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02화 (102/241)

102화. 롤랑 가로스

롤랑 가로스의 결승전이 한국 시간으로 오후 10시에 열렸기 때문일까.

지혁의 경기를 중계하는 공중파 방송국들은 이전에 없던 사상 최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전 경기에서 페더러를 꺾고 결승에 진출한 데다가 나달은 이미 예전에 한 번 이긴 전력이 있어서 우승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온전히 테니스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었다.

물론 국내 스포츠를 맡고 있는 매체들이 좋은 전망만 늘어놓아서 그런 면도 있었다.

해외 언론들이 지혁의 승률을 10~20% 근처라고 분석을 내놓았지만 그런 기사를 자처해서 퍼 나르는 곳은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아마 흥행에 관한 문제나 국민적인 영웅으로 주가가 치솟고 있는 스포츠 스타에게 부정적인 기사를 쓰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하앗!”

쿵!!

[게임 나달 1-1.]

포핸드 다운 더 라인으로 1세트 2게임의 마지막 포인트를 마무리하는 나달.

15구까지 이어졌던 랠리가 끝나자 경기장에서 후우하고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한꺼번에 들렸다.

관중들이 치열한 스트로크 대결에 집중을 하느라 호흡하는 것조차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 한 포인트 차이로 듀스로 진입할 기회가 날아가네요. 그래도 1세트 초반이라는 걸 생각하면 꽤 훌륭한 경기력이었습니다. 나달의 서브가 탑랭커치고 빠른 편이 아니라서 리턴을 하는 건 그리 힘들지 않은 모양이에요.]

[저 선수는 원래 에이스를 얻는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스타일이 아니었죠. 아마 이후의 경기도 비슷하게 흘러갈 겁니다. 나달은 공략법이라고 할 만한 약점이 없는 선수거든요.]

[그러면 수비가 뚫리는 시점이 이번 경기의 가장 중요한 변수겠군요.]

[네. 하지만 그건 이지혁 선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입니다. 유리한 상황에서 서비스게임을 잠가버리는 능력은 두 선수 모두 대단하잖아요.]

[마침 경기가 다시 시작하려고 하네요. 그런데 이지혁 선수가 이번에도 똑같은 라켓을 들고 나옵니다. 부담이 클 텐데 무슨 의도로 저런 플레이를 고집하는 걸까요?]

[브레이크를 먼저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겠죠. 롤랑 가로스의 마지막 경기인만큼 몸이 조금 상하는 건 감수할 생각인가 봅니다.]

[그랜드슬램 우승이 값진 건 분명하지만 부디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성과를 얻는다고 해도 앞날이 창창한 이지혁 선수와 비교하면 그 가치가 떨어질 테니까요.]

[저도 동감합니다. 이번 롤랑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해도 2010년에 남아있는 동급의 대회만 해도 두 개나 남아있어요. 윔블던과 US오픈이 있으니 쓸데없는 집착은 금물입니다.]

해설자들이 혹시나 있을 부상을 걱정하고 있을 때.

정작 지혁은 다시 넘어온 서비스게임을 이전보다 더 완벽하게 압도하고 있었다.

[서티 러브.]

다시 한번 에이스로 포인트를 빼앗기는 나달.

코트 위에서 벌어지는 경기에 집중하고 있던 관중들은 그 모습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지혁이 사용하는 서브의 위력이 워낙 대단해 보여서 오늘 경기 컨디션이 최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당분간 브레이크를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지금처럼 서브가 잘 먹힌다면 1세트 정도는 부담 없이 넘어갈 수 있겠어.’

지혁은 빅 서버 스타일을 고집하는 선수들의 심정을 이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편하게 경기를 할 수 있으니 베이스라이너로 전환하는 선수가 나오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매 포인트를 개처럼 뛰어다니며 막아내는 것과 들이는 노력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났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베이스라이너에게 위닝샷이 아니라 상대를 지쳐서 쓰러지게 만든다고 리트리버라는 별명이 붙었겠는가.

‘솔직히 수비에 집중하는 게 제일 상성이 타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선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이만큼 피곤한 스타일도 없지.’

[게임 리.]

그렇게 순식간에 지혁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서비스게임.

나달이 서브권을 가지고 있을 때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빠른 진행 속도에 해설자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멘트를 할 수 있었다.

경기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제가 착각한 게 아니었네요. 서브 정확도가 올라간 게 확실합니다.]

[네. 선수 출신이 아닌 저조차도 그렇게 느껴지네요. 마치 라켓이 바뀌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하하. 거의 근접한 수준이긴 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그 정도는 아닙니다. 서브 속도가 230km 전후로 나오고 있잖아요. 이지혁 선수가 텐션이 낮은 라켓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 정도 위력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두 사람의 경기가 예상했던 대로 수비전이 되어버렸는데요. 이러면 이지혁 선수에게 불리한 거 아닌가요? 결승까지 올라오면서 쌓인 피로도가 완전히 다르잖아요.]

[당연히 세트가 길어진다면 불리하겠죠. 선수들도 경기를 하는 당사자인 만큼 그런 문제를 누구보다 더 알고 있을 겁니다. 아마 지금 상황에 맞는 전략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1세트 3게임이 끝나고 선수들에게 주어진 90초의 휴식 시간.

