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46화 (46/241)

46화. 인디언 웰스 오픈

쿵!!

앤드류를 농락하듯이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지혁의 스트로크.

[게임 리 4-3.]

지혁은 서비스게임을 지켜내면서 방금 전의 브레이크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코치들은 전략이 무용지물이 됐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앤드류가 아무리 갖은 수를 써도 세트 초반과 비슷한 결과를 전혀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석당하는 걸 대비하고 있었을 줄이야. 분명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

“설마 공백 기간 동안 다른 랭커와 훈련을 한 건가?”

“공식 대회에 참가한 적이 없으니 아마 그렇겠지.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돼.”

“하긴······.”

코치들은 비록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지만, 지혁이 이번 마스터즈 대회에 많은 준비를 하고 나왔음을 확신했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사전 준비도 없이 지금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혁은 프로 경력이 1년도 되지 않는 루키다.

보통 첫 그랜드슬램에서 좋은 성과를 얻은 루키들은 다음 해에 플레이 스타일을 분석당하고 처참하게 패배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 경우를 생각하면 그들의 생각이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물론 지혁은 그런 일반적인 부류에 속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안 그래도 공략하기 어려운 선수였는데. 그나마 있던 약점도 사라졌어.”

“이러면 지금까지 알려진 데이터로 공략할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전략을 짜야 되는 거야?”

“어쩌긴, 공식 대회에서 만나지 않길 하늘에 빌어야지. 지금 앤드류의 실력으로 리를 이길 확률은 높게 잡아줘도 20%정도야.”

“그럼 변수가 없으면 무조건 패배한다는 거네.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야?”

“최대한 객관적으로 내린 결론이야. 너도 리의 전력을 분석해봤으니 잘 알잖아?”

“그래도 앤드류의 잠재력을 생각하면······”

[세트 리 6-4.]

코치들이 투닥거리며 의견을 나누는 동안 첫 번째 세트는 지혁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훈련장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이제 경기의 결과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앤드류가 경기를 뒤집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순수한 실력이라도 비등했으면 모르겠지만, 그것마저 아니었으니 말이다.

“앤드류, 경기를 지속할 거야?”

심판석에서 앤드류의 상태를 조심스레 살피며 질문하는 빅터.

빅터는 누구보다 자신의 선수를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경기가 의미 없다고 판단했다.

지혁의 실력이 앤드류를 압도한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일단 시작했으면 끝을 맺어야죠.”

“······그래. 네 뜻이 그렇다면 알겠어.”

빅터는 안쓰러운 표정을 가까스로 숨기고 앤드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선수 본인이 하겠다는 걸 명분도 없이 말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디 어린 선수에게 패배하고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플레이어 레디. 서브 리.]

그렇게 2세트는 코치들의 우려 섞인 시선을 받으며 시작되었다.

***

[게임 세트. 매치 리. 6-4, 6-3.]

경기는 모두가 예상했듯이 지혁의 승리로 끝났다.

그 결과에 훈련장에 있던 코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비록 담당하는 선수가 패배했지만, 이 정도 실력이면 그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리, 정말 대단한 실력이야. 영상으로 보던 것과 차원이 다른 걸.”

앤드류는 진심으로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빅터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그의 상태는 경기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만약 지금보다 나이가 어렸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앤드류는 이십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사실상 그랜드슬램 우승을 포기하고 있었다.

계속 꿈을 꾸기에는 워낙 쟁쟁한 선수들이 많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도 오랜만에 제대로 경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런데 2개월 동안 어떤 훈련을 한 거야? 내 착각이 아니라면 그때보다 실력이 훨씬 더 상승한 것 같은데.”

“피지컬 훈련에 집중했어요. 지난 호주 오픈에서 한계를 느꼈거든요.”

“아, 머레이와 한 경기를 말하는 거구나.”

“맞아요.”

지혁은 지난 호주 오픈 준결승전에서 머레이라는 커다란 벽에 부딪혀 첫 메이저 대회를 허무하게 탈락했다.

지금의 실력으로 절대 넘을 수 없을 상대를 경험한 것이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공식 경기를 불참하면서까지 훈련에 집중했다.

“그것 말고 다른 훈련은? 내가 준비한 전략을 보기 좋게 박살냈잖아.”

“국내 랭커들이랑 친선 경기를 자주했죠. 아무래도 그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한국의 프로 선수들을 말하는 거지? 그런데 리를 제외하고 한국에 탑랭커가 있었나? 딱히 기억나는 이름이 없는데.”

“지금은 100위 안에 드는 선수가 없어서 그래요. 그래도 몇 년 후에는 그랜드슬램에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재능 있는 선수들이 꽤 많거든요.”

“그래? 리의 말이라면 맞겠지.”

그렇게 두 사람은 대회가 개최되기 전까지 같이 훈련을 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혁은 잃었던 실전 감각을 대부분 회복할 수 있었다.

일방적으로 지혁이 이득을 보는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앤드류도 ATP랭킹 27위의 탑랭커를 상대하면서 경기력을 최상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실상 서로 윈윈한 거나 다름없었다.

***

인디언 웰스 오픈 64강.

리! 리! 리! 리!

경기장 안에 입장하자마자 들리는 거대한 응원 소리.

관중들은 두 달이라는 제법 긴 공백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지혁을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 코트를 사용할 줄은 몰랐는데.”

지혁은 천 명은 가볍게 넘어 보이는 관중들의 숫자에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대회 초반에 이렇게 큰 경기장을 배정받으려면 적어도 랭킹 10위 안에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웰스 오픈 주최 측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지혁의 스타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보통 인지도가 엄청 높지 않은 이상 이런 경우가 상당히 드물었으니 말이다.

