로 남자 꽁무니나 쫓아다니다가 흑풍대에게 붙잡혀서 독봉당에 처박혔을 녀석이 말이야.”

“그냥 단순한 변덕이야.”

당소소는 급조한 변명으로 둘러댔다. 당회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찌됐건 네가 지금부터 수련한다고 해도 일류고수가 된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아버님께 민폐야.”

“그럼 이렇게 거래하자. 오, 오….”

“오?”

“오, 오라버니가. 음. 소가주가 된다면, 포기하는 것을 고려해볼게.”

당소소는 얼굴을 붉히며 애꿎은 바닥을 걷어차며 말했다. 당회는 당소소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당소소의 허술한 함정을 지적했다.


“고려?”

“으, 으음.”

“내가 소가주가 되지 않으려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야.”


당회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주먹을 움켜쥐었다. 움켜쥔 주먹은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난 못난 놈이니까. 잘 생각해봐. 고작 연철전에서 쇳조각이나 만지고 있던 녀석이, 오대세가의 위치에 오른 사천당가를 잘 이끌  있을  같아? 망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당청이나 당혁…. 오물만도 못한 심성이었지만, 걔네가 소가주를 하는 편이….”

당소소는 당회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시선에선 당회도 천재였다. 애초에 한가문의 핵심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의 능력은 입증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단지 당청과 당혁이 주입시켜놓은 학대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고 있었을 뿐.

“그 씨발놈들이 오, 오라버니한테 뭘 했는데?”

“그걸 굳이 여기서 말해야 하나?”

“사내새끼가 돼서 서로 빼지 말자고. 난 독먹고 실험체로 쓰이고 고문  받았어.”


당회는 눈을 깜빡이며 잠시 말을 잊었다. 당소소의 선이 굵은 발언에 넋을 놓았던 것이다.

‘사내새끼, 서로…?’

“뭐, 음….”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난…. 가문에서 난 없는 존재였다.  씨, 씨….”

주저하는 당회를 위해 당소소가 대신 입을 열었다.


“씨발놈들.”

“씨발놈들. 그래. 그 씨발놈들은 가족인 체를 하려고 해도 무시했다. 아버지의 앞에선 아양을 떨다가 뒤에선 가족으로 대우도 하긴커녕,자기들이 쥐고 있는 실권을 이용해서 나와  하인들을 괴롭혔지.”

당회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움켜쥔 주먹에선 피가 스며나왔다.


“개인적으로 무시하고,  떨어진 놈이라고 멸시하는 것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하인들을 동원해  헐뜯고 멸시하는 것은 버티기 어려웠지.”

“그걸 빌미로 날 증오하라고 시킨 거구나.”

“…미안하지만 난 애초부터 네게 좋은 감정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원인이 너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주먹이 풀렸다. 손바닥을 파고든 손톱자국에선 피와 함께, 어떤 혐오감이 묻어나왔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그 녀석들의 제의는 지나칠  없는 것이었어. 널 혐오하니 난 가족이 되었고, 널 무시하니 하인들은 더 이상 날 무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널 괴롭히니…, 연철전으로 갈 수 있었다. 연철전을 맡은 것도 결국 내 재능이 때문이 아니야.”

“요새 나한테 치근덕대는 게 그 이유였구나.”

“뭐, 그렇지. 용서를바라고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마음이 편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니….”


당소소는 애꿎은 땅바닥을 발로 차며 생각했다.

‘내가 용서를 한다고, 진짜로 용서를 받는 건 아니겠지.’


당회가 정말로 용서를 빌어야 할 당소소는 이미 세상에 없었다. 시늉이라도 할까, 라는 생각이 드는 그녀였지만 영 내키질 않았다. 진실하지도 않거니와 남아있는 당소소의 감정은 그를 여전히 불쾌해 했으니까.


“용서를 원해?”

“사과는 하고 싶다.”

당소소는 코웃음을 쳤다. 용서를 구하는 이의태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은 당사자이면서, 당사자가 아닌 것을. 그녀는 그저  당사자에게 닿을지도 모르는, 다리를 놓아주는 이일뿐이었으니까.

“그럼 소가주가 돼.”

“여태 내가 했던 설명을 듣지 못했나?”

“그러니까 되라고.”


당소소는 입을 열어 이젠 없는 그녀에게 닿을 다리를 놓아줬다.

“능력에도 맞지 않는 옷을 입어 이리 굴러보고, 저리 굴러보고…. 내가 화를 풀 만큼 고생을 좀 해보란 말이지.”

“흐, 고약한 성격은 여전하군.”

당회의 헛웃음에 당소소도 웃음으로 답했다.

“내가 어디 가겠어,  당소소인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당혁을 바라봤다.


“내가 정천무관으로 가기 위해선, 음…. 오라버니…. 에이, 씨팔.”

당소소는 오라버니라는 말을 입에 담은 뒤, 얼굴을 붉히며 욕을뱉었다. 당회는 그녀가 잘라낸 말을 대신 붙여주었다.

“그러니까 네가 정천무관에 가기 위해선 내가 소가주가 돼 가문의 혼란을 줄여야한다. 이 말인가?”

“맞아. 그리고 나한테 무기를 만들어 줘.”

“무기? 연철전에 있는 걸 집어가.”

