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79화 (79/241)

79화. 롤랑 가로스

‘예상했던 것보다 위닝샷이 잘 들어가네······’

지혁은 첫 서비스게임을 서티 러브로 앞서가게 되자 긴장이 약간 풀렸다.

아직 경기 초반인 만큼 페더러의 실력을 전부 파악한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이길 수 있겠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과거의 기억과 명성이 대단해서 너무 부풀려서 생각했던 모양이다.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2010년 최고의 선수는 대회 성적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명백하게 나달인데 말이다.

‘서브가 통한다는 걸 알았으니 이번에는 스트로크를 시험해볼까.’

며칠 뒤에 열리는 롤랑 가로스가 아니었다면 정식 경기와 똑같이 플레이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하지만 본선이 바로 앞까지 다가온 이상 페더러의 일정에 부담이 될만한 요구를 하긴 힘들었다.

‘연습 경기는 1세트만 하기로 약속했으니 남은 시간은 길어봤자 50분 정도겠지.’

그때까지 페더러의 기술과 정보를 최대한 뽑아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다양한 샷을 사용해 봐야겠다.

탕!!

힘을 약간 빼고 서브를 하는 지혁.

라켓을 평소보다 가볍게 휘둘렀지만 피지컬과 기술 숙련도가 워낙 뛰어난 탓인지 타구는 어지간한 탑랭커가 전력으로 친 것과 거의 비슷하게 날아갔다.

그래도 위력이 줄어든 건 확실해서 곧바로 페더러의 리턴이 돌아왔다.

이전보다 리턴 코스가 훨씬 날카로워진 것이 서브를 받는 입장에서는 체감이 확실한 것 같았다.

처음으로 전력을 다해 스트로크 대결을 하게 된 두 선수.

몇 분 전에 했었던 몸 풀기 랠리와 차원이 다른 샷이 코트 좌우를 수차례 왕복하자 팬들은 입을 떡 벌리며 경악했다.

[서티 피프틴.]

“와!! 이게 탑랭커들의 경기구나! 옆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차원이 다른 느낌이야!”

“역시 제대로 붙으면 페더러가 우세하네. 내 말이 맞았지?”

“아직 첫 번째 게임도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지 않아? 경기가 한참이나 남았잖아.”

“어차피 더 볼 필요도 없이 결과는 뻔해. 골든 보이가 페더러보다 유리한 부분은 서브 말고 없어서 무조건 패배할 거야. 실력 차이가 너무 난다고.”

“그래도 마지막까지 가봐야 아는 거지. 승부가 매번 그렇게 정해지면 작년 US오픈 결승전에서 페더러가 왜 델 포트로에게 졌겠어.”

“그건······.”

경기의 승패에 내기가 걸려서일까.

그들은 대화를 하면서도 좀처럼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서티 올.]

또 다시 득점을 만들어내는 페더러의 포핸드 다운 더 라인.

지혁은 역동작을 유도하는 페이크샷에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휴······. 큰 일 날뻔 했네.’

클레이 코트가 미끄러워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지혁아, 무리하지 말고 살살해! 어차피 본선도 아니잖아!”

“가장 중요한 건 다치지 않는 거야! 알고 있지?”

깜짝 놀랐는지 경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음에도 목소리를 크게 높이는 지혁의 코치들.

경기 중에 넘어져서 어깨나 손목을 다치는 경우가 제법 많았던 만큼 그들은 기겁하는 표정이었다.

방금 전 상황에서 운이 없었다면 정말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조심하면서 할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지혁은 걱정하는 목소리로 충고하는 코치들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다시 재정비를 했다.

짧게 대화를 하는 동안 어쩔 수 없이 경기의 흐름이 끊겼지만 불리한 상황이라서 오히려 이 사건이 분위기를 환기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역시 페더러에게 서브 없이 스트로크만으로 이기는 건 힘들겠어.’

분명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했을 때는 어렵긴 해도 나달보다 상대하기 쉬울 것 같았는데.

본격적으로 스트로크를 주고받다 보니까 위닝샷을 넣는 게 만만하지가 않다.

‘확실히 황제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구나. 기술적 완성도가 장난이 아니야. 지금까지 경험한 선수들 중에 최고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겠어.’

물론 이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지혁에게는 아직 페더러를 상대할 비장의 수가 남아있었으니 말이다.

만약 여기서 준비해둔 전략을 사용하게 되면 남은 경기에서 우세를 점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롤랑을 생각해서 아껴두자.’

하지만 지혁은 턱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유혹을 간신히 참아냈다.

한순간의 감정에 휘둘려서 실수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수는 상대가 모르고 있을 때 찔러야 위력이 배가 되니 기쁨은 나중으로 미뤄두어도 될 것이다.

롤랑 가로스의 준결승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오늘의 곤욕은 그때 이자를 붙여서 제대로 갚아주면 된다.

***

시간이 흘러 어느새 중반 무렵이 된 연습 경기.

지혁은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스트로크를 받기 위해 정신없이 코트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페더러에 비해 전반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다 보니 활동량을 늘려서 열심히 뛰어다는 걸로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체력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지만 어차피 지금 추세로 경기가 흘러간다면 총 소요시간은 40분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라면 마음 놓고 뛰어다녀도 부담이 거의 없다.

휴식기의 하루 훈련량도 그것보다는 훨씬 많으니 말이다.

“하앗!”

탕!!

기합을 지르며 서비스라인 근처에 바운드되는 스트로크를 잡아당기는 지혁.

요란하기까지 한 그 동작이 효과가 있었는지 절묘한 크로스샷이 반대편 코트 구석에 정확하게 떨어졌다.

