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54화 (54/241)

54화.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

마침내 성사된 지혁과 월리엄스의 경기.

두 사람은 대결을 바로 시작하지 않고 5분 정도 랠리를 하며 몸을 풀었다.

코트 주변은 그 사이 소문이 퍼진 것인지 운동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몰려들었다.

그들의 정체는 근처에서 훈련하고 있던 학생 10여명과 학교에 소속된 4명의 코치들이었다.

“월리엄스가 캠프를 온 녀석과 경기를 한다고?”

“어. 아시아인이래.”

“에이, 시시하게 끝나겠네. 아시아 유학생들은 실력이 다 별로잖아.”

“데릴이 그렇게 극찬을 했으니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 헛소리를 할 녀석은 아니잖아.”

“그래도 닉 키즈를 어떻게 이기겠어. 이전에 2개월 연수를 다녀간 일본인들도 별거 없었잖아.”

소군거리며 지혁을 훔쳐보는 학생들.

당연히 패배할 거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쏟아졌지만 지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크게 방해도 되지 않을뿐더러 어차피 경기 결과는 정해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닉 볼리티에리가 직접 선택한 선수의 실력을 확인해볼까.’

지혁은 어느 정도 준비된 것 같자 랠리를 멈추었다.

그러자 심판을 맡기로 한 마이크가 지혁과 월리엄스에게 의사를 물어왔다.

“서비스게임은 어떻게 할까?”

“나는 괜찮으니까 먼저 해도 돼.”

서브를 양보한다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썹을 꿈틀하는 월리엄스.

하지만 굳이 나서서 지혁의 행동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불리함을 감수한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 판정을 내릴 때 필요하니까 이름을 알려줘.”

“리라고 부르면 돼.”

“리? 알았어. 그럼 바로 시작해도 될까?”

“그래.”

“월리엄스, 너는?”

“나도 문제없어.”

그렇게 두 사람의 허락이 떨어지자 경기는 곧바로 시작됐다.

[서브 월리엄스.]

쾅!!

200km가 넘는 속도로 떨어지는 플랫 서브.

[폴트!]

비록 공은 라인 밖으로 나갔지만 훈련장에서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주니어 선수치고 상당히 빠른 서브 속도 때문이었다.

‘모르는 얼굴이라 만만할 거라 생각했는데 제법이잖아?’

지혁은 월리엄스의 체구가 상당한 만큼 파워가 강할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기대를 한참이나 넘어선 실력이다.

아카데미에 닉 키즈의 숫자가 10명이나 되었으니 잘해봐야 190km중반의 서브를 칠 수 있을 줄 알았다.

‘국내 주니어 선수들 중에서는 마땅한 상대가 없겠는 걸.”

과연 자신만만한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런 서브를 가지고 있었으니 아카데미에서 마땅한 적수를 만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쾅!!

같은 곳을 노린 것인지 비슷한 위치로 떨어진 월리엄스의 세컨드 서브.

용케 서비스 코트에 들어갔지만 위력에 비해 코스가 너무 미숙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강서버들은 컨트롤이 떨어지는 약점을 가지고 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탕!!

지혁은 정면으로 튀어 오르는 공을 향해 라켓을 휘둘렀다.

레이저 같은 백핸드 리턴이 코트의 빈 공간으로 쏘아지자 월리엄스는 주춤거리는 자세로 첫 포인트를 빼앗겼다.

[러브 피프틴.]

“와. 저걸 한 번에 리턴을 하다니. 대체 어떤 훈련을 한 거지?”

“발이 엄청나게 빨라. 리턴을 하면서 스텝이 한 걸음 이상 남았어.”

“강서브를 많이 받아본 솜씨인데··· 프로 선수 아닌가?”

“프로에 데뷔한 선수가 여기서 훈련할 리가 없잖아. 아마 성적이 있다고 해도 경험삼아 나간 퓨처스 정도겠지.”

“그건 그렇지만······.”

학생 한 명이 지혁의 정체에 대해 의심을 보냈지만 근거가 부족했던 탓인지 그 의견은 금방 묻혀버리고 말았다.

시즌 중에 프로 선수가 아카데미에 방문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포인트를 준비하는 월리엄스.

그렇게 공을 토스하는 모습과 함께 라켓이 빠르게 휘둘러졌다.

이전보다 날카롭게 T존에 떨어진 서브.

라인을 정확히 가격한 공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야 말로 에이스를 얻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쿵!

하지만 코트 위에서는 첫 번째 포인트와 똑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

싸한 분위기가 흐르는 훈련장.

월리엄스는 그런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서브 자세를 취했다.

왕관 자세가 더 정교해진 게 이번에는 전력을 다하려는 모양이다.

탕! 탕! 탕!

그의 의도대로 세 번째 서비스는 리턴 에이스로 끝나지 않고 스트로크 대결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질 리가 없었다.

애초에 두 사람 사이에는 절대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있었으니 말이다.

의지만으로 실력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면 지혁이 인디언 웰스 오픈에서 나달에게 패배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게임 리 1-0.]

그렇게 지혁의 압도적인 우세로 게임이 끝나버리자 구경하고 있던 학생들의 표정이 얼떨떨하게 변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10분 후.

지혁이 리버스 포핸드와 트릭샷을 아낌없이 사용했던 탓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의 정체를 의심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주니어 선수라고 하기에 경기의 수준이 너무 말도 안 되게 뛰어났기 때문이다.

“저렇게 완벽한 컨트롤이라니······. 저 사람은 무조건 프로일 거야.”

“주니어 대회에서 리라는 선수를 들어 본 적 없어? 저런 실력이라면 분명히 메이저 대회에서 이름을 알렸을 텐데.”

