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53화 (53/241)

53화.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

지혁은 다음 마스터즈 대회인 마이애미 오픈에 참가하기 위해 하루만에 4000km로 넘는 거리를 이동했다.

웬만하면 캘리포니아에서 남은 경기를 보고 싶었지만 대회 개최일이 고작 5일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3시간이나 되는 시차와 컨디션 유지를 위해서라면 일찍 움직이는 게 낫다.

솔직히 몸에 누적된 피로를 생각하면 적어도 이주일 정도는 쉬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 5월 중순이 될 때까지는 지금 같이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설마 마스터즈 대회만 참가하는데 체력을 걱정하게 될 줄이야.’

예전에는 이것보다 두 배는 더 많은 투어를 소화했었다.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ATP250 이상의 대회에 마구잡이로 참가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조기 탈락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랬었지.’

예선전과 1, 2라운드를 통과하는 일이 아주 드물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메이저 대회에서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는 게 가능해졌으니 그런 일은 불가능해졌다.

한 개의 대회에 소모하는 체력의 양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리, 코트가 준비 됐어요.”

그때 매니지먼트 직원이 지혁에게 다가와서 소식을 전했다.

“갑작스러운 부탁이었는데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어려운 일도 아닌 걸요. 이런 요청은 얼마든지 해도 돼요. 그런데 나달과 경기하면서 무리했는데 더 쉬어야 하지 않아요?”

“사흘이나 훈련을 건너뛰어서 몸이 근질근질해요. 워밍업 차원에서 간단한 랠리라도 해야겠어요.”

지혁은 라켓을 흔들며 테니스 코트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걷자 주변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열정적으로 훈련하는 모습이 제법 인상적이다.

‘여기가 그 유명한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의 훈련장이구나.’

앤드리 애거시, 짐 쿠리어, 샤라포바 등 세계 랭킹 1위를 10명이나 배출한 장소여서 뭔가 특별할 줄 알았는데.

아시아 역대 최강의 선수라고 평가받는 일본의 니시코리 케이도 이곳에서 테니스를 배운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게 되니 크게 대단해보이지 않는다.

이미 20위라는 엄청난 랭킹을 달성한 이후라서 그렇겠지.

같은 장소라도 위치에 따라서 느끼는 바가 완전하게 달라지니 말이다.

‘여기에 그렇게 입학하고 싶었는데······.’

벌써 10년도 넘게 지난 일이지만 지혁은 중학교를 입학할 때 이곳에 지원하려고 했었다.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는 테니스 스타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금전적인 문제로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카데미의 연간 수업료가 8천만 원이 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닉스 키즈나 IMG 키즈로 선발되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 없이 학비가 전부 면제 되었겠지만 당시 지혁의 실력으로 쟁쟁한 경쟁자를 전부 재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끼익-

“여기를 사용하시면 돼요.”

펜스 문을 대신 열어주는 매니지먼트 직원.

고개를 끄덕이며 코트 안으로 들어서자 몇몇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낯선 인물들에게 호기심을 느낀 모양이다.

하지만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서 인지 그들은 지혁의 정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럼 바로 시작할까요?”

지혁은 훈련을 보조하기 위해 따라한 두 명의 코치들에게 말했다.

“얼마든지. 그래도 마이애미 오픈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

“네. 저도 감만 되찾으려고 하는 거예요.”

코트 위로 올라가는 지혁과 코치들.

그 광경에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세 사람을 쳐다봤다.

훈련을 하는 모습이 조금 이상해 보였기 때문이다.

탕!! 탕!! 탕!!

잠시 후, 훈련장에서 들리는 시원한 임팩트 소리.

지혁이 힘을 조절했음에도 스트로크는 레이저처럼 쭉쭉 뻗어나가 베이스라인을 때렸다.

웅성웅성.

“스트로크 정확도가 엄청난데? 전부 라인을 맞추고 있어.”

“대체 누구야? 키를 보면 새로운 입학생은 아닌 것 같은데.”

“단기 캠프로 코칭을 받으러 온 학생 아닐까? 2주 동안 트레이닝을 받고 나가는 유학생들이 제법 있잖아.”

학생들은 지혁의 정체를 추측하느라 갑론을박을 했다.

비슷한 나이대의 실력자가 나타나자 자연스럽게 경쟁심이 생긴 것이다.

그들은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닉 볼리티에리에 입학한 주니어 선수들인 만큼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했다.

쿵!

라인을 아슬아슬하게 때리는 지혁의 탑스핀 스트로크.

코치는 엄청난 헤비 스핀이 걸린 공에 신음을 흘리며 에러를 범했다.

위력을 조절했음에도 프로가 아니면 받지 못할 정도로 각도가 날카로웠던 것이다.

“살살해!”

가슴을 쓸어내리며 코트 반대편에서 소리치는 코치.

그 와중에 손목을 문지르는 것을 보니 임팩트 때 타이밍을 잡지 못해서 라켓이 뒤로 밀린 것 같았다.

평소 그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받아낼 수 있는 샷이었는데 아무래도 가볍게 한다는 지혁의 말에 방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와······. 방금 바운드 각도 봤어?”

“탑스핀 스트로크 말하는 거지?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머리보다 높게 튀어 오르던데.”

“저 정도 포핸드는 아카데미에서 본 적이 없어.”

“그래도 프로 데뷔를 한 3학년 선배들은 저 공을 받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음······. 닉 키즈나 IMG 키즈라면 가능하겠지”

“그래. 월리엄스라면 칠 수 있을 거야.”

어느새 경기조차 멈춘 채로 랠리를 구경하는 학생들.

