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61화 (61/241)

61화. 마이애미 오픈

마이애미 오픈의 18번 연습 코트.

지혁은 코치들이 느린 속도로 던져주는 공을 치고 있었다.

본격적인 훈련을 하기 전에 감각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아요. 이제 제대로 보내주세요.”

“알았어. 평소처럼 포핸드부터 시작하면 되지?”

“네.”

코트 좌우 베이스라인으로 흩어지는 코치들.

그 모습에 연습 코트까지 따라온 팬들은 기대하는 얼굴로 카메라와 휴대폰을 들었다.

아무래도 훈련 영상을 찍으려는 모양이다.

비스듬히 선 자세로 라켓을 휘두르는 코치.

전직 프로 출신이라 그런지 그의 스트로크는 정확하게 포핸드 위치로 날아왔다.

지혁은 바운드 후 빠르게 튀어 오르는 공이 정점에 달하자 몸을 회전시키며 포핸드를 사용했다.

탕!!

코트를 가득 채우는 경쾌한 임팩트 소리.

채찍처럼 크게 휘어지는 포핸드에 팬들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스트로크가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다.

“소문보다 더 대단하잖아······. 포핸드가 좋다고 듣기는 했는데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힘보다 컨트롤이 더 충격적인데. 저렇게 강력한 샷을 라인 위에 떨어뜨리는 건 어지간한 숙련도로 불가능해.”

“와······. 저게 천재구나. 골든 보이라는 별명이 정말 어울리네.”

지혁의 실력을 처음 보게 된 팬들은 홀린 표정으로 코트에 집중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경기장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웬만하면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도통 조용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유명한 선수라도 온 건가?’

지혁은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연습 코트로 들어오는 아는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방향으로 시선을 계속 고정하는 모습에 코치들은 이상함을 느꼈는지 주변을 둘러본다.

“무슨 일이야? 아는 사람이라도 찾았어?”

“연습 코트에 누가 온 것 같은데. 어? 저건 니시코리 케이잖아. 지혁이 하고 쿼터가 달라서 신경 끄고 있었는데 2라운드를 통과했구나.”

“지금 니시코리 랭킹이 몇 위더라?”

“35위 근처 일 걸? 최근에 부상 이슈가 있어서 슬럼프가 조금 있었잖아.”

“휘유, 그 정도면 엄청 높네. 아직 나이도 20살 밖에 안됐잖아.”

한때 아시아 최고의 재능으로 평가받던 선수의 등장에 일시적으로 시선이 모였다.

하지만 니시코리는 그런 관심이 익숙한 듯 일행들과 예약한 코트로 이동했다.

멈칫.

그렇게 걸어가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는 니시코리의 일행.

그들은 이제야 지혁을 발견한 건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안면이 있는 사이도 아니라서 굳이 접근하지는 않았다.

마이애미 오픈에서 탈락하지 않은 이상 그들은 엄연히 경쟁자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결론을 내렸는지 고개를 살짝 숙이는 니시코리.

지혁이 같은 방법으로 인사를 받아주자 그는 몸을 돌려 코트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훈련을 하려는 모양이다.

“다시 훈련이나 하죠.”

“그래. 내일 경기를 생각하면 놀고 있을 시간이 없지.”

별 일 없이 상황이 끝나자 연습 코트에서는 다시 임팩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관중들도 다시 지혁에게 집중했다.

아무리 니시코리가 유명한 선수라고 해도 골든 보이의 실력과 명성에 비하면 몇 수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

지혁과 니시코리가 연습 코트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퍼진 것 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관중석은 새로 온 팬들로 인해 빠르게 채워졌다.

신기하게도 팬들의 비율은 동양인들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보통 테니스 관중들 대부분이 백인인 걸 고려하면 생소한 광경이다.

탕!!

백핸드로 다운 더 라인을 치고 나서 벤치로 걸어가는 지혁.

코트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코치는 곧바로 라켓을 대신 들어주며 수건을 전달했다.

벤치와 관중석이 그리 멀지 않아서 일까.

등 뒤에서 팬들의 목소리가 꽤 뚜렷하게 들린다.

일본어로 여러 가지 말을 빠르게 쏟아내는데 원정을 다니며 기초적인 회화를 배워둬서 대강은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와, 실제로 보니 진짜 잘생겼다. 영화배우 같아.”

“실력은 별로인 거 같은데? 지금처럼 유명해진 데는 분명히 얼굴이 큰 역할을 했을 거야.”

“직접 경기를 보고나면 유즈키도 생각이 달라질 걸······. 경기장에서 골든 보이의 모습은 정말 대단하다고.”

“나는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믿지 않을래. 아직 16살인데 니시코리상보다 평판이 높다니 말도 안 돼.”

“유즈키도 참······.”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일본인 여자 두 명은 지혁이 일본어를 못 알아 듣는다고 생각한 건지 전혀 눈치를 보지 않고 대화했다.

그나마 한 명이라도 편을 들어 줘서 다행이다.

자국의 선수를 밀어내고 아시아 최강의 자리를 차지한 선수에게 악감정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사실 유즈키의 반응과 다르게 일본에서 지혁의 인기는 굉장히 높았다.

잘생긴 외모와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실력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알려진 덕분에 테니스 팬들이 아닌 사람들까지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불리는 별명이 테니스의 왕자님이었으니 지혁에 대한 평판이 얼마나 호의적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 보여줄 수도 없고 아쉽네.’

경기라도 잡혀 있다면 당장 확인시켜 줄 텐데.

이지혁 VS 니시코리 케이라는 대결 구도는 이때까지 많이 언급되었다.

