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부산 오픈 : 챌런저 대회
[부산 오픈 1라운드에서 이지혁 경기 보고 왔다!!]
본선 대진표 보고 혹시나 해서 금정체육공원에 가봤는데 2번 코트에서 290위 슬로바키아 선수랑 경기하고 있더라. (사진 첨부)
이지혁이 경기하는 걸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왜 사람들이 천재라고 하는 지 알겠더라.
······.
트레이드 마크인 리버스 포핸드보고 무슨 부메랑인 줄 알았다 ;;
슬로바키아 선수도 리버스 포핸드에 멘탈 깨져서 경기 끝나고 라켓 부셔먹더라 ㅋㅋㅋ
비매너이긴 한데 경기 내내 탑스핀 스트로크로 당한 걸 생각하면 걔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간다.
[댓글]
- 퓨처스 2연승 하더니 벌써 챌린저 대회까지 출전했네 ;; 성장 속도 미쳤다.
- 그래서 스코어가 몇인데??
ㄴ 6-3, 6-2.
ㄴ 와. 3세트까지 안 간 거 보니까 290위쯤은 널널한가 보네.
ㄴ ㅇㅇ 직관했는데 그냥 처발랐음. 상대 선수랑 실력 차이 너무 나더라.
- 이러다가 부산 오픈까지 우승하는 거 아니냐?
ㄴ 괜한 기대하지 마라 ㅋㅋ 이번 대회에 랭킹 100위권 선수 세 명이나 참가해서 우승할 가능성 거의 없다.
ㄴ 시드 1번이 121위인데 우승? 응 꿈도 꾸지 마.
- 2라운드에 한국 선수 몇 명이나 진출함?
ㄴ 8명 참가했는데 벌써 6명 탈락함.
ㄴ 역시 서구권 얘들한테 안 되네.
ㄴ 확실히 미국이랑 유럽 선수들이 잘하긴 하더라. 피지컬이 차원이 다름;;
***
부산 오픈 7일 차.
지혁은 8강을 간신히 통과해서 준결승에 도달했다.
‘아슬아슬 했어.’
3번의 경기를 치르면서 지혁은 슬슬 실력의 한계가 다가옴을 피부로 느꼈다.
8강에서 있었던 경기가 6-4, 7-5, 6-4로 끝난 걸 보면 잘 알 수 있다.
정말 약간만 삐끗했어도 지금 쯤 탈락하고 서울로 올라가고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 준결승에 올라간 건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상대 선수가 원정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길 망정이지 만약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패배했을 것이다.
‘냉정하게 지금 내 실력은 100위 권 중반이야.’
지혁이 생각하기에 테니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걸 고려하면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준결승전의 상대가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다.
‘121위의 마츠모토 히로키라.’
1번 시드를 받은 이번 대회의 유력한 우승후보라 지혁은 상대가 본선에서 경기하는 걸 몇 번이나 봤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 건 승산이 없다는 것이었다.
서브, 피지컬, 스트로크 숙련도.
종합적인 실력이 명백하게 지혁보다 우위에 있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아마 현역 때 만났어도 분명 상대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선수를 지금의 몸 상태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전성기 때 붙었으면 승률이 80% 정도 나왔을까?’
지혁은 이제 어플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준결승전에서 승리를 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만약 지금 상태로 마츠모토 히로키와 대결을 한다면 이길 가능성이 10%도 안 될 것이다.
‘어떻게 할까···.’
지혁은 휴대폰으로 어플을 보면서 고민했다.
[이지혁]
근력: 54▲ 민첩: 63▲ 체력: 57▲
서브(C+), 포핸드(A+), 백핸드(B), 풋워크(B+), 외모(C-)
[1256포인트]
어플에는 지난 한 달 동안 모은 포인트가 쌓여있었다.
1200이 넘는 포인트는 지난 한달 동안 열심히 활약하면서 힘들 게 모은 것이었다.
‘능력치는 50에서 1 올리는데 100. 60은 1,000포인트가 필요했었지.’
