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29화 (29/241)

29화. 호주 오픈

호주 오픈의 연습 코트.

지혁은 가벼운 랠리를 하며 굳어있는 몸을 풀고 있었다.

반대편 코트에는 두 명의 코치가 스트로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건이 된다면 훈련은 한 명이랑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하지만 마땅한 훈련 상대를 구하지 못한 이상 이런 편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지혁과 코치들의 실력 차이를 생각하면 1:1을 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현역 프로들도 탑랭커가 아니라면 지혁의 전력을 받아내는 선수가 드물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흐읍!”

탕!!

오른쪽 사이드라인으로 날아가는 지혁의 백핸드 앵글샷.

공은 아슬아슬하게 라인 위를 때리고 지나갔다.

테니스를 배운 사람이라면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세밀한 컨트롤이다.

그렇게 랠리를 주고받길 5분.

뭔가 이상함을 느낀 코치가 갑자기 질문을 던져왔다.

“이건 한손 백핸드잖아? 대체 언제 배운 거야?”

바뀐 백핸드 자세를 보고 처음에는 기분전환 삼아서 하는 놀이라고 생각했는데 공을 받아보니 절대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실전에서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백핸드였던 것이다.

“며칠 전에 바브린카가 사용하던 게 좋아 보여서요.”

“원래 한손 백핸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잖아? 그런데 이 정도 수준의 스트로크를 칠 수 있다고?”

“그냥 하다 보니 저절로 되더라구요.”

주변에 있는 코치들이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지혁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뻔뻔하게 나갔다.

상식적으로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냥 저절로 됐다고 한 것이다.

어플의 정체를 밝힐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 너라면 그럴 수도 있지···.”

“맞아. 고2에 그랜드 슬램 8강에 진출하는 녀석인데···.”

“너는 평범한 사람들이랑 다르니까···.”

‘응?’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코치들은 지혁의 말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이때까지 자신들의 고용주가 이루어 놓은 게 있는 만큼 천재라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닌데.’

어쨌든 나쁜 상황은 아니니 굳이 오해를 풀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훈련을 시작하려고 할 때.

지혁은 관중석에서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익숙한 소년을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 중에 그가 눈에 띈 것은 별다른 이유가 아니다.

과거에 프로 생활을 하면서 자주 부딪쳤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혁이 주로 지는 입장이긴 했지만 말이다.

‘저 녀석이 아마 나보다 한 살 어렸었지? 그러면 아직은 애송이겠네.’

지혁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허둥대는 라이언을 발견하고 피식하고 웃었다.

저런 어리숙한 녀석이 다음 세대를 이끌어나갈 선수라고 평가받는 날이 오게 되다니.

정말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일인 것 같았다.

‘그래도 라이언 데이비스라는 이름값이 있으니 기본은 하겠지?’

“잠시만요.”

지혁은 문뜩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훈련을 잠시 중단하고 관중석으로 걸어갔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에 구경을 하고있던 팬들이 깜짝 놀라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게 걸어가길 잠시.

지혁이 도착한 곳은 라이언의 앞이었다.

“안녕?”

“······어? 나한테 말을 건 거야?”

라이언은 요즘 호주 오픈에서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지혁이 다가오자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연습 코트에서 훈련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대화를 할 수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 네 이름이 라이언 데이비스였지? 작년 주니어 US 오픈에 출전했잖아.”

“맞아··· 8강에서 탈락했어. 그런데 날 알고 있다고? 우린 경기를 해본 적도 없잖아.”

“네 플레이가 인상적이라 잊지 않고 있었어. 좋은 백핸드를 사용하던데?”

“말도 안 돼. 리가 내 경기를 기억하고 있다니···.”

이번 호주 오픈에서의 활약으로 지혁은 이미 엄청난 스포츠 스타가 되는 게 확실시 되고 있었다.

어린 나이와 뛰어난 외모, 그리고 결정적으로 엄청난 잠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지혁의 대한 관심이 폭증하고 있었다.

그런 대단한 선수가 자신의 실력을 칭찬하자 라이언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들어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내 훈련을 도와주지 않을래? 마침 스트로크 상대가 필요했거든. 네가 도와준다면 큰 도움이 될 거야.”

“내가? 무···물론이지. 얼마든지 도와줄게. 그런데 라켓을 두고 왔는데···.”

“빌려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연습 코트 위로 돌아온 지혁은 가방에서 여분의 라켓을 꺼내 라이언에게 건네주었다.

“어때?”

“음···. 약간 어색하긴 한데 이정도면 괜찮아.”

라이언은 스트링을 손으로 몇 번 두드려보면서 말했다.

“그럼 몸부터 풀자.”

탕! 탕! 탕! 탕!

그렇게 간단한 랠리를 하길 10여분.

‘확실히 재능이 있는 게 느껴져.’

지혁의 기준으로 보면 아직 미숙한 점이 많았지만 한 번씩 들어오는 스트로크가 정말 오싹할 정도로 감각적이다.

이런 샷은 단순한 훈련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

조금 잔인한 말이지만 처음부터 타고나야하는 것이다.

‘이제 시작해볼까.’

지혁은 라이언의 몸이 어느 정도 풀린 것으로 판단되자 스트로크의 위력을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다.

탕!! 휘리리릭-

헤비 스핀이 걸린 채 날아가는 리버스 포핸드.

공은 마그누스 효과에 의해 처음에는 높이 떠올랐다가 베이스라인에서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헉.”

라이언은 공의 궤적을 보고 아웃이 될 거라 생각했는지 조금 늦게 백핸드 자세를 취했다.

