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55화 (55/241)

55화.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

아카데미에 도착한지 둘 째 날, 오전 8시.

하루 동안 충분히 휴식한 지혁은 드디어 전설의 코치인 닉 볼리티에리와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원래 아카데미의 장학생이거나 거금을 지불해야 간신히 만날 수 있는 사람인데 IMG의 영향력이 정말 대단하긴 한가보다.

‘기숙학교라 그런지 일과를 빨리 시작하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닉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자 이른 아침부터 경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상의가 땀으로 젖어있는 게 한참 전부터 훈련장에 나와 있었던 것 같았다.

“장관이죠? 600명이 넘는 인원을 전부 소화할 수 있는 시설은 미국에서도 드물어요.”

“규모가 엄청나긴 하네요. 그런데 이 많은 선수들이 전부 재학생인 건가요?”

“아, 학교에 정식으로 소속된 건 500명 정도에요. 나머지는 단기 캠프로 오게 된 유학생이고요.”

어쩐지 실력이 너무 들쭉날쭉하다 했다.

명문 테니스 스쿨에 기본조차 되지 않는 주니어 선수가 있을 리가 없는데.

아무래도 캠프 인원이 섞여 있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저기 IMG 키즈들이 보이네요. 리,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요.”

다른 훈련장과 따로 분리되어 있는 코트를 가리키며 말하는 직원.

그곳에는 스무 명 쯤 되는 어린 선수들이 있었다.

‘저 얘들이 아카데미의 장학생이구나.’

500명이 넘는 학생들 중에서 선별된 만큼 확실히 실력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

아마 저 정도면 당장 퓨처스에 참가하더라도 괜찮은 성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건 절반도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잠시 후, 훈련장 입구에 도착한 지혁과 직원.

직원은 내부 상황을 잠깐 살피더니 곧 펜스 문을 열고 들어갔다.

“······.”

코트 안으로 들어가자 빠르게 집중되는 시선.

눈빛이 뜨거운 게 학생들은 지혁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제 골든 보이가 방문했다는 소문이 아카데미 전체에 퍼진 걸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잠깐 동안 훈련을 구경하고 있을 때.

코치 한 명이 백발의 노인에게 달려가 귀띔을 했다.

휙-

소식을 전해 듣고 고개를 돌리는 닉.

갑작스럽게 잡힌 약속이지만 그는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지혁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늦지 않고 제시간에 도착했군. 리, 만나게 되서 반갑네.”

“억지에 가까운 부탁이었는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나도 자네를 직접 확인보고 싶었어. 최근 들어 짐과 앤드리, 그 녀석들이 워낙 자네 얘기를 많이 해서 말이야. 엄청난 루키가 나타났다고 난리도 아니었어.”

닉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지혁을 살펴봤다.

나이가 거의 80이 다 되어 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는 코치 일이 천직인 건지 아직도 테니스에 대해서 열정적인 모습이다.

“레전드 선수들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 영광이네요. 며칠 전 인디언 웰스 오픈도 그렇고 좋은 말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그래. 그러면 인사도 할 만큼 했으니 시간 끌 거 없이 바로 시작해볼까? 내가 오후에 일정이 있어서 말이야.”

“그렇게 해주시면 저야 좋죠. 저도 마이애미 오픈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원하던 제안을 듣자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지혁.

두 사람은 시간을 아껴야한다는 생각이 서로 일치하자 곧바로 코트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근처에서 그 대화를 듣고 작은 목소리로 웅성거렸다.

“골든 보이의 재능이 언론에서 빅3와 견줄만하다고 하던데 정말 명성만큼 대단할까?”

“지금까지 만들어낸 결과를 생각하면 분명 실력이 뛰어나겠지. 최근 몇 년 동안 이만한 재능을 가진 유망주가 등장하지 않았잖아.”

“졸업생 중에서 뚜렷한 성과를 낸 건 니시코리 뿐이니 그렇긴 하지······. 월리엄스, 네 생각은 어때?”

이곳에서 유일하게 지혁을 직접 상대해봤기 때문인지 학생들은 월리엄스에게 기대가 섞인 눈빛을 보냈다.

“후······. 내가 평가할 수준이 아니었어.”

“응? 넌 퓨처스 준결승에 진출한 적도 있는데 그 정도라고?”

“어. 나도 믿기진 않지만 리는 서브, 스트로크, 풋워크 모든 부분이 완벽해서 약점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었어.”

평소 오만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던 월리엄스의 입에서 극찬이 쏟아지자 놀란 얼굴을 하는 학생들.

그는 닉스 키즈 사이에서 실력이 제법 뛰어났기에 말의 파급력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꼬맹이들이 너한테 관심이 많나 보구나.”

“제가 훈련에 방해가 되는 건가요?”

“그런 걸 걱정했으면 애초에 이곳을 약속 장소로 잡지 않았을 거다. 가끔 졸업생들이 방문해서 시험 경기를 하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그리 소란스러운 것도 아니야.”

닉은 고개를 저으며 훈련장에서 누군가를 호출했다.

“데이브!”

그러자 혼자 묵묵히 훈련을 하고 있던 학생 한 명이 움직임을 멈췄다.

“오전 경기 파트너는 여기 이 녀석으로 해라. 너도 올해 호주 오픈에 참가했으니까 리의 얼굴은 알고 있겠지?”

“당연하죠! 저한테 이런 기회를 주실 줄은 몰랐어요!”

닉의 지시에 환한 얼굴로 뛰어오는 데이브.

‘데이비드 해리슨? 이 녀석도 아카데미 출신이었나?’

지혁은 상대가 점점 가까워지자 곧바로 얼굴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상대가 미국 최고의 유망주 라이언과 동급으로 분류되는 유명인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확인한 바로 그의 ATP랭킹은 250위 정도일 것이다.