두 사람이 아시아 1, 2등을 나란히 차지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팬들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객관적으로 커리어와 랭킹을 비교했을 때 누구의 실력이 더 위에 있는지는 너무나 뻔했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일본 팬들은 유즈키처럼 직접 붙어보기 전까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 지혁이 앉아 있는 벤치 근처로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연습 코트는 경비가 철저하게 지키고 있으니 아마 대회 관계자 일 것이다.

곧 코치들 중 한 명이 용건을 물어보러 마중을 나갔다.

‘알아서 처리하겠지.’

지혁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여기고 이내 신경을 껐다.

그렇게 일분 쯤 지났을까.

“이것 참······. 지혁아, 흥미로운 제안이 왔다.”

“······?”

“니시코리 쪽에서 연습 경기를 하자고 하네.”

“아직 탈락한 사람도 없는데요?”

“쿼터가 완전히 떨어져서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너랑 니시코리는 1, 3쿼터라서 결승에 진출하지 않는 이상 붙을 일이 없잖아.”

“확실히 대진표가 그렇게 짜여 졌으면 이번 대회에서 만나는 일은 없겠네요.”

“그래서 제안을 받을 거냐? 잘 생각해봐 너한테도 좋은 일이야.”

“잠깐만요.”

코치의 질문에 지혁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득실을 차분하게 따져봤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수락하고 싶었지만 괜히 급하게 결정했다가 시간을 낭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코치를 한 번 거친 만큼 손해가 될 확률은 매우 낮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음······. 니시코리의 플레이 스타일이 페레로와 똑같은 올라운더였지.’

분명히 두 선수 모두 특별한 무기는 없지만 견고한 테니스를 쳤던 걸로 기억한다.

마침 키도 페레로가 183cm, 니시코리가 178cm로 탑랭커치고 작은 편이다.

‘······그러고 보니 페레로와 느낌이 거의 비슷한데?’

뭔가 이상하지만 자세하게 파고들수록 비슷한 부분이 많다.

이 정도면 경기 파트너로 가치가 충분할 정도로 있다.

역시 코치가 좋은 일이라고 한 건 이유가 있었구나.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럼 수락한다고 전달한다?”

“네.”

그렇게 연습 코트를 코치들이 왔다갔다하자 관중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유즈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몰라, 같이 훈련이라도 하려는 거겠지.”

“골든 보이와 니시코리의 훈련이라······.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잖아.”

“이번 기회에 누가 위에 있는지 제대로 알려줬으면 좋겠네. 겸사겸사 빼앗긴 별명도 되찾고 말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니시코리가 지혁의 코트로 걸어왔다.

그 모습에 관중들은 드디어 상황을 파악한 것인지 커다란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정말 유즈키가 말한 대로 이루어졌어! 빨리 카메라로 녹화하자. 이걸 보면 마이애미 오픈에 오지 못한 친구들도 엄청 좋아할 거야.”

“으···응. 알았어.”

생각 없이 내뱉었던 말이 진짜로 이루어지자 당황한 표정을 짓는 유즈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마음을 다잡은 건지 입술을 앙 다물었다.

만약 경기를 하더라도 이기게 되는 건 니시코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관중석에서 여러 가지 얘기가 오가고 있을 때.

정작 당사자들은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반가워. 매번 TV로 봤는데 드디어 실제로 보게 됐네.”

“저도 반가워요. 니시코리.”

“거절당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친선 경기를 흔쾌히 받아들이더라? 무슨 이유라도 있어?”

“제 3라운드 상대가 페레로라서요. 니시코리는 상대가 어떤 선수길래 저한테 제안한 거예요?”

“네가 호주 오픈에서 꺾은 선수야. 마린 칠리치.”

“아······.”

지혁은 칠리치의 이름을 듣고 아주 잠깐 멈칫했다.

얼마 전에 승리를 따냈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때가 아마 호주 오픈 32강이었을 것이다.

“요즘 칠리치의 폼이 대단하죠?”

“맞아. ATP랭킹이 몇 단계나 올라서 지금 9위더라. 전문가들은 내가 이길 확률이 20%가 되지 않는데.”

“고속 서브만 해결하면 승산이 있을 거예요.”

“후······.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 문제지.”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받는지 고개를 젓는 니시코리.

그와 델 포트로, 마린 칠리치는 비슷한 나이대의 천재 유망주라서 항상 비교를 당하고 있는 만큼 부담이 큰 모양이다.

“제 서브는 칠리치랑 비교하면 많이 부족할 거예요.”

“아니, 너도 빅 서버 축에 속하니까 큰 도움이 될 거야. 220km가 넘는 서브라니. 나한테는 정말 꿈같은 속도야.”

니시코리는 키가 작다 보니 서브가 200km가 넘지 못했다.

테니스는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피지컬이 부족하면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열악한 조건을 가지고도 결국 뼈를 깎는 노력과 뛰어난 테크닉으로 ATP랭킹 4위까지 찍게 된다.

그랜드슬램은 준우승에 그쳤지만 8강은 총 9번이나 진출했고 말이다.

과거에 국적을 가리지 않고 모든 테니스 팬들이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한 건 전부 이유가 있었다.

“그러면 서브 위주로 플레이하면 될까요?”

“맞아. 너는 원하는 스타일이 있어?”

“니시코리는 올라운더니까 평소대로 해주시면 돼요.”

“아, 상대 선수가 페레로라고 했지.”

두 사람은 어떤 스타일로 경기를 할지 조율이 끝나자 곧바로 코트 위로 올라갔다.

계속 잡담을 하는 것도 괜찮았지만 연습 경기가 너무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선수와 아무런 제약 없이 대결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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