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호주 오픈
[박 해설님, 방금 이지혁 선수가 사용한 서브의 정체가 뭔가요!?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분명 공이 반대로 바운드 된 것 같은데요!]
박 해설은 김 캐스터의 질문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도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킥 서브의 한 종류인 트위스트 서브인 것 같습니다. 서브 자세나 바운드 각도를 고려하면 그것 밖에 없어요.]
마침 중계 화면에서 지혁의 서브가 슬로우 모션으로 다시 방송되고 있었다.
경기를 송출해주고 있던 PD도 방금 전 상황을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저게 말로만 듣던 트위스트 서브군요. 저는 실전에서 사용하는 선수를 처음 봤습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대부분의 프로 선수들이 선호하지 않는 기술이거든요.]
[이유가 뭐죠? 제가 보기에는 위력이 상당한 것 같던데요?]
[높은 난이도 때문입니다. 실전에서 사용하려면 강한 근력과 유연성, 그리고 오랜 훈련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게다가 몸에 강한 부담이 걸려서 기피되는 이유도 있죠.]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게 시원찮다는 뜻인가요?]
[정확하게 이해하셨네요. 저런 서브를 사용하려면 보통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같은 시간 경기를 보고 있던 커뮤니티의 반응도 폭발하고 있었다.
지혁의 퍼포먼스가 사람들의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했던 것이다.
정반대로 바운드되는 트위스트 서브의 시각적인 효과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 트위스트 서브라고? 저거 만화에서 나오는 기술 아니냐?
- 나도 그 생각함. 저런 기술이 실제로 존재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ㅋㅋㅋ 무슨 만화 주인공이냐고 ㅋㅋㅋㅋ
- 뭔 공이 반대로 튀어 오르냐? 델 포트로가 장신이라서 다행이지 키 작은 선수였으면 얼굴에 맞았겠네.
- 가슴에 테니스공 맞는 소리 들었음? 진짜 ㅈㄹ 아파 보인다 ;;
- 그런데 저 서브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이지혁이 저런 서브도 사용했었나?
- ㄴㄴ 내가 이때까지 경기 다 챙겨봤는데 오늘 처음 보는 거다. 공식 경기에서 한 번도 사용한 적 없음.
- 설마 이때까지 숨기고 있었던 건가?
- ㅇㅇ 그런 듯 사실 상위 라운드에서 보여주려고 전력을 감춘 거임.
-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랜드 슬램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아냐?? 이제 실전에서 사용할 수준이 돼서 꺼낸 거겠지.
- 응 아니야 우리 지혁이가 다른 기술 보여줄 거야~ 반박시 매국노
- 국뽕 진짜 극혐이다 ㅋㅋ 저거 있어도 어차피 델 포트로한테 안 되는 거 모름?? 쟤 리틀 페더러라고 불리는 선수임. 괜히 기대해봤자 못 이긴다.
- 그건 64강, 32강에서도 나왔던 소리잖아. 바브린카랑 칠리치한테는 이길 줄 알았나? 경기는 해봐야 아는 거임.
***
델 포트로의 서비스 게임으로 다시 시작한 경기.
지혁은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게 자세를 낮춘 채로 상대의 서브를 기다렸다.
“하앗!”
쾅!!
서비스 코트에 번개처럼 떨어지는 공. 전광판에 찍힌 속도는 무려 227km였다.
서브가 주특기인 칠리치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속도에 지혁은 넘어질 것처럼 달려가며 라켓에 공을 갔다댔다.
일단 넘기는 것에 집중한 것이다.
턱!
하지만 아직 경기 초반이라 그런지 그의 리턴은 네트에 걸리고 말았다.
[피프틴 러브.]
‘쯧 역시 키가 큰 선수들은 서브가 빠르구나.’
지혁은 혀를 차며 베이스라인으로 돌아갔다.
델 포트로의 키는 이전 경기에서 상대한 마린 칠리치의 키와 같은 198cm였다.
그러다 보니 임팩트 높이가 평범한 프로 선수들보다 확연하게 높았다.
서브를 내려찍는 것처럼 칠 수 있었던 것이다.
[게임 델 포트로.]
[게임 리.]
[게임 리.]
‘뭔가 이상한데?’
지혁은 세트가 중반 쯤 되자 델 포트로의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예상했던 것보다 경기가 너무 잘 풀렸기 때문이다.
3-1이라는 스코어를 보면 알 수 있다.
경기가 시작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브레이크를 성공한 것이다.
‘작년 US 오픈보다 실력이 떨어진 것 같은데? 포핸드가 너무 형편없어졌어.’
테니스는 다리, 무릎, 골반, 허리, 몸통, 어깨, 팔꿈치, 손목 등.
전신의 협응력을 이용하는 스포츠다.
그러다 보니 이 많은 신체 부위들 중 한 곳에만 문제가 생기더라도 기량이 뚜렷하게 감소하게 된다.
‘설마 손목 부상이 재발한 건가?’
지금 델 포트로의 별명은 리틀 페더러였지만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테니스팬들에게 유리 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된다.
튼튼한 외관과는 다르게 항상 부상을 달고 살았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지혁은 자신의 추측을 확인하기 위해 서브와 스트로크에 스핀을 더욱 강하게 걸었다.
공의 타점을 어지럽게 해서 손목에 부하를 주기 위함이었다.
[아웃! 게임 리.]
다시 한 번 게임을 얻어내자 지혁은 곧바로 코트 반대편을 주시했다.
그러자 오른쪽 손목에 통증이 느껴지는지 델 포트로가 손을 쥐었다폈다하는 모습이 보였다.
