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금화 고등학교 입학
[포인트를 투자해서 신체 능력과 테니스 기술을 향상 시킬 수 있습니다.]
악마가 준 선물의 정체는 육성 게임처럼 선수의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어플이었다.
“그런데 포인트는 어떻게 얻는 거지?”
지혁이 화면을 자세히 살펴보니 하단에 설명란이 있었다.
어플 사용법에 대한 내용이다.
[포인트는 사람들이 대상을 숭배할 때 쌓입니다.]
“숭배? 팬을 만들면 되는 건가?”
뛰어난 스포츠 선수는 경기를 할 때 마다 팬들의 열광과 사랑을 받는다.
그리고 가끔 위대한 선수가 나타나면 사람들의 우상이 되기도 한다.
축구의 메시, 농구의 마이클 조던, 테니스의 로저 페더러가 그런 경우다.
“그런데 팬은 어떻게 만들지? 당장 메이저 대회에 나갈 수도 없는데.”
주니어 대회나 전국 대회에서 우승해봤자 많은 팬들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테니스는 비인기 종목이었기 때문이다.
축구나 야구도 아닌데 테니스 유망주가 주목받긴 현실적으로 많이 힘들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지혁은 당분간 어플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세계 랭킹 50위까지 올라갔던 경험이 있는 한 국내에서 맞수는 없다.
어플의 힘이 없어도 시간만 흐르면 충분히 정점에 오를 수 있다.
9년 뒤, 국내의 한 테니스 선수가 호주 오픈 4강에 진출하며 스타덤에 오른 것처럼 말이다.
***
휴식 시간이 끝난 지혁은 성민과 함께 그가 일하는 테니스 아카데미로 갔다.
오전 훈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한 지혁은 아버지가 안내해준 공간에서 오전 훈련을 시작했다.
빠른 움직임을 위한 스프린트, 점프, 풋워크 훈련부터 근력을 위한 코어, 스쿼트, 탄력 밴드 운동까지.
모두 기본기 훈련이었다.
고통스럽고 지루한 작업이었지만 지혁은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훈련을 소화했다.
좋은 선수가 되려면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인이 된 후에도 일상처럼 해온 훈련들이라 익숙했다.
그렇게 정해진 훈련 세트를 전부 달성하자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허억. 허억.”
지혁은 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거렸다.
회귀하기 전, 월드 투어를 다닐 때는 은퇴한 유도 국가대표를 코치로 데리고 다녔다.
그때와 비교하면 오전의 훈련은 그리 강도가 높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체력이 약해진 건 단련시켜 놓은 근육이 전부 사라졌기 때문이다.
“후···. 전성기 때 몸으로 돌아가려면 한참 걸리겠는데.”
최대한 빨리 기량을 회복하고 싶지만 정상급 프로 선수의 몸을 단기간에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전성기의 육체는 지금부터 8년은 더 훈련해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몇 년간 죽어라 운동해야겠네.”
그래도 이번에는 시행착오가 없을 테니 시간이 많이 단축 될 것이다.
길면 5년, 짧으면 4년이면 충분하다.
그때가 되면 회귀 전의 퍼포먼스를 완벽히 발휘할 수 있다.
테니스 기술과 실전 경험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 말이다.
“점심이나 먹자.”
지혁은 식당으로 가서 배식을 받았다.
“쩝. 여전히 맛 없는 식단이네.”
배식대에는 연어, 닭 가슴살, 달걀, 채소, 과일 등 건강식만 가득하다.
전형적인 운동선수의 식단이다.
지혁은 억지로 음식을 먹고 남는 시간은 편히 쉬었다.
체력이 떨어져서 돌아다니지 못한 것이다.
띠리리리-
30분 쯤 쉬고 있을 때 지혁의 휴대폰에서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오후는 프로 출신인 성민과 함께 샷을 점검하는 시간이다.
“후··· 드디어 테니스를 하는 구나.”
지혁은 과거로 돌아오고 처음으로 하는 테니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테니스 코트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 성민이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오전에 열심히 훈련 했다며? 직원이 말해주더라.”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했어요.”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니까 항상 열심히 해. 오늘은 포핸드부터 연습하자.”
성민은 반대편 코트에서 공을 통하고 쳐서 넘겨주었다.
