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대구국제 퓨쳐스 대회
“헉···헉···.”
루카스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첫 번째 세트부터 경기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조짐이 보였다.
“······1세트부터 타이 브레이크를 갈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타이 브레이크는 게임 스코어가 6:6이 되었을 때 경기가 너무 길어지지 않게 방지해주는 제도다.
그게 발동했다는 건 경기가 정말 치열했다는 것을 뜻한다.
탕!
루카스는 대각선으로 빠지는 크로스샷을 치기 위해 빠르게 달려갔다.
끼이익-
길쭉한 다리로 슬라이딩을 하자 하드 코드에서 거북한 소리가 들렸다.
겨우 공을 네트 너머로 넘겼지만 숨을 돌릴 틈이 없이 다시 크로스샷이 날아온다.
이번엔 반대편이다.
“으윽.”
빈틈을 정확히 찌른 공격에 점수가 나야 했지만 루카스는 공을 받아냈다.
그가 잘해서가 아니라 지혁이 스트로크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어서였다.
‘······이 자식 일부로 안 끝내고 있어.’
이전 세트부터 의심하고 있었는데 방금 전에 샷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자신의 체력을 빼기 위해 의도적으로 랠리를 길게 가져가고 있을 것이다.
루카스는 지혁의 작전을 눈치 챘지만 딱히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한 게임, 딱 한 게임만 따내면 되는데···.’
브레이크를 한 번만 성공하면 세트를 가져올 자신이 있다.
그러면 서비스 게임을 지켜서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다르게 계속 고지에서 한 발자국이 모자라다.
턱!
그렇게 코트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던 루카스는 결국 백핸드 에러를 범했다.
상대의 위닝샷에 당한 게 아니라 체력 고갈로 인한 실책이었다.
[세트 이지혁. 3-2.]
그렇게 한 번 실책을 하기 시작하자 댐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실점이 나기 시작했다.
루카스의 체력이 거의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다.
[게임 이지혁. 4-2]
[게임 이지혁. 5-2]
탕!
[게임 세트! 매치 이지혁!]
결국 결승전은 2:1(6-6(5-7), 6-4, 6-2)로 끝이 났다.
3세트까지 이어진 접전이었다.
“아자!”
심판의 승리 선언이 떨어지자 지혁은 라켓을 치켜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첫 프로대회에서 우승한 것이 짜릿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짝짝짝짝-
관중석의 사람들도 그런 지혁을 보고 크게 박수를 쳤다.
테니스를 잘 모르는 관중들은 아마 결승전이 엄청나게 치열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경기를 치른 지혁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준결승보다 쉬운 거 같은데?’
진짜 체력 소모가 적은 경기는 6-0으로 이긴 경기가 아니다.
상대의 서비스 게임을 한 번 브레이크하고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전부 지켜서 6-4로 세트를 가져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플레이인 것이다.
이런 방법을 쓰면 괜히 상대 서브를 힘들게 쫓아다닐 필요가 없다.
‘루카스의 스트로크가 약해서 다행이야.’
만약 스트로크마저 강했다면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
“기사가 많이 올라왔을까?”
시상식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지혁은 곧바로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포털 사이트에 대구 퓨처스를 검색하자 그가 기대한대로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스포츠 기사가 보였다.
[테니스 이지혁, 국내 ‘최연소’ 퓨처스 우승]
한국 테니스 유망주 이지혁(만 15세 7개월)이 12일, 대구에서 열린 대구 국제 퓨처스 대회, 단식에서 국내 최연소로 우승했다.
[테니스 이지혁, 대구 퓨처스에서 최연소로 우승하다!]
프로 대회에 첫 출전한 이지혁(금화고)은 결승전에서 루카스 윌리엄(미국, 260위)을 2-1의 치열한 접전 끝에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대구 퓨처스 우승으로 이지혁의 세계 랭킹은 1020위가 되었다.
지혁이 기사를 샅샅이 확인해 본 결과 총 4개의 인터넷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슈가 안 되는지 댓글이 한 개도 없었다.
“···사진이라도 잘 나와서 다행이네.”
기사에 첨부한 사진들이 대부분 괜찮아 보인다.
아마 결승전을 진행하고 있을 때 찍은 것 같았는데 나름 A급 사진을 고른 것 같았다.
지혁은 기사에서 사람들의 댓글을 찾을 수 없자 이번에는 국내 테니스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드디어 쓸 만한 유망주 등장했다.]
얼마 전에 열린 대구 퓨처스에서 고1이 최연소로 우승했다. (기사 첨부)
몇 년 동안 유망주 가뭄이었는데 드디어 쓸 만한 선수 나왔다. ㅋㅋ
[댓글]
- 올해 전국종별 테니스 대회에서 박준상, 이찬영 잡고 우승한 얘 아님?
ㄴ ㅇㅇ 맞음.
ㄴ 진짜 역대급 포텐셜이다.
- 국내에서 유일하게 리버스 포핸드 쓰는 선수인데 기사에는 한 줄도 안 보이네? 기자야 일 제대로 해라.
ㄴ 이지혁이 리버스 포핸드 쓴다고? 지가 무슨 조코비치, 나달인 줄 아나 ㅋㅋ
ㄴ 치는 거 직접 봤는데 무슨 뱀처럼 날아가더라. 내 생각엔 국내 포핸드 원탑인 것 같다.
