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3화 (13/241)

13화. 윔블던

한 달 후.

지혁은 그동안 참가할만한 대회를 찾지 못해서 한 달 동안 휴식 기간을 가졌다.

이 시기의 챌린저급 대회들이 대부분 미국,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굳이 유럽 원정을 가는 걸 원했다면 스폰서도 있는 만큼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혁은 체력적인 부담과 출전하는 선수들의 랭킹을 고려해서 원정을 선택하지 않았다.

챌린저 대회가 일 년 내내 유럽에서만 열리는 것도 아닌데 굳이 고생을 자처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이제 2주 후면 윔블던이 열리네.”

얼마 전 부산 오픈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4대 그랜드 슬램 중 하나인 롤랑 가로스가 열렸었다.

지혁은 그 당시 롤랑에 출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었다.

테니스 선수라면 누구라도 메이저 대회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간절한 바람과는 다르게 그랜드 슬램의 최소 참가 자격은 ATP 랭킹 224위여서 당시 랭킹이 445위였던 지혁은 롤랑에 출전할 수 없었다.

그리고 2주 뒤에 열리는 윔블던도 그동안 랭킹을 전혀 올리지 못한 만큼 마찬가지로 참가할 수 없을 것이다.

“대회에 참가하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지혁은 얼마 전 윔블던 측에서 본선 와일드카드를 제안한 걸 떠올렸다.

그랜드 슬램의 와일드 카드는 보통 부상을 당해 랭킹이 떨어진 탑 랭커나 레전드 선수에게 주어지는 권한이다.

그런 중요한 권한이 지혁에게 떨어진 건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건 윔블던이 제시한 와일드카드가 18세 미만의 주니어 선수들이 참가하는 주니어 윔블던, 속칭 침블던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지혁은 아무리 그랜드 슬램 대회라도 어린 애들이 참가하는 주니어 대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어플의 위력을 체감하고 나서 그 생각이 변했다.

침블던 같이 유명한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 포인트를 얻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시아 지역에 대회가 열리기까지 시간도 많이 남으니까 한 번 참가해볼까.”

***

후원사인 S증권은 지혁이 윔블던 주니어에 출전한다는 소식을 듣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숙박, 차량, 가이드 등 경기 참가에 필요한 절차를 모두 대신해주기로 한 것이다.

만약 평범한 대회였다면 이런 배려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참가하는 침블던은 S증권 입장에서도 상당히 큰 광고 효과를 기대 할 수 있는 만큼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역시 스폰서가 있으니까 편하긴 하네.”

만약 혼자 대회에 참가했었다면 사전 준비를 하느라 상당히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이제 귀찮은 일은 모두 해결했으니까 우승만 하면 되겠네.”

지혁은 침블던에서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주니어 선수들만 참가하는 대회에서 자신이 패배하는 그림이 전혀 연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2013년쯤에 정민이 윔블던에서 준우승을 했었지?”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성과를 얻은 걸로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온 것으로 기억한다.

공중파 3사 뉴스에 몇 번이나 소개될 정도였으니 파급력이 얼마나 컸을지 알만하다.

그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자 지혁은 입맛을 다셨다.

“진작 주니어 그랜드 슬램에 출전할 걸 그랬나.”

주니어 랭킹 포인트는 프로 대회에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보니 이때까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퓨처스에서 우승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주니어 대회에 참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어플의 포인트를 얼마나 얻을 수 있을지 확인해 봐야겠네.”

지혁이 생각하기로 침블던에서 우승하는 게 어지간한 챌린저급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을 것 같았다.

만약 예상한 것처럼 많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면 앞으로 시니어 그랜드 슬램에 출전하기 전까지 참가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

윔블던에 출전하기 전 지혁은 간만에 휴식 일을 맞이했다.

원래 이런 날에는 밖에 나가지 않고 푹 쉬는 게 정석이었지만 오늘은 특별히 외출을 하게 되었다.

아카데미에서 친해진 구지연이 같이 놀아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그런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았겠지만 테니스를 치면서 지연과 많이 친해지다 보니 거부감 없이 그녀의 부탁을 수락하게 되었다.

마침 외출을 하고 싶었기도 했고 말이다.

“지혁 오빠! 여기에요!”

약속 장소 근처에 도착하자 지연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에는 운동복을 입고 있어서 잘 몰랐는데 캐주얼한 옷을 입으니까 의외로 잘 어울린다.

“일찍 왔네? 늦어서 미안.”

“제가 빨리 나온 걸요. 괜찮아요.”

지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보다 아직 점심 안 먹었죠? 이 근처에 맛있는 집 있는데 거기로 가요!”

그렇게 두 사람은 점심을 먹고 영화를 보며 오전 동안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네.’

지혁은 오랜만에 문화생활을 하니까 쌓여있는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항상 팽팽한 활시위처럼 당겨진 생활을 하느라 여유가 없었는데 가끔 이렇게 쉬는 것도 제법 괜찮은 것 같다.

“어! 구지연!”

“······?”

그렇게 영화를 다보고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맞은 편에서 지연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4명의 여학생들이 보였다.

“···박소진? 네가 여긴 왜?”

“점심 먹고 테니스장에 가고 있었지. 그런데 옆에 있는 오빠는 누구야? 설마 지연이 네 남자 친구야?”

