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22화 (22/241)

22화. 호주 오픈

쿵!!

“크윽!”

베르디흐는 헤비 스핀이 걸린 공을 치기 위해 라이징샷을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테니스의 샷은 공이 정점에 닿았을 때 친다.

공이 튀어 오르는 도중에 치면 컨트롤이 힘들고 정점에서 하강하는 상태에서 치면 코트 뒤쪽으로 물러나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혁의 리버스 포핸드는 그런 방법으로는 받아낼 수가 없다.

평범한 포핸드의 정점이 허리 높이라면 지혁의 샷은 얼굴 높이까지 튀어 오르기 때문이다.

턱!

몇 번이나 라이징 샷을 사용하던 베르디흐는 자세가 불안정한 탓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책을 했다.

공이 네트에 걸린 것이다.

[세트 리.]

“······.”

결국 첫 세트를 6-3으로 내준 베르디흐는 휴식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상으로 분석했던 것과 지혁의 실력이 괴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이건 완전히 다른 사람인데···.”

처음부터 16살이라는 나이 때문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64강에서 만날 선수에게 더 집중했는데 아무래도 실수인 것 같았다.

“방심하면 안 되겠어.”

베르디흐는 처음 경기가 시작될 때의 가볍던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진 얼굴로 옆에 앉아있는 지혁을 째려봤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지혁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볼키즈가 건네주는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씨익-

그때 시선을 느낀 것인지 지혁이 고개를 슬쩍 돌리며 한 쪽 입꼬리를 쓰윽 올렸다.

마치 조소처럼 느껴지는 미소였다.

“으드득. 저 꼬맹이가.”

그 모습에 베르디흐는 이를 갈며 다음 세트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2세트에는 본때를 보여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플레이어 레디.]

곧이어 심판의 선언이 떨어지자 두 선수는 각자 코트 위로 올라갔다.

탕!!

2세트가 시작되자 베르디흐는 처음의 장난스러운 모습을 버리고 진지한 눈빛으로 경기에 임했다.

아무리 아직 4세트가 남았지만 더 이상 페이스를 빼앗기면 위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세트 이지혁 2-0,]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에도 불구하고 2세트는 다시 지혁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자 베르디흐의 표정은 점점 썩어가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바보가 아닌 이상 눈치 채지 못 할리가 없다.

경기를 하고 있는 상대 선수와 자기의 역량 차이가 현격하게 난다는 것을.

“이게 16살의 실력이라고? 농담이지?”

베르디흐는 오랜만에 재능의 벽에 부딪친 기분이 들자 의자에 앉지도 않고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지혁을 쳐다봤다.

수군수군

그 이상한 행동에 웅성거리는 관중들.

“이런 압박감은 탑시드 선수들에게서나 받아 봤는데···. 저 꼬맹이가 벌써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지금 상황은 꿈이 아니었다.

분명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혁은 그랜드 슬램에 참가한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니어 대회에 출전한 것조차 영상으로 모두 남아있었으니 애초에 숨길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괴물의 출현인가···.”

패배를 직감한 베르디흐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나머지 경기를 소화했다.

이미 2세트나 내준 상황에서 역전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넘칠 정도로 잘 알았기 때문이다.

실력이 비등했다면 혹시 모르지만 경기를 하고 있는 그가 체감하기로 지혁의 실력은 낮게 잡아도 20위권은 되는 것 같았다.

기량이 그 정도로 차이 나는데 역전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임 세트. 매치 리.]

결국 경기는 베르디흐가 예상했던 것처럼 3-0의 세트 스코어로 끝났다.

지혁의 첫 번 째 그랜드 슬램 승리였다.

***

같은 시간 SBC의 중계 상황.

“이지혁 선수! 랭킹 67위의 베르디흐를 3-0으로 꺾고 호주 오픈 2라운드에 진출합니다!”

“상대를 완벽하게 압도했어요! 대단한 경기력입니다!”

SBC 스포츠 해설자들은 중계 화면으로 지혁의 승리가 결정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예상했던 것을 초월한 활약에 잔뜩 흥분한 것이다.

그들은 설마 지혁이 그랜드 슬램에서 이렇게 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

“누가 이 선수를 고등학생이라고 생각 할까요! 첫 그랜드 슬램에서 긴장하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강심장을 타고난 것 같네요! 이틀 뒤에 열리는 64강이 정말 기대됩니다.”

