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69화 (69/241)

69화. 마이애미 오픈

지혁의 리턴 에이스가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한 걸까.

송가는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더니 별다른 변화 없이 다시 경기를 시작했다.

아무리 상대가 최고의 재능으로 평가받는 골든 보이라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고작 몇 분 만에 실력이 상승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흐읍!”

쾅!!

[SERVE SPEED 143MPH]

전광판에 230km의 속도를 찍으면서 오늘 경기의 최고기록을 달성한 송가.

역시 컨디션이 최상이라고 생각했던 게 착각이 아닌 모양이다.

하긴 마이애미 오픈은 시즌 초반에 열리는 대회라서 잔부상으로 경기력이 하락하기에 시기가 너무 이르긴 했다.

타다다다!

지혁은 느려진 세상 속에서 코트를 빠르게 달려갔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느낌에 온 몸에서 전율이 흐른다.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이기지 못할 선수가 없을 것 같았다.

탕!!

완벽하게 들어간 백핸드에 다시 한 번 성공하는 리턴 에이스.

[러브 서티.]

‘······이길 수 있어.’

포인트를 완벽하게 앞서가자 기존에 가지고 있던 확신이 더 단단해진다.

지금처럼만 하면 무조건 승산이 있다.

‘브레이크 당한 게임을 다시 찾아오자.’

지혁은 득점을 했음에도 아무런 환호도 하지 않고 묵묵히 베이스라인으로 돌아갔다.

다음 리턴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관중들과 송가는 그런 지혁의 모습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쿵!!

[게임 리 5-5. 듀스.]

“허억···허억···.”

포핸드 잭 나이프로 브레이크를 성공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지혁.

고난이도 기술도 찰나를 쓰니까 실수하는 일 없이 얼마든지 사용이 가능해졌다.

‘게임이 길었던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들지······.’

지혁은 미세하게 경련하는 오른팔을 등 뒤로 빠르게 숨겼다.

웬만하면 송가에게 지금 상태를 들키기 싫었기 때문이다.

‘기술을 너무 남용한 부작용인가.’

천천히 효과가 나타나서 눈치 채지 못했는데 이 정도 피로감이면 적어도 2세트 중후반과 비슷하다.

이때까지 찰나를 총 4번 사용했으니까······.

기술 한 번에 2~3 게임을 뛴 것과 비슷한 체력이 소모되는 모양이다.

‘······효과가 뛰어난 만큼 패널티가 엄청나구나.’

고작 4번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여파가 크다니.

앞으로 찰나를 함부로 남용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물론 등급이 올라가면 어느 정도 보완이 되겠지만.

패널티가 얼마나 줄어들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마 기술의 효과가 상당한 만큼 높은 등급을 달성해도 제약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투두둑.

축축한 액체가 떨어지는 느낌에 상념을 중단하는 지혁.

얼굴을 손으로 슬쩍 훑어보니 붉은색의 무언가가 묻어 나온다.

‘이건 피잖아······. 어디서 다친 거지?’

황급히 상처를 찾아보니 코피가 난 게 원흉이었다.

아무래도 너무 무리한 움직임 때문에 비강의 혈관이 터진 모양이다.

혈압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가면 이런 일이 가끔 있어서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다.

이런 작은 상처는 딱히 후유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앗!”

지혁이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얼굴을 닦아내자 볼 키즈가 드디어 피를 발견한 건지 놀란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경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에 몰려들었다.

관중들은 아직도 피를 뚝뚝 흘리는 지혁을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봤다.

엄청난 실력을 발휘하던 골든 보이가 부상을 입었을까 걱정한 것이다.

수건으로 계속 압박하고 있음에도 출혈이 좀처럼 멈추지 않자 지혁은 어쩔 수 없이 메디컬 타임을 요청했다.

이 상태에서 서브를 하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체어 엠파이어도 눈이 달려있는 만큼 지혁의 정당한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다.

단순한 근육경련이나 체력 고갈이었다면 메디컬 타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겠지만 출혈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차라리 잘 된 건가······.’

눈에 띄는 부상이 없어서 엔드 체인지나 1세트가 종료되고 메디컬 타임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이번 기회에 포인트를 마음껏 투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지혁은 3분 동안 지혈 치료를 받으며 어플을 사용했다.

“리, 이제 20초 남았어요. 슬슬 준비해주세요.”

의료진의 도움으로 피가 완전히 멈추자 체어 엠파이어는 손목의 시계를 두드리며 시간을 알렸다.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제한 시간을 초과하면 벌금을 맞거나 심하면 포인트, 게임을 잃을 수 있었다.

이제 수천만 원쯤은 아무렇지도 않아서 조금 밍기적거릴 수도 있지만 굳이 규정을 어기면서 그럴 필요는 없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메티컬 타임이 10초 정도 남았을 때.

지혁은 의료진들을 뒤로 하고 코트 위로 올라갔다.

느릿한 걸음으로 베이스라인에 도착하자 볼 키즈가 테니스공을 건네준다.

‘정말 중요한 상황에서만 사용해야겠어. 한 게임당 사용 횟수를 1회로 줄이자.’

이걸로 송가를 완벽하게 제압하는 건 분명히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고작 1경기를 이기기 위해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건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그나마 서비스게임이 내 차례라서 다행이네.’

이번에도 수비하는 입장이었다면 곤란한 처지에 처했을 텐데.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벗어낫다.

‘브레이크를 당할 확률은 20% 정도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지혁은 왼손으로 테니스공을 토스했다.

***

비슷한 시간, 한국의 KBC 방송국.