“작년에는 골든 보이가 주니어 그랜드슬램을 휩쓸었잖아. 아, 그러고 보니 골든 보이의 성 리였어.”

“······잠깐 골든 보이라고?”

결국 경기를 시작한지 10분 만에 밝혀진 지혁의 정체.

긴가민가하던 학생들은 이제야 월리엄스가 아시아인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상대가 현재 테니스계의 지각을 뒤흔들고 있던 골든 보이여서 그랬던 것이다.

16살이라는 나이로 ATP랭킹 21위를 달성한 괴물을 고작 주니어 선수가 어떻게 이기겠는가.

아무리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의 장학생이라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웅성웅성

월리엄스는 서브가 시작됐음에도 주변이 시끄럽자 인상을 찌푸렸다.

경기에 방해가 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향인지 하지 않을 실책까지 저지르기까지 했다.

집중이 깨져서 스트로크가 라인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것이다.

“마이크! 체어를 맡았으면 조용히 좀 시켜!”

“······.”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거친 목소리로 항의하는 월리엄스.

하지만 마이크는 스코어를 부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도 코트 주변에서 떠들어대는 학생들의 대화를 들은 모양이다.

“헤이!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월리엄스, 아무래도 리의 정체가 골든 보이인 것 같아.”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 녀석은 지금 캘리포니아에 있잖아.”

“그래서 눈치 채지 못했던 거지······. 얼굴을 제대로 확인해봐. TV에서 보던 모습이랑 똑같아. 맙소사 골든 보이를 실제로 보게 되다니.”

월리엄스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몇 초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그의 눈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마이크의 말이 사실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허억······. 진짜잖아.”

드디어 훈련장에 있던 모든 학생들이 지혁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코트 주변은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지만 의외로 지혁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은 게임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짝이는 눈빛들을 보면 경기가 끝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너무나 뻔했다.

“이대로 계속 할 거야?”

“······당연하지.”

이미 게임 스코어가 2-0인데다가 상대가 골든 보이인 것을 생각하면 이길 가능성은 1%도 없다.

하지만 지혁 같은 선수와 친선 경기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고작 주니어 선수에 불과한 월리엄스가 랭킹 10위대의 탑랭커와 어떻게 스트로크를 주고받을 수 있겠는가?

“쟤들이 방해하지 못하게 심판이나 잘 봐.”

월리엄스는 혹시 경기가 중단될까 걱정한 것인지 곧바로 베이스라인으로 움직였다.

이대로 머뭇거리다가 지혁의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끄러운 주변 상황을 생각하면 나름 이유 있는 걱정이었다.

***

20여분에 달하는 경기가 마침내 끝났다.

결과는 지혁의 6-0 승리였다.

3게임부터 월리엄스가 모든 역량을 동원해 코트를 뛰어다녔지만 결국 단 1게임도 따내지 못한 것이다.

아카데미의 자랑인 닉스 키드가 일방적인 패배를 당했음에도 학생들의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처음부터 지혁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언제 이렇게 많이 모인 거지.’

시작할 때만해도 10여명 남짓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언제 소식이 퍼졌는지 경기를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70명이 넘었다.

아카데미의 정원이 150명 남짓인 걸 고려하면 절반에 달하는 재학생들이 개인 스케줄을 내팽겨치고 훈련장으로 몰려든 것이다.

우르르르.

체어에서 마지막 콜이 떨어지자 흥분된 얼굴로 다가오는 수많은 학생들.

곧이어 지혁에게 엄청난 질문세례가 쏟아졌다.

마치 3주 전 금화고에 등교했을 때를 연상시키는 장면이었다.

“어떻게 하면 너처럼 테니스를 잘 할 수 있어? 특별한 트레이닝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며칠 전에 나달과 붙었잖아. 그때 느낌이 어땠어?”

“쿠리어랑 애거시의 말을 듣고 닉에게 트레이닝을 받으려 하는 거지?”

“이번 마이애미 오픈에 참가 신청은 했어?”

지혁은 한동안 친절하게 대답을 해줬지만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코치들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청했다.

마침 훈련도 마쳤으니 숙소로 돌아가려고 한 것이다.

어차피 아카데미와 약속한 메인 트레이닝은 내일부터 시작한다.

“리, 벌써 가려고?”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돼? 훈련하는 거 방해 안 할게.”

코치들이 인파를 뚫고 접근하자 아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래도 학생들은 지금 헤어지면 지혁과 다시 마주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오늘은 웰스 오픈에서 쌓은 피로 때문에 일찍 들어가려고 했어. 며칠 동안 아카데미에 있을 거니까 자주 볼 수 있을 거야.”

“역시 닉에게 트레이닝을 받으려고 왔구나?”

“맞아. 너희들이랑 같이 훈련할 수도 있으니까 당분간 잘 부탁해.”

확답을 듣고 조금씩 길을 비켜주는 학생들.

지혁과 코치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미적거리다가 다른 학생들이 더 몰려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혁아, 미국에서도 인기가 대단한데? 나는 여기가 한국인 줄 알았어.”

“저도 조금 놀랐어요. ESPN에서 광고를 많이 해줘서 그런가 봐요.”

“하긴 나달과 경기가 확정되면서 네 얼굴이 하루 종일 TV에서 나오더라.”

“이겼으면 지금보다 반응이 더 좋았을 건데 조금 아깝네요.”

“큭. 너무 조바심 내지마. 지금처럼 꾸준히 성장하면 결국 이길 수 있을 거야.”

“저도 그냥 해본 말이에요. 지금은 1세트라도 이길 수 있게 노력해야죠. 그래서 시간을 쪼개서 여기까지 온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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