작은 움직임이라 알아차리기 힘들었지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서 간신히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예상이 맞았구나. 잘하면 이번 경기를 거저먹을 수도 있겠는데?’
델 포트로의 부상을 확신한 지혁은 그 이후로 집중적으로 그의 손목을 노리기 시작했다.
만약 관중들이 사정을 알았다면 비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지혁은 자신의 선택에 약간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프로 선수라면 상대의 약점을 노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대의 부상을 배려하는 플레이를 하면 그게 더 모욕적인 일이다.
[세트 리 6-3]
지혁의 승리로 결정 된 1세트.
싱거운 결말에 관중석에서는 뭔가 떨떠름한 분위기가 흘렀다.
천재끼리 붙은 만큼 경기가 치열할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해설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이지혁 선수가 경기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무려 US 오픈 우승자를 말이에요!]
[저도 이제야 알아차렸는데 아무래도 델 포트로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스트로크에 대한 대처가 너무 미흡해요.]
[혹시 부상이라도 있는 걸까요?]
[아마 높은 확률로 그럴 겁니다. 정상급 선수답지 않은 실책이 너무 많았어요.]
120초의 휴식 시간이 지나고 다시 시작한 2세트.
경기의 흐름은 지혁에게 완전히 넘어왔다.
이제 테니스를 잘 모르는 시청자들도 누가 이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전세가 기울었던 것이다.
탕!!
베이스라인으로 떨어지는 지혁의 리버스 포핸드.
“크읏.”
[게임 리.]
얼굴로 튀어 오르는 공에 델 포트로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다시 한 번 브레이크를 허용했다.
벤치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는 델 포트로.
그는 몇 분 동안 손목을 점검하더니 결국 옆에 있는 체어 엠파이어에게 스페인어로 몇 마디 말을 건넸다.
표정이 어두운 게 아무래도 좋은 소식은 아닌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관중들이 웅성거리며 궁금해 할 때.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가 기권을 요청했습니다. 4라운드는 리의 승리입니다.]
심판의 입에서 경기 종료 선언이 떨어졌다.
더 이상 경기를 이어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델 포트로가 기권을 한 것이다.
‘······예상했던 것 보다 부상이 심각한가 보네.’
지혁은 아무런 대가 없이 16강에서 승리했지만 그다지 기쁘지 않은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랜드 슬램에서 선수가 기권하는 일은 정말 드물었기 때문이다.
만 명이 훌쩍 넘는 관중들과 100개국이 넘는 나라로 경기가 중계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이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상태가 정말 좋지 않다는 뜻이다.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지만 다음 대회를 기다려야겠어.’
지혁과 델 포트로의 랭킹이 비슷한 만큼 시즌 아웃을 당하지 않는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위 랭커들이 필수적으로 참가해야하는 2010년의 테니스 대회가 아직 11개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델 포트로는 손목을 부여잡은 채 처량한 모습으로 경기장에서 퇴장했다.
“부상이라······.”
지혁은 그 광경을 보자 큰 부상을 당했던 자신의 과거가 떠올라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재활 훈련을 하면서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만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비참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치는 것보다 경기를 포기하는 게 낫지. 저게 맞는 행동이야.”
괜히 어린 치기심과 승부욕에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는 것 보다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현명한 일이다.
과거의 자신도 저렇게 행동했다면 그렇게 비참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 텐데.
잠깐동안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던 지혁은 기자들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고 표정을 풀었다.
어차피 이제는 다 사라진 과거였고 더 이상 그런 경험을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
경기를 일찍 마친 덕분에 지혁은 체력에 이점을 가지고 8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바브린카와 칠리치를 상대하면서 한 고생을 드디어 보상받은 것이다.
“다음 경기는 이틀 뒤에 있으니까 컨디션을 회복할 시간은 충분해. 내일은 연습 코트에서 새로운 기술을 시험해보자.”
지혁은 경기가 끝나고 호텔에 돌아오자마자 어플을 사용해 백핸드의 등급을 올렸다.
체력과 시간이 여유로워서 굳이 뒤로 미룰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새로 얻게 된 기술은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 거의 사장되고 있는 ‘한손 백핸드’였다.
“경기가 제대로 진행됐으면 풋워크의 등급도 올릴 수 있었을 건데 아쉽네.”
이미 양손 백핸드를 수준급으로 구사하고 있어서 새로 얻은 기술이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다.
평생 사용했던 자세를 바꿀 만큼 위력적일지 확신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선택지가 많아지는 게 나쁠 것은 없지.”
역대 최강의 선수로 평가받는 로저 페더러도 한손 백핸드를 사용하고 있으니 분명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을 것이다.
지혁은 실전에서 한손 백핸드를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그러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페더러와 바브린카였다.
두 선수 모두 강력하고 우아한 한손 백핸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멋있기는 하겠네.”
확실히 겉모습만 생각하면 한손 백핸드가 화려하기는 했다.
날카로운 스트로크 각도, 시원한 스윙, 슬라이스 등 관중들이 좋아할만한 점이 많았던 것이다.
지혁은 테니스 팬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내일 코치들에게 어떤 핑계를 대야 하지?”
오늘 트위스트 서브를 사용한 일로 엄청나게 시달렸는데 내일은 한손 백핸드에 대한 질문세례가 쏟아질 것이다.
겨울 동안 같이 훈련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두 기술에 대해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나.”
잠깐 동안 고민하던 지혁은 결국 오늘 사용했던 말을 반복하기로 결정했다.
그냥 하다 보니 되었다는 핑계를 대기로 한 것이다.
분명 믿지 않을 확률이 높았지만 계약 관계상 을의 입장에 있는 코치들은 별다른 추궁은 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