“뭐? 아···아니야!”

지연은 남자친구라는 말에 손을 좌우로 흔들며 소리쳤다.

평소와 다르게 말까지 더듬는 게 어지간히 당황한 것 같았다.

“에이. 반응을 보니 맞는 것 같은데.”

소진은 지연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믿지 않는 얼굴이다.

어쩌면 당황한 소진을 놀리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남자친구 분이 어디서 본거 같은 얼굴인데······. 꺄악! 오빠 혹시 이지혁 선수 아니에요?”

“이지혁? 설마 부산 오픈에서 우승한 천재 고등부 선수를 말하는 거야? 소진아 장난하지 마.”

“아니야. 진짜 맞는 거 같아. 나 기사에 올라온 사진을 본 적이 있다고. 분명 얼굴이 똑같아.”

“오빠, 진짜 소진이 말이 맞는 거예요?”

“내가 이지혁이 맞기는 한데.”

“우와!”

지혁이 자신의 정체를 말하자 소진과 친구들은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요즘 테니스계에서 고등학생이 부산 오픈을 우승한 게 워낙 이슈가 되어서 그녀들도 지혁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저희 지금 테니스 치러 가는데 같이 가실래요?”

“맞아요. 저희 테니스 좀 가르쳐 주세요!”

소진과 친구들은 눈을 반짝이며 지혁에게 말했다.

“오늘은 지연이랑 약속이 있어서···.”

“지연아! 부탁할게!”

여학생들은 지혁을 공략하는 게 안 되자 타겟을 지연으로 돌렸다.

어차피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공략하면 된 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알았어. 오빠 오후는 테니스장에 가요?”

“그러자.”

“와아아!”

그녀들의 예상대로 지연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자 결국 지혁은 여학생들과 같이 테니스장에 가기로 했다.

“가까운 곳에 개인 테니스 코트가 있으니까 그리로 가요!”

“맞아요! 여기서 얼마 안 걸려요!”

그녀들의 말대로 테니스 코트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철컹-

그렇게 자물쇠로 잠겨 진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제법 잘 관리된 하드 코트 2개와 클레이 코트 1개가 보였다.

위치도 좋지만 코트 관리가 상당히 괜찮아 보이는 게 돈이 많이 들인 게 티가 났다.

‘땅 값을 제외하더라도 이 정도 수준의 코트면 몇 억은 들었을 건데 이게 개인용 코트라고?’

지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테니스 코트를 보고 있자 소진의 친구 중 한 명이 그런 지혁의 의문을 아는 듯 조용하게 말했다.

“소진이 아버지가 대영 산업 사장님이에요. 여기 코트는 테니스 연습하라고 만들어 주신 거래요.”

대영 산업이라면 10년 정도 지나면 여자 테니스 후원 기업으로 유명해지는 곳이다.

‘사장 딸이 어릴 적에 선수 생활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게 얘였구나.’

지혁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여학생들의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뭔가 잔뜩 기대한 얼굴이다.

“일단 실력을 봐야 하니까 가벼운 랠리부터 해볼까?”

“"네!"”

여학생들은 지혁의 제안에 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라켓을 꺼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니스장에서 공치는 소리가 들렸다.

‘실력은 다들 고만고만하네.’

다들 현역 선수들인 만큼 나쁘지 않은 실력이었지만 진로를 프로 테니스 선수로 정하기에는 조금 애매해 보인다.

테니스 재능을 모두 타고 나는 것은 아닌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보니까 지연이가 확실히 테니스를 잘 치긴 하네.’

원래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나이대의 선수들과 붙여 놓으니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지혁은 그렇게 10분 정도 랠리를 구경하다가 본격적으로 코칭을 시작했다.

“강력한 샷을 치려면 지금보다 스핀을 더 줘야해. 팔로우 스루를 길게 늘여봐.”

“음. 이렇게요?”

“아니 그게 아니라 팔을 여기까지 보내야해.”

예지가 말해준 자세를 계속 틀리자 지혁은 답답한 마음에 직접 스윙을 교정해줬다.

“이제 제대로 하네. 다시 한 번 해봐.”

“네···.”

예지는 자세를 교정해주는 지혁에 손길에 얼굴을 붉히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광경을 보고 반대편 코트에 있던 지연이 빠르게 달려왔다.

“오빠! 저도 가르쳐 주세요!”

“응? 지연이 너는 아카데미에서 자주···.”

“가르쳐 주실 거죠?”

지연은 생긋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분명 평소처럼 웃는 얼굴인데 왠지 서늘한 느낌이다.

지혁은 지연이 고집을 부리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했다.

“···알았어. 그럼 너는 백핸드가 약하니까 그 부분을 보완해보자.”

“네!”

그렇게 지혁은 2시간 동안 코칭을 해주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소진과 친구들이 아쉬운 얼굴을 하며 보내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내일 훈련이 있어서 더 이상 시간을 낭비 할 수는 없었다.

“지혁 오빠 오늘 가르쳐줘서 감사해요!”

“다음에 보면 인사할게요!”

“그래. 너희들도 테니스 열심히 해.”

테니스장 앞까지 배웅을 나오는 여학생들의 모습에 지혁은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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