쿵!! 바운드 후 얼굴로 튀어 오르는 공.

“하앗!”

임팩트를 맞추기 힘들어 보이자 라이언은 점프를 하면서 라켓을 휘둘렀다.

난이도가 극악하기로 유명한 잭 나이프샷을 사용한 것이다.

탕!! 그러자 마치 그림 같은 백핸드가 네트를 넘어 빠르게 날아갔다.

우와아아!

“리와 스트로크 대결이 되고 있잖아!”

“저 정도의 잭 나이프를 사용한다고? 설마 이번 호주 오픈에 참가한 랭커인가?”

“아니 나이를 보면 분명 유명한 주니어 선수일 거야.”

지혁의 연습을 구경하고 있던 관중들은 프로 경기에서나 볼 법한 수준 높은 랠리에 환호성을 질렀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엄청난 선물을 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린 선수들이 대결하는 모습에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역시 뉴 제네레이션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녀석이네···.’

스트로크가 20구가 넘어가기 시작하자 지혁의 얼굴에 커다란 미소가 지어졌다.

테니스 선수로서 뛰어난 상대와 경기를 한다는 것이 순수하게 즐거웠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콱! 지혁은 오른발로 지면을 밟았다.

그러자 강력한 반발력이 다리를 타고 올라온다.

빠르게 회전하는 몸과 라켓.

탕!!

곧 번개 같은 백핸드 앵글샷이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라이언은 공을 받기 위해 빠르게 달려갔지만 거리가 한참이나 부족하다.

쿵! 통. 통. 통.

잠시 후 코트 뒤로 공이 여러 번 튀는 소리가 들렸다.

라이언이 결국 스트로크를 받아내지 못한 것이다.

우와아아!

짝짝짝짝짝.

“······.”

꽈아악-

마침내 두 선수의 스트로크 대결이 결판나자 관중석에서 흥분한 목소리와 함께 박수가 쏟아진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라이언은 라켓 손잡이를 부서질 듯 쥐며 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을 마주하게 되니 분노가 치솟았던 것이다.

아마 지혁이 비슷한 나이라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20대 중반의 탑랭커에게 패배했다면 몇 년 뒤에는 이길 수 있다는 합리화라도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자신감이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하지만 고작 1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지혁에게는 어떤 변명도 적용되지 않았다.

경기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시작했다.

두 사람은 남아있는 연습 코트 대여 시간동안 실전처럼 스트로크를 주고받았다.

강한 승부욕 때문에 이게 단순한 훈련이라는 걸 완전히 잊은 것이다.

***

탕!!

지혁의 한손 백핸드가 다시 한 번 위닝샷을 만들어냈다.

오늘 경기에서 몇 번이나 봐온 장면이다.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코치들은 그 광경에 질린 듯이 고개를 저었다.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자세로 저렇게 수준 높은 스트로크를 친다는 것이 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허억···허억···.”

라이언은 1시간 동안 녹초가 되었는지 금방 쓰러질 것처럼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반면에 같이 경기를 한 지혁의 상태는 땀만 조금 났을 뿐이지 여전히 멀쩡하다.

모두 두 사람의 기량 차이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혁아, 이제 시간 됐어!”

“벌써 그렇게 됐어요?”

지혁은 코치들이 연습 시간이 끝났다는 소식을 알리자 가볍게 한숨을 쉬고 라켓을 아래로 내렸다.

아쉽지만 내일 경기를 생각하면 여기서 멈춰야 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라이언, 이제 연습을 끝낼 시간이야. 오늘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후······. 나한테도 좋은 경험이 됐어. 너 같은 탑랭커와 겨뤄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 이번 호주 오픈이 끝나면 넌 엄청난 스타가 되겠지?”

“글쎄. 8강에서 탈락하면 그저 운이 좋은 선수로 기억되지 않을까?”

“아니야. 너라면 분명 경기에서 이길 수 있을 거야. 다음 상대가 앤디 로딕이었지?”

“맞아.”

“넌 강서브를 가진 마린 칠리치를 꺾었으니까 앤디도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야. 준결승을 기대하고 있을게.”

라이언은 지혁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이번에 연습을 하면서 나름대로 느낀 게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대화를 조금하다가 헤어졌다.

내일 일정이 있는 만큼 각자 호텔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충분히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겠어.’

지혁은 짐을 챙기며 라이언을 상대로 시험해봤던 한손 백핸드를 복기해봤다.

비록 정상급 선수가 아니라서 완벽한 검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평가를 내리기에는 충분하다.

‘두손 백핸드의 90% 정도인가? 이 정도면 상황에 따라 스위치를 하면 되겠네.’

비록 위력은 부족하지만 공격 코스가 늘어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력은 확실하게 증가했다.

평범한 선수라면 절대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 종류의 백핸드를 사용하면 감각이 꼬여서 이도저도 아니게 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플로 기술의 숙련도를 올릴 수 있는 지혁에게는 이런 제약이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마침 실전 상대도 적당해.’

앤디 로딕은 2012년에 은퇴를 하는 만큼 이미 전성기가 지나서 기량의 저하가 뚜렷한 선수다.

물론 한 때 정상급 선수였던 만큼 아주 만만하지는 않겠지만 이전에 상대했던 선수들과 비교하면 그리 두려울 것도 없다.

바브린카, 마린 칠리치, 델 포트로 이 3명은 대진표만 잘 받았다면 앤디 로딕 대신에 8강에 진출했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3명을 꺾고 올라왔는데 고작 앤디 로딕에게 패배할 리가 없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