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4화 (4/241)

4화. 전국종별테니스대회

3월 22일 일요일 오후 8시

지혁은 전국종별 테니스 대회의 출전을 위해 학교 사람들과 같이 하루 일찍 경북 김천에 도착했다.

이번에 출전하는 건 총 6명이었다.

그리고 그중 1학년은 지혁이 유일했다.

전국의 고등학생이 나오는 대회였지만 금화고 선수들은 별로 긴장감이 없어 보였다.

주니어 선수가 일 년에 출전하는 대회의 숫자가 보통 10개가 넘었기 때문이다.

‘여기도 엄청 오랜만이네.’

김천은 퓨처스 대회까지만 열기 때문에 ATP 랭킹이 올라간 후로 오랫동안 방문하지 않았다.

테니스 대회의 등급은 퓨처스 - 챌린저 - ATP 250, 500 - 마스터즈 - 그랜드 슬램 순이다.

한국에서는 챌린저급 대회까지 밖에 열리지 않아서 랭킹이 올라갈수록 국내에서 경기를 뛰는 일이 없었다.

상위 랭커들은 낮은 등급의 대회를 출전하는데 제한이 있어서였다.

“내일 바로 시합을 해야 하니까 딴 짓하지 말고 일찍 자라.”

“"네. 감독님."”

지혁과 학생들은 모텔의 열쇠를 받아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각자 2인 1실이었다.

지혁은 3학년 선배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지혁아, 내일 잘해보자.”

“네. 형도 좋은 결과를 얻을 거에요.”

두 사람은 박 감독의 충고대로 샤워를 하고 바로 잠을 잤다.

내일 경기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발휘하기 위해서였다.

***

지혁은 1회전을 치르기 위해 테니스 코트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도착한지 제법 됐지만 총 256명이 경기를 치르다보니 딜레이가 제법 걸리는 것 같다.

“금화고 이지혁 선수, 대동고 박정훈 선수. 경기 준비해 주세요.”

한참을 기다리던 지혁은 경기를 진행하는 사람의 말에 드디어 코트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같은 코트로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국내 주니어 랭킹 23위의 박정훈이다.

이번 대회에서 시드권을 받은 나름 상위권의 선수다.

하지만 지혁은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팅.

심판은 동전을 던져서 서브권을 결정했다.

“서브는 박정훈 선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학년이라면서? 잘 부탁한다.”

박정훈은 지혁을 한 번 훑어보고 웃는 표정을 지었다.

1회전을 쉽게 통과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3학년인 그의 입장에서 올해 처음으로 고등부 대회에 출전하는 지혁은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30분 후.

“게임 세트, 매치 이지혁. 6:0, 6:0”

매치 스코어 2:0.

그것도 2번의 베이글 세트다.

“···.”

박정훈은 넋을 놓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경기를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넘을 수 없는 재능의 벽을 마주한 그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2살이나 어린 선수하고 이렇게 실력 차이가 나다니.

그에겐 지금 상황이 악몽 같았다.

네트 앞에서 힘없이 악수를 한 그는 도망치듯이 자리를 떠났다.

“박경훈을 상대로 더블 베이글이라니. 저 녀석 제법 하는데?”

“저 정도 실력이면 상위 라운드까지 진출할 거야.”

“1학년이라고 했지?”

차례를 기다리던 학생들은 지혁의 실력을 보고 수근 거렸다.

상위 라운드에 가면 만나게 될 새로운 강자를 경계한 것이다.

***

지혁은 그 후로 6라운드까지 상대편 선수들을 압살하며 준결승에 진출했다.

그렇게 4강까지 진출하자 같이 왔던 학교 선배들은 전부 중도 탈락해서 금화고 학생들 중에는 지혁만 남았다.

“지혁아, 이제 2번만 이기면 우승이다. 긴장하지 말고 해.”

박 감독은 경험삼아 출전시킨 이지혁이 준결승까지 올라오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기대도 하지 않은 성과를 얻어서다.

