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4화 (14/241)

14화. 윔블던

지혁은 시차 적응을 위해 윔블던이 시작되기 3일 전 비행기를 타고 영국에 일찍 도착했다.

이번 대회에 동행한 사람은 훈련을 도와줄 코치와 트레이너 그리고 현지 가이드까지 총 세 명이었다.

주니어 대회에 참가하는 것치고 어울리지 않는 원정 구성이다.

만약 대회에 참가하는 주니어 선수들이 그의 수행 인원을 본다면 그랜드 슬램도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ATP 랭킹 100위의 선수들도 1년 상금 수입이 고작 20만 달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상금조차 세금을 내면 15만 달러로 줄어든다.

보통 세계 랭킹 100위 근처의 서구권 선수들은 후원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해서 코치 한 명만 대동하고 투어를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유럽과 미국은 테니스를 잘하는 선수가 워낙 많아서 단순히 그랜드 슬램에 출전하는 것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테니스를 100번째로 잘하는 선수도 그런 어려운 상황인데 그보다 랭킹이 낮은 선수들의 처지는 뻔하다.

랭킹이 300위보다 밑이면 테니스 선수들은 대부분 적자를 보며 경기를 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투어를 지속 할수록 손해를 보지만 어쩔 수 없이 대회에 참가한다.

지금 정상에 위치한 선수들처럼 탑 랭커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스포츠의 특성상 소수의 스타들이 돈을 쓸어간다지만 프로 테니스 선수의 숫자가 1만 명을 넘는 걸 생각하면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현실이다.

“확실히 한국의 테니스 시스템이 다른 나라보다 잘 되어있기는 해.”

타국의 열악한 사정과 다르게 한국은 실업팀이라는 시스템이 있어서 선수들의 복지가 해외와 비교하면 훨씬 괜찮았다.

일단 입단만 해도 성적과 상관없이 세계 랭킹 100위와 비슷한 수입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실업팀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이민을 오겠다는 타국의 프로 선수도 있었을 정도니 한국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여건이 얼마나 좋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 넘치는 복지로 인해 실업팀 선수들이 세계권 대회에 대한 열정이 부족해지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말이다.

끼이익-

“윔블던에 온 게 얼마만이지.”

지혁은 가이드가 섭외한 실내 테니스장에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부상 이후로 모든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으니 4년이 조금 안 됐구나. 프로시절 여기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테니스에 모든 걸 바친 인생을 살았지만 지혁은 결국 죽을 때까지도 그 꿈을 이루지 못했었다.

아니 윔블던 커리어 최고 성적이 64강에 불과했으니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괴물들의 시대에 테니스를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가.”

지혁은 윔블던 근처에서 테니스를 치려고하니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테니스 선수들을 좌절시켰던 3명의 레전드 선수가 떠올랐다.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

클레이의 제왕 라파엘 나달.

무결점의 노박 조코비치.

빅3라고 불리는 이들은 어느 시대에 태어났어도 정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역대 최강으로 평가받는 선수들이다.

지혁은 본선에서 이들을 만날 때마다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친 것처럼 매번 쓰디쓴 패배를 맛보았다.

“2020년이 되서도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괴물들이 지금도 전성기라니. 이놈들은 늙지도 않나.”

앞으로 메이저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그들과 경기할 생각을 하자 지혁은 벌써부터 치가 떨리는 것 같았다.

과거의 수많은 패배가 트라우마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방법이 있어.”

물론 회귀하기 전에 했던 것처럼 정상적인 방법으로 빅3를 꺾고 그랜드 슬램 우승컵을 드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단순히 열심히 노력한다고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빅3는 만만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악마에게 받은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전진하다보면 이번에는 닿을 수 있을 거야.”

이제 한계에 가로 막히더라도 어플이 있으니 실력이 정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선수시절 고질적인 약점으로 평가받던 키와 서브 문제도 해결할 방법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렇게 천천히 실력을 보완하다보면 아무리 빅3라고 해도 결국에는 따라 잡을 수 있다.

“그 계획대로 되려면 이번 윔블던이 중요해.”

지혁은 3일 뒤에 있을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훈련을 시작했다.

***

윔블던 주니어 본선 1라운드.

지혁의 첫 번째 경기 상대는 주니어 랭킹 24위의 제이슨 스콧이었다.

미국 국적을 가진 그는 만 18세 제한이라는 주니어 대회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180을 훌쩍 넘는 키를 가지고 있었다.

‘더럽게 크네.’

코트 앞에서 서브권을 정하고 있는 지혁과 제이슨은 10cm가 넘는 키 차이 때문에 마치 어른과 아이가 마주 보고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모습과 다르게 윔블던을 중계하는 테니스 전문가들은 이번 경기가 지혁의 무난한 승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해설했다.

두 사람의 커리어가 이미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제이슨이 퓨처스 대회조차 우승한 경력이 없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쯧. 잔디 코트라.”

지혁은 발로 느껴지는 미끄러운 감각에 혀를 찼다.

천연 잔디로 된 코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자주 경기하던 하드 코트에 비해 이런 잔디 코트는 바닥이 미끄러워서 타구가 빠르고 낮게 바운드된다.

코트의 특성상 서브가 더 위력적이게 되고 탑스핀 스트로크의 위력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선수들보다 서브가 약하고 리버스 포핸드를 사용하는 지혁은 윔블던에서 경기를 할 때마다 2개의 족쇄를 찬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나마 이전에 윔블던을 출전해 본 게 다행이네.’