ㄴ 오버 ㄴㄴ 그냥 쓸 만한 정도겠지.
ㄴ 실제로 한 번 보면 그런 소리 못 함 ㅋㅋ 아직 성장기라 서브는 약한데 컨트롤이나 스핀량이 넘사벽 수준임.
- 그런데 진짜 잘생겼네. 테니스 선수 아닌 줄 알았다.
ㄴ 경기 직관한 지인이 말하길 실물이 더 낫다고 함.
ㄴ 일주일 뒤에 열리는 창원 퓨처스에도 참가한다고 하니까 직관할 사람 가라.
“테니스 커뮤니티가 기사보다 낫구나···.”
인터넷 기사가 더 파급력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커뮤니티에서 지혁의 이야기가 더 많았다.
아마 테니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곳에 모여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포인트는 얼마나 모였지?”
이번에 사람들에게 이름이 제법 많이 알려졌으니 포인트가 조금이라도 들어왔을 것이다.
[146포인트.]
지혁은 어플로 포인트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결승전을 마치고 확인했을 때 만해도 분명 100포인트가 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경기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포인트가 들어왔다는 뜻이다.
“···역시 효과가 있구나.”
아직 직접 경기를 뛰어서 얻는 포인트의 양보다 부족하다.
하지만 등급이 높은 대회에서 꾸준히 활약한다면 이게 뒤집히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빨리 그랜드 슬램에 나가야 하는데.”
아마 본선만 통과해도 지금보다 훨씬 유명해 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랜드 슬램은 ATP 랭킹 224위 안에 들어가야 참가할 수 있다.
고작 1020위의 지혁에겐 예선을 치를 자격조차 없다.
“지금 224위의 ATP 포인트가 340점 정도였지?”
퓨처스의 우승 포인트가 18점인 걸 생각하면 가야 할 길이 정말 멀다.
“이제 참가 자격은 얻었으니까 챌린저 대회도 알아 봐야겠네.”
챌린저 대회는 우승 포인트가 80~125점이라서 한 번만 우승해도 5개 이상의 퓨처스에서 우승하는 것과 동일한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다만 퓨처스보다 훨씬 랭킹이 높은 선수들이 참가해서 우승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몸만 전성기로 돌아오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혁의 챌린저 우승 경력이 15회가 넘었던 만큼 실력은 충분하다.
하지만 몸이 기술과 경험을 따라가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단 부딪쳐 보자.”
어차피 우승이 아니더라도 포인트는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지금 실력이 과연 어디까지 먹히는지 시험해 볼 겸 출전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겸사겸사 이름도 알리고 말이다.
***
대구 퓨처스가 끝나고 2주 후.
지혁은 체력 문제로 힘들 거라는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게 창원 퓨처스에서도 간단하게 우승을 차지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랭킹이 이전 대회보다 훨씬 낮았기 때문이다.
“설마 1번 시드를 받은 선수의 랭킹이 420위일 줄은 몰랐지.”
420위면 대구 퓨처스에서 8번 시드도 받지 못하는 랭킹이다.
이렇게 선수들의 수준이 들쑥날쑥한 건 한국에서 4월 4일부터 5월 3일까지 4개의 퓨처스가 연달아 열렸기 때문이다.
선수들도 체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중간에 건너뛰는 대회가 있는데 마침 지혁이 선택한 창원 퓨처스가 거기에 해당되는 대회였다.
덕분에 지혁은 이전 대회보다 힘을 쓰지 않고 쉽게 우승을 할 수 있었다.
“이제 부산 오픈만 기다리면 되겠구나.”
아직 퓨처스 대회가 하나 남아 있었지만 체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참가하지 않을 예정이다.
어차피 ATP 점수를 충분히 얻어놔서 부산 오픈의 참가자격은 충분하다.
다시 예선부터 시작해야겠지만 랭킹이 낮은 이상 그 정도는 감수해야한다.
“보름 동안 포인트가 많이 쌓여야 할텐데.”
지혁은 휴대폰을 꺼내 어플을 켰다.
[이지혁]
근력: 53▲ 민첩: 63▲ 체력: 57▲
서브(C+), 포핸드(A+), 백핸드(B), 풋워크(B+), 외모(C-)
[8포인트]
“8포인트라···.”
이때까지 얻은 포인트를 모두 투자해서 외모의 등급을 C-로 상승시켰다.
이제 누가 봐도 잘생겼다고 생각할 정도로 얼굴이 변했다.
하얀 피부, 오똑한 코, 뚜렷한 이목구비까지 훈남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것이다.
“이제 어디에 투자해야 하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피지컬이다.
프로 대회를 뛰면서 파워와 스윙 속도가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반면에 테니스 기술은 전혀 약점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상대 선수보다 더 나은 경우가 더 많았다.
“······일단 사용하지 말고 기다려보자.”
지혁은 포인트를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간신히 뿌리쳤다.
만약 신체 능력을 올린다고 해도 부산 오픈 직전에 올리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훈련이나 하러 가야겠네.”
가만있으면 머리가 더 복잡해 질 것 같았다.
이럴 땐 아무 생각 없이 운동을 하는 게 더 낫다.
지혁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