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88화 (88/241)

88화. 롤랑 가로스

페더러와 바브린카의 경기를 관전하고 하루 뒤.

지혁은 롤랑의 스타디움에서 랭킹 13위의 러시아 선수, 미하일 유즈니를 상대로 16강을 치르고 있었다.

확실히 이 정도 수준까지 올라오니까 체력을 아끼는 전략을 사용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탈락하지 않고 남아있는 선수들 중 만만하게 볼 만한 상대가 하나도 없어서 경기에 집중하더라도 자칫 운이 없으면 언제든지 패배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압도적인 기량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런 상관없겠지만 아직 지혁이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탕!!

커다란 임팩트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베이스라인에 떨어지는 지혁의 포핸드 위너.

잠깐 동안 바운드 위치를 주의 깊게 살피던 두 선수는 이내 라켓을 밑으로 내리며 네트 중앙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따로 반론할 수 없을 만큼 스트로크가 라인 안 쪽으로 들어가서 굳이 챌린지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둥그런 테니스공 자국이 먼 거리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는데 무작정 우기는 게 통할 리 없다.

괜히 그런 행동으로 추해질 바엔 이렇게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게 나았다.

[게임 세트. 매치 리 6-3, 3-6, 6-4, 7-5.]

그렇게 16강 경기는 무려 3시간이 넘는 사투를 치르고서야 마침내 종료되었다.

세트 스코어는 3-1.

미하일 유즈니의 나이가 많은 편이라서 이 정도 선에서 끝낼 수 있었지 만약 그가 20대 중반이었다면 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혁에 비해 체력과 반사 신경은 부족했지만 전략의 다양성과 상황에 맞는 능수능란함이 20대 초중반 선수들과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번 경기는 유즈니가 페더러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를 했음에도 아직까지 랭킹 13위를 유지하며 현역으로 활동하는 비결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롤랑 가로스 8강 진출이 확정됐습니다! 두 번째 그랜드슬램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었어요!] [이지혁 선수는 큰 경기일수록 진가를 발휘하네요. 중요한 순간마다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 내다니 역시 슈퍼 스타의 조건을 타고난 것 같습니다!]

[다음 상대는 랭킹 4위의 앤디 머레이인데요. 벌써 호주 오픈에서 경기를 한 지 4개월이 넘게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번 리벤치 매치는 호주 오픈에서 당했던 걸 되갚아 줄 수 있을까요?]

[허······. 4개월이라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군요. 정말 오랜만에 성사된 빅 매치입니다. 8강에서 이길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객관적으로 비교하면 머레이의 실력이 더 뛰어나긴 해도 이지혁 선수는 라파엘 나달에게 승리를 따낸 적이 있잖아요. 굳이 전례를 찾아보지 않아도 대회에서 랭킹이 낮은 선수가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는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얼마든지 복수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오. 박 해설님이 그렇게 장담을 해주신다면 걱정할 필요 없겠습니다. 그나저나 승산이 있다면 이번 매치는 해외의 테니스 팬들에게 더욱 많은 관심을 받겠군요.]

[스토리가 있는 대결이라 아마 그럴 겁니다. 누가 봐도 흥미로운 구도가 만들어졌잖아요. 만약 이지혁 선수가 경기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멋진 결말이 될 거예요.]

[이제 한동안 고착되어있었던 ATP랭킹도 슬슬 변화가 생기겠군요. 최근에 대부분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자가 똑같아서 재미가 반감이 된 느낌을 받았는데요. 테니스계에 파동을 일으켜주다니 정말 주최 측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선수입니다.]

[테니스에 관련된 언론들이 괜히 이지혁 선수를 띄어주는 게 아니죠. 실제로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화제와 주목도를 끌고 다니기 때문에 업계 사람들이 그를 선호하는 겁니다. 네임드 선수가 참가하는 것 만으로도 투자한 금액의 본전은 얼마든지 뽑을 수 있으니까요. 그 증거로 다음 경기로 배정 받은 코트는 롤랑 가로스의 메인 코트, 필립 체트레에요. 15,225석을 가진 프랑스 최대 규모의 스타디움이죠.]

