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11화 (111/241)

111화. 재활

지혁은 며칠 정도 등교를 하다가 결국 자퇴서를 제출했다.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마침내 인정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일상을 보내니 도저히 아무렇지도 않게 버틸 수가 없었다.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도 제법 부담되었고 말이다.

그래도 혼자 충동적으로 결정한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진지한 상의 끝에 이런 선택을 내렸다.

‘생각보다 쉽게 동의를 받아냈어. 설득하느라 엄청 힘들 줄 알았는데.’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지혁이 고등학교를 그만두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반응도 그랜드슬램 우승이라는 전례 없는 성과를 달성하자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전부 사라졌다.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알법한 슈퍼 스타들을 하나하나 제압하면서 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 사람들의 굳어있는 생각에 커다란 충격을 준 것이다.

솔직히 나이를 떠나 이 정도 수준의 선수가 되면 누가 반대를 하더라도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정할 법도 했다.

‘이제 여유도 생겼으니 슬슬 미루고 있던 일을 처리해볼까.’

지혁은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던 복잡한 사정들이 어느 정도 해결되자 오랜만에 어플을 불러들였다.

앞으로의 행보를 정하는데 이것보다 중요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지혁]

근력: 75▲ 민첩: 75▲ 체력: 75▲ 신장: 188cm▲

서브(A), 포핸드(A+), 백핸드(A+), 풋워크(A), 외모(A-), 트릭샷(A-), 찰나(A)

[2,721,104포인트]

‘그동안 추가로 모인 포인트는 대략 6만 정도인가······. 본격적으로 외부 활동을 하지 않은 것치고 꽤 괜찮네.’

허공에 떠있는 글자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지혁.

오랜 시간 동안 고민을 해두어서 대략적인 방향은 이미 생각해두었다.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아 봐야 두 개뿐이야.’

부상이 완벽하게 회복될 때까지 포인트가 모이는 족족 때려 박거나 그게 아니면 신체 능력을 미리 상승시키고 재활과 밸런스 조정을 같이 진행하는 것이다.

둘 다 장단점이 극명해서 롤랑 가로스 결승전이 끝나고 시간이 제법 지났음에도 지금까지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역시 안전하게 가는 게 가장 좋겠지? 괜히 아시안 게임까지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길 테니 말이야. 거기다 군대 문제도 달려있고.’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는 선택지도 나름 괜찮았지만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대회에 빨리 복귀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다.

마침내 생각을 정리한 지혁은 주저하는 기색 없이 곧바로 자신의 할 일을 했다.

그러자 270만이 넘는 막대한 양의 포인트가 단번에 세 자리까지 추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갖은 고생을 하며 모아둔 포인트들이 부상을 회복하는데 전부 소모가 되었던 것이다.

“아······.”

실시간으로 통증이 줄어들고 몸이 가벼워지는 기묘한 느낌에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고작 몇 분밖에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지혁의 상태는 급격히 좋아졌다.

그렇게 전신을 맴돌던 열기가 한바탕 지나가고 난 후, 거짓말처럼 이질적인 감각이 사라졌다.

‘와. 포인트를 무시무시하게 잡아먹은 만큼 효과는 확실하네. 이런 컨디션이라면 가벼운 랠리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겠어.’

물론 지금 당장 공식 경기를 뛰는 건 불가능했다.

가장 심각한 손목 부상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런 추세라면 400만 포인트를 전부 투자했을 때 원래 실력을 찾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계획했던 대로 아시안 게임에서 화려한 복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혁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통. 통. 통.

제자리에서 뛰어보며 스플릿 스텝을 시험해보는 지혁.

‘분명 이렇게 움직이면 전신이 삐걱거렸는데. 주의만 하면 조금씩 스트로크를 훈련을 해도 되겠어.’

부상으로 인해 긴 시간 동안 운동을 하지 않아서 마침 몸도 근질근질했다.

평소 활동량이 워낙 많았던 만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얌전히 있는 게 커다란 스트레스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땀을 흘리며 단련해둔 몸이 빠르게 망가져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직접 시험을 해봐야겠어.’

결국 지혁은 내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코치들에게 연락을 보냈다.

갑작스러운 요청이었지만 애초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부탁은 너무나 쉽게 이루어졌다.

***

한 시간 후, S증권 실업팀 훈련장.

지혁은 간단한 운동조차 하기 힘들었던 부상이 크게 완화되자 자신의 현재 상태를 시험해보기 위해 테니스 코트를 급하게 섭외했다.