“오늘 경기는 무난하겠구나.”

지혁의 첫 번째 상대는 ATP 랭킹 59위의 플로랑 세라였다.

올해 31세의 나이로 이미 전성기가 한참이나 지난 프랑스 국적의 선수.

경험이 풍부한 만큼 분명 노련한 실력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래도 냉정하게 평가하면 앤드류보다 한 수 떨어지는 상대다.

“역시 랭킹이 높으니까 좋네.”

지혁은 시드를 받은 효과를 벌써부터 톡톡히 느끼고 있었다.

대회 초반에 최상위 랭커들과 부딪치지 않아도 된다니.

만약 상대 선수가 경기 당일 말도 안 되는 활약을 하지 않는 이상 그는 16강까지 큰 위기 없이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다.

[퍼스트 세트, 서브 리.]

그렇게 간단한 랠리를 하길 잠시, 체어 엠파이어가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쾅!!

[SERVE SPEED 137MPH]

[피프틴 러브.]

우와아아아!

지혁이 첫 포인트를 에이스로 따내자 주변에서 엄청난 함성이 쏟아졌다.

137마일이라는 엄청난 서브 속도에 관중들이 흥분한 것이다.

“220km정도 인가? 역시 컨디션이 괜찮네.”

앤드류와 며칠 동안 훈련을 하면서 경기력이 물이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착각이 아니었다.

이 정도 위력이면 서브를 주무기로 하는 서버들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다.

물론 앤디 로딕과 비교하면 속도가 부족하고 페더러와 비교하면 컨트롤이 떨어진다.

하지만 두 선수는 세계 최고의 서버니까 논외로 해야 한다.

쾅!! 쾅!! 쾅!!

[게임 리.]

네 번의 서브로 첫 번째 서비스게임을 끝내버린 지혁.

그 압도적인 결과에 세라는 벌써부터 전의가 꺾인 것 같았다.

만약 상대가 서브를 주무기로 하는 선수였다면 이렇게 빨리 포기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혁은 뛰어난 밸런스를 강점으로 내새우는 전형적인 베이스라이너였다.

그리고 세라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작 한 게임 만에 승산이 없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같은 시각 한국 방송국과 인터넷 커뮤니티.

[이지혁 선수가 네 번의 에이스로 서비스게임을 가져갑니다! 랭킹 59위의 세라가 따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네요!]

[지난 호주 오픈보다 훨씬 빨라진 것 같죠?]

[맞습니다. 마지막 에이 139마일이었죠. 시청자분들은 마일 단위에 익숙하지 않으시겠지만 이 속도를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무려 223km입니다.]

[이지혁 선수는 두 달 만에 본인의 기록을 다시 갈아치우네요. 역시 기록 분쇄기답습니다.]

[아, 그런 별명도 있었죠. 최근에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모든 행보가 전례가 없는 선수라서 그럴 겁니다. 워낙 많은 기록을 세운 선수잖아요.]

[그보다 이번 대회는······.]

ㅡ 대박!!! 시작했다.

ㅡ 이게 몇 개월 만이야 ㅠㅠ 왜 이렇게 안 보였어 지혁아.

ㅡ ㄹㅇ 그동안 머하고 지냈누. 궁금해 미치는 줄 알았다.

ㅡ 광고 2개 찍고 잠수타면 좋았냐!!!

ㅡ 복귀전이 인디언 웰스 오픈이라 이지혁 클래스 아직 안 죽었네 ㅋㅋㅋ 호주 오픈 이상으로 재밌을 것 같다.

ㅡ 인디언? 이름이 왜 그 따위임? 엄청 조촐해 보이네.

ㅡ 테니스 뉴비네 ㅋㅋ 이거 그랜드슬램 제외하고 제일 큰 대회다. 마스터즈 중에서 대장임.

ㅡ 상금 찾아봤는데 거의 100억인데?? 미친 거 아님??

ㅡ 어차피 총상금 액수라서 1등이 전부 가져가는 거 아님 ㅋㅋㅋㅋㅋ 단식 우승해도 15억이다.

ㅡ 그래도 엄청 많은데 ;; 그랜드슬램 4개, 마스터즈 9개 정규 경기만 참가해도 떼돈 벌겠다.

ㅡ 어차피 광고 수입 생각하면 푼돈이다. 기사 봤는데 올해 이지혁 수입 100억은 그냥 넘겠더라.

그렇게 네티즌들이 지혁의 수입을 가지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을 때 두 번째 게임이 시작되었다.

“허엇!”

탕!!

[SERVE SPEED 118MPH]

전력으로 라켓을 휘두르는 세라.

그의 서브는 나이 때문인지 190km를 아슬아슬하게 넘지 못했다.

분명 이 정도면 괜찮은 수준이다.

하지만 지혁은 지난 5일 동안 200km가 넘는 앤드류의 서브를 질리도록 받아왔기에 웃으면서 리턴을 성공할 수 있었다.

탕! 묵직한 감각과 함께 빨랫줄처럼 날아가는 포핸드 리턴.

회전이 전혀 걸리지 않은 플랫 스트로크는 마치 서브처럼 날아갔다.

쿵! 조용한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바운드 소리.

[리턴 에이스! 세라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위력 시위를 제대로 하네요. 이 경기를 보고 있는 32강 상대는 간담이 서늘할 겁니다. 이지혁 선수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어요.]

[그렇죠. 아트 테니스를 사용하던 테크니션이 슬러거의 힘을 장착했어요.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격입니다.]

[이번 대회는 기대해도 되겠습니다. 지금 기량만 유지하면 상위 라운드는 어렵지 않게 진출할 수 있을 거예요.]

[대체 호주 오픈과 인디언 웰스 오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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