지혁이 훈련을 시작한지 고작 10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코트 주변의 시선은 모두 한곳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전문적으로 테니스를 배운 학생들에게 지혁의 스트로크는 살아있는 교과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0분이 지났을 때.

지혁과 코치들은 라켓을 늘어트리며 가까운 벤치에서 휴식을 가졌다.

널널하게 움직여서 아직 체력이 쌩쌩했지만 컨디션을 생각해서였다.

겸사겸사 피드백도 받아야 하고 말이다.

“스트로크 감각이 제대로 살아있어. 지금 상태를 유지하면 마이애미 오픈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을 거야.”

“한 달 전보다 백핸드가 나아진 것 같은데? 개인 훈련이라도 하고 있어?”

“긴가민가해서 말 안했는데 최 코치도 그런 느낌을······.”

***

한 시간 후.

마침내 랠리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지혁.

비록 만족할 만한 경기는 하지 못했지만 한 시간 정도 라켓을 휘두르니 답답한 기분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오늘은 경기 파트너가 되어주던 앤드류 쿠퍼도 없으니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훈련이 끝난 것 같은데?”

“그럼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보자. 분명 유명한 주니어 선수일거야.”

“그런데 아시아에서 골든 보이랑 니시코리말고 이름이 알려진 유망주가 있었나?”

“아직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않아서 그렇겠지. 퓨처스와 챌린저에 박혀 있으면 우리가 모를 수도 있잖아.”

학생들은 눈앞에 있는 존재가 골든 보이라고 전혀 생각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지혁과 나달의 빅매치가 캘리포니아에서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미국 반대편에 있던 스포츠 스타가 갑자기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우르르.

지혁이 앉아 있는 벤치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학생들.

그 모습에 코치들이 움찔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괜찮아요. 아카데미 학생들이잖아요.”

어차피 호기심이 가득담긴 얼굴을 보면 나쁜 마음을 먹고 다가오는 것 같지 않았다.

아마 비슷한 나이대의 선수를 보고 뭔가 관심이 생긴 거겠지.

솔직히 지혁도 자신 같은 선수가 눈앞에 있으면 당장 말을 걸어볼 것이다.

“안녕? 난 마이크 딘이야. 훈련하는 거 잘 봤어. 너 정말 대단하더라.”

“고마워.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 학생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까 기분 좋네.”

“재학생 중에 너 같은 선수를 본 적이 없는데 혹시 아시아에서 캠프를 온 거야?”

“음······. 비슷해.”

정확히 말하자면 매니지먼트인 IMG를 통해서 협력을 받고 있는 거지만 어쨌든 도움을 받으려고 방문한 것이니 대충 비슷하긴 하다.

“그런데 랠리 연습만 하던데 경기 파트너는 없어?”

“마이애미에 도착한 게 얼마 되지 않아서.”

“······그래? 그럼 내 친구랑 경기해볼래? 월리엄스는 우리 학년의 닉 키즈거든.”

“닉 키즈? 재밌겠는 걸.”

150명이나 되는 재학생들 중 장학생으로 뽑힐 정도면 아마 상당한 실력자일 것이다.

그 정도면 기분 전환 정도는 되겠지.

지혁은 마이크가 들으면 발끈할 생각을 하며 경기를 수락하기로 했다.

어차피 주니어 선수랑 하는 경기에서 체력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세트 정도라면 괜찮아.”

“예쓰!”

지혁에게 긍정적인 답을 얻어내자 환호하는 마이크.

아무래도 이번 대결이 크게 기대되는 모양이다.

‘이 녀석 봐라?’

그 모습을 보고 지혁은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마이크와 그가 데려온 친구들의 표정이 꽤 자신만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설마 월리엄스라는 이름의 닉 키즈가 자신을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더라고 해도 그건 너무 오산인데.

“그럼 바로 시작하자. 윌리엄스가 누구야?”

“잠깐만 기다려줘. 데리고 올게.”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쑥덕쑥덕 거리는 마이크.

얼마 후 그는 펜스 문을 열고 다른 훈련장으로 뛰어갔다.

‘허······. 충동적인 결정이었나 보네.’

처음부터 경기를 목적으로 접근한 줄 알았는데 지금 행동을 보면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진짜 대결이 성사되기는 할까.

그렇게 회의적인 생각에 빠져있길 몇 분.

다행히 마이크는 친구를 설득한 것인지 190cm는 되어 보이는 백인을 데리고 왔다.

근육이 균형 있게 발달한 것을 보니 육체적인 재능은 대단했다.

가장 중요한 테니스 실력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처음 보는 얼굴이잖아?’

미래에 탑랭커가 되는 선수였으면 얼굴이 익숙했을 텐데.

하지만 그게 아니니 저 녀석은 별 볼일 없는 선수로 끝났을 확률이 매우 높다.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받아들인 제안을 무를 수는 없었다.

‘너무 기대하지 말자,’

지혁은 덤덤한 표정으로 마이크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어차피 얼굴을 알고 있는 탑랭커라도 주니어 시절이라면 실력이 크게 대단하지 않을 것이다.

“미안해. 조금 늦었지?”“마이크 대체 경기 상대가 누구 길래 이러는 거야?”

“이번에 아시아에서 단기 캠프를 온 주니어 선수. 실력이 대단해서 너한테 소개시켜 주고 싶었어.”

“아시아? 시간 낭비 같은데······.”

지혁을 빠르게 훑으며 투덜거리는 월리엄스.

예의 없는 그 태도에 지혁은 입 꼬리를 슬쩍 올렸다.

상대의 어설픈 도발에 웃음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무튼 직접 상대해보면 금방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나중에 나한테 고맙다고 할 걸?”

“알았어, 한 번 해볼게. 1세트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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