이미 어플을 얻은 지 3달이 다 되어가서 어디에 포인트가 얼마나 필요한지는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동안 여유가 생길 때마다 어플을 효율적이게 사용하는 방법을 항상 고민했기 때문이다.
‘근력과 체력을 60까지 올리면 되겠네.’
그런데 근력 60이 과연 얼마나 되는 힘인지 감이 안 잡힌다.
‘민첩이 63이니 이걸 기준으로 생각하면 되겠지?’
지혁은 자신의 풋워크를 냉정하게 평가해봤다.
지난 한 달 사이에 대회를 많이 참가했으니 표본은 이미 넘칠 정도로 있다.
‘지금도 풋워크는 웬만한 프로들보다 내가 나은 것 같은데?’
전성기보다는 느렸지만 고1인 지금도 꽤 괜찮은 움직임이다.
아마 60정도의 수치가 프로 선수의 커트라인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한 번 올려보자.’
지혁은 잠깐 망설이다가 근력에다 포인트를 투자했다.
[근력이 1상승하셨습니다.]
그러자 외모 등급을 올릴 때처럼 전신에서 가벼운 열이 났다.
근육이 꿈틀거리는 느낌이 마치 안마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10초 정도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감각이 사라졌다.
지혁은 몸을 움직여보며 변한 게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별로 힘이 강해진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고작 1을 올렸다고 눈에 보일 정도로 몸이 변하는 건 아닌가 보다.
‘특별한 부작용은 없는 것 같네.’
외관상의 변화나 고통이 없는 것을 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꼼꼼히 몸을 살피던 지혁은 남은 포인트를 사용해서 근력과 체력을 60으로 맞추었다.
[근력이 1 상승했습니다.]
[근력이 1 상승했습니다.]
[근력이 1 상승했습니다.]
······
[모든 능력치가 60에 도달하였습니다. 숨겨져 있던 항목, 신장이 개방 됩니다.]
[이지혁]
근력: 60▲ 민첩: 63▲ 체력: 60▲ 신장: 173.6cm▲
서브(C+), 포핸드(A+), 백핸드(B), 풋워크(B+), 외모(C-)
[356포인트]
“키도 늘릴 수 있다고!?”
지혁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키에 대한 강한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과거에 178cm라는 평균보다 큰 키를 가지고 있었지만 테니스 선수들 중에는 상당히 작은 편에 속해서 아쉬울 때가 정말 많았다.
아무래도 공이 임팩트 되는 위치가 높을수록 네트를 넘기기 편하고 스피드가 더 빨라져서 유리한 경우가 많아서다.
탑랭커들 중 키가 작은 선수가 없는 걸 생각해보면 정상의 자리에 앉으려면 최소 185cm 이상은 되어야 했다.
“남은 포인트는 350포인트 정도네. 이걸로 얼마나 올릴 수 있지?”
[1mm당 100포인트가 필요합니다.]
지금이 173.6cm이니까 본래의 키까지 복구하는데 필요한 포인트의 양이 약 5,000 정도다.
“······이건 진짜 포인트가 남아돌 때 올려야겠구나.”
몸의 성장은 1, 2년이면 전부 끝나는데 이렇게 많은 포인트를 당장 여기다가 투자해야 할지 의문이다.
게다가 짧은 기간에 키가 갑자기 크면 밸런스와 타격점이 흐트러져서 경기에서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이 오히려 떨어질 것이다.
“이건 대회가 끝나고 생각해봐야겠네.”
지혁은 남은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라켓이 담긴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지금 당장 변화한 몸을 시험해보고 싶어서다.
숙소를 나온 지혁은 곧바로 금정체육공원 테니스장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원래 예약을 하지 않고 코트를 바로 사용할 수 없지만 대회 기간 중이라서 그런지 선수 신분을 배려 받아서 연습 코트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테니스장으로 들어가자 부산 오픈에 남은 선수가 4명밖에 없어서인지 내부가 텅 비어있었다.
통. 통. 통.
그렇게 바닥에 테니스공을 몇 번 튀겨보던 지혁은 서브를 하기 위해 공을 토스했다.
“흐읍!”
