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결승전
경기를 마치고 모텔로 돌아온 지혁은 피로를 강하게 느꼈다.
6일 동안 연속으로 7번의 경기를 치러서였다.
대부분의 시합들이 일방적으로 풀려서 다행이다.
만약 치열하게 경기가 진행됐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고생했을 것이다.
“후우···.”
지혁은 스트레칭을 하며 오늘 있었던 경기를 복기해봤다.
전체적인 경기 흐름은 박준상을 압도했지만 서브에 발목을 잡혀서 3게임이나 내주고 말았다.
물론 체력을 위해 완급조절을 한 것도 있었다.
그래도 서브를 너무 쉽게 리턴 당한 게 마음에 걸렸다.
“역시 속도가 너무 부족한가?”
아직 키와 근육량이 모자란 게 발목을 자꾸 잡는다.
전성기 때만 해도 서브의 평균 속도가 180km 중반이 나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쳐줘봐야 160km 후반일 것이다.
일반인들은 고작 15~20km 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경기에서 이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방법이 없을까?”
지혁은 휴대폰으로 어플을 열었다.
오늘 처음으로 얻은 포인트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혹시 여기서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지혁]
근력: 51▲ 민첩: 62▲ 체력: 56▲
서브(C+), 포핸드(A+), 백핸드(B), 풋워크(B+), 외모(D)
[15포인트]
“화살표가 생겼네?”
지혁은 어플에서 전에 없던 화살표를 발견했다.
따로 설명을 듣지 않아도 저걸 클릭하면 능력을 올릴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근력을 좀 올려볼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근력이다.
만약 근육량이 늘어나면 지금보다 더 빠른 서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니지. 이제 17살인데 너무 빨라.”
지혁은 당장이라도 근력을 올리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억눌렀다.
성장기라 하루가 다르게 피지컬이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귀한지 1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근력과 체력 수치가 증가했다.
최대한 포인트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성장기가 끝난 후에 투자해야 한다.
혹시 모를 부작용도 생각해야 하고 말이다.
“스킬 성장에 필요한 포인트나 알아보자.”
당장 신체 능력을 올릴 수 없다면 포인트를 사용할 곳은 스킬 밖에 없다.
마침 스킬들의 등급이 A, B, C, D 골고루 있으니 파악하기도 좋았다.
“음···. D등급은 200포인트가 필요하네.”
생각보다 적은 포인트다.
200포인트면 규모 있는 대회에 몇 번 나가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A+등급의 포핸드는 얼마나 필요하지? ······4, 400만 포인트?”
지혁은 뭔가 비현실적인 숫자를 보고 말을 더듬었다.
오늘 얻은 포인트가 고작 15다.
그런데 400만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그랜드 슬램에서 우승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겠네.”
올림픽보다 높게 평가받는 4대 메이저 대회에서 대활약을 펼치지 않는 이상 A+등급의 스킬을 성장시키긴 어려워 보인다.
“낮은 등급의 스킬부터 올려야겠구나.”
이제 선택지는 D등급의 외모와 C+등급의 서브밖에 없다.
“···그런데 내 얼굴이 D등급라고? 이때까지 못생겼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는데.”
오히려 언론에서 준수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C+의 서브도 세계권 대회에서나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었지 한국에서 활동할 때는 딱히 약점이라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C등급이 일반적인 프로급이라는 뜻인가?”
지혁은 C가 프로급이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외모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가장 적은 포인트로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실력이다.
하지만 외모가 조금만 받쳐주면 좋은 성적를 얻었을 때 엄청난 폭발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관중들도 사람이다 보니 잘생기고 예쁜 선수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일단 효과를 확인해보자.”
지혁은 오늘 얻은 포인트를 외모에 투자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테니스 기술에서 확실한 효과를 보지 못할 바엔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에 투자하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해서다.
등급도 제일 낮았고 말이다.
그렇게 지혁은 어플의 화살표를 눌렀다.
