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부산 오픈 : 챌런저 대회
통. 통. 통.
지혁은 서브를 하기 전 테니스공을 몇 번이나 코트에 튕겼다.
크게 의미 없는 행동이지만 중요한 경기마다 하는 루틴이다.
이렇게 공의 반발력을 손으로 느끼면 마음이 진정된다.
‘능력치를 올리고 실전에서 서브를 하는 건 처음이네.’
과연 실전에서 얼마나 통할지 궁금하다.
“흐읍!”
탕!!
지혁은 왕관자세를 취하며 라켓을 빠르게 휘둘렀다.
그러자 8강전보다 10km이상 빨라진 서브가 사이드라인으로 내려 꽂혔다.
“허억!”
탕!
히로키는 빨라진 서브에 허겁지겁 움직여 라켓을 뻗었다.
하지만 라켓에 맞추는 것에만 급급해서 리턴의 위력이 매우 약했다.
하늘하늘 날아오는 테니스공을 보며 지혁은 빠르게 코트 앞으로 달려 나가 발리샷으로 마무리했다.
[서티 러브.]
‘이제 서브 앤 발리가 먹히네.’
원래 조커처럼 쓰는 전술이지만 이때까지 전혀 사용하지 못했었다.
이 전술은 상대가 서브를 제대로 리턴하지 못할 때만 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만약 원래 쳤었던 어중간한 서브로 이런 짓을 했다간 네트 앞으로 나왔을 때 패싱샷을 당했을 것이다.
‘랭킹 121위한테도 먹힐 정도면 이제 실전에서 사용해도 되겠구나.’
이때까지 여러 가지 공격옵션들을 피지컬의 한계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술마다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 있어서였다.
‘표정이 볼만한 걸?’
웅성웅성.
관중석에서 지혁의 서브를 보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준결승까지 오면서 이미 6번의 경기를 치렀던 만큼 이미 그의 실력이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180km가 넘는 서브에 관중들은 물론 경기를 하고 있는 히로키도 놀란 기색이다.
강력해진 서브가 확실하게 체감되는 모양이다.
“이지혁의 서브가 원래 저렇게 빨랐던가?”
“아니야. 준결승전에서 경기할 때는 저 정도는 아니었어.”
“라켓이라도 바꾼 건가?”
지혁이 서브로 상대의 허를 찔렀지만 경기는 한 쪽의 우세로 흘러가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력이 한 쪽을 압도할 정도로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결승전 1세트는 6-6의 타이 브레이크까지 진행됐다.
‘쉽지 않네.’
능력치를 올리면 어느 정도 우세를 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경기를 해보니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방심하고 있었을 때 세트를 가져왔어야 하는데.’
지혁은 아쉬운 기분이 들었지만 타이 브레이크까지 온 이상 이제 그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얼굴을 보니 방심은 기대도 하지 말아야겠구만.’
반대편 코트에 있는 히로키의 얼굴이 어두워 보인다.
위기감을 느낀 탓인지 경기 초반의 여유롭던 분위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서브 마츠모토 히로키.]
“하앗!”
[1-0]
히로키는 지금 상황이 중요하단 걸 잘 아는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플랫서브를 성공시켰다.
그렇게 타이 브레이크의 점수는 1-2, 3-2, 3-4, 5-4, 5-6, 7-6까지 흘러갔다.
원래 7점을 먼저 낸 선수가 승리하지만 6-6 상황에서 듀스로 돌입하는 규칙이 있어서였다.
그렇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진흙탕 싸움을 먼저 끝낸 건 지혁의 리버스 포핸드였다.
원래 수비적인 플레이에 강력한 강점이 있었던 만큼 상대의 실책을 먼저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세트 이지혁. 1-0]
우와아아아!
첫 세트를 가져오자 관중석에서 큰 환호성이 들려왔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에 흥분한 것이다.
그들은 지혁이 시드 1번 선수랑 붙어서 허무하게 질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맹활약을 하자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응원을 했다.
심판의 제지에도 일방적인 응원이 계속 이어지자 히로키는 얼굴을 찌푸렸다.
경기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이상 어쩔 수 없다.
그의 국적이 일본인 걸 감안하면 야유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것이다.
준결승전은 총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두 선수의 실력이 막상막하였기 때문이다.
탕!
[세임 세트! 매치 이지혁!]
결국 3세트까지 오게 된 경기는 지혁의 서브로 마무리 되었다.
“우와아아!”
“잘했다!”
준결승전의 승자가 정해지자 천 명이 넘는 관중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지혁은 승리의 여운을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만큼 경기가 아슬아슬 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이어지는 환호 소리를 들으며 지혁은 메인 코트를 벗어났다.
이제 1경기만 이기면 부산 오픈 우승이다.
***
지혁의 결승전의 상대는 랭킹 220위의 조슈아 스미스였다.
조슈아는 준결승전에서 3번 시드를 받은 선수를 격파하고 올라온 만큼 뛰어난 실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의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인 마츠모토 히로키와 비교하면 급이 많이 떨어졌다.
이미 경기력이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지혁은 큰 위기 없이 결승전에서 조슈아를 2-0으로 꺾을 수 있었다.
17살밖에 안된 국내 최연소 챌린저 우승자의 탄생에 2천명이 넘는 관중들은 일어나서 크게 박수를 쳤다.
관중석 한 쪽에서는 카메라의 플레시가 번쩍였다.
그 후로는 퓨처스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다만 규모가 20~30배는 더 커졌을 뿐이다.
지혁은 수상식이 끝나고 두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시달리다가 녹초가 다 될 쯤이 되어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그의 가방에는 전에 없던 명함이 10장 넘게 들어 있었다.
