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7화 (7/241)

7화. 대구국제 퓨쳐스 대회

1회전의 상대는 일본 국적의 스즈키 하야토였다.

ATP 랭킹은 354위.

5번 시드를 받은 이번 대회의 다섯 번째 실력자였다.

처음부터 강적을 만났지만 지혁은 대진에 만족하고 있었다.

하야토가 베이스라이너였기 때문이다.

지혁의 경기 스타일상 스트로크를 길게 이어 갈수록 유리하다.

상대가 공격적인 선수가 아니어야 쉽게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수비 대결은 언제든 환영이지.”

보통 랭킹이 낮은 선수들은 처음 대회에서 지혁을 만나면 정신을 못 차렸다.

상대해본 적 없는 기괴한 리버스 포핸드 때문이었다.

만약 경기 후반에 조금 적응했다 싶어도 그때가 되면 엄청난 체력전을 요구한다.

이중으로 덫을 치는 것이다.

상대를 녹여 죽이는 늪 같은 스타일이지만 이게 지혁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의 테니스였다.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선수들은 테니스 코트로 이동해 주세요.”

진행요원의 방송에 지혁은 배정된 코트로 걸어갔다.

잠시 몸을 푸는 시간을 가진 뒤 경기가 시작됐다.

첫 서비스게임은 지혁의 것이었다.

“흐읍!”

탕!!

170km가 넘는 지혁의 서브가 정확하게 T존을 때렸다.

감탄이 나올 만큼 날카로운 서브지만 하야토는 어렵지 않게 리턴을 했다.

‘서브가 너무 느리잖아?’

하야토는 입가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대회에 자주 출전하다보면 첫 서브를 받았을 때 상대의 기량을 대충 알 수 있었다.

그의 경험상 지혁의 서브는 프로라고 보기에 힘들었다.

‘1라운드는 쉽게 이기겠군.’

대진표에 상대 선수의 랭킹이 없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게다가 경기를 시작하기 전 미성년자로 보이는 지혁의 얼굴을 확인했기 때문에 승리에 대한 확신은 더욱 깊어졌다.

‘나도 이 자리까지 힘들게 올라왔으니 너무 원망하지 말라고.’

하야토는 어렵게 예선전을 통과한 루키에게 패배를 선물해주기로 마음먹었다.

프로의 세계가 만만치 않음을 알려주려고 한 것이다.

가끔 퓨처스에 고등학생들이 출전하는데 성인 선수들은 그들을 보너스라고 불렀다.

실력이 부족한 미성년자 선수들이 주최 측의 와일드카드를 받고 출전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앗!”

하야토는 랠리를 끝내려고 강한 어프로치 샷을 날렸다.

이제 상대의 자세가 무너지면 여유롭게 발리로 끝내면 된다.

탕!

[피프틴 러브.]

“······.”

그때 네트 앞에서 기다리던 하야토의 옆으로 빠르게 공이 지나갔다.

빈틈을 노린 절묘한 패싱샷이었다.

허를 찔린 하야토는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꼬맹이가 운이 좋네.”

하야토는 아슬아슬하게 들어간 공에 루키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1cm만 더 움직였어도 아웃이 되는 공이었다.

저런 컨트롤은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탕!

[서티 러브.]

하지만 똑같은 장면이 다시 재현되었다.

‘······?’

그러자 하야토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한 번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 연속 같은 코스로 공이 떨어질 확률은 매우 낮았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지만 일단 경기를 진행해야 한다.

‘이 놈 뭐야?’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기에는 4게임이면 충분했다.

그의 생각대로 분명 서브는 허접했는데 상대의 포핸드가 엄청 날카로웠다.

하야토는 이런 기형적인 실력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수마다 가장 자신 있는 샷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서브는 아마추어 수준인데 포핸드는 세계 랭킹 100위 안의 선수를 상대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눈치 챘나?”

지혁은 상대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걸 보고 미소를 지었다.

