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44화 (44/241)

44화. 인디언 웰스 오픈

지혁과 성태는 경기를 시작하기 위해 코트 위에서 마주섰다.

그러자 두 사람의 체구가 극명하게 비교되었다.

나이는 고작 1살 차이였지만, 키와 근육량이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긴 187cm에 달하는 지혁 앞에 서면 3학년들도 별다를 건 없을 것이다.

지금 그의 신체 스펙은 탑랭커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키는 170중반 정도 되는 것 같네. 몸도 비교적 얇은 것 같고.’

지혁은 성태의 왜소한 체구를 보고 파워는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저런 몸으로는 고속 서브나 강력한 스트로크를 치기 힘들다.

‘아직 고1인걸 고려하면 그렇게 작은 건 아닌가?’

안타깝지만 한국을 한정으로 생각하면 저게 평균적인 신체 스펙이다.

실제로 고등부 선수들 중에 키가 180cm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주니어 랭킹이 높은 만큼 나름대로의 강점이 있겠지.’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피지컬이 특출나지 않으니 아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애초에 숨겨둔 수가 없었다면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금화고에 입학하지도 못했을 거다.

[퍼스트 세트. 서브 주성태.]

잠시 후, 박감독이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자 코트 위로 부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히는 주성태.

그는 특유의 루틴이 있는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공을 토스했다.

탕!! 호쾌한 임팩트 소리와 함께 쏘아지는 서브.

[폴트.]

하지만 공은 서비스라인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났다.

아무래도 긴장을 많이 한 모양이다.

‘서브가 꽤 괜찮은데? 이 정도면 고등부 선수들 중에서 상위권이야.”

비록 속도가 느렸지만 코스는 훌륭했다.

게다가 군더더기 없는 자세를 보면 기본기도 제대로 잡혀있다.

어렸을 때부터 조기 교육을 받은 게 티가 난다.

곧바로 이어지는 세컨드 서브.

“흐읍!”

탕!! 성태는 연속 폴트를 피하려고 한 건지 이번에는 슬라이스 서브를 사용했다.

쿵! 바운드 된 공은 백스핀의 영향으로 코트 밖으로 급격하게 휘어졌다.

서브가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성태.

그는 이 정도면 충분히 첫 포인트를 따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최고의 서브가 들어갔다는 감각이 라켓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약 상대가 평범한 선수였다면 그 예측은 틀리지 않았을 거다.

경기를 구경하고 있던 부원들도 성태의 서브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코트 반대편에 있는 지혁은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존재였다.

타다다닷!

빠른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공을 따라잡은 지혁.

퉁! 라켓에 걸린 공은 네트를 넘어서 코트 구석으로 떨어졌다.

[피프틴 러브.]

“우와. 저걸 리턴한다고?”

“코트 커버력이 미쳤어. 발이 얼마나 빠른 거야?”

경기를 구경하고 있던 신입생들은 놀란 목소리를 내었다.

그들도 주니어 대회에서 성태와 경기를 해본 경험이 있던 만큼 방금 전 슬라이스 서브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꽈악.

성태는 회심의 서브가 파회된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라켓 손잡이를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한층 진지해진 눈빛으로 다음 서브를 준비했다.

“하앗!”

탕!!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경기에 임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격차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추어에 불과한 성태가 무슨 수로 탑랭커인 지혁에게 위기감을 주겠는가.

아마 그가 아닌 다른 고등부 선수를 데리고 왔더라도 결과는 동일했을 것이다.

[게임 이지혁.]

[게임 이지혁.]

“격이 달라······.”

“정상급 베이스라이너는 저런 방식으로도 경기를 이길 수 있구나.”

“공격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무너지네. 진짜 사기적인 수비력이야.”

부원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혁은 의도적으로 위닝샷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 경기의 목적은 대결이아니라 테스트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태는 알아서 자멸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도 마법처럼 공이 되돌아오니 경기의 템포가 꼬인 것이다.

“허억···.허억···.”

리턴을 위해 자세를 낮춘 채로 숨을 몰아쉬는 주성태.

아직 1세트도 끝나지 않았지만 그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압박감에 오버페이스로 뛰다 보니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세트 이지혁 6-0.]

얼마 후, 두 사람의 경기가 끝났다.

“기본기가 좋네. 조금만 가다듬으면 금방 실력이 늘 거야.”

“후······. 같이 경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영광이었어요.”

인사를 받으며 다른 신입생들에게 고개를 돌리는 지혁.

“다음 사람 올라와. 바로 시작하자.”

“지혁아, 휴식 시간이 없어도 괜찮아? 힘들면 잠깐 쉬어도 돼.”

박 감독은 지혁의 체력을 걱정했는지 휴식을 제안했지만,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직 쌩쌩해서 괜찮아요. 시간도 별로 안 지났잖아요?”

“그렇긴 하지. 알았다. 그럼 네가 내키는 대로 해라.”

결국 지혁은 남은 신입생들을 쉬지않고 연달아 상대했다.

[세트 이지혁. 6-0]

[세트 이지혁. 6-0]

3번의 베이글 세트로 끝난 테스트.

그 결과에 관전하고 있던 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결과가 나올 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보다 샷이 더 정교해졌네.”

“풋워크도 빨라졌어. 3개월 만에 저런 성장이 물리적으로 가능한 건가?”

“쟤는 사람이 아니잖아.”

“하긴 괴물에게 상식을 갖다 대면 안 되지······.”

‘3명 모두 재능이 있어.’

아직은 경험이 부족해 실력은 부족하지만, 훈련으로 얻을 수 없는 타고난 감각과 센스가 상당했다.