SBC 스포츠는 경기가 끝났음에도 중계를 끝내지 않고 지혁에 대한 정보를 시청자들에게 10여분 동안 설명했다.

일 년 전에 윔블던과 US 주니어를 통해 지혁의 이름이 제법 많이 알려졌지만 경기를 실제로 보거나 자세한 정보를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US 오픈 시청률이 2%가 채 나오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이런 과정은 반드시 필요했다.

지혁이 본선 1라운드에서 승리하자 엄청난 수의 기사가 실시간으로 쏟아졌다.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와 비슷한 양이었다.

[지혁, 랭킹 67위 베르디흐를 꺾고 호주 오픈 2라운드 진출!]

[한국 테니스계가 배출한 불세출의 천재.]

[과연 몇 라운드까지 진출할 수 있을까?]

[64강의 상대는 바브린카!]

[호주 오픈 2라운드 중계 시간.]

- 뭐냐 67위가 선수가 상대가 안 되는데? 대체 이지혁 전력이 어느 정도냐?

ㄴ 오늘 실력이 뽀록이 아니면 최소 30위 안의 선수랑 비슷한 거 같은데?

ㄴ 저 정도면 투어 대회에서나 볼 법한 실력임.

- 베르디흐 퇴장할 때 표정 봤냐 ㅋㅋㅋㅋ 넋이 나갔더라.

ㄴ 나 같아도 평생 테니스 프로로 활동했는데 16살한테 지면 저 기분이겠다.

ㄴ 2세트 끝나고부터 표정 안 좋았음. 아마 그때부터 패배를 예상한 것 같다.

ㄴ 재능 차이 느낀 거 아님?? 난 좀 안쓰럽더라.

- 이러다가 지혁좌 두유노우 클럽 가입하는 거 아니냐?

ㄴ 그건 최소 8강 안에는 들어야 가능하지. ㅋㅋㅋ

ㄴ 16강 상대 선수가 작년 US 오픈 우승자 델 포트로다. 16강에 올라가는 것도 감지덕지지.

ㄴ 8강은 이때까지 한국 선수들 중에 아무도 달성해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임 ㅋㅋ 만약 달성하면 또 기록 세우는 거임.

ㄴ 이지혁 별명 기록 분쇄기잖아. 가능할지도 모른다.

***

지혁은 경기를 마치고 몇 시간 후 2라운드 상대가 정해지자 인상을 찌푸렸다.

상당히 까다로운 선수가 배정되었기 때문이다.

“바브린카라···. 전성기가 아닌 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만약 3~4년 뒤에 만났다면 지금 실력으로는 절대 이기지 못했을 상대다.

바브린카는 페나조 왕조시기에 유일하게 그랜드슬램에서 3회나 트로피를 들어 올린 탑5 안에 들어가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랜드 슬램 3회 우승은 한 때 빅4에 포함됐던 앤디 머레이와 동일한 우승 횟수인 걸 생각하면 전성기 시절의 바브린카는 빅3를 제외하면 최강의 선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혁은 상대의 공략법으로 탑스핀 스트로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바브린카는 강력한 한손 백핸드 사용자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다른 선수였다면 한손 백핸드가 약점이 되지 않았을 테지만 리버스 포핸드를 사용하는 지혁에게는 예외였다.

“무기 하나를 카운터 칠 수 있으니 상성만 따지면 나쁘지 않은 상대야.”

작년 US 오픈에서 페데러의 경기를 보면서 한손 백핸드를 사용하는 선수들의 상대법을 나름 연구해봤다.

지금처럼 실력이 상승하는 추세라면 1~2년 안에 페더러와 맞붙을 일이 생길 것 같아서 혼자서 작전을 짜본 것이다.

“페더러에게 사용하려던 전략을 다른데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

US 오픈 2라운드.

“지혁아 잘해라!”

“누나가 응원할게!”

“1라운드처럼만 해!”

지혁은 경기장에 입장하면서 자신을 응원하는 한국인 관중들을 발견했다.

주니어 대회에서도 몇 번 본적은 있지만 이렇게 50명이 넘는 숫자가 뭉쳐서 응원하는 건 처음이었다.