[롤랑 측은 만 개가 넘는 티켓을 전부 팔아치울 자신이 있는 모양이네요.]

[맞습니다. 그보다 이제 방송을 끝낼 시간이 다 됐습니다. 이제 마무리 인사를 해야 될 것 같네요.]

[네. 중요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흐른 줄 몰랐네요. 시청자 여러분. 이지혁 선수와 앤디 머레이의 경기는 이틀 뒤, 한국 시간을 기준으로 오전 2시에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KBC 스포츠를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혁의 16강전이 끝나자마자 한국은 포털사이트, TV, 라디오를 가리지 않고 스포츠 기사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쏟아졌다.

2, 3, 4, 5월 동안 마스터즈 대회를 무려 4번이나 참가했지만 아무래도 그걸 전부 합쳐도 그랜드슬램과 비교하면 파급력이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중계 방송의 시청률과 우승 상금만 봐도 두 개의 대회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경기는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축에 속했고 말이다.

[이지혁, 롤랑 가로스 8강 진출. 상대 선수는 지난 1월에 패배를 안겨준 앤디 머레이.]

[골든 보이는 과연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테니스 전문가들 입을 모아 이번에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그랜드슬램으로 인해 국내에서 다시 한 번 불어오는 테니스 열풍.]

[공중파 3사 시청률 30%에 육박할 거로 예상 돼.]

[도박사들이 생각하는 골든 보이의 우승 확률은?]

[한국이 낳은 테니스 천재, 이지혁은 프랑스 오픈에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8강 앤디 머레이, 4강 로저 페더러, 결승 라파엘 나달, 롤랑에서 지옥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로저 페더러, "준결승에서 골든 보이를 기다리고 있겠다. 리는 내가 관심 있게 지켜 보고 있는 선수."]

[라파엘 나달, “지금 골든 보이의 실력이라면 머레이의 승리를 100% 장담하긴 힘들다.”]

[앤디 머레이, "페더러와 경기하는 건 내가 될 것. 호주 오픈과 달라질 건 없다."]

[세계 랭킹 1, 2, 4위가 주목하는 한국의 테니스 유망주, 거물들의 언급에 롤랑 가로스 8강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폭증.]

[지금 테니스계를 주도하고 있는 건 고등학교 2학년 선수다. 최근 탑랭커들의 동향은······.]

ㅡ 롤랑 가로스 8강 진출이라고?? 이지혁 마스터즈에서 잠잠하더니 또 사고쳤네 ;;

ㅡ 얘는 진짜 큰 대회 전용이네. ㅋㅋㅋ 원래 반대여야 하는데 무대 체질이라 그런가 관중이 많거나 상금이 클수록 이상하게 더 잘하더라.

ㅡ 그런데 머레이는 경기 당사자라 그렇다고 해도 페더러와 나달은 뭐냐. 언제 이렇게 거물된 거임?? ㄷㄷㄷ 몇 개월 사이에 노는 물이 달라진 거 같은데

ㅡ 호주 오픈 이후로 테니스 안 봤나 보네 마이애미 오픈 끝나고 존재감 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이제 내수용이 아니라 월클임 ㅋㅋㅋ

ㅡ ㄹㅇ 마침 델 포트로가 시즌 아웃되서 빈 자리 차지하면 빅3 바로 아래로 포지션 완벽해진다.

ㅡ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성장 속도보다 훨씬 빠른 것 같네··· 국가대표 출신 해설이 3, 4년은 지나야 된다고 하지 않았냐? 내가 잘못 들은 건가.

ㅡ 아, 애초에 종자가 다른데 한국 국대가 예측한 게 맞겠냐고 ㅋㅋㅋㅋ 아시아에서 나온 역대급 재능인데 당연하지

ㅡ 그런데 페더러 엄청 자신만만하네. 8강에서 로빈 소더링이랑 붙는 거 아닌가? 얘 클레이 한정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선수라 엄청 위험할 것 같은데 ;;

ㅡ 와, 소더링 롤랑 5번 시드네?? 역시 1쿼러라서 대진 장난 아니네. 랭킹 1위라서 그런가.

