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24화 (24/241)

24화. 호주 오픈

지혁의 서브로 시작한 5세트.

이제 이번 세트를 이긴 선수가 32강에 진출한다.

“후우···후우···.”

지혁은 방금 전에 휴식을 가졌음에도 호흡이 진정되지 않자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었다.

옷을 정리하거나 테니스공을 바닥에 튕기면서 루틴이 있는 척 연기한 것이다.

그렇게 20초 쯤 지났을까.

어느 정도 호흡이 돌아온 지혁은 마침내 공을 토스했다.

“흐어엇!”

탕!!

욱신거리는 팔로 라켓을 휘두르자 곧 경쾌한 타격음이 들렸다.

[폴트!]

[SERVE SPEED 181km/h]

하지만 힘이 떨어져서 그런지 퍼스트 서브는 서비스라인을 한참이나 벗어난 곳에 떨어졌다.

경기 초반만 해도 에러가 적었는데 정확도가 많이 낮아졌다.

지혁은 세컨드 서브를 준비하면서 전광판으로 힐끗 눈을 돌렸다.

‘181km? 많이 지치긴 했구나. 어쩐지 몸이 무겁더라 했어.’

경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200km는 가볍게 넘겼는데.

확실히 5세트 쯤 되면 전체적인 기량이 많이 감소하는 것 같았다.

‘세컨드 서브는 탑스핀을 사용하자.’

위력만 따지면 다시 한 번 플랫 서브를 시도하는 게 나을 것이다.

하지만 지혁은 이번에 실수하면 더블 폴트로 점수를 잃는 다는 생각에 안전한 선택지를 골랐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간파한 것인지 바브린카는 코트 안으로 한 발자국 들어왔다.

“흐읍!”

탕!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140km중반의 탑스핀 서브.

바브린카는 예상하고 있었던 만큼 여유롭게 포핸드 리턴을 성공시켰다.

다시 시작되는 두 선수의 스트로크 대결.

5구, 10구, 15구.

상당히 오래 지속되는 랠리에 경기장은 타구 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팽팽한 긴장감이 관중석까지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랠리가 이어질수록 한 쪽이 점점 위태로워지면서 두 선수 중 누가 우위에 서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났다.

“으윽.”

[아웃! 러브 피프틴.]

23구, 결국 먼저 실책을 저지른 건 지혁이었다.

바브린카의 묵직한 타구에 라켓이 밀려서 공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코트 밖으로 날려 보낸 것이다.

지혁은 부정확한 임팩트에 찌릿찌릿한 고통이 느껴지자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상대에게 경련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였다.

우와아아아!

수준 높은 스트로크 대결이 바브린카의 승리로 돌아가자 조용하던 경기장에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 소리에 지혁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경기 초반 만해도 저 환호는 자신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임 바브린카 1-0.]

결국 지혁은 허무하게 첫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 당했다.

5세트에 모든 것이 걸려있는 만큼 이번 패배는 정말 크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는데···.’

서브권을 가지고 있는 유리한 상황에서조차 게임을 따내지 못하자 지혁은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던 것이다.

털썩.

그렇게 어두운 얼굴로 의자에 앉아 휴식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익숙한 글자가 지혁의 눈앞에 나타났다.

[1,000,000포인트를 달성하였습니다.]

[튜토리얼이 끝났습니다.]

[어플의 1차 제한이 해제됩니다.]

[이지혁]

근력: 70▲ 민첩: 70▲ 체력: 70▲ 신장: 183cm▲

서브(A-), 포핸드(A+), 백핸드(A-), 풋워크(A-), 외모(B), 트릭샷(B)

[456,627포인트]

‘······이건 어플이잖아?’

전조도 없이 어플이 나타나자 지혁은 멍하니 허공을 쳐다봤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잠깐······. 이 능력이 이번 경기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겠는데?’

원래 코트에는 휴대폰을 소지하고 들어올 수 없다.

