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5화 (15/241)

15화. 윔블던

윔블던 주니어 8강이 끝나고 얼마 후.

급한 얼굴을 한 남자가 노트북을 손에 들고 SBS 스포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스포츠국 소속 이재성PD였다.

“선배! 빨리 이것 좀 읽어 보세요!”

“아, 먼지 날리니까 좀 천천히 들어와! 또 뭐 길래 그러는 거야?”

김PD는 후배가 급하게 자기 책상으로 달려오자 짜증나는 얼굴로 말했다.

“일단 기사부터 보시면 바로 이해가 될 거에요.”

이PD는 선배의 질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들고 있던 노트북을 빠르게 책상에 내려놓았다.

[주니어 그랜드 슬램을 노리는 한국 유망주.]

[한국 테니스의 새로운 역사, 이지혁이 쓸 수 있을까?]

[이지혁 주니어 윔블던 3라운드에서 랭킹 13위 안토니 콜린스를 꺾고 4강 진출.]

[거침없이 윔블던 4강 진출한 이지혁 그는 누구인가?]

[이지혁 윔블던 4강 쾌거! 이제 결승 도전이다.]

“이건 테니스 기사잖아? 테니스는 비인기 종목인데···. 이걸로는 시청률이 안 나와.”

“선배! 건성으로 보지 말고 대회 이름을 읽어 보세요!”

“아, 살살 말해도 알아들어! 대회 이름? 윔블던······주니어? 헉! 이거 4강이라는 게 윔블던 주니어를 말하는 거였어!?”

“그래요! 내일 경기 한다니까 빨리 중계권을 알아봐야 해요!”

김PD는 이PD의 말을 듣자마자 상황을 파악하고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돌렸다.

중계권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가 이렇게 서두르는 건 4강 경기가 내일 바로 열린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방송국에 중계권을 뺏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이렇게 기사가 뜰 정도면 타방송사 스포츠국 PD들에게 소문이 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안 그래도 요즘 시청률이 낮다고 국장님한테 구박을 받는데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

윔블던 주니어 4강전.

지혁은 윔블던 특유의 하얀색 테니스 복을 입고 코트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웃! 게임 리 3-0]

‘역시 많이 어설프네.’

1세트에서 3번 연속으로 게임을 따내자 지혁은 상대 선수, 헨리 에반스에 대한 흥미가 식는 것을 느꼈다.

‘준결승전 상대라 기대했는데 역시 어쩔 수 없나.’

처음부터 너무 과한 기대를 했는지도 모른다.

주니어 랭킹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엄밀히 말하면 헨리는 아마추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프로 데뷔도 하지 않은 선수가 탑 랭커까지 올라간 적 있는 지혁의 상대가 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대로 끝내긴 조금 아쉬운데 트릭샷이나 한 번 써볼까.’

지혁은 경기가 시시하게 끝날 것 같자 새로 얻은 기술을 시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상대 선수도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처음과 같은 열정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이번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써먹겠어. 실전에서 얼마나 통하는지 시험해 보자.’

경기가 치열했다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겠지만 이미 우세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약간의 일탈은 괜찮을 것이다.

어차피 한 게임 정도 내준다고 해도 먼저 6게임을 얻지 못하면 세트를 가져갈 수 없으니 말이다.

그때부터 지혁은 트릭샷을 사용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기 시작했다.

아직 아무런 준비 없이 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능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빌드 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혁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헨리가 백핸드 슬라이스를 받아내느라 샷의 위력이 불안정해 진 것이다.

그러자 지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측 베이스라인으로 달려가면서 다리 사이로 공을 쳤다.

탕!

헨리는 당연히 포핸드가 올 거라 생각해서 자세를 준비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공이 오지 않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통. 통. 통.

그때 왼쪽 코트에서 한 템포 늦게 테니스공이 바운드되는 소리가 들렸다.

“왓?”

헨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관중들은 그 절묘한 장면을 봤는지 커다란 환호성을 질렀다.

지혁은 그 소리를 들으며 씨익 웃었다.

‘메인 샷으로 쓰기는 힘들겠지만 가끔 조커 역할은 할 수 있겠네. 꽤 쓸만한 기술이야.’

지혁은 무엇보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고작 한 포인트지만 이런 트릭샷이 성공하면 상대의 멘탈을 흔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같은 시각, 한국의 SBC 스포츠 방송국.

“안녕하십니까 SBC 스포츠 채널의 캐스터 이철민.”

“해설 박대성입니다.”

“이번 경기는 윔블던 주니어 4강을 중계해드릴 건데요. 화면에 보이는 한국의 이지혁 선수와 헨리 에반스 선수의 경기입니다.”

“네. 방금 이지혁 선수의 서브로 경기가 시작했습니다. ”

TV에서 지혁의 경기을 중계하기 시작하자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빠르게 소식이 알려졌다.

테니스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 윔블던이라는 이름은 절대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 지금 SBC 스포츠 채널에 윔블던 주니어 4강 중계하고 있는데 이거 머임? 한국 선수 나오는데?

ㄴ ㅇㅇ 이지혁이라고 적혀 있네.

ㄴ 윔블던? 그거 엄청 유명한 대회 아님?

ㄴ 걔 요즘 한국 테니스판에서 역대급 유망주라고 불리는 얘임. SBS 스포츠 채널이라고? 나도 빨리 봐야겠다.