포핸드를 치기 딱 좋은 위치다.
탕!
지혁은 바로 앞에 떨어진 공을 포핸드로 받아쳤다.
익숙하지 않은 몸이지만 실력은 그대로인지 타구가 시원하게 뻗어나갔다.
베이스라인 깊숙이 떨어지는 게 상당히 위력적으로 보인다.
그렇게 한참 동안 랠리를 이어가자 지혁은 감각이 조금 돌아오는 것 같았다.
‘탑스핀을 걸어볼까?’
지혁은 날아오는 공을 라켓으로 올려쳤다.
그러자 탑스핀이 걸린 공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공은 바닥에 닿자마자 큰 각도로 튀어 올랐다.
만약 그 자리에 사람이 서 있었다면 얼굴에 공을 맞았을 높이다.
“오늘 포핸드가 좋은데?”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 몸이 좀 풀린 거 같으니까 이제 백핸드 쪽도 보낸다.”
지혁은 시간도 잊고 훈련에 매진했다.
테니스를 치는 재미에 푹 빠진 것이다.
3년 만에 제대로 된 샷을 날릴 수 있게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6시간이 지났다.
집으로 돌아 가야할 시간이 된 것이다.
지혁과 성민은 마무리 스트레칭까지 모두 하고 나서야 아카데미를 나왔다.
그들이 나온 시간은 오후 8시였다.
아침 6시에 시작된 운동이 저녁 8시에 끝난 것이다.
총 14시간의 훈련.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초고강도의 일정이다.
하지만 프로를 목표로 하는 지혁에겐 대수롭지 않은 하루였다.
일반인들은 이렇게 긴 시간 훈련하는 게 이상하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를 목표로 하는 학생이라면 하루 10시간 이상 훈련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게 선수들에겐 평범한 일상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미친 듯이 운동해도 프로가 되는 학생은 100명 중에 1명이다.
프로 중 최하위 세계 랭킹이라도 얻을 수 있는 건 5명 중 1명이고 말이다.
테니스에서 상위 랭커가 되는 건 절대로 쉽지 않았다.
***
과거로 돌아오고 2주.
지혁은 고강도 훈련을 통해 어긋난 밸런스를 어느 정도 잡아낼 수 있었다.
모두 원래 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일이 벌써 개학이네.”
지혁은 곧 있을 금화 고등학교의 개학이 기다려졌다.
개학만 하면 더 다양한 상대와 테니스를 칠 수 있어서다.
“빨리 쳐보고 싶네. 이번 기수에 프로로 턴하는 얘가 있었지?”
테니스 명문으로 유명한 금화고에는 실력이 뛰어난 선수가 많았다.
그중 3학년 선배들은 학생이지만 프로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지혁의 맞상대는 아니겠지만 대회 일정이 잡히기 전까지 지루하진 않을 거다.
“스트레칭만 하고 일찍 자자.”
마무리 운동을 한 지혁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는 숨소리가 들렸다.
벌써 잠에 든 것이다.
***
“신입생 여러분. 우리 금화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명문 금화고의 자부심을 갖고······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해서···.”
지혁은 벌써 20분이 넘어가는 교장의 축사에 질린 얼굴을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신입생들이 전부 꾸벅꾸벅 졸고 있다.
교장은 단상 위에 있어서 학생들이 조는 게 보일 텐데도 빨리 축사를 끝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차라리 다른 학생들 처럼 졸기라도 하면 괜찮을 건데.
하지만 어제 너무 빨리 자서 잠이 오지 않는다.
지혁은 할 수 없이 시간이나 때울 겸 신입생 중 아는 얼굴을 찾아봤다.
“오. 아는 얘들도 있네. 이신우, 최재영.”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얼굴들을 찾을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테니스부 동기들이다.
아직 한 명이 남아 있지만 학생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어? 그러고 보니 쟤도 금화고에 다녔었지.”
지혁은 남은 동기를 찾으려고 신입생들을 둘러보다가 TV에서 보던 얼굴을 발견했다.
나중에 배우로 데뷔한 후 톱스타가 되는 이유나다.
“배우가 될 얘라 그런지 예쁘긴 예쁘네.”
이유나는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듯이 주위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단정한 교복차림에 긴 생머리를 한 게 참 단아한 모습이다.
