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9화 (19/241)

19화. 중국 원정

7월 25일 중국 주하이.

며칠 전 방학을 맞이한 지혁은 주하이 오픈에 참가하기 위해 중국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ATP 랭킹 425위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예선전을 치를 필요는 없었다.

윔블던에 참가할 때보다 20위 가량 순위가 상승한 것은 ATP 랭킹의 산정 방식이 지난 52주간 누적 된 포인트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이제 본선까지 이틀 남았네.”

일정을 맞췄다면 하루를 남기고 주하이에 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혁은 컨디션을 고려하여 본선이 시작하는 날보다 며칠 일찍 도착했다.

시차는 고작 1시간밖에 안 되지만 이동하는데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서였다.

지혁은 침대에 누워서 이번 주하이 오픈에 참가한 선수들의 확정 명단을 한명 씩 확인해봤다.

본선 대진표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직 예선이 끝나지 않아서 지금은 이런 명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1번 시드가 140위, 8번 시드가 240위라. 다들 고만고만하구나.”

게다가 미래에 탑 랭커로 성장하는 선수의 이름도 보이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중국 선수들이 많이 출전했네.”

4명의 예선 통과자를 제외한 28명의 본선 진출자중 10명이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나라로 원정을 가지 않고도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보니 개최국의 선수들이 많이 참가한 것이다.

“와일드카드를 받은 선수들도 모두 유망주들이네. 이번 대회는 어렵지 않겠어.”

챌린저 대회는 총 6경기만 이기면 우승할 수 있다.

지혁은 자신의 대진표에 중국인 선수가 3명이나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번 주하이 오픈을 거저먹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아시아 근방에서 투어를 다니는 게 정답이었어.”

만약 유럽 쪽을 돌아다녔다면 우승을 하는데 갖은 고초를 다 겪었을 것이다.

주하이 오픈과 같은 날에 열리는 도르트문트 오픈의 참가 선수 명단을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독일은 8번 시드가 139위네. 완전 지옥이구나.”

어느 나라에서 대회를 하던지 우승 포인트는 모두 똑같다.

그런데 굳이 고생을 하면서 경쟁이 심한 대회에 참가할 이유가 없다.

나중에 ATP 250같은 상위 대회에 출전하게 되면 지금처럼 개최국 위치에 따라 대회 수준이 결정되지 않는다.

대회의 숫자도 1/10로 줄어들고 출전하는 선수들이 대부분 랭킹 60위권 안의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이런 꼼수도 사용하지 못하게 될 테니 랭킹이 낮을 때 최대한 지역의 이점을 살려야 한다.

***

주하이 오픈 1라운드.

윔블던이 끝나고 처음으로 하는 정식 경기에 지혁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상대 선수는 랭킹 348위의 중국 선수 ‘왕’이었다.

[퍼스트 세트. 서브 이지혁.]

레디라는 체어 엠파이어의 말이 떨어지자 지혁은 손에 쥔 테니스공을 바닥에 튕겼다.

통통거리는 소리를 적막한 코트 위에서 듣자 흥분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거의 한 달 만에 실전에서 서브를 써먹어 보는구나. 300위권의 선수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궁금한 걸.’

“흐읍!”

탕!!

[피프틴 러브.]

첫 서브를 에이스로 장식한 지혁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러자 몇 초 후 오른쪽에 있던 푸른색 전광판에서 서브 속도가 떠올랐다.

[SERVE SPEED 188km/h]

188km.

지혁의 나이를 생각하면 엄청난 스피드의 서브였다.

아마 경기를 하면서 몸이 완전히 예열된다면 지금보다 3~5km는 더 높게 나올 것이다.

‘이 정도면 서브를 한정해서 전성기 시절을 뛰어넘은 것 같네.’

가장 피지컬이 좋았던 20대 중반에나 이런 서브를 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신체 능력은 부족했지만 서브 메커니즘이 한 단계 진화해서 그런지 파워는 물론 코스까지 이전보다 위력적이게 느껴진다.

반대편 코트에 있는 왕의 반응을 보면 그것을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서티 러브.]

[포티 러브.]

[게임 리. 1-0.]

베이글 게임.

두 선수의 클래스 차이를 알 수 있는 결과였다.

그러자 경기장에서 적막한 침묵이 감돌았다.

고작 한 게임이었지만 관중들은 자국의 선수에게 승산이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탑 랭커를 연상시킬 정도로 지혁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자 왕은 기가 죽은 것 같았다.

[아웃! 게임 리. 4-0.]

강력한 탑스핀이 걸린 공이 베이스라인 깊숙한 곳으로 떨어지자 왕은 또 다시 실점을 했다.

높게 튀어 오르는 바운드 각도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름 대처를 하기 위해 라이징샷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난이도가 높은 테니스 기술인만큼 그는 계속 실책을 했다.

[세트 리. 6-0.]

얼마 후 심판이 세트 종료를 알렸다.

그렇게 첫 세트가 베이글로 끝나자 관중들은 경기장을 나가기 시작했다.

자국의 선수가 처참하게 패배하는 모습이 심기에 맞지 않는 모양이다.

원래 지혁의 경기 스타일은 양학을 하는데 가장 적합했다.

그래서 하위 랭커들을 상대할 때 한정으로 본래 실력보다 훨씬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았다.

과거 한국의 팬들은 그런 지혁의 모습을 보고 챌린저 수문장이라는 별명을 지어줬을 정도다.

[게임 세트. 매치 이지혁.]

결국 경기는 6-0, 6-0로 끝났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지혁의 압승이었다.