솔직히 남은 대전 상대를 보면 현실적으로 우승하기는 힘들었다.

준결승의 상대가 주니어 랭킹 2위였고 혹시 이긴다 해도 결승에는 주니어 랭킹 1위의 선수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이정도 결과를 얻었다면 다음 해에는 충분히 우승을 노려볼 만 했다.

“그럼 전국종별 테니스대회 준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금화고등학교 이지혁 선수, 서래고등학교 박준상 선수 모두 준비해 주세요.”

지혁은 텅 빈 코트 위로 올라갔다.

며칠 전만 해도 9개의 코트에서 동시에 경기가 시작됐는데 그래도 준결승이라 한 경기씩 진행을 하는 것 같았다.

코트 밖에는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이 30명 정도 보였다.

출전 선수들의 가족들이나 학교 사람들이었다.

“지혁이가 이기기는 힘들겠죠? 상대가 박준상이잖아요.”

“어렵지.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ATP 랭킹도 있는 놈이 아니냐. 경험치가 달라.”

박 감독은 최 코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박준상은 프로 대회에 참가해서 성과를 얻을 정도로 평범한 학생들과 격이 달랐다.

괜히 주니어 랭킹 2위가 아닌 것이다.

주니어 랭킹 1위 이찬영과 국내 테니스계를 이끌어갈 쌍두마차라고 불리는 만큼 이번 경기에서 그의 패배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서브 이지혁. 경기 시작.”

‘박준상 선배라. 오랜만이네.’

지혁은 오랜만에 만난 선배의 얼굴에 조금 반가워졌다.

대학에 진학한 후 사람들의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는 선수였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럼 얼마나 받아내나 볼까.’

아치처럼 휘어지는 지혁의 서브 자세가 빠른 속도로 풀렸다.

탕!!

박준상은 절묘한 코스로 떨어지는 공을 백핸드로 받아냈다.

자세가 안정적인 게 크게 위협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역시 파워가 부족한가.’

지혁은 서브가 쉽게 리턴 되자 쓰게 웃었다.

아마추어 레벨에서는 무적인 서브였는데 역시 프로에게는 통하지 않나 보다.

부족한 피지컬을 생각했을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 언제부터 내가 서브에 강점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혁은 이내 표정을 풀었다.

어차피 그는 프로에서 서브가 강점인 선수도 아니었다.

이때까지 낮은 레벨의 선수들과 경기를 해서 그렇지 그는 대부분의 아시아 선수가 그렇듯 방어적인 베이스라이너였다.

경기를 2시간, 3시간 이상 끌고 가서 상대의 실수를 유도해내는 타입.

개처럼 뛰어다니며 승리를 가져오는 게 지혁의 진짜 경기 스타일이었다.

탕! 탕!

서브에서 압도하지 못하자 경기는 자연스럽게 스트로크 중심이 되었다.

“서티 러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 사람의 우열이 금방 가려졌다.

지혁의 스트로크 실력이 박준상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내 장점으로 경기를 풀어 가면 되는 거야.’

지혁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경기에 집중했다.

비록 이전에 있던 경기들처럼 속전속결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지혁의 스코어는 조금씩 쌓였다.

***

박준상은 좌우로 떨어지는 공에 정신없이 뛰어 다녔다.

서브를 받을 때만 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날카로운 서브였지만 속도가 느렸기 때문이다.

퉁!

“크윽.”

네트 바로 앞에 떨어지는 드롭샷에 준상은 허겁지겁 앞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공을 간신히 라켓에 맞춰 네트를 넘기자.

탕!

그를 비웃듯이 강력한 패싱샷이 그의 옆구리를 지나쳤다.

“게임 이지혁. 3:0”

‘도대체 저놈 정체가 뭐야?’

준상이 듣기로 상대는 고작 1학년이라고 했다.

