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45화 (45/241)

45화. 인디언 웰스 오픈

지혁은 앤드류와 대화를 하면서 매니지먼트가 어떻게 훈련을 성사시킨 건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앤드류가 먼저 제안을 한 거라고요?”

“맞아. 너 같은 스타와 공짜로 훈련할 수 있다는데 당연히 한 번 찔러 봐야지. 이렇게 쉽게 성사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스타요?”

“너 미국에서도 꽤 유명해. 어린 나이, 뛰어난 실력, 핸섬한 얼굴, 화려한 퍼포먼스. 팬들의 관심을 끌만한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잖아? 이런 조건에 인기가 없는 게 이상하지. 레딧만 들어가 봐도 알건데?”

“한국에서 훈련을 하고 있어서 몰랐어요. 지난 한 달 동안 일정이 너무 바빠서 인터넷을 거의 못 봤거든요.”

중국, 일본, 대만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인지도가 많이 올라갔다고 듣긴 했는데.

역시 호주 오픈의 영향이 대단한가보다.

미국에서도 이름이 알려졌을 줄이야.

아무래도 다른 나라에 비해 테니스 인프라가 많이 깔려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지혁이 알기로 ESPN 테니스의 시청률도 제법 괜찮게 나왔다고 들었으니 말이다.

“이번 웰스 오픈에서 네 인기를 직접 느껴봐. 뭘 기대하든 그 이상일 거야.”

앤드류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코트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따.

빨리 서로의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탕! 탕! 탕!

가벼운 랠리로 몸을 풀길 20여분.

“몸은 다 풀린 것 같고. 그러면 이제 시작할까?”

“네.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간단하게 3세트만 하죠.”

“그 정도면 체력에 지장이 가진 않겠네. 그럼 그렇게 하자. 빅터! 심판 좀 봐줘요!”

앤드류의 말에 달려오는 갈색머리의 코치.

“오! 나한테 체어 엠파이어를 맞겨주는 거야? 리의 경기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정말 영광인 걸.”

“빅터, 당신은 내 코치라고요. 리보다 나한테 신경을 써요.”

“이번만 봐줘. 내가 리의 팬이라서 그래.”

“언제는 제 팬이라면서요?”

“7년이나 봐서 질렸어.”

“후······. 빅터, 편파 판정이나 하지 마세요.”

장난스러운 빅터의 말에 투덜투덜 대며 불평하는 앤드류.

하지만 진심으로 화를 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서로를 놀릴 작정으로 장난을 치는 게 정말 친한 사이인 것 같았다.

프로 선수들 중 코치를 장기간 고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 이들이 그런 관계인 것 같았다.

그리고 7년이나 함께 투어를 다녔으면 이제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경기를 하겠네.’

탑랭커와 대결하는 건 거의 두 달 만이다.

한국에서 섭외할 수 있는 프로 선수는 랭킹이 아무리 높아봐야 300위대였는데.

갑자기 57위라니······.

‘실전 감각이 많이 녹슬지 않았겠지?’

최근 느릿한 공만 받아서 잘 대처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된다.

하지만 대회에서 낭패를 당하는 것 보다 예방주사 차원에서 매를 미리 맞는 게 낫다.

호주 오픈이후 오랜만에 공식 대회에 출전했는데 2, 3라운드에서 탈락하면 그만한 망신도 없으니.

[퍼스트 세트. 서브 이지혁.]

통. 통. 통.

지혁은 경기 초반부터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감각이 이전보다 무뎌진 만큼 여유를 부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하앗!’

쾅!!

굉음과 함께 코트에 내려 꽂히는 서브.

힘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인지 서브의 속도는 210km를 가뿐하게 넘어갔다.

[피프틴 러브.]

“시작부터 너무 세게 나오는 거 아니야?”

“훈련은 실전처럼 하는 게 좋잖아요. 앤드류도 제대로 해요.”

“천천히 템포를 올리려고 했지. 이런 식이면 나도 집중해야겠는 걸.”

앤드류는 에이스를 내주었지만 표정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받아낼 만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곧바로 이어지는 두 번 째 서브.

쾅!!

자세를 이전보다 더 낮추고 있던 앤드류는 T존에 떨어진 공을 강력한 포핸드로 쳐냈다.

쿵! 베이스라인 구석을 가격하고 코트 밖으로 빠져나가는 다운 더 라인.

그 절묘한 리턴에 지혁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앤드류의 스트로크 실력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피프틴 올.]

‘역시 탑랭커는 다르단 말이야.’

한국에서는 이런 수준의 스트로크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코스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파워가 국내 선수들과 차원이 다르다.

‘미국 선수라서 그런지 피지컬이 엄청나네. 훈련은 걱정할 필요 없겠어.’

이렇게 수준 높은 상대라면 훈련 기간 동안 실전 감각을 채우는 데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하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붙는다고 해도 질 확률이 10~20%는 될 거라고 생각됐으니 말이다.

***

쾅!!

테니스공이 터질 것 같은 엄청난 임팩트 소리에 앤드류의 코치들은 입을 벌리며 지혁을 쳐다봤다.

“실제로 보니 더 대단하네······. 리는 이미 완성된 선수야.”

“동감이야. 마치 베테랑 선수의 경기를 보는 것 같아.”

코치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얼굴을 했다.

지혁의 나이를 생각하면 지금 보여주는 경기력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브, 스트로크, 풋워크, 발리 등. 모든 부분에서 흠 잡을 데가 없다니.

“저게 진짜 천재라는 건가.”