그렇게 지혁은 4일 동안 상대 선수들에게 탑 랭커의 실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각인시켜줬다.

결승전까지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무실세트로 진출한 것이다.

***

8월 1일, 주하이 오픈 결승전.

결승전은 챌린저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중국 관중들이 모여 들었다.

고작 고등학생에 불과한 어린 선수가 프로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긴다는 소문이 큰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준결승의 경기가 방송으로 중계되자 그런 경향은 더욱 커졌다.

경기 내용도 훌륭했지만 지혁의 뛰어난 외모가 중국인들의 관심을 끈 것이다.

“헤이 키드. 실력이 대단하던데? 마치 어린 시절의 나달을 보는 것 같았어.”

지혁이 몸을 풀며 경기를 준비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결승전 상대인 영국 국적의 덱스터 토마스였다.

“나달이라··· 과분한 칭찬이네요.”

라파엘 나달은 6년 전, 첫 프로에 데뷔했던 17살부터 세계 랭킹 49위를 달성하고 19살에는 롤랑 가로스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릴 정도로 유년기부터 격이 다른 재능을 보여준 선수였다.

2009년 8월 현재 나달의 ATP 랭킹은 10,736포인트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를 이어서 2위였다.

그런 만큼 토마스가 나달을 떠올렸다고 말하는 건 지혁의 재능을 정말 크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빈 말이 아니니까 자랑스럽게 생각해. 네 재능은 신이 주신 선물이야. 만약 네가 지금처럼 성장한다면 하이스쿨을 졸업하기 전에 그랜드 슬램 본선에 진출할 수 있을 걸?”

“당신의 말처럼 그렇게 됐으면 좋겠네요.”

잠시 후 체어 엠파이어가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그럼 좋은 경기를 해보자.”

지혁은 자기 코트로 걸어가는 토마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유쾌한 토마스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건 드디어 상대할만한 선수와 경기를 할 수 있다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통. 통. 통.

그렇게 루틴대로 공을 세 번 튀긴 지혁은 서브를 하기 위해 공을 토스했다.

그러자 우아하게 뻗은 손과 뒤로 꺾인 허리가 마치 왕관처럼 만들어졌다.

꽈아악-

탕!!

한계까지 응축된 힘이 터져 나오자 곧 강서브가 T존으로 떨어졌다.

토마스는 특유의 반사 신경으로 라켓을 빠르게 가져다 댔지만 공은 라인 밖으로 튕겨 나갔다.

[피프틴 러브.]

[SERVE SPEED 191km/h]

짝짝짝짝.

지혁이 첫 에이스를 얻어내자 관중석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오늘 컨디션이 최고구나.’

보통 경기 중반이 되서 몸이 완전히 풀려야 이 정도 서브 속도가 나온다.

그런데 처음부터 전광판에 이런 속도가 찍히는 것을 보니 며칠 동안 실전을 치르면서 몸이 완전히 풀린 것 같았다.

‘질 것 같지는 않네.’

[게임 세트 매치 이지혁. 6-3, 6-2.]

심판의 경기 종료 선언이 떨어지자 관중석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졌다.

짧은 경기였지만 지혁이 보여준 임팩트가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력한 서브와 리버스 포핸드 그리고 신비한 트릭샷.

관중들에게 지혁은 전례가 없는 천재로 보였다.

그렇게 박수갈채가 계속 쏟아지고 있을 때 토마스가 네트 앞으로 다가왔다.

“후··· 축하해. 키드. 설마 이렇게 허무하게 질 줄은 몰랐네.”

“좋은 경기였어요.”

“마치 베테랑 선수를 상대하는 것 같았어. 지금 키드의 나이가 17살 정도 됐지?”

“···? 아뇨.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서 15살이에요.”

“······뭐?”

토마스는 지혁의 대답을 듣고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어린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15살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지혁이 적어도 17살은 되는 줄 알았다.

“······아무래도 경기 전에 했던 말을 취소해야 할 것 같네.”

“무슨 말이요?”

“네 실력에 대한 평가 말이야. 내가 하이 스쿨을 졸업하기 전에 그랜드 슬램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 내 생각엔 키드의 지금 실력은 한 달 뒤에 열리는 US오픈에 나간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아.”

토마스의 말대로 지혁의 현재 실력은 ATP 랭킹 40~60위 부근의 선수랑 비슷했다.

이 정도면 US 오픈 본선 대진에서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같은 끝판왕급 선수만 피하면 32강까지도 진출할 수 있는 실력이다.

“키드의 ATP 랭킹이 200위가 안 되는 게 아쉽네. 만약 이번 US 오픈에 네가 참가했으면 재밌는 상황이 벌어졌을 텐데 말이야. 내년 호주 오픈은 참가할 거지?”

“랭킹이 되면요.”

“지금 네 실력이면 1월까지 최소 150위는 달성할 수 있을 거야. 이건 내 경험이니까 믿어도 좋아.”

토마스는 30에 가까운 나이를 가지고 있는 만큼 지혁을 질투하는 기색 없이 말했다.

만약 나이가 비슷했다면 열등감을 가졌겠지만 이미 은퇴할 시기가 다 된 그는 새로운 신성이 등장한 것이 오히려 반가웠다.

미래에 아카데미를 설립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그의 입장에서 이런 스타성 있는 선수가 테니스 시장을 키워줄수록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혁은 시상식을 끝내고 바로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3일 뒤에 열리는 베이징 오픈 본선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촉박한 일정이었지만 이번 대회만 끝나면 9월 5일까지 긴 휴식 시간이 생기는 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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