탕!!
반대편 코트에 떨어지는 공의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서브 속도가 올랐어···.’
측정 장비가 없어서 정확한 속도는 모르겠지만 육안으로 보기에도 확실한 변화가 보였다.
‘대략 180km 초중반 인 것 같은데?’
이 정도면 투어 선수들의 서브보다는 느리지만 아예 못 쓸 정도는 아니다.
지혁은 강력해진 신체 능력에 홀려 한동안 서브를 쳤다.
그렇게 팔에서 뻐근한 통증이 느껴질 때쯤 정신이 들었다.
‘······아, 내일 준결승전이 있었지.’
아차한 지혁은 곧바로 서브를 시험하는 것을 멈췄다.
괜히 무리하면 내일 경기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최선의 상태로 경기를 해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데 이런 곳에서 몸을 축낼 수는 없다.
그래도 현재 상태를 파악하지 않고 숙소로 돌아갈 수는 없어서 지혁은 최대한 조심하며 샷과 밸런스를 확인했다.
***
준결승 당일.
5천 석의 메인 테니스 코트의 관중석은 2천 명이 넘는 사람들로 차 있었다.
비록 군데군데 자리가 비어있었지만 그래도 국내 테니스 대회치고는 상당히 많은 숫자이다.
원래라면 2012년은 넘어야 이 정도 숫자의 관중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부산 오픈 준결승전에 한국 선수인 지혁이 진출한 영향으로 관중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모였다.
“어린 쪽이 한국 선수라고 했지?”
“그래. 이지혁이라고 17살 밖에 안 됐다고 하더라.”
“고등학생이라고? 용케 준결승까지 올라왔네. 그런데 부산 오픈에는 무슨 방법으로 참가한 거야? 와일드카드라도 받은 건가?”
“쟤가 최근에 열린 퓨처스에서 2번이나 우승한 녀석이잖아.”
“17살짜리가 퓨처스에서 우승했다고?”
“그래.”
“우와. 완전 천재였네. 그럼 준결승에서도 이길 확률이 있겠네?”
남자는 기대하는 어조로 말하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게 그렇게 쉽겠냐. 내가 이지혁이 치른 경기랑 저 일본 선수 경기를 다 봤는데 어림도 없어.”
“실력 차이가 그렇게 나?”
“컨트롤이나 센스는 비벼볼 만한데 피지컬이 너무 차이나. 내 생각엔 2-0으로 무난하게 끝날 것 같아.”
“오랜만에 왔는데 아쉽네···.”
***
[퍼스트 세트. 서브 마츠모토 히로키.]
히로키는 심판의 말이 떨어지자 200km가 넘는 강서브로 경기를 시작했다.
탕!!
몸의 낮춰서 대비하고 있던 지혁은 비틀거리며 서브를 리턴했다.
속도가 빠르기도 했지만 코스가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단 서브를 받아내자 경기는 스트로크 대결로 이어졌다.
‘뭐지?’
지혁의 스트로크를 받은 히로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정확히 이유는 알 수는 없지만 예상하던 것과 경기가 달라서다.
‘뭔가 이상한데.’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는 일단 경기에 집중했다.
지혁의 실력이 잡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않아서였다.
[게임 마츠모토 히로키. 4-3]
1세트 중반.
지혁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히로키는 마침내 이질감의 정체를 알아 낼 수 있었다.
‘스트로크 속도가 빨라졌구나.’
분명히 8강 때와 비교해서 피지컬이 크게 증가했다.
예상보다 스트로크가 위협적이게 느껴지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오늘 컨디션이 절정인가보네.’
아주 가끔 선수들이 인생 경기를 하는 날이 있다.
컨디션이 최절정에 올라 평소 실력보다 훨씬 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날은 200위 권 선수가 50위 권 선수를 잡아내는 이변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히로키는 오늘의 지혁이 그런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 부족해.’
하필 재수 없게 상대의 컨디션이 최상인 상태에서 만났지만 절대 대적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지혁의 피지컬이 많이 상승했지만 아직 평범한 프로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혁에 대한 경계를 한 단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