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57화 (57/241)

57화.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

‘설마 발리를 노릴 줄이야.’

발리를 주력으로 하는 플레이 스타일은 이미 한물간 구시대의 유산이다.

선수들의 피지컬과 라켓의 성능이 급격하게 향상되면서 현대 테니스는 베이스라이너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전략을 사용했다는 건 명백하게 지혁을 노린 행동이다.

‘닉이 조언한 내용이 이거였구나.’

과연 프로 테니스에 스윙 발리와 양손 백핸드를 보급한 사람답다.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다니.

사실 지혁은 전문가들과 코치들에게 발리를 지적받은 적이 제법 있었다.

발리의 숙련도가 서브, 스트로크, 풋워크와 비교하면 약간 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주 최악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지혁의 발리 실력은 평범한 탑랭커와 거의 비슷했으니 말이다.

단지 다른 기술들이 특출나게 뛰어났을 뿐이다.

‘어디까지 할 수 있나 한 번 보자.’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서브를 준비하는 지혁.

이제 상대의 의도를 알게 됐으니 똑같은 수법에 쉽게 당하진 않을 것이다.

통. 통. 통. 통.

몇 번의 바운드 후, 하늘 높이 토스되는 테니스공.

눈썰미가 좋은 몇몇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공의 낙하 각도가 약간 달라졌음을 눈치 챘다.

탕!!

잠시 후, 지혁의 서브가 엄청난 스핀이 걸린 채로 날아갔다.

데이비드는 빠르게 다리를 움직였지만 리턴 위치를 바꾸기에는 이미 한참이나 늦었다.

쿵! 서비스 코트에 바운드 되고 역방향으로 빠르게 튀어 오르는 공.

얼굴을 맞을 위기에 데이비드는 상체를 뒤로 빼며 몸을 움츠렸다.

다행히 리턴을 포기하고 거의 넘어질 것처럼 움직여서 서브는 옷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저게 골든 보이의 트위스트 서브구나. 실제로 보니 각도가 미쳤는데?”

“갑자기 저런 서브가 날아오면 아무도 못 받지. 방금 데이브도 공에 맞을 뻔 했잖아.”

“드디어 숨겨놓은 기술들을 사용하려는 모양이네”

“리의 플레이가 변할 걸 보면 확실히 닉의 전략이 효과가 있나 봐.”

“······이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거 아냐? 리가 저렇게 나온 이상 데이브가 남은 포인트를 따내기 힘들 것 같은데.”

학생들이 말한 것처럼 지혁은 남은 게임을 조금의 방심도 없이 철저하게 지켜냈다.

쿵!

빠른 속도로 사이드라인에 떨어지는 백핸드 스트로크.

“게임 리 1-0. 엔드 체인지.”

“후······.”

마침내 2세트 1게임이 끝나자 데이비드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네트 앞으로 달려갈 기회가 단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 지혁이 철저하게 견제를 한 결과였다.

이래서 프로 선수들이 다른 테니스 기술에 비해 발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리턴과 스트로크가 강하면 강할수록 찬스를 잡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플레이어 레디. 서브 해리슨.”

두 선수가 코트 교체하고 베이스라인에 자리 잡자 곧바로 경기가 다시 시작했다.

“수비가 너무 단단해서 빈틈이 보이지 않아.”

“그래도 데이브에게 서비스게임이 넘어왔잖아. 이제 서브 앤 발리를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서브 앤 발리? 잔디 코트도 아니고 힘들지 않을까?”

“골든 보이의 리턴 속도와 강력한 패싱샷을 생각하면 성공률이 낮을 것 같은데······. 그래도 다른 방법이 있는 게 아니잖아.”

“하앗!”

쾅!!

서비스 코트에 연달아서 떨어지는 데이비드의 서브.

하지만 하드 코트에서 서브 앤 발리 같은 무리수가 통할 리가 없었다.

중간에 딱 한 번 포인트를 따냈지만 그건 운이 좋아서 생긴 일이었다.

“게임 리 2-0.”

그나마 희망이 있었던 서비스게임까지 허무하게 브레이크 당하자 경기의 결과가 너무 뻔해졌다.

학생들은 데이비드의 기세가 빠르게 꺾여가는 모습에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이제 경기를 더 이상 지속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유리한 서브에서도 우위를 잡지 못하는데 남은 게임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그렇게 2세트가 3-0이 되어 휴식 시간이 주어졌을 때.

상황을 두고 보지 못한 코치 한 명이 닉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닉, 이 정도면 충분한 거 같은데. 그만하죠. 데이브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얼마 뒤에 열리는 ATP250도 참가해야 하잖아요. 컨디션을 생각해야죠.”

다른 코치들도 동의한다는 듯이 그의 말에 한마디씩 보탰지만 닉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그는 경기를 중단할 마음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한동안 설득이 이어졌지만 코치는 닉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휴식 시간이 끝나 코트 위로 올라가는 두 선수.

남은 3게임 동안 데이비드의 몰골은 점점 초췌해져갔다.

자기보다 한 살이나 어린 지혁에게 한 게임도 이기지 못하고 탈탈 털리다 보니 멘탈이 완전히 갈려버린 것이다.

아무리 상대가 골든 보이라고 해도 데이비드는 미국에서 최고의 유망주라고 평가받고 있는 선수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천재라고 찬사를 받았는데 더 큰 재능을 만나서 박살났으니.

당연히 상태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아마 그는 가치관이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거다.

“게임 세트. 매치 리 6-0, 6-0. 데이브, 수고했다.”

2-0, 베이글 세트로 끝나버린 경기.