상대에게 방심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어서다.

하야토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경기에 제대로 임하고 있었지만 이미 게임 스코어는 3:1으로 벌어졌다.

“매번 잘 통한단 말이야.”

예선전을 통과할 때도 상대 선수의 방심을 이용해 이렇게 점수 차이를 벌렸다.

어려보이는 외형덕분에 선수들이 워낙 잘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

ATP 랭킹도 없는 유망주의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고생할 뻔 했는데 다행이네.”

게임 플랜이 통해서 쉽게 승기를 가져왔지 만약 하야토가 처음부터 정신을 바짝 차렸으면 경기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다.

세계 랭킹 354위는 절대 가볍게 볼 수 있는 등수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테니스를 모르는 사람은 300등대가 낮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정도 랭킹은 보통 퓨처스에서 1번 시드를 받을 정도로 매우 높은 등수다.

한국에서 하야토보다 랭킹이 높은 선수가 고작 3명밖에 없는 걸 생각해보면 그의 실력을 대충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럼 쐐기를 박아볼까?”

지혁은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특유의 자세로 받아쳤다.

그러자 채찍처럼 휘어나간 공이 상대의 머리로 튀어 올랐다.

이번 경기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리버스 포핸드였다.

“윽.”

털썩-

통 통 통.

하야토는 얼굴로 날아오는 공을 피하기 위해 몸을 뒤로 젖히다 넘어졌다.

잠시 후 코트 뒤에서 테니스공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하야토는 대체 뭐에 당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잠시 후 샷의 정체를 알아챘다.

그리고 눈을 찢어져라 크게 떴다.

“고등학생이 리버스 포핸드를 친다고!?”

직접 공을 받아본 결과 단순한 흉내 내기도 아니었다.

일반적인 프로의 탑스핀 스트로크보다 1.5~2배가량 스핀이 많은 정상급 리버스 포핸드다.

경기 도중에 갑자기 달라진 지혁의 스타일에 하야토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세트 이지혁. 1:0]

그렇게 겨우겨우 적응해 갈 때 쯤.

경기는 이미 지혁에게로 완전히 기울어 버렸다.

하야토는 이번 대회는 글렀다는 걸 직감했다.

상대의 실력도 대단했지만 전략에서 완전히 패배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부딪쳐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런 선수를 가볍게 생각했으니.

당연히 대가를 뼈저리게 치를 수밖에 없었다.

[게임 세트. 매치 이지혁. 6:3, 6:0.]

그렇게 본선 1라운드의 승리는 지혁에게 돌아갔다.

두 번 째 세트를 베이글로 패배한 스즈키 하야토는 고개를 푹 숙이고 경기장을 벗어났다.

“바케모노······.”

***

1라운드를 통과한 지혁은 2, 3,라운드와 준결승전을 큰 위기 없이 통과했다.

본선에서 처음 만난 스즈키 하야토와 비교해서 선수들의 실력이 낮았기 때문이다.

원래 준결승전에서 2번 시드를 배정받은 세계 랭킹 315위의 선수를 만났어야 했다.

하지만 그 선수가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지 2라운드에서 조기 탈락했다.

덕분에 지혁은 큰 체력 소모 없이 결승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모두 운이 좋아 벌어진 일이었다.

‘루카스 윌리엄이라.’

지혁은 결승전에서 만날 루카스 월리엄을 떠올려봤다.

상대는 195cm가 넘는 큰 키와 강력한 서브가 장점인 선수였다.

대회에서 가장 높은 260위의 랭킹을 가진 선수인 만큼 이때까지 만난 상대 중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 날 것이다.

‘기억에 없는 선수인데.’

그나마 다행인 건 지혁이 루카스의 이름을 들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미래에 탑 랭커가 되는 선수였다면 그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래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아무래도 결승까지 올라오면서 정보가 많이 노출됐다.

