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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화 〉이막[二幕] 이장[二章], 검희조우[劍姬遭遇] 2 (130/130)



〈 130화 〉이막[二幕] 이장[二章], 검희조우[劍姬遭遇] 2

죽음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의 접두사를 붙일 수 있었다. 문자 그대로의 죽음이 살아있는 생명체가 삶을 유지하는 모든 기능의 중지이듯, 사람이 사람으로서 다른 이들과 공존할 수 있는 기능인 관계를 모조리 끊어버린다면. 그것은 사회적 죽음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남궁란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당소소에게 사회적 죽음을 내림으로서, 세가연합이 변절한 당소소와 무관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그녀와 교우를 맺던 정천무관의 생도들, 그녀를 수행하던 가문의 시녀들, 그녀와 주고받았던 대화까지 모두 지우고 끊어냈다.

그렇게 그녀는 그 누구와 관계되지 않고 온전한 마교도로서 죽었다.남은 것은 주인공의 명성과, 세가연합은 물론 정파무림의 결백과한 마교도의 죽음뿐이었다.

‘그리 나쁘다곤 생각하지 않아. 당소소는 마땅히 그럴만한 악역이었으니까.’

당소소는 소매 안에 초청장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직, 그녀가 날 견제할 시기는 아니야. 걱정할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을 끝마친 당소소는 움직이려고 몸을 일으켰지만, 무언가 막막한 감정이 가슴을 간질였다.

‘무언가 갑자기 일이 불어났는데.’

단혼사와는 낭인왕의 묘지를 찾아 무적자라 불리게 되는 낭인왕의 무공이 마교에 흘러가는 것을 막기로 했고, 당가에서는 당가대회의라는 부담스런 안건을 해결해야했다. 거기에, 초중반부 주인공과 견줄 수 있는 경지인 검희 남궁란의 초청에도 응해야했다.


“우선 당가대회의부터겠지?”


그녀는 입을 열어복잡한 마음을 정리했다. 과거에도 일감이 수두룩하게 밀려 막막할 때는, 우선 가장 가까운 것부터 해치워 나가는 것이 옳았던 적이 많았다. 그렇지만, 겪어보지 않았던 형태의 일이기에 당소소의 눈이 꿈틀거렸다.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아가씨, 가주님께서 오셨습니다.”

“들어가도 되겠느냐?”

당소소의 고민을 흩어내는 음성들이 들려왔다.

“괜찮아요. 들어오세요.”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며 당진천이 들어왔다. 그가 대동한 시녀는 당호로나 팥떡같은 군것질거리를 손에 들고 있었다. 당소소는 딱딱한 웃음을 지으며 완곡하게 거부했다.

“군것질거린 좀….”

“요즘 고생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단걸 먹고  기운을 차리려무나.”


당진천의 말에 시녀는 군것질거리를 탁자에 올려놓고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다. 당소소는 그것을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었다.


“어쩐 일로 오셨나요, 아버지?”

“일 장로와 이야기를 나눴다고 들었다.”

“네.”

“그자가 뭐라고 하더냐?”

당진천이 물었다.


“당가대회의에 참가해달라고 말했어요. 절 소가주에 추대하겠다면서.”

“그렇군. 다른 말은 없었더냐?”

“그다지…. 제가 소가주가 되기만 한다면, 제가 원하는 것을 준다고 하긴 했었죠.”

당소소는 독고륭의 제안을 털어놓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네, 아버지가 와줘서.’

쌍검무쌍 이야기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권과 권력을 걸고 벌어지는 이야기 외의 정치같은 개념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었다. 당진천은 안심하고 있는 당소소에게 질문을 던졌다.

“소가주가 되고 싶으냐?”

“예?”


당소소가 되물었다. 당진천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되고 싶다고 하면, 말릴 생각은 없다. 생각해보면 난 여태 네 의견을 듣지 못했었지.”

“그거야, 바쁘셔서….”

“핑계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난 지난 이십 년 간 꽤 치열하게 살았단다. 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난 준비되지도 않은  가주자리에 올랐었지. 제독전주도, 연철전주도 없었다.”

당진천은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으며 탁자에앉았다. 얼기설기 수놓은 자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산류수 사 성을 수련하던 흔적이었다.

“가문에 닥친 재난을 해결하고 나니, 이젠 외부가 문제더구나. 무림맹에선 우릴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사파로 분류하려고 했었지. 알다시피,  곳은 아미파와 청성파가 있는 곳이잖느냐?”

“그렇게 된다면, 가문은 기를 펼 수가 없었겠네요.”

“기를 펼 수 없는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 수많은 방계. 흑풍대, 녹풍대. 제독전과 그 휘하의 제약당, 연철전과 가문의 하인들…. 이들 모두가 굶게 됐을 거다. 그래서 내가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천교류회를 결의해 평화를 위해 가문의 정보를 팔아넘기기도 하고, 무림맹으로 가서 허드렛일을 자청했지. 첫 부인인 독고가문의 여인과 결혼한 이후에는, 가문은 문제없다 생각하고  더 무림맹의 일에 깊게 관여했었다. 가주실보단 무림맹의 업무실에 앉아있는 날이 더 많았다.”

