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49화 (49/241)

49화. 인디언 웰스 오픈

베르다스코의 플랫 서브로 시작된 1세트 3게임.

대부분의 탑랭커들이 강서브를 패시브처럼 가지고 있는 만큼 전광판에는 130마일이 넘는 속도가 찍혔다.

쿵! 번개처럼 서비스 코트로 내려꽂힌 공.

분명 엄청 빠른 축에 속하는 서브였지만 지혁은 안정적인 자세로 리턴을 해냈다.

[1게임에서도 느꼈지만 이지혁 선수의 리턴 실력이 상당하네요. 210km 중반의 서브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냅니다.]

[보통 경력이 짧은 선수는 강서브에 취약한 경우가 많은데 상당히 이례적인 모습입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지혁 선수는 테니스를 배우기 위해 따로 유학을 다녀온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런 실력을 무슨 방법으로 쌓을 수 있었을 까요?]

[한국에서는 고속 서브를 받을 만한 인프라가 없으니 아마 타고난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 덕분이겠죠.]

어느 정도 확신하는 표정으로 말하는 이형석.

그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내에서 프로 선수로 활동했던 만큼 한국 테니스의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국내 아카데미와 테니스 스쿨은 지혁 같은 탑랭커를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했다.

ㅡ 태어날 때부터 재능러 ㄷㄷㄷ 역시 신을 불공평하네.

ㅡ 우리가 모르는 부족한 점이 있을 거라고 그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됨.

ㅡ ㄹㅇ 얼굴도 잘생겼는데 테니스까지 잘한다? 그런 사기 캐릭터가 세상에 어딨음 ㅋㅋㅋㅋ

ㅡ 이지혁 사기 캐릭터인거 모르는 사람도 있었냐?? 저 나이에 ATP랭킹 25위 찍은 것부터 밸런스 붕괴인데 ㅋㅋㅋ

ㅡ 난 작년에 챌린저 대회 휩쓸 때부터 탈아시아 재능인 거 알고 있었음. 이지혁은 평범한 선수랑 비교하면 안 됨.

커뮤니티에서는 지혁의 재능을 찬양하는 글이 계속 올라왔다.

댓글의 분위기를 보면 16강전의 승자는 이미 정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 경기의 상황은 네티즌들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두 선수가 자신의 서비스게임을 악착같이 지키는데 집중해서 브레이크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게임 리 5-5.]

백핸드 다운 더 라인으로 브레이크를 막아낸 지혁.

결국 1세트는 듀스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사이드라인을 때리는 강력한 백핸드! 이지혁 선수 잘 버텨냈습니다! 이제 1세트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베르다스코의 다음 서비스게임을 막아내지 못하면 타이브레이크에 들어갈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도 1세트 초반보다 탑스핀 스트로크에 대한 대처가 좋아졌어요.]

[이 해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 랠리에서 밀리는 상황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면 2세트는 이지혁 선수에게 조금 더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까요?]

[지금의 균형이 깨진다면 그럴 겁니다. 지금도 아슬아슬해 보이거든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이형석.

그 반응에 최 해설은 재빨리 속뜻을 물어보려고 했다.

[그게 무슨 말······.]

탕!!

하지만 그때 중계 화면에서 임팩트 소리가 들렸다.

베르다스코가 서비스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

“하앗!”

쿵!!

[세트 이지혁.]

게임 스코어 7-5.

지혁은 치열한 접전 끝에 1세트를 따낼 수 있었다.

우와아아아!

경기장을 뒤흔드는 거대한 환호 소리.

지혁은 이마에서 땀이 후두둑 떨어질 정도로 지쳤지만 손을 흔들며 관중들에게 화답했다.

리! 리! 리! 리!

그렇게 응원이 한동안 이어지자 베르다스코의 무표정한 얼굴이 약간 찌푸려졌다.

갑자기 적진 속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체어 엠파이어에게 스페인어로 무언가 말하는 베르다스코.

