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US 오픈
주하이 오픈에서 우승한 지혁은 그 기세를 몰아 베이징 오픈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과거로 돌아오고 3번째 챌린저 우승이었다.
퓨처스 2회 우승으로 36점, 챌린저 3회 우승으로 240점을 얻어서 현재 지혁의 ATP 포인트는 총 276점이었다.
“이제 세계 랭킹 195위구나.”
그랜드 슬램 본선 자동 출전권을 얻으려면 104위 안에 들어가야 하니 앞으로 90위만 더 올리면 된다.
“11월이 되면 선수들의 ATP 포인트가 더 떨어질 테니 그때까지 300점 정도만 더 쌓으면 되겠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이지만 랭킹을 올리는 게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았다.
300점을 얻으려면 앞으로 챌린저 대회를 4번이나 더 나가야 한다.
그것도 우승을 한다는 가정이지 만약 준우승이나 8강에 그친다면 참가해야 하는 대회의 숫자가 2배~3배는 더 늘어날 것이다.
지혁이 회귀 전에 ATP 랭킹 50위를 찍어봐서 다행이지 만약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실력으로도 학교를 다니면서 랭킹 100위를 달성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US 오픈까지 쉬면서 기다려야겠네.”
11월까지 랭킹을 올리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했지만 이번 달은 아시아 지역에 챌린저 대회가 더 이상 열리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9월, 10월, 11월에 중국, 한국, 일본에서 챌린저대회가 총 6개가 열리니 그때를 노리면 충분히 100위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이 8월 10일이니까 결국 이번에도 시니어 그랜드 슬램은 참가하지 못하겠구나.”
그랜드 슬램은 본선 6주 전에 선수들의 랭킹으로 참가 신청을 받는다.
그래서 4주 밖에 시간이 남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195위라는 순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와일드카드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훈련이나 열심히 하자.”
지혁은 대회에는 출전할 수는 없지만 그 덕분에 휴식 시간이 충분해 졌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비록 참가하지는 못 했지만 다음 그랜드 슬램에서 더 좋은 실력으로 데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포인트가 얼마나 남았지?”
[이지혁]
근력: 65▲ 민첩: 68▲ 체력: 65▲ 신장: 178cm▲
서브(B+), 포핸드(A+), 백핸드(B+), 풋워크(B+), 외모(B-), 트릭샷(B-)
[38,331포인트]
“3만 8천 포인트라···. 이걸로는 부족한데.”
지혁은 테니스 기술 중 하나를 A-로 성장시키고 싶었다.
서브와 백핸드의 등급을 올리고 난 후 챌린저 대회에서 상당한 재미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B+ 등급의 스킬을 상승시키려면 10만 포인트가 필요한 만큼 현재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만으로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신체 능력을 70으로 맞추는데 12,000포인트밖에 들지 않으니 우선 여기에다 사용하자.”
결국 지혁은 어플을 사용해 가장 포인트가 적게 드는 곳에 투자했다.
어차피 한 달 뒤에 열리는 US 오픈 주니어에서 우승하면 10만 포인트 정도는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된다.
[근력이 5 상승하였습니다.]
[민첩이 2 상승하였습니다.]
[체력이 5 상승하였습니다.]
[이지혁]
근력: 70▲ 민첩: 70▲ 체력: 70▲ 신장: 178cm▲
서브(B+), 포핸드(A+), 백핸드(B+), 풋워크(B+), 외모(B-), 트릭샷(B-)
[26,331포인트]
***
한 달 후.
지혁은 예정했던 대로 US오픈에 참가하기 위해 뉴욕에 도착했다.
“랭킹을 올리려면 이번 US오픈은 쉬고 챌린저 대회에 나가는 게 더 낫지만···.”
많은 포인트가 필요했던 지혁에게 이번 결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7월, 8월 동안 두 개의 챌린저 대회에서 우승을 했지만 그 기간 동안 얻은 포인트는 고작 1만이었다.
내년 1월, 호주 오픈에 출전할 계획이 있었던 만큼 그때까지 기량을 상승시키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
“이번 US 오픈은 델 포트로가 우승을 했었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21살의 선수가 나달과 페더러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려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결국 이번 US 오픈 이후로 다른 그랜드 슬램에서 우승하지 못하지만 델 포트로는 2009년 당시에 로저 페더러의 뒤를 이을 신성이라고 평가받던 선수였다.
“델 포트로, 바브린카, 페러, 페레르, 쏭가, 베르디흐···. 그러고 보니 대단한 선수들이 정말 많구나.”
지혁이 방금 말한 선수들은 모두 현시대 탑 10에 들어가는 최상위 선수들이다.
팬들에게 인간계 최강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니 이들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선수들을 호주 오픈에서 상대할 생각을 하니까 막막하네. 그런데 대체 페나조는 얼마나 강한 거야?”
탑 10의 최상위 선수들도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앞에 서면 한 없이 작아진다.
인간계 최강의 선수들이 빅3에 대한 통산 승률이 10%가 간신히 넘었으니 사실상 빅3가 부상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상 반전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실력을 파악하고 가야겠네.”
지혁은 이번 US 오픈은 주니어 대회에 집중하기보다 내년 1월에 상대할 탑 랭커들의 경기를 관람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이번 대회는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지혁의 실력으로는 일부로 져주지 않는 이상 주니어 선수들에게 패배하기 힘들었다.
똑똑똑.