다른 스포츠와 다르게 테니스는 경기 중에 전술 코칭 같은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게 금지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능력이 있으면 휴대폰이 없어도 언제든지 어플을 사용할 수 있다.

경기를 하는 도중에도 아무런 제한 없이 실력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포인트가 벌써 45만이나 모였다고? 역시 그랜드 슬램은 규모가 다르구나.’

지혁이 호주 오픈에 참가하고 흐른 시간은 고작 3일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번 대회에서 얻은 포인트와 지난 1년 동안 모은 포인트가 비슷하다.

물론 그만큼 고생을 하고 있었지만 그걸 고려한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양이다.

‘호주 오픈의 시청자 수를 생각하면 당연한 건가···.’

이번 호주 오픈은 무려 150여개국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2억 명이 넘는 테니스 팬들이 이번 대회를 시청하고 있는 만큼 지혁의 경기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의 숫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작년에 참가했던 윔블던, US 오픈 주니어 대회도 따지고 보면 그랜드 슬램에 속해있었다.

하지만 보통 테니스 시청자들은 자국 유망주의 경기가 아니라면 굳이 주니어 대회를 챙겨보지 않는다.

동일한 시간대에 프로 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굳이 아마추어 경기에 관심을 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한이 풀렸다고 했으니 이제 신체 능력도 다시 올릴 수 있나?’

지혁은 시험 삼아 체력을 하나 올려봤다.

[체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설마 했는데 진짜로 되잖아? 그러면 일단 체력부터 올리자.’

그렇게 체력 수치를 75까지 올리자 더 이상 포인트를 투자할 수 없게 되었다.

예전에 70에서 막혔던 것처럼 이번에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효과는 확실하네···.’

고작 5밖에 안 되는 수치지만 벌써 컨디션이 돌아온 게 느껴진다.

정확한 상태는 직접 움직여봐야 알겠지만 체감 상으로는 3세트 초반과 비슷한 것 같았다.

‘남은 포인트는 35만이네. 이건 테니스 기술에 사용해야겠다. 휴식 시간은··· 30초 정도 남았구나.’

지혁은 전자시계로 남은 시간을 확인하고 즉시 체어 엠파이어에게 추가 휴식 시간을 요구했다.

원래 테니스 대회에서 5세트 경기를 할 경우 3세트 이후로 10분간 휴식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리의 요청으로 지금부터 10분간 휴식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청이 받아들여지자 지혁은 곧바로 포인트를 쪼개서 테니스 기술에 투자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번에 모두 사용하고 싶었지만 적응 시간을 고려하면 지금 상황에서는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잠시 후 엄청난 정보가 지혁의 머릿속으로 쏟아졌다.

“후···.”

지혁이 작은 신음을 흘리며 감았던 눈을 뜨자.

전광판에서 10분이 지난 시간이 보였다.

‘이제 5만 정도 남았나···.’

지혁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번 흔들고 라켓을 챙겼다.

아직 포인트가 조금 남아 있었지만 이제 코트 위로 올라가야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 레디.]

바브린카의 서브로 다시 시작 된 경기.

“흐어엇!”

탕!!

10분 동안 체력을 회복한 건 지혁만이 아닌지 바브린카는 위력적인 강서브를 T존에 꽂아 넣었다.

퉁! 원래라면 받지 못했을 서브였지만 지혁은 라켓을 뻗어서 공을 걷어내는데 성공했다.

어플로 인해 체력이 많이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경기는 5세트 초반처럼 다시 한 번 스트로크 대결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두 선수의 주도권은 뒤집혀 있었다.

지혁의 테니스 숙련도가 상승해서인지 바브린카가 밀리는 기색을 보였던 것이다.

쿵!!

그렇게 13구.

지혁의 포핸드 앵글샷이 드디어 득점을 만들어 냈다.

바브린카의 실책이 아니라 순수한 실력으로 따낸 포인트였다.

[러브 피프틴.]

웅성웅성.

