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78화 (78/241)

78화. 롤랑 가로스

5월에 열린 마드리드 오픈을 8강에서 최종 탈락하고 며칠 후. 프랑스 파리의 어느 클레이 연습 코트.

지혁은 4대 그랜드슬램 중 하나인 롤랑 가로스의 본선이 시작하기를 기다리며 코치들과 가벼운 훈련을 하고 있었다.

탕!!

무시무시한 속도로 베이스라인 위를 정확하게 때리는 백핸드 스트로크.

코치들은 그 환상적인 샷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지혁의 라켓 컨트롤이 평소보다 훨씬 정교해졌기 때문이다.

“와······. 지혁아, 오늘따라 컨디션이 유독 좋은 것 같은데? 백핸드가 장난이 아니야.”

“그래요? 다행이네요.”

“최근 두 달 동안 마스터즈를 4번이나 참가해서 경기력이 물이 올랐나 보다. 이대로 현상 유지만 해도 롤랑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저번처럼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건 없고요?”

“어. 이 정도면 밸런스도 훌륭하고 딱히 지적할 곳이 없어. 발리가 약간 아쉽긴 하지만 그건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어차피 너는 네트 플레이를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크게 상관도 없고 말이야.”

확실히 투어를 다니며 거의 매일 붙어 다녀서 인지 대부분 납득이 가는 평가다.

찰나를 사용하지 않아서 위력이 떨어진 발리와 최근 숙련도가 크게 상승한 백핸드를 제대로 짚어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백핸드의 등급을 올린 효과가 있긴 하구나.’

롤랑까지 어플에 필요한 포인트를 모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빨리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었다.

전부 마이애미 오픈에서 나달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덕분이다.

‘실력은 꽤 많이 올라갔어. 이번 대회는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비록 동급인 호주 오픈에서 4강까지 진출하긴 했지만 그때와 조건이 많이 달라져서 예측이 되지 않는다.

‘롤랑에 참가한 탑랭커의 명단은 거의 비슷하니까 코트 재질이 클레이로 변한 게 큰 변수겠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선수는 역시 나달인가?’

잔디 코트에서 페더러가 무적의 실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클레이 코트의 최강자는 나달이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열린 10번의 롤랑 가로스 중 9번의 우승을 차지한 건 전부 그였으니 말이다.

단 한 번 패배한 것도 2009년에 무릎 부상을 당한 것 때문이다.

즉, 정상적인 상태라면 롤랑에서 다른 선수가 절대 우승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8번 시드를 배정받은 게 정말 행운이야.’

아주 조금만 삐끗했어도 나달과 같은 쿼터 하단에 대진이 결정될 수도 있었다.

물론 2번 시드를 피했으니 그 대가로 1번 시드의 페더러를 만나게 되겠지만 클레이에서 흙신을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웅성웅성.

그렇게 지혁이 훈련에 집중하고 있을 때 갑자기 연습 코트 밖이 시끄러워졌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유명인이 주변에 나타난 모양이다.

“아, 도착했나 보다.”

“벌써 시간이 된 건가. 후······. 가까이서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인데.”

소란의 원인을 이미 알고 있는 듯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짓는 코치들.

테니스 팬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선수의 실루엣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흥분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꺄아악! 페더러!”

“로저가 골든 보이를 보러 왔나 봐!”

“설마 두 사람의 랠리를 볼 수 있는 거야!?”

훈련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던 팬들도 꽤 놀란 것인지 눈을 휘둥그레진다.

느긋하게 훈련장 안으로 들어오는 페더러.

그가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당연하게도 지혁이 자리잡고 있는 코트였다.

우연히 두 사람의 연습 장소가 겹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늦진 않았지?”

“네. 약속 시간에 딱 맞게 오셨어요.”