해설자들은 지혁이 의료진에게 치료받는 모습을 중계 화면으로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몸이 안 좋은 걸까요. 코피를 흘리는 모습은 처음 보는데요······. 부디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관절이나 인대 쪽이 아니라서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단순히 체력 문제일 거예요]

[그런데 이지혁 선수는 메이저 대회에 참가하는 다른 탑랭커와 비교해도 체력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이상하네요. 호주 오픈에서도 5시간이 넘는 경기를 거뜬하게 버텼잖아요.]

박 해설은 이 해설에게 동의하지 않는 듯 고개를 저으며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저는 이번 시즌에 이런 이슈가 터질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아무리 전례가 없는 천재라고 해도 프로에 데뷔한 기간이 길지 않잖아요. 컨디션이 망가지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나이까지 어려서 1년 동안 데미지가 꽤 많이 쌓였을 겁니다.]

그의 말대로 괜히 유망주들이 더 많은 대회에 참가할 수 있음에도 스케줄을 조절하는 게 아니다.

모두 성장기에 원치 않는 부상을 당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지혁 선수가 너무 과도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만약 주니어 대회나 퓨처스, 챌린저라면 이런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랜드슬램과 마스터즈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경기 상대라서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차원이 다릅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지만 솔직히 지혁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지혁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10년 이상 프로 활동을 했던 베테랑이었기 때문이다.

방금 코피도 무리한 대회 일정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찰나를 남용한 부작용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시청자들과 전문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워낙 성과가 좋아서 쉬쉬하고 넘어갔지만 이번 일이 수면 위로 떠올랐으니 뭔가 말이 나올 확률이 높다.

실제로 커뮤니티는 벌써부터 지혁의 출전 횟수를 조절해야 한다는 댓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ㅡ 이러다가 큰일 날 거 같은데. 진짜 다칠까 봐 무섭다··· 갑자기 기사 뜨는 건 아니겠지.

ㅡ 고2가 일주일 간격으로 마스터즈 대회 참가할 때부터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긴 했어. 테니스처럼 격한 운동을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하는데 당연히 몸이 고장나지.

ㅡ 한국에서 처음으로 나온 세계급 재능인데 보호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ㅡ 대체 누가 지혁좌 혹사시키는 거냐?

ㅡ 자기 선택이지 야구처럼 감독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이지혁 지금 랭킹 올라가는 속도에 뽕 맞아서 누가 브레이크 잡아줘야할 듯.

ㅡ ㅇㅈ 괜히 부상 때문에 수술하게 되면 실력이랑 랭킹 수직하락 할지도 모른다. 그때 가서 후회해봤자 아무런 소용없음.

ㅡ 이러다가 니시코리처럼 유리몸된다고 ㅠㅠ 제발 몸 좀 사려라.

ㅡ 협회 차원에서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말로만 유망주 키운다 하지 말고 이지혁이나 제대로 지키지.

ㅡ 걔들은 그냥 가만있는 게 도움되는 건데. 어느 스포츠든 협회 끼어들어서 좋게 끝났다는 소리 못들어 봄.

ㅡ 애초에 선수 본인이 마음 먹지 않는 이상 방법 없다. 테니스는 개인 스포츠라서 구속할 방법이 없음. 축구, 야구처럼 구단도 없잖아.

ㅡ 가까운 지인들이 설득하는 수밖에 없겠네. 이지혁 아는 사람있으면 우리 괜찮으니까 쉬엄쉬엄하라고 해라.

ㅡ 걔 고등학생이라서 여기에 친구 있을지도 모른다. 윗 댓 말처럼 충고 좀 제대로 해줘라.

서울에 위치한 어느 가정집의 거실.

“······확실히 요즘 무리하긴 했어. 주의하지 않으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말해줘야겠다.”

지연은 TV로 지혁이 치료받는 모습을 뚫어져라 보면서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비교할 선수가 없을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빨라서 서두를 필요가 없을 텐데.

“대회 참가는 내가 말려도 소용 없겠지. 지혁 오빠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호주 오픈으로 유명해지기 전에도 지혁은 테니스가 마치 인생의 모든 것이라는 듯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훈련에만 집중했다.

솔직히 옆에서 보면 감정이 없는 기계로 보일 정도였다.

그런 사람이 누가 말린 다고 자기가 정해놓았던 계획을 바꿀 리가 없다.

달칵.

“지연아, 아직도 안 자?”

지연이 지혁에 대한 복잡한 생각을 하며 멍하니 TV를 보고 있을 때.

거실 근처의 방문 열리며 조그마한 머리가 쏙 나왔다.

“아, 언니. 이것만 보고 잘게.”

“뭔데?”

지연의 언니, 수연은 문을 열고 쇼파로 빠르게 다가왔다.

평소에는 아무리 늦어도 10시에 잠을 자는 동생이 과연 뭘 보고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테니스? 이지혁이잖아?”

“응. 아는 오빠거든. 응원하려고.”

“······뭐!? 너···너 저 사람이랑 아는 사이였어? 대체 어떻게?“”어? 내가 같은 아카데미에 다닌다고 말하지 않았었나? 테니스를 엄청 잘하는 오빠가 있다고.”

“분명 그런 말을 듣긴 했지만 그게 이지혁이라고는 안 했잖아······.”

어떻게 이때까지 숨길 수 있었냐는 듯 억울한 표정을 하는 수연.

“진작 알려줬으면 사인이라도 받았을 건데······. 너 그러면 이지혁 선수랑 많이 친한 거야? 연락처는 있고?”

“음······. 조금? 훈련에 방해될까 봐 매일 전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주 연락하고 있어.”

수연은 자신이 알던 동생이 맞는지 지연의 볼을 쭉 늘려봤다.

“꿈은 아니겠지?”

얌전한 고양이가 먼저 부뚜막에 올라간다고 하더니.

설마 지연이 몰래 이지혁이라는 스포츠 스타와 연락을 하고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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