루카스도 지혁이 경기하는 것을 몇 번이나 봤으니 다른 선수들처럼 방심을 하진 않을 것이다.

‘결국 정면 대결인가.’

이전처럼 꼼수가 통하지 않는다면 결국 실력 대 실력으로 붙어야 한다.

지혁은 게임 플랜을 짜면서 결승전이 시작되는 시간을 기다렸다.

“지혁아, 이제 시간 됐다.”

30분 쯤 명상을 하고 있자 누군가 몸을 흔들었다.

눈을 뜨자 아버지의 얼굴이 보인다.

경기를 치르는 건 지혁인데 당사자보다 더 긴장하고 있었다.

“갔다 올게요.”

지혁은 입고 있던 외투를 아버지에게 건네주고 경기장으로 걸어갔다.

코트에는 이미 루카스가 도착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왔네.’

관중석을 둘러보니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자국의 고등학생 선수가 결승에 진출한 탓에 관심이 몰린 것 같았다.

“와, 쟤가 이지혁이지? 대원고 감독님이 고등부에 물건 하나가 나왔다더니 빈 말이 아니었네.”

“그런데 되게 잘생겼다. 프로가 되면 인기몰이 좀 하겠어.”

“요즘 포스트 이형석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어. 향후 대한민국 테니스계를 이끌어갈 신성이라고.”

“제발 이대로만 커서 테니스판 좀 키워줬으면 좋겠다. 워낙 반짝하고 사라지는 재능들이 많았잖아.”

보름 사이에 지혁의 이름이 많이 알려졌는지 관중들은 그를 알아봤다.

전국종별 대회 우승과 대구 퓨처스 결승에 진출한 영향이다.

아직 테니스 관계자들과 매니아들에 국한된 명성이지만 이번 대회에 우승하면 훨씬 더 이름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최연소 우승이란 타이틀은 언제나 매력적이었으니 말이다.

***

[경기 시작. 서브 루카스.]

경기는 루카스의 서브로 시작되었다.

“으어엇!”

쾅!!

[피프틴 러브.]

“쯧.”

210km가 넘는 초강력 플랫 서브가 지혁의 T존으로 떨어졌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서브였다.

지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이미 몇 번이나 본 루카스의 서브지만 도통 적응이 안 된다.

‘역시 내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이야.’

루카스는 서브가 주 무기다 보니 스트로크를 이어갈 기회가 별로 없는 선수다.

아마 저렇게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지키고 난 후 딱 한 번 지혁의 게임을 브레이크 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경기 내내 서브만 주구장창 하다가 끝나는 것이다.

관중들과 선수들 모두 극도로 싫어하는 경기 스타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유형의 선수들이 랭킹이 높은 경우가 많았다.

쾅!!

타타탓- 탕!

지혁은 세 번째 서브가 돼서야 공을 간신히 네트 너머로 넘길 수 있었다.

과거에 이것보다 더 빠른 서브를 받아 본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

만약 회귀를 하지 않았다면 루카스의 초강력 서브를 받지 못하고 허무하게 패배를 했을 것이다.

탕! 탕!

그렇게 스트로크를 몇 번 주고받자 루카스의 실력이 어느 정도 파악되었다.

‘역시 스트로크는 별로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루카스가 스트로크도 잘했다면 절대 지금 랭킹에 머무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엄청난 약점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수준급의 서브와 비교하면 스트로크가 많이 부족하다.

“하앗!”

지혁의 포핸드 앵글샷이 시원하게 코트를 갈랐다.

루카스가 뒤늦게 따라갔지만 샷의 각도가 날카로워서 공을 놓쳤다.

[포티 피프틴.]

첫 득점을 얻자 지혁은 경기의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직접 상대해보니 루카스는 좌우로 움직이는 앵글샷과 어프로치샷에 취약했다.

커다란 덩치가 민첩한 움직임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키 큰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약점이다.

‘다리를 공략하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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