손을 흔들며 경기장으로 들어가자 먼저 도착한 것인지 바브린카가 가방을 내려놓는 모습이 보인다.

쿵!

코트 옆 벤치에 도착한 지혁이 가방을 내려놓자 그 소리를 들은 건지 바브린카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말을 걸었지만 프랑스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바브린카는 지혁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아쉬운 표정을 하며 한 쪽 어깨를 들썩였다.

두 사람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어색한 분위기로 랠리를 주고받으며 몸을 풀었다.

[플레이어 레디.]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자 2라운드 경기가 시작 됐다.

[퍼스트 세트. 서브 리.]

탕!!

지혁의 플랫 서브가 서비스 라인 중간에 내려 꽂혔다.

번개 같은 속도였지만 바브린카는 라켓을 쭉 뻗으며 공을 받아냈다.

넘어질 것 같은 자세였지만 신기하게도 리턴 된 공은 코트 깊숙한 위치로 떨어졌다.

타다닷!

하지만 스플릿 스텝을 밟고 있던 지혁은 헤비 스핀이 걸린 리버스 포핸드로 침착하게 대응했다.

휘리릭-

분당 RPM이 6천에 달하는 테니스공이 부메랑처럼 날아가자 귀에서 마치 채찍이 휘감기는 듯한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헛!”

퉁! 혼신의 힘을 다한 탑스핀 스트로크는 역시나 위력적이었는지 바브린카는 다급한 동작으로 백핸드 슬라이스를 사용했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탕!!

느릿한 속도로 날아오는 슬라이스샷에 지혁은 네트로 빠르게 달려가 발리를 쳤다.

쐐애액- 쿵!

오른쪽으로 빠르게 쏘아지는 패싱샷.

[피프틴 러브.]

짝짝짝짝짝.

첫 랠리부터 접전이 벌어지자 관중석에서 박수가 쏟아진다.

“후우···”

지혁은 숨을 한 번 가다듬고 다음 서브를 위해 공을 토스했다.

“하앗!”

탕!!

번개 같은 서브가 T존으로 떨어지자 이번에는 바브린카가 공을 따라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움찔거렸다.

[서티 러브.]

[SERVE SPEED 204km/h]

‘오늘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은데?’

리버스 포핸드를 칠 때부터 느꼈지만 아마도 오늘은 작두를 타는 날이 온 것 같았다.

[게임 리.]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첫 서비스 게임이 끝났다.

하지만 바브린카는 이제 경기가 시작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5세트 경기인 만큼 한 게임 정도는 탐색을 하는데 사용하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잠깐의 휴식 시간이 끝나자 이번에는 바브린카의 서브로 경기가 시작됐다.

“흐읍!”

210km가 넘는 서브가 번쩍이자 지혁은 몇 분 전의 바브린카와 똑같은 입장이 되었다.

휘청거리며 받아낸 백핸드 리턴이 힘이 실리지 않은 채로 날아간다.

탕!!

바브린카는 방금 전에 당한 복수를 하려고 했는지 네트 앞으로 뛰어와 강력한 발리를 사용했다.

그리고 당연히 실점이라는 생각을 한 것인지 샷을 치자마자 뒤로 돌아선다.

타다닷-

하지만 지혁은 끈질기게 달려가며 네트를 등진 채로 트릭샷을 성공시켰다.

그러자 마치 로브처럼 날아간 공은 반대편 사이드라인에 정확히 떨어졌다.

통! 바로 옆에서 테니스공이 튀는 소리가 들리자 다음 서브를 치기위해 베이스 라인으로 걸어가던 바브린카는 깜짝 놀라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바닥을 구르는 노란 테니스공을 발견하고 심판의 얼굴을 쳐다봤다.

[러브 피프틴.]

우와아아아!

심판의 선언과 관중들의 반응을 통해 상황을 파악한 바브린카는 인상을 크게 찌푸렸다.

설마 그 발리를 받아낼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다.

바브린카는 어떤 샷으로 점수를 잃었는지 알고 싶은 것 같았지만 경기 중에는 코치라도 선수에게 말을 걸 수는 없다.

결국 그는 한숨을 한 번 쉬고 다시 서브를 준비했다.

괜히 더 시간을 끌거나 코치와 사인을 주고받다가 체어 엠파이어에게 경고를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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