하지만 심판은 고개를 저으며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정숙을 요구하는 건가?’

벤치에 앉아서 바나나를 먹고 있던 지혁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관중석의 소란을 멈춰달라고 하는 거겠지.

하지만 경기 도중도 아닌데 그런 요청이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드디어 포커페이스가 무너졌구나.’

경기 초반에는 저렇게 예민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갑자기 태도가 변한 건 상황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더 긁어볼까.’

지혁은 베르다스코의 멘탈이 흔들리는 것 같자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승세가 어느 정도 넘어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나달을 상대할 연습도 이만하면 넘칠 정도로 충분하다.

이번 전략이 먹히면 승부는 싱겁게 끝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상대 선수의 약점을 노리는 건 프로 선수로서 당연한 일이다.

[플레이어 레디. 서브 리.]

심판의 콜이 떨어지자 코트 위로 올라가는 두 선수.

그들의 분위기는 처음 경기가 시작할 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아무래도 직접 경기를 뛰고 있는 당사자들인 만큼 남은 2세트가 어떻게 될지 본능적으로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꽈아악.

지혁은 전달받은 테니스공을 손으로 강하게 쥐어보거나 바닥에 튕기면서 반발력을 확인했다.

‘공기가 빠져서 약간 물렁해진 것 같은데······.’

유압구를 교체한지 벌써 5게임이나 지나서 압력이 미세하게 감소했다.

하지만 앞으로 공이 체인지 되려면 4경기는 더 지나야 한다.

‘최고의 서브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지혁은 전달받은 3개의 테니스공 중 가장 상태가 좋은 걸 선별해내 하늘 위로 토스했다.

활처럼 휘어지는 허리.

왕관 자세가 평소와 달라보이자 반대편에 있던 베르다스코는 곧바로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

드르르르륵. 탕!!

엄청난 사이드 스핀이 걸린 채로 날아가는 서브.

쿵! 공은 바닥에 부딪치고 정반대 방향으로 바운드됐다.

베르다스코는 몸을 되돌리며 리턴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쳐서 균형이 무너졌다.

퍽!

라켓을 피해가며 가슴을 가격한 테니스공.

선수의 몸에서 주먹으로 때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자 코트에서 가까운 로얄석의 관중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통이 얼마나 클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트위스트 서브가 플랫 서브보다 파워가 약하지만 160km는 거뜬히 넘는다.

보호구도 없이 저런 공을 맞으면 타박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피프틴 러브.]

우와아아아!

한 박자 늦게 들리는 환호성.

관중들은 지혁이 인디언 웰스 오픈에서 처음 선보인 기술에 감탄한 것인지 기립 박수를 쳤다.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는 응원.

결국 소란은 체어 엠파이어가 개입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트위스트 서브가 베르다스코의 가슴을 강타합니다! 피프틴 러브! 완벽한 서브였어요!]

[드디어 조커를 꺼내 들었군요. 경기를 굳히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베르다스코가 가슴을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리네요. 부상이라도 있는 걸까요?]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경기를 하다보면 테니스공에 맞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얼굴을 정통으로 맞지 않는 이상 대부분 멍이 드는 걸로 끝나거든요.]

[아, 이 해설님 말대로 메디컬 타임 없이 경기가 지속되네요. 다행히 부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쉴 틈을 주지 않고 게임을 시작하는 지혁.

베르다스코는 템포가 꼬인 탓인지 그답지 않은 실책을 몇 번이나 저질렀다.

[게임 리 1-0.]

2세트 1게임이 끝나자 두 선수는 각자의 벤치로 걸어갔다.

힐끔힐끔.

코트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

거리가 제법 되는 관중석이 아니라서 더 확실하게 느껴진다.

볼키즈들이 지혁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아무래도 방금 전 게임이 꽤 인상적이었나 보다.

아마 비슷한 나이 대라서 지금 상황이 더욱 신기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직 앳된 외모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탑랭커를 제압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임 리 2-0.]