“음···”
그러자 얼굴에서 열이 확 올라왔다.
마치 뜨거운 수건을 올린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약 5분 정도 지나자 이질감이 사라졌다.
[외모(D): 7.5%]
외모 스킬은 포인트를 투자한 만큼 퍼센트가 올라갔다.
아마 185포인트를 더 투자하면 다음 등급으로 상승할 것이다.
“뭐가 변한 거지?”
지혁은 곧바로 거울에 얼굴을 비춰봤다.
그러자 잡티가 줄어들고 피부가 약간 하얗게 변한 얼굴이 보였다.
엄청나게 큰 변화는 아니지만 인상이 확 바뀌었다.
“뭔가 잘 사는 집 애 같네······.”
테니스를 하다보면 가끔 부잣집 얘들을 보는데 꼭 그 녀석들 같았다.
고작 7%로 이 정도 효과라니.
만약 등급이 상승하면 어떻게 변할지 벌써 부터 기대된다.
“C급까지 올리면 연예인급 얼굴이 되는 거 아니야?”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메이저 대회에 입상했을 때 과연 어떤 파급력을 가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결승전에서 우승하면 포인트를 더 얻을 수 있겠지?”
지혁은 내일 포인트를 얻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
전국종별 테니스대회의 결승전.
지혁은 경기를 준비하며 관중석을 둘러봤다.
그러자 50명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은 어제 박준상을 이긴 1학년에 대해 들었는지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부담스러운 시선이지만 지혁은 덤덤하게 받아냈다.
프로 대회에서 지겹도록 시선을 받아봤기 때문이다.
2만 명의 관중들이 있는 US 오픈에 출전했던 그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쟤가 박준상을 이겼다고?”
“준상이가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거 아니야? 아직 꼬맹이잖아.”
“이 코치가 어제 경기를 봤는데 실력이 상당하데.”
“그래도 이찬영한테는 안 될 거야. 이번 경기는 얼마나 버티느냐가 관건이네.”
관중들은 새로운 신예에 관심이 많은지 지혁에 대해 계속 대화를 나눴다.
“인기 많네?”
한 쪽으로 쏠린 관심에 이찬영은 심기 불편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항상 중심이었던 그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난 박준상하고 다를 거야. 기대해도 좋아. 꼬맹아.”
이찬영이 시비조로 계속 말했지만 지혁은 대답을 하지 않고 무시했다.
괜히 심력을 낭비하기 싫어서였다.
어차피 지금 아무리 말을 잘해봤자 결국 경기의 결과가 전부다.
‘경기에서 지고 난 후에 뭐라고 할 지 궁금한 걸.’
저 자신감이 가득 차있는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지혁은 패배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어제 이찬영이 준결승전을 치르는 걸 봤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실력 차는 이미 좁힐 수 없는 격차가 있었다.
이 상황에서 승패가 뒤집힌다?
지혁이 생각하기로 그건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하다.
테니스는 선수 간에 기량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2020년에도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 만 봐도 알 수 있지.’
테니스는 축구나 야구처럼 3번 싸우면 1번 이기는 스포츠가 아니다.
10번 경기를 하면 10번 패배하는 잔혹한 스포츠일 뿐이다.
“대산고 이찬영 선수, 금화고 이지혁 선수 준비해주세요.”
심판의 말이 떨어지자 몸을 풀던 지혁은 정해진 자리로 이동했다.
그러자 곧바로 경기가 시작했다.
먼저 서브를 가져간 건 이찬영이었다.
탕!!
200km가 넘어 보이는 강서브가 지혁의 사이드라인으로 떨어졌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서브였다.
타다닷- 탕!
지혁은 재빠르게 움직여 공을 받았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고속 서브를 받기엔 무리였는지 리턴한 공은 위력이 별로 없었다.
느린 속도로 날아가는 공에 이찬영은 빠르게 네트 앞으로 달려왔다.
