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74화 (74/241)

74화. 마이애미 오픈

[포티 서티. 세트 포인트.]

찰나를 사용하면서 철저하게 서비스게임을 지킨 덕분일까.

어느새 지혁은 1세트의 승리까지 단 한 포인트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체력도 예상했던 범위 안이야. 이 정도면 2세트도 기량저하 없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겠어.”

만약 경기가 3세트까지 진행되거나 듀스, 타이브레이크가 연달아 생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지 않다.

“후우······.”

심호흡을 크게 하며 테니스공을 토스하는 지혁.

쾅!!

번개처럼 쏘아진 서브는 서비스라인 안에 여유롭게 안착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나달 같은 정상급 선수에게 에이스를 얻기는 부족했는지 곧바로 리턴이 돌아온다.

‘리턴 코스가 정면이네. 세트 포인트는 서브 앤 발리로 끝내면 되겠어.’

비록 발리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기술이지만 믿을 만한 보험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침 서브를 넣은 위치도 애드 코트, 왼쪽 방향이라서 포핸드를 치기에 딱 좋다.

탕!! 곧 네트 앞에서 임팩트 소리가 들렸다.

지혁의 발리가 성공적으로 들어간 것이다.

[···세트 리.]

공이 라인 안에 들어갔다고 확신하지 못하는지 체어 엠파이어는 라인심을 잠시 지켜보다가 결정을 내렸다.

“챌린지!”

심판의 콜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검지를 들어 챌린지를 요청하는 나달.

아무래도 세트가 끝나면 챌린지 횟수가 초기화되니까 이번 기회에 사용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짝. 짝. 짝. 짝.짝.짝.

관중들은 이글아이 카메라로 찍힌 바운드 장면이 전광판에 나타나기 전까지 박수의 속도를 점점 높였다.

경기장의 모든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을 때.

드디어 분석이 끝난 건지 3D로 녹화된 지혁의 샷이 슬로우모션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인! 세트 리!]

“아자!!”

타구의 그림자를 확인하고 원심을 그대로 유지하는 체어 엠파이어.

5mm 차이로 발리가 들어간 게 확실해지자 지혁은 두 손을 들며 포효했다.

그 확실한 증거에 나달도 반발하기 힘든지 고개를 저으며 벤치로 돌아갔다.

***

별다른 위기 없이 지혁의 승리로 끝난 1세트.

나달이 무난하게 제압되는 상황이 연출되자 한국의 테니스 커뮤니티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조금씩 흘렀다.

그저 상상만 했던 일이 진짜로 실현될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ㅡ 이지혁이 1세트 6-3으로 압살했다 ㄷㄷㄷㄷ

ㅡ 고2가 흙신을 찢어버리네 ;; 라파엘 나달 컨디션도 멀쩡한 것 같은데 이거 왜 이렇게 된 거냐?? 출근하느라 띄엄띄엄 봐서 모르겠다.

ㅡ 왜 이렇게 되긴 실력으로 찍어 누른거지 이지혁 오늘 경기력 미쳤음.

ㅡ ㅇㅈ 상대가 나달이라서 그런가 진짜 역대급인 거 같다. 평소보다 훨씬 잘함. 아마도 작두 타는 날인가 봄 ㅋㅋ

ㅡ 지금 기량 그대로 유지하면 페나조 3인 왕조 무너트릴 수 있냐? 앤디 머레이랑 델 포트로는 바를 수 있을 것 같은데 ㅋ

ㅡ 걔들 APT랭킹 3위, 5위 아님?

ㅡ ㅇㅇ 요즘 빅3 제외하면 이 두 명이 테니스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잖아.

ㅡ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그건 무리지. TOP10 선수들도 빅3 통산 승률 10~20%다. 스타성이나 퍼포먼스는 인정하겠는데 지금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어.