92년생, 고작 하이스쿨 3학년에게 너무나 높은 순위였지만 탑10으로 성장할 천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 정도 성적은 대단한 것도 아니다.

‘드디어 아카데미에서 쓸 만한 유망주를 찾았구나.’

데이비드를 발견하고 혹시나 싶어 다른 학생들을 확인해보는 지혁.

그러자 한 명씩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니시오카 요시히토, 그리고 정민도 있네. 잠깐······정민?’

눈을 부릅뜨고 얼굴을 다시 한 번 확인했지만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숙명의 라이벌이 되는 한국 최고의 선수가 여기 있었다니.

역시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는 테니스 스타의 요람이라 불릴만했다.

정민을 오랜만에 만난 김에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싶지만 과거 쌓았던 친분은 모두 사라진지 오래다.

그렇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멀뚱히 서있자 닉이 이상하다는 듯이 어깨를 두드린다.

“리?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아뇨. 아시아 선수들이 몇 명 보여서요.”

“니시오카와 정을 말하는 거구만. 아직 어리지만 장래가 기대되는 학생들이지. 그보다 준비는 됐나?”

“상대가 괜찮다면 바로 시작하셔도 돼요. 저는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고 왔어요.”

“잘 됐군. 그럼 일단 데이브랑 3세트 경기를 해보게. 코칭할 부분을 찾아야 하니까 반드시 전력을 다하고.”

“음······. 그래도 괜찮을까요?”

데이비드를 살짝 눈짓하며 말하는 지혁.

약간의 걱정이 담긴 시선에 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지, 실전이라 생각하고 경기에 임하게. 저 녀석도 프로니까 경기에서 사정을 봐주는 건 모욕하는 일이야.”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 알겠어요.”

닉의 신호에 각자의 자리로 이동하는 지혁과 데이비드.

그 모습에 학생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눈에 힘을 줬다.

이번 경기를 한 장면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데이브는 아카데미에서 실력이 제일 뛰어나니까 적어도 5~6게임 정도는 따내겠지.”

“ATP랭킹이 200위 넘게 차이 나는데 5게임이라고? 냉정하게 생각해 봐.”

“우리는 학교를 다니느라 포인트를 제대로 모으지 못하잖아. 만약 데이브가 투어에 집중했으면 지금보다 100위는 더 올릴 수 있었을 거야.”

“그래봤자 140위에 불과한 걸? 골든 보이의 현재 랭킹이 21위인 건 알고 있지?”

“이긴다고 말하는 게 아니잖아. 서비스게임만 지켜도 7게임은 충분히 얻을 수 있어.”

치열하게 경기에 대해 토론하는 학생들.

그들은 데이브의 승리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두 선수의 커리어가 처음부터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팅!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자 닉은 동전을 튕겨서 서브를 정했다.

“앞면이구나. 서비스게임은 리가 먼저 하면 된다. 플레이어 레디, 퍼스트 서브 리.”

속전속결로 시작된 경기.

라인 심을 담당한 코치들은 서브가 정해지자 테니스공 3개를 던져줬다.

퉁. 퉁. 퉁.

라켓을 움직여 공을 모두 받아낸 지혁.

그 화려한 퍼포먼스에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와! 라켓 컨트롤이 미쳤어. 어떻게 한 거지?”

“스트로크의 에러가 비정상적으로 적은 이유가 있었구나.”

“진짜 멋있긴 하네. 경기장에서 써먹으면 관객들이 좋아할 거 같은데 나도 연습해볼까.”

한동안 주변에서 찬사가 이어졌지만 지혁은 경기에 집중을 하느라 학생들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통. 통. 통. 통.

코트에서 바운드 소리가 들려오자 주변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곧 서브가 떨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하늘로 떠오르는 토스.정점을 찍은 공이 서서히 하강하자 지혁은 몸을 강하게 회전시키며 라켓을 휘둘렀다.

쾅!!

“······.”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서브가 번개처럼 떨어지자 학생들은 입을 크게 벌린 채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렇게 빠른 서브가 실존하다니.

그들은 500명이 넘는 재학생들 중에서 4% 안에 들어가는 엘리트였지만 220km가 넘는 서브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피프틴 러브. 속도도 준수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서브다. 기본기를 정말 잘 쌓았어.”

닉의 칭찬에 고개를 끄덕이고 공을 토스하는 지혁.

그 모습에 훈련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계되는 동작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쾅!!

촤아악-

몸을 던지며 라켓을 뻗는 데이비드.

빠르게 달려오느라 어쩔 수 없이 미끄러지며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다리를 찢는 노력에도 공은 라켓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서티 러브. 데이브, 상대의 동작에 집중해! 서브가 어디로 떨어질지 미리 예상하고 움직여야 한다!”

닉의 고함 소리에 데이비드는 남은 두 포인트 동안 몸을 던지는 허슬 플레이까지 사용했지만 결국 1게임에서 한 번도 리턴을 성공하지 못했다.

솔직히 특별한 훈련도 없이 220km가 넘는 고속 서브를 받아내는 건 동체시력을 타고나지 않는 이상 거의 불가능하다.

“게임 리 1-0. 엔드 체인지. 서비스게임 해리슨.”

코트를 바꾸기 위해 네트 앞에서 교차하는 두 사람.

그렇게 30초 정도 여유 시간이 생기자 학생들은 드디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방금 뭐가 지나간 거야?”

“저런 서브를 사람이 칠 수 있는 거였어? 눈으로 보이지도 않아.”

“속도가 220km를 넘는 거 같지?”

“마이크의 최고기록이 213km잖아. 느낌 상 그것보다 훨씬 빠른 것 같아.”

“그러면 223~227km라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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