테니스 그 자체나 다름없는 로저 페더러가 자신의 눈앞에 서자 평소 무덤덤한 편인 지혁도 살짝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황제와 연습을 하는 건 그에게도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약속은 과거 랭킹 50위 근처에서 머무를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최근에 지혁이 마스터즈 우승으로 잠재력을 크게 인정 받아서 연습이 받아들여졌지 만약 어중간한 탑랭커였다면 높은 확률로 제안이 거절되었을 것이다.

“저와 같은 쿼터라서 연습을 취소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오, 넌 8번 시드를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롤랑에서 준결승까지 올라갈 자신이 있나 봐?”

“조금은요. 주력 코트가 아니라서 어렵다는 건 알지만 잔디보다 나아서······.”

페더러는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하는 지혁의 행동에 웃으며 손을 저었다.

“농담이야. 그런데 잔디를 싫어한다고? 넌 서브가 빨라서 오히려 유리한 점이 많을 텐데?”

“······음. 익숙하지 않아서요.”

“아, 프로 활동이 길지 않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아마 경험이 쌓이게 되면 너도 잔디 코트를 선호하게 될 거야.”

‘휴······.’

어슬픈 변명이 통하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는 지혁.

긴장해서 말이 헛나왔는데 단순한 경험 부족으로 둘러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윔블던 같은 잔디 코트에서 항상 광탈했던 건 서브 속도가 느렸던 과거 시절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몸도 풀어야 하니까 이제 슬슬 시작할까요?”

“그러자. 너에게 궁금한 점이 많지만 그것들은 경기를 하면서 천천히 알아가면 되겠지.”

지혁은 괜히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바로 연습에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전담 코치들이 건네주는 손목 밴드와 헤어 밴드를 착용하고 코트 안으로 들어가는 두 선수.

경기를 준비하는 그 모습에 몰래 대화를 훔쳐 듣고 있던 사람들은 눈을 반짝였다.

“밴드까지 차는 걸 보면 제대로 하려는 모양인데?”

“설마 그랜드슬램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적당히 하겠지.”

“그렇겠지? 그런데 두 선수 중에 누가 더 우세할까?”

“당연히 페더러지. 나는 황제가 유망주에게 지는 장면은 상상이 되지 않아.”

“골든 보이의 최근 활약도 대단했잖아. 몇 달 전에 나달을 상대로도 2-0으로 승리했었고.”

“그 대회가 특별했던 거지. 그 이후로는 성적이 평범했으니까.”

“응? 마스터즈 4강이랑 8강이 평범한 건 절대 아니지.”

“당시 전문가들의 평가에 비해 그렇다는 거야. 빅3를 대체할 선수라고 언론들이 워낙 시끄럽게 떠들었잖아.”

“뭐, 직접 확인해보면 되겠지. 우리 누가 이기는지 내기할까?”

“내가 페더러에게 걸 수 있게 해주면 얼마든지. 나중에 말이나 바꾸지 마.”

탕! 탕! 탕! 탕!

바로 옆에서 자신들을 두고 내기가 오가는 것도 모르는지 랠리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실력을 탐색하는 지혁과 페더러.

몸을 푸는 게 주목적이라 아무래도 볼거리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래도 워낙 퍼포먼스가 화려하기로 유명한 선수들이라 힘을 빼고 플레이를 하고 있음에도 아주 가끔씩 박수가 나올만한 장면이 있었다.

탕!!

페더러의 한 손 백핸드를 똑같은 방법으로 되돌려주는 지혁.

팬들은 좀처럼 보기 힘든 기술과 스트로크의 날카로운 각도를 보고 감탄했는지 환호성을 질렀다.

“와! 자세가 달라지면 차이가 정말 크구나. 스윙의 가동범위가 다른 선수들이랑 차원이 달라.”

“저걸 보면 충분히 위력적인 것 같은데 최근 들어서 한 손 백핸드 플레이어가 어째서 대부분 사라진 거지?”

“하, 그건 간단하지. 우리가 누구의 경기를 보고 있는지 잘 생각해봐. 그럼 답이 나올 거야.”

“······페더러와 골든 보이라서 그렇구나. 자세가 아니라 선수의 문제였어.”