당진천은 한숨을 푹 쉬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 결과가 이렇구나. 오대세가가 어쩌고, 구주십이천이 저쩌고. 그 많은 허명을 들춰보면, 곪아버린 가족만이 남았지. 너희들에겐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다. 그러고자 움직인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난 명예를 좇아 가문을 팔아먹은 최악의 가주나다름이 없지.”

“…….”

“그동안  자신을 죽이느라 수고했다. 이젠 네가 원하는 대로 하거라. 무엇을 원하든,  들어주도록 하마.”

탄식하듯 털어놓는 말에 당소소는 눈을 깜박였다. 그 처량한 모습에 당소소 또한 속으로 탄식했다.

‘에휴, 이게  무슨 짓이냐.’


그리고 잠시 눈을 감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이성에서 수치심이라는 단어를 지우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니까.


“아, 아빠.”

“어, 어? 그, 그래. 소소야.”

“전 정천무관에 갈 거예요. 만약 제가 소가주가 되길 원해 가문을 헤집어 놓으면…. 아마 갈 수 없겠죠?”

당소소는 채 지우지 못한 수치심으로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싶은 건 그게 다에요. 아, 아빠는. 그냥, 음…. 어…. 네, 뭐. 만수무강하시고.”

“…하하. 그게 네가 바라는 것이냐? 알고는 있었다만, 그건 어려운 일이란다.”

“그럼 뭐, 무공이라도 좀 알려주면 좋을지도….”

“곧 스승님께서 일어나실 거니, 스승님한테 받거라. 질투하실라.”

당진천은 당소소의 말에 키득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당소소에게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품에 안았다.


“으음…?”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구나. 그래서, 난 네가 무공을 익히지 않았으면 했다.”

“…….”

“무는 애초부터 강한 적을 상대하기 위한 것. 그렇기에 무를 단련하는 것은 편안과 거리를 두고, 고난을 벗 삼아야 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넌 충분히 힘들었으니, 이런 고난 같은 것은 겪지 않았으면 했다.”

당소소는 부끄러움으로 온몸이 빨개져 그 말에 답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던 당진천은 딸이 싫어하는 것 같다 여겼는지, 그녀의 머리를 놓았다.


“하지만 네 뜻이 그러하니, 어쩔 도리가 없구나.”

“…감사합니다.”

당소소는 기어가는 음성으로 답했다. 당진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당가대회의는, 참가하고 싶으냐?”

“아뇨. 전 능력이 없어서 그런 정치같은 건…. 윽.”

그녀의 말에 당진천이 가볍게 이마를 쳤다. 당소소는 눈을 질끈 감으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윽.”

“엄살 피우긴. 네게도 나름의 정치감각은 있다. 단지, 네가 귀찮게 여기고 있을 뿐이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

“당장 사파에서 전향해 흑풍대주가 되기 위해 수업을 받고 있는 진명이나, 사천교류회와 도강언 사건…. 뭐, 이런 건 네가 직접 알아가도록 하게 해둬야겠지.”

당진천은 손을 거두고 뒤돌아섰다.


“하지만 딸이 귀찮아하니 어쩔 수 없구나. 당가대회의는 내가 미뤄둘 테니, 남궁가의 딸을 만나고 오거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이젠 받을 수 있는 걸 다 받았다고 아버지라고 하는 게냐?”

당진천의 말에 내심 뜨끔한 당소소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건 아닌데. 그냥 쪽팔린다고 해야 할까….”

“쪽팔린다라….”


딸의 격조 높은 단어선택에 당진천은 실소를 지었다.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킨 뒤, 입을 열었다.

“흠, 그래서 정천무관에 데리고 갈 이들은 정해두었느냐?”

“기왕이면 제가 편한 사람으로 골라갈 생각이긴 한데….”


당소소는 볼을 긁적였다.


“하연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녀장을 도맡고 있어서 어려울테고. 진명의 수련 또한 끝나지 않았으니, 당웅은 어떤가요?”


당소소의 말에 당진천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널 헐뜯은 사내를 데려간다는 말이냐?”

“손가락 하나가 잘리고,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걸 봤어요. 그쯤이면,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속죄 아닐까요?”

“그러라고 답하고 싶다만, 당웅은 지금 당가대회의를 앞두고 정신이 없단다.”

“그럼….”


당진천은 당소소의 난감한 기색에 나지막이 말했다.

“단혼사와 같이 가거라.”

“하지만, 단혼사님도 당가대회의 때문에 바쁘시지 않나요?”

당소소의 말에 당진천은 웃음을 참지못하고 키득거렸다.


“큭큭, 너도 알고 있잖느냐?”

“네? 무엇을?”