“아니.”

당소소는 미래의 자신을 그렸다. 적을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 내린다고 해도 상대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거기서 특정 상대에게 맞춰서 제작해둔 무기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당회를 포섭해둬야했다.


“오라버니여여만 해. 내가 아는 한, 내 주문을 맞춰줄 대장장이는 연철전주밖에 없으니까.”

당소소는 당연하다는 말했다. 세계관 최고의 대장장이인 도철일맥은 개봉에 위치한 정천무관에 가서나 만날  있는 인물이었다. 자연스럽게 당소소가 유일하게 알고 있고, 그녀가 배운 무공에 맞게 주문제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당가의 연철전주 뿐. 그렇기에 정천무관에 가기 위해선 당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


하지만 당회에겐 당연한 그 말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도철일맥에 대해 들었던 동생이었다. 자신을 피하려면 얼마든지 다른 대장장이를 택할 수 있는 재력도 있었다. 그런 동생이, 평생을 자신에게 멸시받았던 그 동생이 자신을 대장장이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준다면 도철삼보[饕餮三寶]에 대해서알려주도록 할게. 우선 무궁검….”

“됐다.”

당회는 몸을 돌렸다. 당소소가 당황하며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가봐, 정천무관.”

“응?”

“가보라고.”

당회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당진천이 기다리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당소소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그래서 소가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당소소도 당회의 뒤를 따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시녀 한 명이 당소소를 마중 나와 귀띔했다.

“아가씨, 지금 안쪽에서 두 분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고 전하셨습니다.”

“아, 그런가요.”

“독봉당으로 돌아가셔도 될 듯싶습니다. 혹여 시중이 필요하시면….”

“괜찮아요.”


당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독봉당으로 돌아갔다. 내각을 지나 외곽으로 들어가는 입구 사이로, 독무후가 기거하는 무후당이 보였다. 당소소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무후당 앞. 그 앞을 지키고 있는 녹풍대 무사들이 제지했다.

“혹시라도 병세에 지장이 있을지도 모르니,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가주님의 명령입니다, 아가씨.”

“…알겠어요.”


당소소는 한숨을 푹 쉬고 돌아섰다. 마음이라는 솜은 한 움큼의 죄책감을 빨아들였다. 그녀는 다시 뒤돌아 독봉당으로 향했다. 할 일이 많았다. 녹풍대원은 굳은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다, 당소소가 멀어지자 말했다.


“갔습니다, 제독전주님.”

“그래.”


하얀 소복을 입은 독무후가 무후당의 문을 열고 나왔다. 그 뒤로, 황철이 뒤따랐다.


“주인님도  유별난 성격입니다. 그냥 곧이곧대로 회복되어 간다고 말하면 될 것을….”

“쯧, 미련한 것.”


독무후는 혀를 차며 황철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러나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는지, 소녀의 힘없는 발길질일 뿐이었다. 그녀는 발을 내리고 말했다.

“장로회, 그 코찔찔이들은 내가 아직 병상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주도권을 쥘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삼켰던 녹흑진액에 대한 분석도 끝마쳐야한다. 다행히도 팔대극독이 유출되지는 않았다만…. 쿨럭, 쿨럭!”

독무후가 마른기침을 했다. 황철이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입가를 훔쳤다. 검은 피가 묻어나왔다.

“…오독문으로 가셔서 요양을 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됐다.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이 정도는 문제없어. 뇌람심공이 돌아오면 해결될 문제니라. 다만, 제자가 걱정될 따름이구나. 한창 마음이 복잡할 시기일 터인데.”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황철의 팔을 툭툭 쳤다.

“가자꾸나. 오늘 안으로 어떤 독들이 유출되었는지 분석을 마쳐야한다.”

“예,주인님.”


황철이 독무후와 함께 제독전으로 걸어갔다.

*


독봉당의 객실로 돌아온 당소소를 맞이한 것은, 도올일맥의 학사나 시녀를 비롯한 하인들이 아니었다.

“단혼사님?”

“꽤 늦었구나.”

단혼사는 그렇게 말하며 턱짓으로 앉으라는 뜻을 보냈다. 당소소가 단혼사의 맞은편에 앉자, 그가 입을 열었다.

“일단 마교가 낭인왕의 묘지를 노린다는 것은 알겠다. 지금 시인도 거부하고 있으나, 곧 넘어갈 것 같다는 묵객의 전언이 있더군.”

“…그 사람 아직도 마교에 있나요?”

“돈만 찔러주면 뭐든 하는 녀석이니까. 세작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을 보면, 어찌저찌 의심도지운 듯 하더구나.”

“다행이네요.”

역사가 완전히 어긋나지는 않았지만, 상황에 따라  좋은 흐름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애매한 지금의 상황. 그녀가 가장 원하던 전개였다. 단혼사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도록 하마. 낭인왕의 무공을 노리는 것이냐?”

“아뇨. 탐이 나긴 하지만…. 제가 다룰 수 있는 무공은 아니잖아요?”

“그럼?”

“항아의 약속[姮娥之約].”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단혼사를 바라봤다. 단혼사는 잠시 침묵하더니, 가볍게 웃었다.


“영악하구나.”

단혼사의 날카로운 시선이 당소소를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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