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32화 (32/241)

32화. 호주 오픈

8강 경기가 끝나고 다음 날.

지혁은 하루 동안 주어진 휴식 일을 제법 알차게 보내고 있었다.

오전에는 피로 회복을 위한 스트레칭과 마사지.

오후에는 연습 코트에서 코치들과 머레이를 상대할 전략을 의논하거나 어제 새로 얻은 풋워크 기술을 직접 시험해보며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렇게 빡빡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드디어 호텔로 돌아가려고 할 때.

저 멀리서 지혁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있다! 이지혁 선수!”

지혁을 발견한 남자들은 급박한 얼굴로 우르르 달려왔다.

그러자 코치들은 반사적으로 지혁의 앞을 온 몸으로 가로 막는다.

낮은 확률이지만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내일 호주 오픈 준결승전이 있는데 괜히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상을 당한다면 그것만큼 어이없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한국 방송국에서 온 건가?’

지혁과 코치들은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달려왔지만 숨을 헉헉대는 남자들의 복장을 보고 그들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손에 들고 있어서 방송국 소속이라는 게 티가 났기 때문이다.

“후우···후우···. 저희는 KBC에서 나온 기자들입니다. 이지혁 선수를 취재하려고 호주까지 날아왔어요. 잠시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나요? 국민들이 소식을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이슈가 많이 되긴 했나보네···.’

매일 인터넷으로 소식을 찾아봐서 호주 오픈의 시청률이 20%가 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외국까지 취재진이 따라올 줄은 몰랐다.

경기장과 호텔에서만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한국에서의 인기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관중들이 외국인이라서 더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루 종일 이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지혁은 사전에 약속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기자들과 마주쳤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오늘 이쪽 연습 코트를 사용한다는 걸 외부에 알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니지먼트가 있었다면 그 역할을 대신 해줬겠지만 그는 아직 소속된 회사가 없었다.

“오래 걸리진 않죠?”

“네! 10분이면 충분합니다!”

지혁은 조금 귀찮았지만 결국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이들의 끈기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괜히 매몰차게 거절해서 방송국과 척을 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주 약간이지만 지금 방송이 나가면 이득이라는 생각도 조금 있었다.

한창 활약하고 있을 때 기사를 나쁘게 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주차장에서 시작한 인터뷰.

“지금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이지혁 선수도 그 인기를 체감하고 있나요?”

“계속 맬버른에 있다 보니 전혀 모르고 있었죠. 설마 호주까지 취재진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테니스를 배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서 배우게 됐어요. 아버지도 프로 선수로 활동하셨거든요.”

“세계적인 선수들을 꺾을 수 있는 비결이 뭔가요?”

“아무래도 상대 선수들과 비교해서 제 플레이 스타일이 많이 노출되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아요. 대부분의 경기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호주 오픈에서 우승할 가능성은 몇%라고 생각하나요?”

“글쎄요. 저는 항상 경기를 할 때마다 이긴다고 생각······.”

툭툭.

그렇게 기자들의 질문에 간단한 답변을 몇 번 하자 옆에 있던 코치가 지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처음부터 제한 시간이 짧았던 만큼 벌써 10분이 모두 지나간 것이다.

“아! 시간이 다 됐네요. 그럼 다음 일정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약속했던 시간이 되자 지혁은 곧바로 준비해둔 차로 이동했다.

“이지혁 선수! 조금만 시간을 더 내주세요!”

아직 만족할 만큼 인터뷰를 하지 못한 기자들이 아쉬운 목소리로 지혁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코치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그들을 제지했다.

내일 있는 준결승전의 컨디션을 생각하면 더 이상 길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텔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냥 쉬는 게 아니라 머레이의 영상을 분석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비시즌기에 훈련을 할 때처럼 촘촘하게 일정이 계획되어 있는 것이다.

쿵!

그렇게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지혁이 탄 자동차가 출발했다.

막 주차장을 벗어나고 있을 때.

“여기 이지혁이 있다며!”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까 인터뷰를 하고 있던 장소로 카메라를 목에 맨 동양인들이 허겁지겁 달려가는 게 눈에 띄었다.

아마 지혁이 이곳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오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쉽게도 한 발 늦었지만 말이다.

“후······. 빨리 빠져나오길 잘했네.”

지혁은 괜히 동정심을 발휘해서 시간을 더 내주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저 장소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얼마나 시달렸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

한국 상황.

지혁이 호주 오픈 4강에 진출하게 되자 그가 다녔던 아카데미는 매우 소란스럽게 변했다.

원래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에게 유명한 장소이긴 했지만 지혁이 어렸을 때부터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져서 테니스를 입문하려는 사람들과 프로 지망생들이 엄청나게 몰려든 것이다.

웅성웅성.

“시끄러워······.”

실내 코트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구지연은 짜증나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바깥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도통 집중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모두 아카데미 원장이 더 이상 수강생을 받지 않는다고 공지를 했음에도 막무가내로 찾아온 사람들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게 다 지혁 오빠 때문이야. 적당히 유명해져야지······.”

분명 지연도 지혁이 프로에서 성공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리 적어도 시간이 몇 년은 더 걸릴 줄 알았다.

