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68화 (68/241)

68화. 마이애미 오픈

‘······송가의 실력이 이 정도로 뛰어났나.’

전광판의 스코어를 확인하며 숨을 돌리는 지혁.

이제 한 포인트만 더 빼앗기면 1세트가 4-4, 동률이 된다.

쾅!!

지혁은 간신히 송가의 서브를 받아내며 스트로크 대결을 이어나갔지만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경기 초반 같았으면 지금쯤 위너를 따냈을 건데.

“하앗!”

탕!!

사이드라인을 절묘하게 공략하는 송가의 한 손 백핸드.

[게임 송가 4-4.]

자신이 당했던 똑같은 기술로 지혁에게 복수하는 모습에 관중들은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송가는 경기 감각이 정점에 달했는지 두 게임 전부터 한 손과 양손을 겸용하며 백핸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지혁처럼 두 가지 자세가 완벽하게 동일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가끔씩 공격 옵션으로 활용하기에는 넘치고도 남을 정도다.

‘재수 없으면 듀스가 되겠는데······.’

지금 흘러가는 상황을 보면 높은 확률도 그럴 것 같았다.

지혁은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을 볼키즈에게 전달받은 수건으로 대충 닦으며 다음 서비스게임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비장의 무기가 남아있다면 당장이라도 꺼내겠지만 1세트 초반부터 전력을 다한 터라 숨겨둔 기술이 하나도 없다.

이제와서 변칙 플레이를 고집한다고 해도 이미 송가가 완벽하게 적응한 후라 큰 효과가 없을 것이다.

‘순수한 위력으로 따지면 양손 백핸드가 훨씬 나아. 차라리 원래 스타일로 돌아가자.’

1세트 후반까지 꼼수로 재미를 봐왔는데 그것도 이제 끝인 모양이다.

[서브 리.]

지혁은 심판의 콜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서브를 준비했다.

이번 게임이 중요한 건 송가도 충분히 알고 있는지 한층 진지한 모습으론 리턴 자세를 취한다.

커다란 덩치의 송가가 그렇게 있으니 어딜 공격해도 공이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몸을 짓눌렀지만 이대로 시간을 끌 수는 없다.

“후우······.”

심호흡을 길게하며 공을 토스하는 지혁.

팽팽하게 당겨진 활 시위 같은 자세가 빠르게 풀려나오자 220km가 넘는 서브가 순식간에 코트 위로 떨어졌다.

“하앗!”

탕!!

하지만 송가는 고속 서브가 적응된 건지 리턴을 아무런 위기 없이 성공했다.

‘불길한데······.’

생각보다 능숙한 대처에 지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서비스게임이 순탄하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게임 송가 5-4.]

불길한 예상이 적중한 것인지 서비스게임은 결국 송가에게 브레이크 당하고 말았다.

아홉 번째 게임이 끝나고 잠깐 동안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 두 선수가 각자의 벤치로 돌아간다.

털썩.

터벅터벅 벤치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는 지혁.

그는 본능적으로 1세트에서 패배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1세트 마지막 게임이 송가의 서브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브레이크를 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상황이 달라질 리 있겠는가.

만약 1세트를 빼앗기면 경기에서 이길 가능성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설마 여기서 패배를 쌓게 될 줄이야.’

지혁이 프로에 데뷔하고 이때까지 승리하지 못했던 경기는 신계의 선수로 평가받는 앤디 머레이, 라파엘 나달을 상대했던 두 번뿐이었다.

그런데 인간계 최강의 라인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송가에게 8강 진출을 내어주다니.

나름 대로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었나 보다.

씁쓸한 기분에 지혁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볼 키즈도 분위기를 느꼈는지 행동을 조심했다.

‘16강이 한계인가······.’

냉정하게 자신의 기량을 고려했을 때 16강이 적정선이라는 건 안다.

대진이 정말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 이상 마스터즈급 대회에서 8강에 진출하는 일은 앞으로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마음대로 조절되는 게 아니다.

바로 눈앞에 더 높은 고지가 있는데 그걸 포기하고 지금의 위치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 대회를 생각하면 2세트부터 컨디션 조절을 해야겠지.’

10일 뒤에 참가할 몬테 카를로 오픈이 있으니 정석대로 행동하면 무리하지 않고 체력을 아끼는 게 맞다.

마스터즈는 올해만 해도 8개가 더 남아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제외해도 그랜드슬램, ATP500과 250, 이벤트 대회까지 기다리고 있어서 11월 말까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일정이 많다.

프로 선수가 기량 저하 없이 시즌을 제대로 보내려면 컨디션 조절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일이다.

매번 전력으로 뛰어다니면서 이 많은 일정을 소화하는 건 언터쳐블의 실력을 가진 빅3라도 불가능하다.

흙신이라고 불리는 나달도 무리한 일정 때문에 마스터즈에서 무릎을 다치지 않았는가.

큰 부상 없이 10년 이상 프로 활동을 하려면 경기는 적당히 플레이하는 게 맞다.

꽈아악-

‘어쩔 수 없나.’

오랜만에 느끼는 패배감에 주먹을 강하게 쥐며 생각을 정리하는 지혁.

만약 그의 나이가 정말로 16살이었다면 이런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지혁은 단순한 고등학생이 아니라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후에 20대 후반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온 베타랑 선수였다.

필요하다면 자존심을 굽히고 얼마든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고 기분이 괜찮은 건 절대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게 지혁이 경기를 내심 포기하고 있을 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들리며 익숙한 글자가 나타났다.