마스터즈 대회가 열리기까지 앞으로 보름.

그때까지 이 녀석들과 시간을 보내면 학교가 심심하지는 않겠다.

탑랭커의 기준으로 보면 손댈 부분이 상당히 많았으니 말이다.

***

이주 후. 미국 캘리포니아.

지혁은 매니지먼트의 도움을 받아 개최지에 며칠 일찍 도착했다.

모두 시차 적응을 위해서였다.

“준비는 완벽해.”

예상했던 것보다 훈련이 만족스럽게 끝났다.

시간이 부족해서 완벽하게 밸런스를 맞추기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게 목표를 초과해서 달성할 수 있었다.

지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회의 시드를 확인했다.

“음···. 역시 빅4는 모두 참가했구나. 32번 시드가 38위니 총 6명이 불참했네.”

참가가 강제되는 마스터즈 대회다 보니 역시 출석률이 높다.

살벌한 라인업에 기가 질릴 법도 하지만 호주 오픈 때보다 기량이 증가했으니까 이번에도 좋은 성과를 기대를 해도 될 것이다.

게다가 이번 대회는 시드를 부여 받아서 초반 라운드부터 빅4를 만날 걱정도 없다.

인디언 웰스 오픈은 32명의 시드 배정자에게 본선 2라운드 자동 진출권이라는 특혜를 주었기 때문이다.

본선 참가자의 숫자가 96명이라 어쩔 수 없이 생긴 일이었다.

“내 시드 번호는 20번인가.”

현재 지혁의 ATP랭킹은 27위였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대회를 출전하지 않아서 벌써 랭킹이 3단계가 떨어졌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한 수준이다.

“작년에 참가했던 대회가 후반기에 몰려있어서 다행이네.”

몇 개월만 더 지났으면 기껏 올려놓은 랭킹이 더 하락해 시드를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포인트는 1년이라는 유효기간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 마스터즈 대회가 좋은 시험대가 되어 줄 거야.”

항상 경기를 할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실전보다 좋은 훈련은 없다.

잠재력을 끌어내려면 비슷한 수준의 상대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혁의 실력을 생각하면 맞수라 평가할 수 있는 선수는 적어도 30위는 되야 했다.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려면 적어도 3라운드는 진출해야겠지.”

인디언 웰스 오픈은 경기를 총 7번 이겨야 우승할 수 있다.

경쟁자들이 워낙 쟁쟁한 만큼 모든 경기를 이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겠지만, 그래도 대진만 좋게 나온다면 4번 정도는 무난하게 승리할 것이다.

“이번 대회를 치르면 전력과 정보가 드러날 거야.”

롤랑 가로스를 생각하면 정보를 숨기고 있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경기를 뛰지 않고 훈련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제 어플에 사용할 포인트도 필요하다.

***

캘리포니아의 어느 테니스 훈련장.

지혁은 경기를 5일 남겨두고 실전 감각을 점검하기 위해 이곳에 특별히 방문했다.

매니지먼트가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인물과 훈련을 잡아줬기 때문이다.

마스터즈에서 부딪칠 수도 있어서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어떤 방법을 썼는지 정말 재주도 용하다.

“리! 왔어?”

훈련장의 문을 열자 들리는 유쾌한 목소리.

안쪽에는 금발머리의 남자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의 정체는 랭킹 57위의 앤드류 쿠퍼였다.

“안녕하세요?”

“와. 실제로 보니 더 어려보이는 걸?”

지혁이 악수를 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자 앤드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주 오픈을 통해 이미 지혁의 나이를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하자 감회가 새로웠기 때문이다.

“16살에 27위라······. 정말 엄청나네. 요즘 넥스트 제네레이션이라고 불리던데 어울리는 별명이야. 이제 페더러도 은퇴할 나이가 되었으니 네가 다음 세대를 이끌어 나가겠지?”

‘페더러 그 양반은 앞으로 십년이 지나도 은퇴를 안 하는데···.’

심지어 2017, 2018년에 3번의 그랜드슬램 우승을 거머쥐기도 한다.

나이를 먹어도 황제는 황제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아마 2010년의 페더러도 자신이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선수 생활을 할 줄은 모를 것이다.

“글쎄요. 페더러는 은퇴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가 사라져도 나달과 조코비치가 버티고 있잖아요.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을 거예요.”

“···그 두 명을 말하는 걸 보니 너도 정상을 노리고 있구나.”

“네. 그 선수들의 주니어 시절을 생각하면 저는 아직 멀었죠. 그래도 언젠간 넘어설 거예요.”

지혁의 말처럼 나달과 조코비치는 각각 18살, 19살에 그랜드슬램 우승을 달성했다.

레전드 선수가 될 가능성을 20대가 되기 전에 증명한 것이다.

그리고 ATP랭킹 1위를 찍어도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한 경력이 없으면 정상급 선수로 인정받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은 변동이 큰 랭킹보다 메이저 대회 우승 횟수를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 정도까지 생각하고 말하진 않았는데. 목표가 엄청 높구나.”

앤드류는 귀엽다는 듯이 지혁을 쳐다봤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빅3와 대회에서 만난 경험이 없어서 현실 파악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는 규격 외의 존재였다.

인간이 감히 넘어설 수 없는 신.

그게 그들에게 맞는 표현이다.

그런 존재를 아직 16살 밖에 안 된 꼬맹이가 넘어서겠다고 하니 앤드류의 입장에서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네가 4라운드 까지 진출하면 이번 인디언 웰스 오픈에서 빅3와 경기를 할 수도 있을 거야. 그때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나한테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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