“이지혁 선수, 역시 부산 오픈 우승자답게 대단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대 선수가 정신을 못 차리네요.”

“확실히 두 사람 간에 기량 차이가 보입니다.”

“박대성 해설님은 테니스 전 국가 대표 감독직을 하신 경험이 있으신데 해설님이 보시기에 이지혁 선수의 현재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요?”

“이지혁 선수는 이미 부산 오픈에서 최연소로 우승했던 전력이 있죠. 현재 세계 랭킹은 446위에 불과하지만 프로 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적은걸 고려하면 대략 100위권 중반 선수와 비슷한 기량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면서 지혁의 정보를 시청자들에게 알리고 있을 때 갑자기 중계 화면에서 지혁이 트릭샷을 성공시키는 장면이 송출됐다.

“어? 방금 이지혁 선수가 어떻게 득점을 한 거죠?”

이철민 캐스터가 의아한 얼굴을 하며 말하자 중계 화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방금 지혁이 득점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제서야 사건을 이해한 중계석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지혁 선수의 슈퍼 플레이! 정말 대단합니다! 창의적인 샷이 헨리 에반스의 허를 찔렀어요!”

“마치 로저 페더러를 떠올리게 하는 트릭샷이었습니다. 이지혁 선수 볼 컨트롤이 정말 뛰어나네요.”

중계석은 그 이후로 계속 감탄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처음으로 트릭샷을 성공시킨 지혁이 재미를 들였는지 기회가 생길 때 마다 트릭샷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비록 시도 중에 몇 번 공이 아웃되는 실책이 있었지만 이미 경기가 크게 기울어져 있었던 만큼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탕!

와아아아!

“이지혁 선수의 매치 포인트! 세트 스코어 2-0으로 경기가 끝났습니다!”

그렇게 경기가 마무리 되자 관중들의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지혁의 뛰어난 재능과 경기력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

윔블던 주니어 4강이 끝나고 얼마 후.

대형 커뮤니티에서 지혁의 경기가 움짤로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SBS 스포츠에서 방송 된 지혁의 잘생긴 외모와 트릭샷이 크게 이슈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흔한 한국의 테니스 유망주.]

어제 있었던 윔블던 주니어 경기 짤방인데 테니스가 원래 이런 스포츠였음??

[댓글]

- 얘가 특이한 거임. 보통 저런 장면 경기당 1개도 안 나오니까 괜한 기대하지마라.

ㄴ 이지혁은 이런 짤만 5개가 넘는데?

ㄴ 상대 선수가 못해서 그렇잖아 ㅋㅋ 치열한 경기에서는 저런 짓 못함.

ㄴ 연습도 아닌 실제 경기에서 트릭샷을 저렇게 많이 성공시킨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임.

ㄴ 이지혁 천재성은 진짜 ㅇㅈ한다. 한국에서 전례가 없던 케이스다.

- 테니스 몰라도 잘하는 건 확실히 알겠네. 앞으로 올림픽 기대해 봐도 되는 거냐?

ㄴ 응 어림도 없어. 세계 랭킹 1위부터 10위까지 전부 올림픽에 참가하는데 무슨 수로 금메달을 따겠냐. 그래도 아시안 게임 금메달은 기대할만하니까 그거나 기다려라.

ㄴ 지금 성장세를 계속 유지하면 아직 가능성 있다. 해외 언론에서도 지금 이지혁 경기 호평 중이다.

ㄴ 테니스 선수 전성기 나이가 20대 중반이니까 8년만 기다리면 됨 ㅋㅋ

ㄴ 8년을 어떻게 기다려 ㅡㅡ

***

윔블던 주니어 결승 당일.

지혁은 12,345개의 관중석이 있는 1번 코트에서 랠리를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윔블던에서 가장 거대한 곳은 센터 코트였지만 그 자리는 시니어들이 결승을 하느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도 1번 코트는 센터 코트를 제외하고 제일 큰 경기장인 만큼 절대 푸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경기하는 건 처음이네. 설마 주니어 대회로 오게 될 줄이야.”

지혁은 난생처음 윔블던 1번 코트에서 경기를 하자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보통 윔블던에서는 중요도가 높은 경기만 상위 코트를 배정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전 삶에선 단 한 번도 센터 코트와 1번 코트를 밟아 본 적이 없었다.

인기와 랭킹도 어중간하고 8강 이상 진출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번에는 주니어가 아닌 프로로 이 코트를 밟아야지.”

ATP 224위 안에만 들면 되는 윔블던 참가자격과 다르게 이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혁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반드시 다시 이 코트를 밟겠다고 다짐했다.

[퍼스트 세트. 제이크 알렉산더.]

탕!!

경기는 제이크의 서브로 시작되었다.

‘이때까지 상대했던 선수들 보다는 낫네.’

제이크는 주니어 랭킹 3위와 ATP 랭킹 426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지혁이 이번 대회에서 만난 선수들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노련했다.

지혁의 랭킹이 현재 446위인 걸 생각해보면 분명 프로 대회 경험이 제법 있는 선수일 것이다.

탕!!

전광판에 서브 속도가 연속해서 204, 206km로 찍혔다.

아마 주니어를 졸업하고 3~4년이 지나면 톱 100안에 충분히 들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아직 지혁의 상대가 아니었다.

제이크가 몇 년 뒤에 톱100에 들 가능성이 있는 선수라면 지혁은 이미 탑100에 들고도 남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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