고작 몸 풀기를 목적으로 하는 랠리에서 만족할 만한 장면이 나오자 팬들의 기대감은 점점 커져갔다.

본 경기에서 어떤 플레이를 볼 수 있을지 짐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수들이 코트에 들어간 지 10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스륵

패더러는 꽤 빠르게 날아오는 스트로크를 라켓으로 부드러운 동작으로 받아내며 랠리를 멈추었다.

분명히 임팩트가 되었음에도 공이 튕겨 나가지 않는 모습에 지혁의 표정이 묘해졌다.

저 묘기를 보여주는 의도가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따라 했던 걸 이미 알고 있었나 보네. 궁금한 게 많다고 하더니 그게 빈말이 아니었구나.’

보통 하이라이트 장면이 위닝샷을 중심으로 방송되니까 아무래도 직접 경기를 챙겨 본 모양이다.

‘오늘 연습은 쉽지 않을 것 같네······.’

지혁은 뿌듯한 감정과 위기감을 동시에 느끼며 단단히 각오했다.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지자 체어 위로 페더러의 코치가 올라간다.

아무래도 저 사람이 심판을 맡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서브 순서는 어떻게 할까요?”

“이번에는 네가 먼저 해.”

흔쾌히 서비스게임을 양보하는 페더러에게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지혁.

통. 통. 통. 통.

코트에서 전달받은 테니스공이 튕기는 바운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시끄러웠던 주변의 소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집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팬들이 배려를 해준 것이다.

“흐읍!”

쾅!!

시작부터 번개처럼 내려치는 지혁의 고속 서브.

굉음과 어울리는 220km의 타구는 T존을 때리고 코트를 빠르게 벗어났다.

[피프틴 러브.]

첫 포인트부터 에이스를 당했지만 페더러는 라켓에 박수를 치는 제스쳐를 했다.

분위기가 여유로워 보이는 게 리턴을 해낼 자신이 있나 보다.

이렇게 빠른 서브를 바로 옆에서 보는 건 처음인지 팬들이 있는 방향에서 헛숨을 삼키는 소리와 소곤거리는 대화가 희미하게 들렸다.

“······보이지도 않는데? 대체 몇 km일까?”

“골든 보이의 최고 기록이 대략 140마일이니 아마 220km 근처일 걸.”

“생브리외 챌린저와 수준이 너무 차이 나는 것 같아.”

“한 달 전에 봤던 경기? 거기 참가한 선수들은 랭킹이 높아봐야 200위 초반인데 당연하지.”

“그래도 프로들이잖아. 나이도 골든 보이보다 훨씬 많은 20대 중반이고.”

“나달과 조코비치가 19살, 21살에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한 걸 떠올려 봐. 네가 말한 조건은 스포츠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어. 저런 괴물 같은 실력은 재능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하다고.”

쾅!!

노력보다 재능이라는 어느 팬의 냉소적인 발언을 증명하듯이 다시 한 번 고속 서브가 코트 위로 떨어졌다.

이번에는 페더러의 리턴이 성공했다.

드디어 스트로크 대결이 시작하나 싶었지만 곧이어 레이저 같은 백핸드가 사이드라인에 떨어졌다.

[서티 러브.]

소름이 돋을 만큼 완벽한 그 샷에 페더러도 느끼는 바가 있는지 아주 잠깐 멈칫했다.

“바···방금 뭐야? 저런 크로스샷은 처음 봐. 아무리 페더러라도 저런 걸 칠 수 있나?”

“가능하니까 그가 황제라고 불리며 ATP랭킹 1위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거겠지. 이제 내가 했던 말을 조금은 이해하겠지?”

“······어. 단순하게 훈련을 한다고 저런 샷이 나올 것 같지 않아. 저건 네 말대로 타고나야 해.”

“그나저나 페더러의 대응이 기대되는 걸 골든 보이가 저렇게 나왔으니 그도 대충할 수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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