띠링

[이지혁]

근력: 75 민첩: 75 체력: 75 신장: 188cm▲

서브(A), 포핸드(A+), 백핸드(A), 풋워크(A), 외모(A-), 트릭샷(A-), 찰나(F-)

[112,301포인트]

‘······이게 왜?’

분명 어플을 따로 불러들인 적이 없는데.

지금 상황에서 10만밖에 안 되는 포인트를 투자한다고 바뀌는 건 없다.

지혁은 오류라고 생각하며 어플을 닫으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잠깐······. 이게 뭐지? 찰나?’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항목이다.

경기가 끝나고 습관처럼 매일 꾸준하게 어플을 확인하는 지혁이 착각할 리가 없다.

이건 방금 전에 생긴 기술이 분명하다.

‘알림이 들린 이유가 있었구나. 바브린카와 경기를 할 때도 이랬었지.’

그 당시 100만 포인트가 모이면서 어플의 1차 제한이 풀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면 이번에 2차 제한이 풀린 건가?’

따로 알림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지혁은 혹시나 해서 어플을 샅샅히 살펴봤다.

‘······아니구나.’

아쉬운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는 지혁.

그래도 새로운 기술이 생긴 만큼 완전히 실망할 건 아니다.

‘우선 이것부터 확인해 보자.’

어플에 시선을 집중시키자 지혁의 눈은 멍하게 풀렸다.

갑자기 생소한 기억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감각은 너무나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다.

정보가 많지 않아서일까 1~2초가 지나자 머릿속이 빠르게 정리된다.

‘······정말 이런 게 가능하다고?’

지혁은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어플을 노려보다가 남은 휴식 시간을 확인하더니 곧바로 찰나에 포인트를 투자했다.

이 기술이라면 송가에게 역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찰나가 F등급이 되었습니다.]

[찰나가 F+등급이 되었습니다.]

······.

[찰나가 D-등급이 되었습니다.]

기술의 등급이 D-에 달했을 때.

옆 자리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가 들렸다.

“리! 휴식 시간이 끝났습니다. 이제 코트 위로 올라가야 해요.”

‘······휴식 시간? 아!’

희미하게 들리는 음성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무래도 시간 계산이 약간 틀린 모양이다.

포인트를 투자하고 있을 때는 외부의 자극에 전혀 반응하지 않아서 이상하게 보였을 거다.

지혁은 시야가 돌아오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체어 엠파이어에게 사과했다.

천만다행으로 시간이 별로 흐르지 않은 것 같았다.

패널티로 포인트를 차감하지 않는 걸 보면 길어야 10초 정도일 것이다.

뒤늦게 코트 위로 올라가자 송가와 관중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본다.

꾸벅.

그래도 지혁이 라켓을 들며 사과하는 제스쳐를 보여주자 송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서브를 준비한다.

‘이제 실전에서 통할지 직접 시험해보자.’

설명을 보면 랭크가 낮아도 분명 효용이 있을 것이다.

상체를 낮추고 리턴을 준비하자 곧바로 140마일이 넘는 고속 서브가 날아온다.

저 무시무시한 서브에 에이스를 수도 없이 당했었지······.

‘찰나!’

시간을 약간 남겨두고 곧바로 기술을 사용하는 지혁.

그러자 주변의 풍경이 이질적으로 변했다.

영화에서 슬로우모션을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느릿하게 보였던 것이다.

‘정말로 되는구나.’

지혁은 서브의 궤적을 확인하면서 천천히 다리를 움직였다.

아무래도 기술을 사용하면 당사자도 빠르게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쓸데없는 동선과 군더더기가 사라진 것만으로 풋워크는 엄청나게 향상되었다.

쿵!!

순식간에 바운드 위치에 도착해 테이크백 자세를 취하자 공이 바운드되어 엄청난 속도로 튀어 오른다.

하지만 여유롭게 준비하고 있었던 만큼 그 공격 받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 없었다.

탕!!

그렇게 양손 백핸드를 사용하자 마치 스트로크 연습을 하는 것처럼 착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임팩트가 제대로 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빠르게 날아간 리턴은 송가의 왼쪽 코트의 사이드라인을 정확하게 때리고 지나갔다.

속도는 물론 코스까지 완벽에 가깝다.

저건 어떤 선수가 와도 받을 수 없는 리턴이다.

[러브 피프틴.]

웅성웅성.

관중석은 그림 같은 리턴 에이스에 시끄러워졌다.

지혁의 움직임이 소름 끼칠 정도로 완벽했기 때문이다.

전광판에 찍힌 142MPH의 숫자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228km의 서브를 여유롭게 받아 치다니.

대체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이 얼마나 좋단 말인가.

송가도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다.

분명히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겠지.

주변에서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지만 정작 지혁은 찰나에 포인트를 투자하고 있었다.

‘이런 짜투리 시간을 사용하면 등급을 하나라도 더 올릴 수 있을 거야.’

호주 오픈에서 몇 번 시도해본 경험이 있어서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찰나의 등급이 너무 낮아서 시간이 남을 정도다.

[찰나가 D등급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올라가는 기술의 등급.

지혁은 계획했던 대로 상황이 흘러가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리턴을 준비했다.

‘앞으로 세 포인트만 얻으면 듀스야.’

비록 게임 스코어가 5-5가 되면 한쪽이 7-5를 먼저 달성하거나 6-6에서 타이브레이크를 해야 하겠지만 지금이라면 뭐든지 자신있다.

새로운 무기를 얻었는데 상대가 송가라고 두려울리 있겠는가.

지혁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자 코트 주변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볼 키즈와 보조 심판들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무런 근거가 없지만 상황이 뒤바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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