[게임 리 3-1.]

[게임 리 5-2.]

2세트의 남은 게임은 지혁의 우세 속에서 진행되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들어오는 공격에 베르다스코가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1세트 초반이었다면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베르다스코는 이미 멘탈과 템포가 꼬일 대로 꼬인 상태라 경기를 역전시킬 만한 여력이 전혀 없었다.

[게임 세트. 매치 리. 6-4, 6-2.]

전문가들과 테니스 팬들이 치열할 거라고 생각했던 경기는 결국 세트 스코어 2-0으로 끝났다.

그 의외의 결과에 관중들은 순수하게 환호했지만, TV로 경기를 보고 있던 몇몇 선수들은 경계해야 될 상대가 늘었다는 생각에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안 그래도 치열한 테니스계에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생태계 교란종이 나타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드디어 나달과 경기할 수 있겠구나.’

승리에 대한 기쁨과 8강에 대한 기대감에 환하게 웃는 지혁.

비록 다음 경기에서 패배할 확률은 높겠지만, 지금 시대에 정상을 밟으려면 라파엘 나달은 반드시 거쳐야할 관문이다.

저번 호주 오픈에서 머레이를 상대하면서 많은 점을 깨달은 만큼 분명 이번에도 적지 않은 소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타다다다!

그때 인터뷰를 하기 위해 코트 안으로 달려오는 리포터의 발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는 게 아직도 경기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골든 보이, 8강 진출을 축하해요! 정말 완벽한 경기였어요. 2세트에서 보여준······.”

그렇게 지혁은 경기장에서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내일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경기장을 벗어났다.

마음 같아서는 열정적으로 응원해준 관중들에게 팬 서비스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8강의 상대를 생각하면 이곳에서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승률을 조금이라도 올리려면 1분 1초를 아껴서 나달을 분석하는데 투자해야 한다.

***

[이지혁, 인디언 웰스 오픈 8강 진출. 다음 상대는 ATP랭킹 3위의 라파엘 나달.]

[미국에서 집중 받는 이지혁, 그의 인기 비결은 무엇인가?]

[과연 한국의 신성은 그랜드슬램 6회 우승을 한 나달을 꺾을 수 있을까?]

[페르난도 베르다스코, “리는 골든 보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패배의 원인은 데이터 부족.”]

[이형석, “이지혁 선수가 4강에 진출할 확률은 대략 30%.”]

[라파엘 나달, “골든 보이와의 경기 기대된다.”]

[인디언 웰스 오픈 8강, 예상 시청률은 25%.]

ㅡ 설마 했는데 진짜 8강까지 올라 왔네 ㅋㅋㅋㅋㅋ 지금 해외에서도 난리 났다 ㅋㅋㅋ

ㅡ 8강 진출이 대단한 거임?? 이거 그랜드슬램도 아니잖아??

ㅡ 인디언 웰스 오픈 마스터즈 중에 제일 경쟁력 높은 대회라고 ㅋㅋ 웰스 오픈 8강이랑 호주 오픈 8강 난이도로 따지면 거의 똑같다.

ㅡ 그런데 나달한테 이길 확률이 30%?? 이형석 은퇴하고 감 떨어 진 거 아니냐??

ㅡ 자세하게 읽어 보면 부상 한정이라고 사족 달았다.

ㅡ 그래도 흙신이랑 클레이에서 안 만나서 다행이네 ㅋㅋ 롤랑에서 만났으면 개털렸을 건데.

ㅡ ㅇㅇ 하드 코트라서 승률 조금 올랐다. 제발 이겼으면.

지혁이 베르다스코를 꺾고 8강에 진출하자 전 세계 테니스 팬들의 이목이 급속도로 집중되었다.

요즘 테니스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골든 보이가 빅3에게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대회 주최 측은 지혁과 라파엘 나달의 8강전이 빅매치가 될 거라고 예상한 건지 가장 좋은 경기장을 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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