그 모습에 관중석은 급격히 소란스러워졌다.

분명 열세에 처해있던 선수가 갑자기 활약을 하니 관중들도 놀란 것이다.

그리고 바브린카도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어리둥절한 얼굴이다.

직접 경기를 하고 있는 만큼 지혁의 기량이 상승한 것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꽈악-

‘이 정도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세트 리 1-1.]

결국 지혁은 첫 득점을 시작으로 브레이크까지 따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바브린카를 제압할 정도는 아니었는지 그 이후의 게임은 승패를 반복하게 되었다.

[세트 리 5-4.]

[세트 바브린카 5-5.]

[세트 리 6-5.]

[세트 바브린카 6-6.]

두 선수의 경기는 게임 스코어가 6-6이 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5세트 듀스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7-6, 7-7. 7-8. 8-8.

그렇게 게임 스코어가 계속 반복되면서 경기는 마침내 5시간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욱신욱신.

그러자 지혁은 무릎과 허리에서 통증이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호주 오픈의 하드 코트는 잔디와 클레이 코트와 다르게 바닥이 딱딱해서 몸에 부하가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만약 어플로 체력을 올리지 않았다면 분명 지금보다 상태가 더 심각했을 것이다.

‘더 이상 길어지면 안 돼.’

슬슬 한계점이 다가오는 지 온 몸에서 경고를 보내온다.

아마 앞으로 3~4세트 안에 경기를 끝내지 못하면 분명히 퍼져버릴 것이다.

지금도 그랜드 슬램이라서 버티고 있지 만약 다른 대회였다면 진작 기권을 했을 것이다.

탕!!

[아웃!]

“챌린지!”

지혁은 회심의 백핸드가 아웃이 되자 곧바로 검지를 들어 챌린지 신청을 했다.

분명 공이 들어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짝! 짝! 짝! 짝! 짝!

관중들은 챌린지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박수를 쳤다.

다른 스포츠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지만 이건 테니스 관중들만의 관습이다.

그렇게 박수 소리가 처음보다 두 배는 빨라졌을 때 쯤 전광판에서 호크아이로 촬영 된 장면이 확대되어서 나타났다.

베이스라인 끝부분에 떨어진 공.

그 모습이 어찌나 애매한지 슬로우 모션과 여러 각도로 몇 번이나 재생해보고 나서야 체어 엠파이어의 판정이 나왔다.

결과는 1mm차이로 인.

[인! 게임 리 9-8.]

“아자아아아!!!”

지혁은 챌린지 결과를 듣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이번 포인트는 경기의 승패를 가를 정도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바브린카는 뒤집어진 판정을 듣자마자 흥분한 얼굴로 체어 엠파이어에게 뛰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항의한다고 해도 호크 아이로 찍힌 결과를 그가 뒤집을 수는 없다.

결국 얼굴이 벌겋게 변한 바브린카는 주의를 듣고 나서야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게임 세트. 매치 리. 3-2(6-3, 6-4, 4-6, 2-6, 10-8)]

두 선수의 경기는 치열한 접전 끝에 마침내 지혁의 승리로 돌아갔다.

경기 시간은 총 5시간 24분이었다.

마침내 경기가 끝나자 모든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내왔다.

명경기를 보여준 두 선수에게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서였다.

덜덜덜.

지혁은 경기가 끝나자 제자리에 서있기 힘들 정도로 다리가 떨려왔다.

긴장이 풀리면서 근육도 동시에 이완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볼키즈가 달려와서 부축을 해준다.

볼키즈는 자신과 1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 지혁을 선망하는 표정으로 훔쳐보면서 네트 앞까지 데려다 줬다.

네트에서 기다리고 있던 바브린카는 그런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경기에서 거머리 같은 모습을 보이던 지혁이 이제야 제 나이대로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바브린카는 짧은 영어로 몇 마디 격려를 던지고 곧바로 경기장을 벗어났다.

이 자리는 승자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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