“아시아 선수라서 성장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전부 헛소리였어. 저게 어딜 봐서 16살이야?”

“키도 6피트를 넘는 것 같으니 피지컬도 괜찮은 수준이야.”

“이대로 성장하면 무결점이 될 수도 있겠는데? 정상을 노린다는 말이 허풍이 아니었어.”

“아직 포스트 나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간만 있으면 탑10은 무조건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설마 앤드류가 이렇게까지 밀리다니.”

쿵!!

[게임 리 2-1.]

백핸드 다운 더 라인으로 서비스 게임을 마무리하는 지혁.

그는 불과 십 분 전까지 만해도 앤드류의 스트로크에 고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돼서 이전보다 실책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앤드류. 고집부리지 말고 계획한대로 해. 전략 없이 상대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야.”

“리의 경기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향상되는 게 느껴지지? 이기려면 최대한 빨리 제압해야해.”

코치들은 휴식 시간이 되자 곧바로 벤치에 앉아 있는 앤드류에게 달려가 조언을 했다.

이대로라면 자신들의 선수가 경기에서 패배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전 감각이 돌아오고 있는 지혁을 공략하려면 초반에 스코어를 벌려 놔야한다.

공식 경기였다면 반칙인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연습 경기라 딱히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지혁의 옆에도 코치들이 붙어서 서포팅을 하고 있었다.

“쯧.”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혀를 차는 앤드류.

“알았어. 알았다고.”

“리는 대회를 2달이나 쉬어서 기량이 하락한 상태야. 그 부분을 노려야해.”

“경기가 길어지면 불리하다는 건 나도 알아.”

앤드류는 직접 지혁을 상대하고 있는 만큼 경기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패배할 확률이 아주 높다.

물론 공식 대회가 아닌 만큼 지더라도 패널티는 없을 것이다.

따로 내기를 하지도 않았으니.

그리고 낮은 확률이지만 지혁은 다른 대회에서 만날 수도 있는 상대였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지금 기선을 제압해놔야 한다.

지금 밟아두면 나중에 다시 만나더라도 기세를 잡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서브 쿠퍼.]

탕!!

코치들에게 조언을 받은 앤드류는 곧바로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었다.

기존에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면, 이제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전략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서티 러브.]

‘갑자기 까다로워졌어.’

지혁은 두 번 연속으로 스트로크 대결에서 패배하자 의아한 얼굴을 했다.

분명 승기가 넘어오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 풀리던 경기가 다시 기우는 것 같았다.

쿵!

[게임 쿠퍼. 2-2]

[게임 쿠퍼. 3-2]

‘이것 봐라?’

그렇게 두 개의 게임을 내주고 나니 지혁은 어느 정도 상황이 파악되었다.

‘전략을 만들어 왔잖아?’

앤드류와 훈련 약속이 잡힌 건 고작 이틀 전이었다.

촉박한 시간을 생각하면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아니지, 전략의 완성도를 보면 절대 즉흥적으로 준비한 게 아니야. 적어도 일주일은 넘게 걸렸겠지.’

하루 만에 짠 전략이면 이렇게 애를 먹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실력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역시 분석되고 있었구나.’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혁도 경계할만한 선수들의 공략법을 지난 몇 달 동안 준비해두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앤드류의 경계 대상에 자신이 포함될 줄은 몰랐다.

‘6월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네.’

롤랑 가로스가 열릴 때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탑랭커들을 너무 과소평가 했나 보다.

3개월이나 빨리 대처법을 가지고 오다니.

‘실업팀 훈련장에서 권동현 선수와 경기를 한 게 벌써부터 도움이 될 줄이야. 역시 쓸모없는 훈련은 없단 말이야.’

친선 경기를 한지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지혁은 그 당시 기억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훈련 밖에 없는 무미건조한 한국의 일정 중에서 그날의 일은 상당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프로 선수가 한 인물을 공략하기 위해 몇 달에 걸쳐 분석을 하는 일이 솔직히 얼마나 있겠는가.

거기다 대회 등급도 완전히 달라서 공식 경기를 치르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저벅저벅.

‘벌써 휴식 시간이 끝났나?’

지혁은 앤드류가 코트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벤치에서 일어났다.

잡생각을 하느라 시간이 전부 흐른 줄도 몰랐다.

탕!!

앤드류의 서브로 시작된 경기.

지혁은 이전처럼 쉽게 빈틈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제 상대가 어디를 공략할지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하앗!”

앤드류는 승리를 따낸 이전 게임과 비슷한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갔다.

지혁을 가혹할 정도로 몰아붙인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속전속결로 끝내려고 하네.’

경기가 길어지면 지혁이 유리하다는 건 훈련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으니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지혁은 앤드류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지독할 정도로 끈질기게 버티면서 상대를 놓아주지 않은 것이다.

“들통 난 것 같은데?”

“상관없어. 알아챘다고 해서 금방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어차피 따로 준비해온 전략이 없으면 1세트는 앤드류가 승리할 거야.”

“하긴 이런 상황에서 경기가 뒤집히는 일은 극히 드물지.”

코치들은 승리를 장담하며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승패가 흔들릴만한 변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경기는 그들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포티 피프틴]

[포티 서티.]

[포티 올. 듀스.]

“······.”

소란스럽던 훈련장은 듀스 상황이 만들어지자 점점 조용해졌다.

[어드벤티지 리.]

[게임 리 3-3.]

결국 지혁은 40-0이라는 불리한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성공했다.

그러자 코치들은 경악하는 얼굴로 변하기 시작했다.

경기가 그들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기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