ㅡ ??? 뭔 소리냐 위쪽 쿼터는 그나마 낫지. 3, 4쿼터는 나달하고 조코비치 4강에서 붙는다. 대회 난이도 불지옥임 ㅋㅋㅋ

ㅡ 와······. 다시 보니 위에가 선녀다. 지혁이가 저기 떨어졌으면 진짜 헬이었겠네.

ㅡ 그래서 너희들은 8강  통과한다고 가정했을 때 어디까지 올라갈 것 같음??

ㅡ 최대 4강이지 4년 연속 랭킹 1등을 유지했던 황제인데 페더러 무시하냐?

ㅡ 나는 클레이 코트라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문제는 흙신임 ㅋㅋ 황제 넘어봤자 뒤에 신이 남아있는데 어떻게 우승하냐고 ㅋㅋㅋㅋ

ㅡ 어쨌든 우승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거네?

ㅡ ㅇㅇㅇ 그건 기대도 안 함.

ㅡ 2222 나도

ESPN과 BBC는 8강에서 가장 관심받을 만한 이벤트가 지혁과 머레이의 대결이라서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했다.

만약 이틀 뒤까지 지금의 홍보를 이어간다면 예상했던 것보다 경기의 시청률이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전문가들이 워낙 화려한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팬들에게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으니 말이다.

비록 쌓아놓은 커리어와 5년이라는 프로 활동 경력이 있어서 인지도는 머레이가 월등했지만 최근 지혁의 활약 덕분에 두 선수들의 인기는 거의 막상막하였다.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와 천재라는 매력이 합쳐서 사람들을 크게 어필이 된 것이다.

마치 빅3의 유년기를 간접 체험하는 듯한 경험을 팬들이 싫어할 리가 없다.

이대로 성장하면 테니스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것이 분명한 선수의 성장기는 지금 시기를 놓치면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롤랑 가로스 8강이 시작하기 하루 전.

지혁은 머레이와의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연습 코트에 방문했다.

지금 상황에서 체력을 아끼는 것보다 최대한 실전 감각을 날카롭게 만들어 놓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벅저벅.

그렇게 지혁이 도착해서 몸을 풀길 십여 분.

훈련장 입구 방향에서 여러 개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미 예약된 장소에 관계되지 않은 사람이 올 이유가 없으니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온 모양이다.

지혁은 인기척을 느끼고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휙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돌렸다.

“니시코리! 약속했던 시간보다 30분이나 빨리 왔네요!”

“누구 요청인데 내가 거절하겠어. 오면서 지인한테 들었는데 페더러는 바브린카와 훈련을 하고 있다더라.”

“바브린카도 참 대단하네요. 자신을 대회에서 탈락시킨 그를 도와준다니요.”

“그만큼 사이가 좋다는 뜻이겠지.”

“머레이에 대한 소식은 들은 게 없나요?”

“어. 극비리에 연습 파트너를 구한 건지 소문이 전혀 들리지 않았어. 이번에도 꽤 긴장해야 될 거야. 빅3를 상대하기 위해 전략을 상당히 많이 준비해 온 것 같았거든. 게다가 나달에게 먹히는 전략은 너에게도 잘 먹히는 편이잖아.”

“음······. 아무래도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해서 그렇죠. 먼저 구경이라도 해봤으면 좋았을 텐데 정보가 없어서 조금 아쉽네요.”

“기본기만 철저하게 다지면 괜찮을 거야. 5세트 경기를 3~4시간 동안 하다 보면 잔재주는 전부 바닥나게 되어있으니까 말이야.”

“네. 이미 호주 오픈에서 이미 철저하게 경험해봤죠. 그래서 신경 쓰지 않고 장점을 극대화 시키려구요. 약점을 보완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하니까요.”

“역시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구나. 그래. 오늘은 네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맞춰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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