ㅡ 진짜 여기 테알못들 많네 어디 흙신하고 이지혁을 비교하냐? 좀 있으면 바로 역전되니까 괜한 기대하지 마라 ㅋㅋㅋ

ㅡ 라파가 아직 몸이 덜 풀려서 그런 거잖어. 솔직히 제대로 붙으면 이지혁 아무것도 아님. 그러니까 이제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하자 ^^

ㅡ 나달아 형 월세 내야 한다고 이 돈 너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한테 큰 금액이다. 제발 봐주지 말고 프로 정신 좀 발휘해.

ㅡ 위에 댓글들 어제 나달한테 50만 원 걸었다고 하지 않았음? 익숙한 아이디인데 ㅋㅋㅋㅋ

ㅡ 어 진짜네 ㅋㅋㅋㅋ 지금 한강물 수온 9도다. 멀리 안 나갈 테니까 옷 두껍게 입고 출발해라 ㅋㅋㅋ

ㅡ 와 이지혁 배당 6.32라고 하던데 역배충들 오랜만에 횡재했네 ;; 소고기 사 먹을 듯

ㅡ 매국노들 컷! 이 맛에 내가 애국 배팅을 하는 거지 역시 정의는 승리한다 ㅋㅋㅋ

커뮤니티에서 마이애미 오픈의 시청자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을 때, 같은 시간 서울의 어느 원룸 안.

“이지혁이 이긴다고? 이러면 안 되는데······.”

한국대학교 테니스 특기생, 김주영은 어딘가 초조한 기색으로 TV를 노려보고 있었다.

경기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4강에 진출하겠잖아. 하필이면 왜 오늘 작두를 타는 거야?”

평소 지혁의 실력이었다면 절대 이런 스코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로저 페더러와 동급으로 분류되는 나달이 프로 데뷔를 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루키에게 패배하다니.

이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내 200만 원······.”

이러다가 퓨처스에 참가하려고 모아둔 돈이 한순간에 전부 날아갈 판이다.

나름 테니스를 잘 알고 있어서 36만 원을 거저먹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자신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저 괴물 같은 녀석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정말 인간이 맞기는 한가. 고등학생이 나달을 이기는 게 말이 되냐고.”

아무리 스포츠 세계에서 천재라는 불합리한 존재들이 있다고 하지만 저건 해도해도 너무하다.

저 녀석과 비슷한 나이대의 유망주들이 챌린저 대회에만 출전해도 주목받는 게 테니스라는 종목이다.

어린 나이에 상위 랭킹을 달성하거나 탑랭커와 동급의 실력을 가지는 게 다른 스포츠에 비해 극도로 어렵다는 말이다.

“저게 다음 세대의 빅3가 될 재능이라는 건가······.’

주영은 저열한 열등감과 질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벤치에서 쉬고 있는 지혁의 얼굴을 노려봤다.

배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곱상한 얼굴이 그의 심기를 더욱 자극하는 것 같았다.

“시X 진짜 다 가졌네.”

문뜩 드는 생각은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거다.

테니스 실력도 전례가 없을 만큼 뛰어나면서 얼굴까지 잘생겼다니.

물론 주영도 학창 시절에 상위 3%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였기 때문에 명문대 특기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혁의 커리어와 비교하면 부끄러울 수준이다.

그는 현재 ATP 포인트가 고작 1점밖에 없는 랭킹 1581위의 선수였으니 말이다.

이것도 퓨처스 예선 3경기와 본선 1경기를 이기고 간신히 얻은 순위다.

실업팀의 쟁쟁한 프로 선수들을 공식 경기에서 네 번이나 이겼다는 뜻이다.

그 당시 같은 대학부 선수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그 자랑스러운 경험도 저 녀석을 보고 나니 전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제발 떨어져라. 부상이라도 당하라고 이제 다칠 때도 됐잖아.”

주영은 질투심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이런다고 지구 반대편에서 경기 중인 지혁에게 영향이 있을 리 없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답답한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플레이어 레디. 서브 나달.]

휴식 시간이 끝나고 다시 시작한 경기.

나달은 코트로 들어가기 직전 물통들을 의자 왼쪽에 가지런히 정렬했다.