분명 난생처음 이런 특수한 조건의 코트에서 경기를 했다면 대처를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혁은 이미 프로시절 몇 번이나 윔블던에 참가해봤던 경험이 있었기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감각은 기억하고 있었다.

[퍼스트 세트. 서브 리.]

잠시 후 경기가 시작되자 지혁은 허리를 아치처럼 꺾으며 서브를 날렸다.

탕!

[피프틴 러브.]

그렇게 180km 중반의 서브가 사이드라인에 붙어서 떨어졌다.

제이슨은 하드 코트라면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서브임에도 불구하고 공이 낮게 깔리는 바람에 아깝게 에이스를 내주고 말았다.

‘그래 어이가 없지?’

지혁은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이슨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그는 저 심정을 이미 수 년 전에 패배라는 대가를 치르면서 몇 번이나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역시 저 녀석도 잔디 코트에 경험이 별로 없나보네.’

그렇게 지혁은 첫 라운드를 큰 위기 없이 2-0으로 승리했다.

제이슨이 아무리 주니어 선수들 중에서 발군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챌린저 대회인 부산 오픈에서 만났던 프로들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본선 1라운드를 가볍게 통과한 지혁은 그 다음에 있는 62강, 32강, 16강을 차례차례 돌파해 결국 준결승전까지 빠르게 올라갔다.

윔블던 주니어에서 그를 상대할 선수가 전혀 없어서였다.

모든 경기의 세트가 2-0으로 끝난 걸 보면 지혁과 상대 선수들의 실력 차가 얼마나 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4강에 진출하게 되니 관중들 사이에서 지혁의 이름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워낙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상대 선수들을 제압했으니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게다가 뛰어난 실력은 물론 외모까지 잘생겼으니 자연스럽게 더 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관중들도 사람이다 보니 외모가 뛰어난 선수의 경기에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여자 테니스 선수들 같은 경우에는 외모에 따라서 더 중요한 코트에 배치되는 일도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

8강이 끝나자 지혁은 전담 트레이너에게 마사지를 받고 곧바로 호텔로 돌아왔다.

모두 내일 있을 4강을 위한 컨디션 조절 때문이었다.

그의 마음 같아서는 윔블던에 출전한 탑 랭커들의 경기를 직접 관람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더운 영국의 날씨를 고려하면 관중석에서 구경을 하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체력저하가 생길 것이다.

아무리 경기를 보고 싶다지만 지혁은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포인트나 확인해보자.”

결국 호텔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지혁은 익숙한 동작으로 어플을 실행시켰다.

매번 경기가 끝나고 그날 얻은 포인트를 확인하다 보니 이것도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지혁]

근력: 60▲ 민첩: 63▲ 체력: 60▲ 신장: 173.7cm▲

서브(C+), 포핸드(A+), 백핸드(B), 풋워크(B+), 외모(C-)

[9,256포인트]

“역시 윔블던 주니어에 출전하는 게 맞는 선택이었구나.”

어플에는 부산 오픈에서 우승하고 얻었던 것 보다 몇 배는 많은 포인트가 쌓여 있었다.

지난 4개월 동안 고생해서 얻은 것보다 많은 양이다.

“이걸 어디에 투자할까.”

지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서브의 등급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테니스 기술의 등급을 올렸을 때 과연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필요한 포인트가 3,200밖에 안되니 크게 부담이 되지도 않는다.

[서브가 B-로 상승하였습니다.]

[모든 테니스 기술을 B등급으로 달성하였습니다.]

[트릭샷 F-가 생성 됩니다.]

“트릭샷? 이게 뭐지?”

서브의 등급을 올리자 기대도 하지 않았던 테니스 기술이 생성되었다.

새로 얻은 기술의 정체를 알아보려고 할 때 갑자기 머릿속으로 낯선 기억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지혁은 엄청난 정보량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제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그는 마침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보상을 해주는 거였구나.”

어떻게 테니스 실력을 늘려주나 했더니 경험을 강제적으로 머리에 삽입하는 방법이었다.

많은 정보를 짧은 시간에 습득하면 보통 전부 날아가 버리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지혁의 머릿속엔 방금 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마치 각인처럼 머리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트릭샷은 아트 테니스를 말하는 거였네.”

아트 테니스는 칠 수 없을 것 같은 공을 특이한 자세로 치는 것을 말한다.

보통 볼 컨트롤이 정말 극에 달해야 성공할 수 있어서 사용하는 선수가 극히 드문 기술이다.

지혁은 그 환상적인 샷을 자신이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벌써부터 피가 끓는 것 같았다.

“···포인트가 많이 남았으니 새로 얻은 트릭샷이나 조금 올려보자.”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트릭샷에 포인트를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등급이 낮은 만큼 그렇게 많은 포인트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지혁은 대략 800포인트를 트릭샷에 투자했다.

[트릭샷이 D+로 상승하셨습니다.]

트릭샷의 등급이 낮은 만큼 생각보다 정보량이 많지 않아서 이번에는 정신을 차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빨리 시험해 보고 싶네.”

[이지혁]

근력: 60▲ 민첩: 63▲ 체력: 60▲ 신장: 173.7cm▲

서브(B-), 포핸드(A+), 백핸드(B), 풋워크(B+), 외모(C-), 트릭샷(D+)

[5,276포인트]

지혁은 어플로 올라간 등급을 확인하며 내일 경기가 기다려졌다.

빨리 서브와 트릭샷을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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