“네가 모른 척 한다면 더는 캐묻지 않으마. 다만, 그곳에  때는 미리 언질이라도 주도록 하거라. 혹여 다른 마음은 먹지 말도록 하고.”

당진천은 그 말을 남기고 침소를 떠났다. 당소소는 당진천의 마지막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낭인왕의 묘지로 향한다는 것을 말씀하신건가? 아니, 그러면 이렇게 순순히 보내줄 리가 없는데.’

당소소가 골똘히 생각하자, 단혼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들어가도 되겠느냐?”

“앗, 네.”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단혼사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소소는 가장 먼저 당진천이 남겼던 마지막 말에 대해 물었다.

“단혼사님. 설마 아버지에게 낭, 아니. 그분의 묘소에 간다고 말씀하신건가요?”

단혼사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내가 그것을 말할 리가 있느냐?”

“그럼 아버지가 남기셨던 말은 대체?”

“다만, 네가 나를 너무나도 찾아다녔기에 핑계 하나 정도는 만들어 뒀어야 했지.”

“그, 핑계라면…?”

단혼사는 턱을 쓰다듬으며, 태연한 기색으로 말했다.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도관[道觀]에 대해 물어온다고 했었지. 집안이 너무 힘든 것 같다는 상담을 해온다고도 말했었다.”

“아.”


당소소의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점점 형용할 수 없는 감정으로 얼굴이 물들어갔다.


“뭐, 그렇게 되었다. 달리 생각나는 게 없어서 말이다.”

“아, 아….”

“출발은 아마 내일이고, 되도록 독고륭과는 마주치지 말도록….”

“아…!”


당소소는 한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전생에서도 여자 손 한번 못 잡아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다산을 기원하러 간다는 상담을 한단다. 당진천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그녀를 바라봤을지, 상상조차 힘들었다.

‘갑자기 나에게 속내를 털어놓으신 이유가…!’


수치심이 당소소의 뇌를 바짝 구워갔다. 단혼사는  귀여운 모습에 슬쩍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좋은 게 좋은  아니겠느냐? 덕분에 묘소로  합법적인 변명거리도 생겼고 말이다.”

“아니, 하….”

당소소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단혼사는 슬쩍 눈을 찌푸리며 창가를 바라봤다.

“흠. 내일 정오가 좋겠구나. 어차피 긴 길이니, 약간은 더 늦게 출발해도 무방할 테지.”

“…….”


그녀는 단혼사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차마 가까운 이에게 무어라 험한 말을 던지지 못하고, 그저 심통이 난 얼굴로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단혼사는 뒷머릴 긁적이며 웃었다.


“고의는 아니었다만, 널 곤란하게 했으니 선물이라도 하나 줘야겠구나.”

“…….”

“지금 무후당으로 가보거라.”

“…예?”


단혼사를 노려보던 당소소가 놀라서 되물었다. 단혼사는 손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녹풍대원들은 치워 뒀으니, 무후당으로 가보거라.”

“……!”


당소소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침소를 뛰쳐나갔다. 단혼사는  모습이 못내 귀여운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정말 영악하군.”

단혼사는 그토록 경계했던 당소소의 영악함에 어쩔 도리 없이 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내각과 외곽의 경계. 그곳으로 난 샛길을 따라 걷다보면, 독무후가 기거하는 무후당이 나왔다. 당소소는 담벼락에 몸을 숨기고 슬쩍 무후당을 훔쳐봤다.


‘진짜 없네.’

당소소는 조심스런 몸짓으로 무후당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무후당의 문을 열었다. 열린 대문은 힘없는 경첩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그곳엔, 소복을 입은 독무후가 있었다.

“쿨럭, 쿨럭.”


마른 기침소리와 함께.


“스승님?”

입가를 가린 소맷자락이 붉게 물들고, 식은땀을 흘리는 독무후가 당소소를 돌아봤다. 독무후는 입가를 훔치며 빙긋 웃었다.


“내 제자지만, 정말 말 안 듣게 생겼구나.”


독무후가 당소소에게 다가왔다.

“그래, 이야기는 들었다. 정천무관에 간다고….”

“왜, 순천단을 쓰지 않으셨어요?”

당소소가 독무후의 말을 자르고 격앙된 말투의 질문을 던졌다. 독무후는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아꼈다. 그러자 당소소는 한 발짝 그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왜, 일어났다고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어요?”

“…….”

“제가 고안해낸 것이라, 믿지 못하셨던 건가요?”


독무후는 서운해 하는 당소소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내가 널 믿지 않을 리가 있겠느냐.”

“그럼 왜 순천단을 쓰시지 않으셨어요?”

“직감이 있었다.”


독무후는 당소소의 머리칼을 놓으며 말했다.

“그 놈은 지금의 순천단으로 죽지 않는다는 직감이.”

‘순천단으로 죽일 수 없다고? 그럴 리가….’

그녀의 말에 당소소의 표정이 혼란으로 물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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