로고 방향과 각도가 하나같이 일정한 게 이것도 그만의 루틴인 모양이다.

“후······. 드디어 하는구나. 2세트에서는 브레이크를 절대 허용하면 안 돼.”

비록 텅 빈 원룸 안이었지만 주영은 나달에게 충고를 하듯이 중얼거렸다.

이번에 그가 탈락하게 된다면 200만 원이라는 거금이 날아가는 만큼 필사적으로 응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간절함만 따지면 지금 주영의 심정은 나달의 코치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쿵!!

[포티 피프틴.]

“이지혁, 이 비겁한 자식은 진짜 더럽게 플레이하네.”

경기 상황을 지켜보면서 인상을 찌푸리는 주영.

나달의 스코어가 유리했음에도 그의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브레이크는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저런 전략은 서비스게임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어야 통할 텐데.”

지혁이 그저 고속 서브만 내세우는 빅 서버였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보통 빅 서버들은 스트로크 실력이 떨어져서 선택권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1세트를 전부 본 결과 그는 그런 경우도 아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저 녀석은 공수의 밸런스가 완벽해. 그런데도 저런 방식의 플레이를 고집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는 뜻이야.”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나달 같은 강적을 상대하면서 의도적으로 패널티를 감수할 리 없다.

주영은 곰곰이 생각을 이어가다가 뭔가 알아낸 건지 눈을 크게 떴다.

“아! 체력을 걱정하고 있구나.”

어쩐지 어제 송가와 붙었을 때 코피를 흘리는 게 이상하다 싶었다.

역시 몸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모양이다.

“너도 완벽하진 않구나. 이제야 사람처럼 느껴지네. 그런데 나달도 알고 있는 건가? 경기가 후반이 되기 전에 빨리 눈치채야 하는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주영의 얼굴은 점점 밝아졌다.

세계 최고의 선수답게 나달이 적절한 대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드밴티지 나달.]

듀스 상황에서 먼저 포인트를 내주게 된 지혁.

만약 여기서 서비스게임이 브레이크된다면 그가 준비했던 전략은 완전히 비틀리게 된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지만 코트의 분위기는 의외로 담담했다.

“하앗!”

탕!!

[어드밴티지 리.]

“말도 안 돼!”

주영은 지혁의 백핸드가 마치 CG처럼 휘어져서 사이드라인에 떨어지자 경악한 목소리를 내었다.

TV에서 해설들의 말이 빠르게 들렸지만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 때문에 내용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어떻게 결정적인 순간마다 저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거지.”

슈퍼 플레이도 한 두 번이면 이해하겠는데 도대체 이게 몇 번째인가.

경기를 하는 당사자가 아님에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아마 나달은 어이가 없을 것이다.

[게임 리 1-1.]

듀스에서 보여줬던 백핸드의 영향인지 서비스게임을 지켜내는 지혁.

빈틈을 조금도 보여주지 않는 그 모습에 관중들은 남은 경기가 재미있게 돌아갈 거라는 느낌을 받았는지 박수를 치며 흥미진진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주영처럼 거액을 배팅한 사람들의 심정은 미칠 지경이었지만 말이다.

[이지혁 선수의 저력이 엄청납니다! 나달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있어요!]

[이대로 8강만 통과한다면 한국인 최초로 마스터즈 우승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보니 다음 경기의 상대가 호주 오픈에서 승리한 전적이 있는 앤디 로딕이었죠. 확실히 다른 탑랭커를 만나는 것보다 부담이 적겠어요.]

[더 좋은 소식은 로저 페더러, 노박 조코비치, 앤디 머레이가 전부 초반 라운드에서 탈락했다는 겁니다. 이건 정말 절호의 기회에요.]

주영은 해설자들의 긍정적인 멘트와 자신과 같은 배팅을 한 커뮤니티 사람들의 반응에 이를 악물었다.

불길한 예감은 항상 적중하는 만큼 소중한 200만 원이 날아갈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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