한 달 전만 해도 지혁이 운이 좋을 때나 가끔씩 칠 수 있었던 정상급의 백핸드였다.

‘경기가 길어지니까 백핸드의 등급이 상승한 게 확실히 체감되네. 이런 샷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니.’

[게임 리 2-3.]

짝짝짝짝짝.

간만에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각자의 벤치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선수들.

지혁은 비록 서비스게임을 무사히 지켜냈지만 2-3라는 불리한 게임 스코어 탓에 찝찝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벤치에 털썩하고 주저앉자 코치들이 놀란 기색으로 수건과 물을 건네주었다.

선수들을 도와주는 볼 키즈가 없어서 그들이 보조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혁아, 백핸드 감각이 진짜 물이 올랐는데? 아까 훈련을 할 때도 컨디션이 좋은 줄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그래. 마지막에 친 샷은 정말 엄청나더라. 평소보다 코스가 훨씬 훌륭했어. 스윙 자세가 미세하게 달라진 것 같지만 결과물이 좋으니까 크게 문제는 없을 거야.”

상승한 실력에 대한 칭찬 세례가 옆에서 한동안 쏟아졌음에도 기쁘지 않은 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는 지혁.

“후······. 그래봤자 지고 있는데요. 그것보다 방법은 찾았어요?”

“그게 상대가 페더러라서 뚜렷한 수가 없어. 연습 경기에서 그 전략을 사용하지는 않을 거잖아?”

“나는 플레이를 직접 보고 나니까 그것도 먹힐지 의문이야. 이때까지 나달을 제외하고 성공한 선수가 없는 걸 보면 효과가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아뇨. 제대로만 하면 분명히 통할 거예요. 그건 제가 확신해요.”

코치들이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게 밝혀졌지만 벤치는 그리 실망한 분위기가 아니다.

애초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아서였다.

‘오늘 연습 경기는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겠어······. 그러면 훈련이라 생각하고 일단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보자.’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르니 승패보다 배운다는 생각으로 플레이를 해야겠다.

다행히 페더러를 경쟁자라고 생각하기보다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와 지향점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그리 패배감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골든 보이.”

지혁이 마음을 가다듬고 있을 때.

휴식 시간이 끝났는지 체어에서 손짓을 하는 신호가 왔다.

벌써 90초가 지나간 모양이다.

[서브 페러더.]

쾅!!

루틴도 없이 곧바로 경기를 시작한 페더러.

비록 고속 서브라고 하기에 모자란 속도라고 해도 컨트롤 만큼은 탑랭커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나서 위력이 조금도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

촤아악-

바운드 위치와 각도가 풋워크로 쫓아가기 힘들었는지 슬라이딩을 하면서 라켓을 쭉 뻗는 지혁.

하드에선 무릎에 부담이 상당했었는데 여기는 바닥 재질이 흙이라 확실히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클레이 코트는 부상 위험이 적으니 걱정하지 않고 얼마든지 과감한 플레이를 해도 되겠어.’

경기에 집중하고 있어서 확인하진 못했지만 코트 옆에서 안절부절하는 코치들의 모습이 벌써부터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도 경기 중에 갑자기 끼어들지는 못할 것이다.

퉁!

지혁은 라켓에서 무거운 감각이 느껴지자마자 네트 쪽을 경계하며 센터 마크로 빠르게 돌아갔다.

지금 상대하고 있는 페더러의 장기가 발리인 만큼 까다로운 샷이 무조건 날아올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쿵!!

코트 중심에 도착하기 직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라는 듯이 이전과 똑같은 바운드 위치로 떨어지는 발리.

코치들과 팬들은 이번에도 역동작에 걸릴 거라고 생각한 건지 이미 포기한 분위기였다.

“어···어!”

하지만 잠시 후 훈련장에서는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지혁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스트로크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끈질긴 모습에 페더러는 네트 앞에서 입꼬리를 올렸다.

‘결과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상황이 변한 게 없어서 그의 생각이 틀린 것도 아니다.

무식하게 계속 받아낸다고 해도 이런 방법은 다시 발리가 돌아오게 되면 결국 파탄이 나게 되어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패싱샷이나 로브로 상대를 네트에서 물러나게 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금 내 실력으로 지금 위기를 돌파하기는 무리인데······. 한 번쯤은 괜찮을 테니 여기서 쓸까?’

본래 계획대로라면 중요할 때 사용하려고 첫 번째 서비스게임을 브레이크당하면서까지 아껴두었던 찰나지만 훈련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승패가 분명해졌으니 크게 상관없을 것이다.

과연 이런 위기 상황에서 돌파구가 되어줄지 궁금하다.

만약 극복할 수 있으면 실전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뜻이겠지.

‘기술이 강력하긴 해도 완벽한 건 아니라서 조금 걱정이 되네.’

탕!하는 임팩트 소리와 동시에 느려지는 주변의 풍경.

절반 이하로 줄어든 타구 속도 덕분인지 지혁은 이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공격적인 포지션을 잡을 수 있었다.

쿵!!

[···러브 피프틴.]

““······.””

팬들은 비현실적인 코스로 들어가는 위닝샷에 멍한 표정으로 한동안 서 있었다.

와아아아아!

뒤늦게 들려오는 커다란 환호성.

코치들의 목소리도 섞여있는 걸 보니 감명을 받은 건 팬들만이 아닌 것 같았다.

‘쉽지는 않아도 이 정도면 발리 대결도 가능하겠어.’

지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자 경기의 분위기가 바뀔 거라고 생각한 건지 코트 주변에서 기대감이 섞인 시선이 모여든다.

그 바람을 충족시켜 주고 싶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준결승전이 되어서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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