설마 이렇게 빨리 그랜드슬램에서 성과를 얻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작 고등학교 2학년이 미국의 테니스 스타 앤디 로딕을 꺾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지혁이 지금 걷고 있는 행보를 축구와 비교하면 3부 리그에서 뛰고 있던 선수가 다음 해에 EPL을 폭격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고 야구로 비교하면 KBO에서 뛰던 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2점대 방어율을 찍고 있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직접 테니스 선수로 뛰고 있는 지연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도약을 준비 동작도 없이 갑자기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친구들 부탁은 어떻게 하지.”

최근 지연은 한 번만 지혁을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저번에 같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친구들에게 그를 소개 시켜준 게 벌써 주변에 다 알려졌던 것이다.

별로 친하지 않으면 단호하게 잘라냈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같이 테니스를 배운 친구들이 워낙 간절하게 부탁해서 쉽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프로 선수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 지혁은 반드시 만나보고 싶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지혁 오빠를 구슬릴 방법이 없을까···.’

“지연아!”

“아, 언니!”

지연이 입술을 내밀며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손을 흔들며 실내 코트로 들어오는 단발머리의 여자가 보였다.

이번에 새로 아카데미에 등록한 고등부 여자 테니스 선수 박현주다.

“호주 오픈이 끝나면 이지혁이 아카데미에 나오는 거 맞지?”

“별 일 없으면 아마 그렇겠죠? 여기가 이 일대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곳이잖아요.”

현주는 도착하자마자 평소처럼 지혁에 대해 질문을 쏟아 부었다.

요즘 워낙 지혁이 화제가 되고 있는 만큼 새로운 수강생을 만날 때마다 매번 있는 일이다.

“그런데 걔는 원래 테니스를 지금처럼 잘했어? TV로 보는데도 진짜 엄청나더라.”

“처음 볼 때부터 다른 선수들이랑 뭔가 다르긴 했죠. 아마 직접 테니스를 치는 걸 보면 언니도 그런 느낌을 받을 걸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프로 대회를 휩쓸었다고 하더니 역시 천재는 천재인가 보네.”

현주는 뭔가 납득이 간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 거렸다.

“이번에 한국으로 돌아오면 돈도 엄청나게 많이 벌겠지? 한국 선수 최초로 그랜드슬램 4강에 올라갔으니 말이야.”

고등학생이 하기에는 조금 속물적인 발언이지만 현주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다.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그녀도 이미 알만한 것은 다 알았기 때문이다.

프로 테니스 선수에게 돈 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내가 한 번 꼬셔볼까? 그러다 겸사겸사 테니스도 배우고 말이야.”

‘그게 말처럼 쉽게 될 거 같아요?’

지연은 현주의 말에 속으로 어이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오직 테니스에만 관심을 가지는 지혁의 목석 같은 성격을 이미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도 여자 친구가 없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주변에서 쫓아다니는 여자가 그렇게 많았는데도 테니스에 방해가 된다고 이때까지 전부 거절했던 것이다.

지혁은 호주 오픈으로 알려지기 전에도 워낙 잘생겨서 근처 여학교에서 얼굴로 유명했었다.

그럼에도 지혁은 단 한 번도 한 눈 팔지 않고 지금의 자리까지 도달했다.

그 후로도 현주가 많은 말을 했지만 지연은 적당히 호응해주며 한 귀로 이야기를 흘렸다.

굳이 충고를 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중에 직접 대면하면 그녀도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

호주 오픈 준결승전.

엔디 머레이와 지혁의 경기는 전 세계의 관심을 받으며 시작했다.

“흐읍!”

쿵!!

[게임 앤디.]

세트 초반부터 머레이의 포핸드 위너로 게임을 내준 지혁.

그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방금 전 공이 바운드 된 곳을 내려다 봤다.

상대의 스트로크의 완성도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높았기 때문이다.

‘역시 빅4라 불릴 자격이 있는 선수구나.’

과연 이때까지 대결을 했던 선수들과 느낌이 전혀 다르다.

아직 1세트 초반이지만 알 수 없는 압박감이 온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던 것이다.

‘노려볼 만한 빈틈이 보이질 않아.’

웬만하면 포인트를 따냈을 샷조차도 엄청난 수비력으로 계속해서 돌아온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코트 장악력인데?’

지혁은 머레이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해서 격차를 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수준으로 이길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수준이 다르다.’

앤디 머레이의 ATP 랭킹은 4위.

로딕과 비교하면 고작 4단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랭킹이다.

하지만 서브에만 강점이 있는 로딕과 모든 부분이 완성형에 가까운 머레이의 차이는 차원이 달랐다.

상대를 공략할만한 약점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쿵!!

[게임 로딕.]

세트 스코어 2-0

아직 1세트 초반이지만 지혁은 벌써부터 브레이크를 허용했다.

서브권을 가지고 있어서 유리했음에도 게임을 내준 것이다.

‘초반부터 가지고 있는 걸 다 꺼내야 하는 건가···.”

지혁은 이러다가 경기 전체를 날릴 것 같은 위기감에 아껴두고 있던 무기들을 꺼내기로 결심했다.

‘정면으로 붙으면 이길 가능성이 없어. 최대한 진흙탕 싸움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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