지혁은 벤치에서 개인 정비를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남은 경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승이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전략을 만들어 놓긴 했지만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제대로 확신이 서지 않았다.

클레이 코트에서 나달과 경기를 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제법 발생했던 것이다.

‘나달에게 이기려면 경기를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하는데······.’

지혁이 처한 여러 환경들을 고려했을 때 장기전으로 들어가면 승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질 확률이 높다.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건 초반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3-0으로 끝내버리는 상황이다.

문제는 그게 쉽게 될 리 없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서브의 이점을 살릴 수 있는 초반에 최대한 점수 차이를 벌려 놓아야 해.’

계속 에이스를 넣을 수 있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지금처럼 재미를 보고 있을 때 뭔가 방법을 마련해 놓아야지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나달과 스트로크 싸움을 하느라 후반에 엄청난 고생을 할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공격에 나서야겠어.’

분명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체력을 많이 소모하게 되겠지만 스코어를 비슷하게 유지하다가 듀스나 타이브레이크에 들어가는 최악의 상황보단 훨씬 낫다.

***

경기가 조금씩 치열하게 변하고 있을 때,

S증권 실업팀 숙소에 설치된 TV에서는 지혁이 공을 토스하는 장면이 막 송출되고 있었다.

쾅!!

“”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서브가 라인 위에 정확하게 내려 꽂히자 선수들의 입에서 저절로 앓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프로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저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테니스 프로의 서브 속도가 평균적으로 180km~190km 부근인 걸 생각하면 지혁은 이미 자타공인 최고의 서버였다.

애초에 국내 ATP랭킹 2위와 100등 이상 차이나는 순위를 생각하면 전혀 이상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231km? 머레이와 붙었던 8강에서 세운 신기록이 229km 아니었나?”

“작년에 직접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이네. 도대체 저런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거야. 풀세트 경기를 몇 번이나 해서 절대 멀쩡할 리 없는데.”

“동현이 너는 어떻게 저런 괴물한테 아직도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거야? 이제 놔줄 때도 되지 않았어? 이지혁은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는 녀석이라고. 종자가 완전히 달라.”

경기를 보고 있던 도중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는지 입을 여는 실업팀 선수.

그러자 막내인 권동현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들이 알기로 동현은 지혁과 친선 경기를 2번이나 한 경험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공식 경기에서 복수를 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을 듣지 못한 실업팀 선수는 없었다.

S증권에서 가장 재능이 뛰어난 천재가 세계적인 활약을 하고 있는 괴물에게 도전장을 던진 일은 워낙 유명한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3살이나 더 많은 21살의 나이를 생각하면 입장이 뒤바뀐 것 같지만 스포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실력이었다.

랭킹이나 커리어, 실력가 아무것도 없는데 단지 오래된 경력만으로 선배 노릇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확실히 격차가 더 벌어지긴 했네요. 그래도 아직 포기한 건 아니에요. 제 랭킹도 조금씩 상승하고 있잖아요. 이지혁이 정상 근처까지 올라갔으니 이제 저만 잘하면 돼요.”

““······.””

동현의 전혀 기죽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선수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가능성이 거의 없다시피 한 비현실적인 포부이지만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에 느끼는 바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국내 대회를 전전하고 있지만 이곳에 있는 선수들은 전부 유망주 시절 같은 또래 사이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군림했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최고의 선수인 페더러를 자신들의 목표로 정했고 말이다.

결국 프로에 데뷔하고 나서 몇 년 동안 거대한 벽에 부딪쳐 좌절했지만 그때의 감정이 조금은 남아있었다.

“네가 지금 ATP랭킹이 몇 위였지?”

“한 달 전에 서울 퓨처스에서 우승을 해서 366위예요.”

“허. 많이 오르긴 했네. 이번 년도가 시작할 할 때만 해도 400위 중후반이었잖아. 작년에는 700위 밖이었고. 확실히 랭킹이 상승하는 속도가 빠른 편이긴 해.”

실제로 동현은 국내 실업팀에 소속된 프로 선수들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잠재력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테니스계에 갑자기 등장한 지혁이 1년 만에 랭킹 10위까지 치솟아서 완전히 묻혀 버렸지만 예전 같았으면 천재 유망주로 언론에 이름이 알려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제는 미성년자 선수가 그랜드슬램 결승 진출까지 한 전례가 만들어져서 어지간한 성과로 주목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지만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봐. 너는 아직 21살이라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목표를 높게 잡으면 최소한 그랜드슬램 참가는 가능하겠지.”

“맞아. 대기만성을 하는 선수들도 많아서 5~6년 뒤에 네가 랭킹 50위권 안에 들어갈 수도 있어. 만약 그때가 되면 우리를 모른 척하지 말아야 된다.”

그렇게 실업팀 숙소는 한동안 동현에 대한 격려가 이어졌다.

험난한 길을 걷기로 결정한 후배가 선수들의 입장에서 좋게 보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다른 선배들처럼 벽에 가로막힐 확률이 높지만 도전하는데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니 시도해보는 것도 괜찮았다.

게다가 동현의 랭킹이 높아져도 경쟁자가 될 것도 아니라서 억지로 시기질투를 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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