불과 3개월 전만해도 중학생이었던 꼬마인 것이다.

그런데 랠리를 이어갈수록 알 수 없는 늪에 빠지는 것 같았다.

어떤 샷을 쳐도 돌아올 것 같은 기분.

그런 불쾌한 감각이 온 몸을 스멀거렸던 것이다.

탕!

준상의 앞으로 탑스핀이 잔뜩 걸린 공이 뱀처럼 날아왔다.

머리 위까지 튀어 오르는 공에 그는 점프를 하며 스윙을 했다

체력을 훨씬 더 많이 소모하는 자세였지만 공의 바운드 각도가 높아서 어쩔 수 없었다.

만약 기존의 자세로 공을 치면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공이 아웃이 되거나 네트에 걸릴 것이다.

“윽.”

준상은 탑스핀이 걸린 공을 포핸드로 받아내며 신음을 흘렸다.

계속 점프를 하느라 다리가 벌써 욱신거린다.

‘말도 안 되는 스핀량이잖아. 이런 공은 프로에서도 못 봤다고.’

베이스라인에 떨어지는 공을 쳐낸 준상은 자신의 위치를 확인했다.

‘언제 여기까지 온 거지?’

공을 받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또 코트 뒤로 물러나 있다.

상대의 스트로크를 대처하기 힘들다 보니 밀려난 것이다.

턱!

“세트 이지혁.”

그렇게 필사적으로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첫 세트가 끝났다.

세트 스코어는 6:1.

서비스 게임에서 고작 1번의 승리를 가져온 게 전부였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박준상은 첫 세트를 허무하게 내준 후 지혁을 얕잡아 보던 마음을 완전히 버렸다.

상대는 지금 프로에 데뷔해도 충분히 먹힐 놈이다.

‘랠리로 가면 불리해. 이길 방법은 단기결전밖에 없어.’

열세를 인정한 박준상은 다음 세트부터 공격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방어만 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베이스라이너인 이상 코트 뒤편에 있다가는 분명 말라 죽을 것이다.

2:0, 3:1, 5:2

경기가 지속될수록 승패의 윤곽은 점점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제 지혁이 한 점만 득점하면 게임이 끝나는 상황이다.

탕!

그렇게 지혁의 포핸드 스트로크가 준상의 옆을 빠르게 지나쳤다.

완벽한 다운 더 라인이었다.

“게임 세트, 매치 이지혁, 6:1, 6:2.”

경기 시간은 총 1시간 25분.

스코어에 비해 긴 시간이었다.

“우와아아!”

“지혁아, 잘했다!”

준결승전의 승자가 나오자 경기를 구경하고 있던 장소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경기를 관람하고 있던 금화고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질 거라고 생각하던 경기를 이기자 모두 놀란 얼굴이었다.

지혁이 한국 테니스의 최고 유망주라고 불리던 박준상을 이길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종일관 압도해서 이긴 경기라니.

“완전 괴물이잖아···.”

“말도 안 되는 포핸드를 가지고 있어.”

“코트 수비범위도 압도적인 수준이야···.”

“드디어 제대로 된 유망주가 나온 건가.”

금화고 옆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있던 다른 학교의 학생들과 감독들은 심각한 얼굴로 쑥덕거렸다.

지혁이 1학년인 이상 앞으로 3년 동안 그를 대회에서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혁의 강력한 탑스핀 스트로크와 광범위한 수비범위에 머리가 아팠다.

“좋은 경기였어요.”

“그래. 꼭 우승해라.”

박준상은 지혁과 악수를 하며 응원의 말을 건넸다.

비록 패배했지만 상대의 실력을 인정해서다.

‘결승전에서 이찬영이 어떤 얼굴을 할지 궁금하네.’

그는 오늘 경기해본 결과 지혁의 실력이 현 주니어 1위보다 높다고 생각했다.

지혁을 더 이상 아마추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과 같은 꼴을 당할 라이벌에 준상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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