전부 테니스 관계자나 기자의 명함들이었다.
***
[테니스 신동 이지혁, 부산 오픈 최연소 우승.]
[테니스 레전드 이형석 계보, 천재 이지혁이 이어 받는다.]
[한국 테니스의 희망, 부산 오픈에서 최연소로 우승하다.]
지난 5월 17일 테니스 유망주 이지혁(17) 선수가 ATP 부산 오픈 국제남자챌린저 테니스대회 단식에서 국내 최연소로 우승했다.
이지혁 선수는 이전 대구 퓨처스에서 국내 최연소 기록을 세운 전력이······.
[댓글]
- 준결승전 봤으면 이지혁이 왜 천재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다.
ㄴ ㅇㅈ 리틀 이형석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더라.
ㄴ 이형석? 그 이상이지. 포텐셜만 보면 역대 최고다.
ㄴ 너무 기대하지마라. 반짝하고 사라지는 유망주가 좀 많냐? 세계 주니어 랭킹 1위 찍은 유망주도 랭킹 좀 올라가면 죽 쑤다 사라지는 게 테니스 판이다.
ㄴ 개소리 ㄴㄴ 주니어 랭킹 1위랑 챌린저 대회 우승한 게 같냐?
ㄴ 아 진짜 현실을 말하는 건데 인정 못 하네 ㅋㅋ
- 저번 퓨처스보다 실력 더 좋아졌더라. 성장 속도 진짜 미쳤다.
ㄴ 고1인데 서브를 180km 이상 치는 거 보니 성인되면 200km는 그냥 치겠지?
ㄴ 얘가 호리호리한데 힘이 장난이 아니더라. 성인 되서 벌크업 좀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ㄴ 이지혁이 치는 강서브 빨리 보고 싶네. 서브만 보완되면 이제 진짜 무결점이다 ㅋㅋ
- 드디어 그랜드 슬램에서 한국 선수를 볼 수 있겠네.
ㄴ 그런데 주니어 대회는 안 나가나? 좀 있으면 롤랑 가로스랑 윔블던 열리는데.
ㄴ 프로 대회도 좋지만 주니어 그랜드 슬램은 참가해줬으면 좋겠는데.
ㄴ 얘 아직 스폰서 없어서 해외 투어 안 나가고 있을 걸? 투어 비용 장난 아니잖아.
ㄴ 그럼 이번에 부산 오픈 우승했으니까 스폰 받고 참가할 가능성 있겠네.
ㄴ ㅇㅇ 메이저 대회 광고 효과를 생각하면 스폰서가 무조건 참가시킬 거임.
ㄴ 이지혁은 챌린저 대회에서도 우승했는데 주니어 대회에 나가면 양학하는 거 아님? 빨리 보고 싶네 ㅋㅋ
***
부산 오픈에서 우승하고 얼마 후.
지혁은 후원 기업들에게 퓨처스를 우승했을 때와 차원이 다른 제안서를 받을 수 있었다.
벌써 새로 들어온 스폰서 제안만 5개가 넘는다.
모두 챌린저 최연소 우승이라는 타이틀 덕분이다.
“이제 실업팀에 가입하지 않는 조건으로도 제안이 많이 오네.”
이전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후원사들이 부산 오픈을 우승한 이후로 몸이 달았는지 박 감독을 통해 슬쩍 흘렸던 조건을 포함한 제안서를 보내고 있다.
“후원 금액이 정말 많이 뛰었구나.”
지혁은 책상에 올려진 제안서를 훑어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불과 한 달 전보다 후원 금액이 적게는 4배 많게는 8배까지 늘어났다.
그만큼 기업들이 그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음. 괜찮은 제안은 S증권, H자동차 정도네.”
중견기업이나 서울 시청 같은 자잘한 후원사들도 섞여 있었지만 지혁의 메인 스폰서를 차지할 만한 규모는 되지 못 했다.
“서울 시청이 1억을 제시했구나.”
예전이라면 감지덕지하고 받았을 제안이지만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그리 끌리지 않았다.
게다가 시청은 공공기관이다 보니 대회에서 성과를 얻었을 때 보너스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지혁이 앞으로 우승할 대회의 숫자를 생각하면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다.
“S증권은 2억, H자동차는 3억 5천이라.”
단순히 금액으로만 보면 H자동차의 후원금액이 월등히 많았다.
하지만 S증권은 소속 테니스 실업팀이 있는 만큼 코치와 트레이너를 무료로 지원해주는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다.
지혁은 세부 내용까지 고려해서 두 기업의 지원을 돈으로 계산해봤다.
“1, 2천만 원 정도 밖에 차이가 안 나네. 이 정도면 S증권을 선택하는 게 낫겠다.”
S증권이 기업 규모도 훨씬 큰데다가 실업팀을 운용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선수 생활을 하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지혁에겐 돈 몇 푼 더 받는 것보다 이렇게 서포트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후원사가 더 필요했다.
“이제 후원사는 됐고. 이제 슬슬 투어나 알아볼까.”
올해 국내에서 개최되는 ATP 대회는 이제 몇 개 남지 않았다.
랭킹을 올리려면 본격적으로 원정을 다녀야할 때가 온 것이다.
“예전처럼 너무 무리하게 다니지는 말아야겠네.”
아직 17살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과한 투어는 몸을 상하게 할 우려가 있다.
성장과 훈련에 방해되지 않는 적정선을 잘 정해서 투어 스케줄을 짜면 될 것이다.
곧 코치가 생길거니 투어에 필요한 복잡한 절차는 그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