지혁은 노크 소리를 듣고 호텔 문을 열었다.
그러자 의기양양한 표정을 한 손 코치의 얼굴이 보였다.
“지혁아, 네가 부탁했던 아서 애쉬 스타디움의 티켓이야.”
“오, 정말요? 가장 인기 있는 경기장인데 용케 구하셨네요.”
“월급 받고 하는 일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결승전까지 전부 구해 놨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관람해. 탑 랭커의 경기에서 배울 점이 정말 많을 거야.”
지혁은 손 코치가 건네주는 티켓을 받아서 가방 안에 넣었다.
US 오픈은 총 22개의 코트가 존재했다.
스타디움 4개, 야외 코트 15개, 연습 코트 3개였다.
그리고 손 코치가 구해온 티켓은 가장 시설이 좋은 아서 애쉬 스타디움의 티켓이었다.
이곳은 US오픈의 메인 코트이자 총 23,771명의 관중들을 수용할 수 있는 세상에서 제일 큰 테니스 경기장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경기를 하는 선수들은 보통 상위 시드를 가지고 있었다.
지혁이 관심을 가질만한 정상급 선수들은 전부 이 장소에서 경기를 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저녁 7시에 시작하니까 내 경기랑 겹치지는 않겠네. 1번 시드가 페더러, 2번 시드가 앤디 머레이 3번 시드가 나달, 4번 시드가 조코비치였는데 과연 누구의 경기를 볼 수 있을까?”
보통 가장 실력과 스타성이 뛰어난 선수는 아서 애쉬 스타디움, 나이트 세션에 경기를 한다.
주니어 선수들이 야외 코트에서 오전 11시부터 경기를 하는 것과 전혀 다른 대접이다.
‘푸대접이 이렇게 도움이 될 때도 있네.’
주니어 선수가 스타디움을 배정 받지 못하는 것이 설마 본선 경기를 관람하는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
[게임 세트! 매치 이지혁. 6-0, 6-0.]
야외 코트에서 벌어진 1라운드를 1시간 만에 끝내버린 지혁은 바로 휴식을 취하러 호텔로 돌아갔다.
오늘 저녁에 있는 경기를 관람하려면 무리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2009년의 페더러라. 과연 얼마나 대단할까.”
현재 페더러의 나이를 한국식으로 계산하면 29살이다.
보통의 테니스 선수라면 은퇴를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실제로 2003년부터 지금까지 15번의 그랜드 슬램을 우승했던 페더러는 앞으로 10년의 시간이 지날 때까지 5번의 우승밖에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내년 1월에 있는 호주 오픈을 빼면 4번이다.
그렇게 저녁이 되자 지혁은 손 코치와 함께 경기장으로 갔다.
가능하면 혼자 경기를 즐기고 싶었지만 아직 미성년자인 만큼 손 코치가 밤에 혼자 외출을 하는 것을 결사반대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전성기의 페더러를 볼 수 있다니···.’
우상이나 다름없는 페더러의 전성기를 볼 생각에 벌써부터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린다.
마치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저녁 7시, 아서 애쉬 스타디움.
지혁은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테니스 경기장에 도착했다.
“와···.”
‘여전히 굉장하구나···.’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자 지혁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 나왔다.
밖은 일몰 시간이라 어둑어둑했는데 안쪽 모습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수많은 조명들이 중앙의 코트를 비추는 게 정말 장관이다.
‘나도 언젠간 이곳에서 경기를 할 수 있겠지.’
지혁은 두 달 전 윔블던 1번 코트에서 경기했을 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코트에 불과할지라도 이곳은 지혁에게 꿈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멍하니 코트를 내려다보고 있자 손 코치가 지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경기가 시작하려나 보다.”
그의 말대로 심판이 동전을 하늘로 던지는 모습이 보인다.
서비스 게임을 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퍼스트 세트. 서브 페더러.]
탕!!
페더러의 서브로 경기가 시작되자 지혁은 눈을 크게 뜨고 집중했다.
단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게임 페더러.]
그렇게 1세트 중반 쯤 되자 경기의 흐름은 완전히 페더러에게 넘어왔다.
상대 선수의 실력이 페더러와 비교해서 너무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관중들은 전혀 실망한 기색이 아니다.
처음부터 랭킹 124위의 선수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관중들은 페더러의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다.
탕!!
페더러의 한손 백핸드가 다시 한 번 점수를 만들어내자 관중들은 박수를 쳤다.
‘어떻게 한손 백핸드가 저렇게 정교할 수 있지?’
지혁은 그 광경을 보고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한손 백핸드는 파워, 컨트롤, 안정성이 두손 백핸드 보다 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더러의 백핸드에서는 그런 취약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나라면 페더러를 어떻게 상대했을까? 역시 탑스핀 스트로크 밖에 없겠지?”
보통 한손 백핸드를 사용하는 선수들은 높이 튀어 오르는 공에 취약하다.
특유의 자세 때문에 받아치려면 슬라이스나 라이징 샷을 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격 옵션을 제한할 수 있으면 스트로크의 경로를 예측할 수 있다.
경기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세트 페더러 6-2.]
‘아직도 2세트나 남았네. 역시 그랜드 슬램은 5세트 경기라서 좋단 말이야.’
직접 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죽을 맛이겠지만 관중의 입장에서는 역시 볼거리가 많은 게 최고였다.
그렇게 지혁은 저녁 10시가 될 때까지 경기를 관람하다가 호텔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