근처에 앉은 남학생들은 전부 이유나의 얼굴을 힐끗힐끗 훔쳐보고 있다.
좀 처럼 보기 힘든 미모에 정신이 팔린 모양이다.
하지만 지혁은 관심없는 표정으로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예쁜 얼굴에 정신이 팔릴만큼 어리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생에 이유나와 접점도 전혀 없었다.
“······금화 고등학교의 신입생 여러분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때 교장의 축사가 끝이 났다.
동기를 찾는 동안 시간이 많이 지난 모양이다.
‘지루해서 힘들었는데 다행이네.’
잠시 후 입학식이 모두 종료하자 지혁이 앉아 있는 라인에 한 여선생님이 다가왔다.
지혁이 소속된 3반의 담임이었다.
“3반이지? 교실로 들어가자.”
여선생님의 말에 학생들은 그녀를 줄지어 따라갔다.
잠시 후에 교실에 도착하자 지루한 자기소개 시간이 이어졌다.
남녀 합반이라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지만 맨 뒷자리에 앉은 지혁은 학생들의 소개를 한 귀로 흘렸다.
학기가 시작하면 교실이 아닌 테니스 코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어차피 졸업하면 보지도 않을 사람들이다.
“아함.”
지혁은 하품을 하면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멀리 있는 푸른색 테니스 코트가 보인다.
앞으로 3년 동안 질리도록 훈련을 할 장소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마치고 내일 보자.”
밖을 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자 선생님이 마무리 인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개학날은 수업을 하지 않아 빨리 마치는 모양이다.
“차렷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드르르륵.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은 의자 끌리는 소리를 내면서 급하게 교실을 뛰어 나갔다.
“나도 가볼까.”
잠깐 사이에 교실이 텅 비었다.
지혁은 라켓 가방을 어깨에 매고 교실을 나왔다.
그리고 테니스장으로 걸어갔다.
“와. 여긴 그대로네.”
운동장을 거쳐 테니스장 앞에 도착하자 기억이 점점 떠오른다.
워낙 오래 있었던 곳이라 그렇다.
닫혀 있는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자 땅땅해 보이는 아저씨가 의자에 앉아 있는 게 보인다.
금화고 테니스부의 박철웅 감독이었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어. 지혁이 왔냐? 너네 아버지는 별일 없지?”
“네. 건강하세요.”
박철웅 감독은 지혁의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박 감독이 지혁을 금화 고등학교로 스카웃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거기다 사적으로 아버지의 선배이기도 해서 스카웃 전에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다른 학생들 올 때까지 좀 기다려라. 다리 아프면 의자에 앉아도 되고.”
“네.”
박철웅 감독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잠깐 하다보니 학생들이 하나 둘씩 테니스장으로 들어왔다.
마치는 시간이 대부분 비슷해서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여덟, 아홉, 열. 이제 다 왔네.”
학생들이 모두 모이자 박 감독은 신입생들과 2, 3학년을 서로 소개시켰다.
그리고 오늘부터 있을 훈련 시간과 일정을 알려줬다.
09:00~12:00 오전 트레이닝
12:00~13:00 점심 시간
13:00~17:00 오후 트레이닝
17:00~18:00 저녁 시간
18:00~20:00 저녁 트레이닝
“방학 기간에 나온 얘들은 하던 훈련을 이어서 하면 된다. 아카데미 학생은 오후 트레이닝 이후에 돌아가면 되고.”
박철웅 감독의 설명이 끝나가자 멀리서 트레이닝 도구를 들고오는 남자가 보였다.
작년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최기석 코치다.
재작년까지 프로여서 테니스부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최 코치, 여기 내려놔.”
“네.”
쿵!
“최 코치는 2학년 좀 봐줘. 신입생들은 여기 남고 3학년은 알아서 자율 훈련을 해라.”
우르르.
박철웅 감독의 말에 신입생 4명만 남고 나머지 부원들이 흩어졌다.
“내가 직접 뽑은 만큼 너희들의 실력은 잘 안다. 하지만 3개월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1세트씩만 경기를 해보자.”
“누구랑 하면 되나요?”
“음···. 지혁이랑 신우가 붙고 재영이랑 수민이가 붙으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