탕! 그리고 발리를 쳐서 빈 공간으로 공을 보냈다.
실점할 위기 상황에서 지혁은 라켓을 뻗어 다시 공을 걷어냈다.
오오오.
그러자 관중석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넓은 수비범위에 감탄한 것이다.
“쳇, 이것도 받아 봐라.”
이찬영은 혀를 차며 드롭샷을 날렸다.
네트 바로 앞에 떨어진 공이 두 번 바운드되기 직전.
“하앗!”
언제 왔는지 지혁이 드롭샷을 받아냈다.
설마 그 공격까지 받을 줄 몰랐던 이찬영은 제자리에 서서 실점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우와아아!
아슬아슬한 랠리 끝에 지혁이 득점을 하자 관중들이 함성을 질렀다.
좀처럼 보기 힘든 수준급의 수비를 봤기 때문이다.
“러브 피프틴.”
다시 이어지는 이찬영의 서브.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게임 이지혁. 1:0”
첫 번째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 당한 이찬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의자로 걸어갔다.
그는 지금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어디서 잘못 된 거지?”
분명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스트로크를 주고받으니까 한 게임도 따낼 수 없었다.
90초의 휴식 시간이 전부 소진되자 심판이 눈치를 준다.
“서브 이지혁.”
“이번 게임은 반드시 이겨야해.”
이미 브레이크를 당한 상태라서 이번에 지면 세트를 내줘야할 확률이 높다.
라켓을 꽉 쥔 그는 각오를 단단히 다지며 자세를 낮췄다.
탕!
이찬영은 집중한 덕에 서브를 무사히 받아냈다.
하지만 리턴을 하자마자 지혁의 강력한 탑스핀 스트로크가 그의 백핸드 쪽으로 날아왔다.
“앗!”
공이 떨어지던 곳으로 달려가던 이찬영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공을 쳐냈다.
하지만 타이밍이 늦었는지 손에서 라켓이 빠져나갔다.
“······.”
잠시 후 뒤로 날아간 라켓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피프틴 러브.”
잠시 멈칫한 심판이 점수를 불렀다.
“리버스 포핸드?”
‘오랜만인데 제대로 들어가네.’
마치 채찍을 휘두르는 것 같은 스윙 자세에 이찬영은 그 자리에서 굳었다.
국내에서 리버스 포핸드를 사용하는 선수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관중석에는 지혁의 스윙 자세를 보고 난리가 났다.
그들도 최상급 난이도의 리버스 포핸드를 실전에서 본 건 처음이어서 그렇다.
‘이 정도면 포인트가 충분히 모이겠지.’
원래라면 프로 대회에 출전하기 전까지 아껴두려고 했던 무기다.
괜히 시선을 끌기 싫어서 숨겨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포인트를 얻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
모든 관중들에게서 포인트를 얻으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
3:0, 4:0, 5:0
지혁이 리버스 포핸드를 사용하고 나서부터 이찬영은 한 점도 내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코트를 뛰어다녔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그의 의지는 가상했지만 그에겐 지혁을 상대할 실력이 없었다.
“게임 세트, 매치 이지혁.”
결국 결승전은 빠르게 끝났다.
스코어는 6:0, 6:0.
경기가 치열할 거라 생각하던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결승전은 지혁의 압승이었다.
관중들은 유래가 없는 유망주의 등장에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이찬영이 국내에서 차지하고 있던 위상이 결코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로 돌아가면 난리가 나겠구나.’
지혁은 사람들의 반응에 앞으로 겪을 일이 벌써부터 예상되었다.
리버스 포핸드를 사용해서 국내 주니어 랭킹 1위를 꺾었으니 쉽게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달려드는 감독과 선수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대회의 수상식은 간단하게 이뤄졌다.
도금한 금메달과 상장을 수여받은 지혁은 수상자들 가운데 서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7일간의 대회가 끝나자 전국에서 몰려든 선수들은 각자의 학교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