일방적인 결말에 학생들은 박수를 치지 못하고 힐끔힐끔 눈치를 봤다.

데이비드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감지한 건지 라인심을 맡았던 중년의 코치가 조심스럽게 그를 데리고 훈련장을 떠났다.

터벅터벅.

주변의 상황에 관심이 없는지 무표정한 태도로 벤치로 걸어가는 지혁.

그 모습에 지혁의 전담 코치가 수건과 물을 챙겨준다.

“고생했다. 경기는 어땠어?”

“전략이 흥미로워서 꽤 만족스러웠어요.”

“방금 경기한 선수 이름이 데이비드라고 했지? 너랑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기본기가 정말 탄탄하더라.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의 명성이 거짓이 아니었어. 저만한 선수를 만들어 내다니.”

그는 데이비드가 미국에서 손꼽히는 유망주인 걸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탑랭커들을 분석하는 것도 시간이 부족한데 자국 출신도 아닌 주니어 선수의 이름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상대가 랭킹 100위 안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테니스 센스가 대단한 선수에요. 부상만 당하지 않으면 2년 안에 저 선수를 그랜드슬램에서 다시 만날 것 같아요.”

“지금 실력과 잠재력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네.”

지혁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코치.

사실 데이비드는 내년에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ATP랭킹이 70위까지 상승한다.

고작 1년 만에 믿을 수 없는 도약을 하는 것이다.

천재적인 재능과 엄청난 노력이 바탕이 돼서 만들어진 기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사실을 아는 건 오직 지혁 뿐이었다.

“리, 이리 와보겠나.”

코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지혁에게 손짓을 하며 부르는 닉.

드디어 복잡한 상황이 마무리 되었나 보나.

‘과연 어떤 코칭을 받게 될까.’

잔뜩 기대되는 마음 때문에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진다.

이 순간을 위해서 아카데미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촉박한 스케줄을 감수하고 이곳에 방문한 만큼 어떤 것이라도 얻어가야 한다.

‘이제 대회가 개최되기까지 4일인가.’

마이애미 오픈은 얼마 전에 참가한 인디언 웰스 오픈처럼 본선 진출자의 숫자가 총 96명이니 지혁은 2라운드에 자동으로 진출하게 될 것이다.

그것까지 고려하면 첫 경기를 치르는 건 정확하게 6일 뒤다.

‘2라운드 전날까지 경기장 근처에 도착해야 하고 하루 정도는 푹 쉬어야하니까······. 훈련은 4일 정도 할 수 있겠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단순히 보완해야할 부분을 찾는 거라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

만약 이번에 훈련을 마치지 못하면 비시즌에 다시 한 번 찾아오면 된다.

그때가 되면 거의 두 달 정도 여유가 생기니 말이다.

“리, 경기 잘 봤네. 훌륭한 실력이었어.”

“감사합니다.”

“짐과 앤드리가 자네를 왜 이리 극찬하나 했더니 이제 알겠어. 그 녀석들이 눈을 삔 건 아니었구만.”

닉은 한동안 지혁에게 칭찬을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방금 전 경기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나 보다.

“아카데미에 언제까지 머무른다고 했었지?”

“오늘을 포함해서 4일이요.”

“흠······. 시간을 맞추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겠어.”

***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에 도착하고 나흘.

지혁은 훈련장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닉의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개인 코칭은 전부 취소한다고 해도 닉스 키즈를 가르치는 일은 절대 뺄 수 없는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동안 닉과 붙어 다니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단순히 친선 경기를 하거나 스트로크를 연습하면서 시간을 보낸 게 아니라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세밀하게 장단점을 분석한 것이다.

비록 일정이 촉박해서 단점을 교정하는 일은 엄두도 못 냈지만 그것만으로도 적잖은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 발전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골든 보이.”

10분 정도 멍하니 학생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을 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카데미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제법 친해진 니시오카 요시히토다.

아직 95년생이라 미들 스쿨 3학년에 불과한 꼬맹이지만 이 녀석은 아카데미의 어지간한 하이 스쿨 선수와 실력을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뭐, 나중에 ATP랭킹 50위까지 올라가는 천재였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니시오카 무슨 일이야? 아, 정민이도 왔네.”

며칠 동안 지켜봤는데 두 사람은 학교에 얼마 없는 아시아 출신인데다가 나이마저 95, 96년생이라 붙어 다니는 일이 많은 것 같았다.

“심심해 보이는데 할 일이 없으면 우리랑 2:1 게임이나 하는 게 어때요? 규칙은 어제와 똑같이 하고요.”

“잠시만.”

부탁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선 시계를 확인하는 지혁.

그 모습에 니시오카는 약간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자신의 부탁이 거절당할 까봐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기우였다.

“닉의 코칭이 끝나려면 30분 남았네. 이 정도면 가능하겠다.”

“와! 그럼 저쪽 코트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지혁의 허락을 듣고 후다닥 달려가는 정민과 니시오카.

싱글벙글한 표정을 보면 어지간히도 기쁜 모양이다.

하긴 두 사람에게 골든 보이는 롤 모델이었으니 이런 반응을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저벅저벅

라켓을 챙겨 천천히 코트 위로 올라가자 다른 학생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며칠 동안 그들이 집요하게 경기를 부탁을 했지만 일정을 핑계로 전부 거절했기 때문이다.

지혁이 탑랭커가 되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어차피 지금 호의를 베풀어 봤자 프로 대회에서 만나게 되는 녀석들은 극소수야. 그럴 바에는 확실한 녀석들에게 시간을 집중하는 게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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