그리고 거기에 선정된 게 S증권 선수들이 사용하는 시설이었다.

이곳이 가장 거리가 가까운 코트가 아니었지만 훈련 중에 방해를 받지 않으려면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장소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전처럼 아카데미에 방문하게 된다면 엄청난 인파에 휩쓸려 귀찮은 상황에 부딪칠 확률이 매우 높을 테니 말이다.

아무리 둔감한 성격의 지혁이라고 해도 현재 한국에서 자신의 유명세가 어떤 수준인지 잘 알고 있었다.

벌컥!

바깥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들리길 잠시, 곧이어 건물의 문이 빠르게 열렸다.

지혁이 거의 뛰다시피 하며 실내 코트로 달려온 것이다.

그의 뒤쪽에는 테니스 장비를 든 채 따라오는 코치들의 모습도 같이 보였다.

혼자서 스트로크를 시험할 수 없었기에 훈련 파트너로 부른 인원들이었다.

코치들은 당분간 휴식기를 가진다고 들었기에 갑작스레 불려 나온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정말로 이지혁이 왔잖아? 그런데 여긴 뭘 하려고 온 걸까. 부상 중이라고 기사가 엄청 나오지 않았나? 심지어 윔블던도 건너뛴다고 발표했잖아.”

“아무래도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부상이 심각하지 않나 봐요. 뛰어다니는 것만 봐도 전혀 아파 보이지 않는 걸요.”

“설마 US오픈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핑계를 댄 건가? 어쩌면 인터뷰에서 말했던 게 연기일 수도 있겠어.”

“탑랭커들이 원하는 대회만 골라가며 참가하기 위해 일정을 조절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실내 코트 한편에는 어딘가 낯이 익은 남자들이 몇몇 보였다.

그들의 정체는 권동현을 포함한 S증권 실업팀 소속의 선수들이었다.

지혁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하던 일들을 모두 내팽개치고 훈련장으로 모였던 것이다.

그랜드슬램 우승자가 자신들이 훈련하는 곳으로 온다는데 현역 테니스 선수의 입장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제대로 된 탑랭커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런 기회는 천금을 주어도 얻기 어려웠다.

탕! 탕! 탕!

실내 코트에 도착하자마자 코치들과 랠리를 시작하는 지혁.

몸 풀기 겸 준비 운동을 하려는 목적이었기에 타구의 속도는 꽤나 느린 편이었다.

물론 불과 일주일 전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선수의 스트로크인 만큼 정확도와 코스가 예사롭지 않긴 했다.

“······뭐야? 정말 부상을 당한 게 맞아?”

“서브를 하는 모습까지 봐야 정확하겠지만 심각한 부상이 아니란 건 확실하네요.”

“아, 이렇게 되면 아시안 게임 단식 부분은 이지혁에게 무조건 돌아가겠네. 자리가 늘어나서 나한테도 기회가 오는가 싶었는데.”

“어차피 일본 선수 대표로 니시코리가 출전해서 금메달을 딸 가능성도 낮잖아요. 저희는 경쟁력이 있는 복식이나······.”

탕!!

그때 실내 코트를 가득 채우는 임팩트 소리가 들렸다.

번개처럼 쏘아진 포핸드 스트로크는 베이스라인 위를 정확하게 때리고 쭉 뻗어나갔다.

그 모습에 선수들의 대화 소리가 뚝 끊어졌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타구의 수준에 넋이 나가버린 것이다.

그렇게 멍한 표정을 짓고 있자 비슷한 위력의 포핸드가 몇 번이나 다시 반복되었다.

탕!! 탕!! 탕!!

‘포핸드는 대략 80% 정도 회복한 건가? 이 정도면 실전에서 충분히 써먹고도 남겠어.’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라면 항상 여력을 남겨두는 터라 포핸드만큼은 공식 경기에서 보여주던 것과 비교해도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다운 더 라인, 크로스 샷, 로브, 발리, 플랫, 탑스핀, 슬라이스, 드롭샷, 잭 나이프, 라이징 샷 등.

지혁은 포핸드로 할 수 있는 모든 기술들을 하나하나 시험해봤다.

화려한 기술들의 향연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실업팀 선수들은 침까지 흘렸다.

TV로 중계 경기를 보긴 했지만 눈 앞에서 직접 경험하는 건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괴물이잖아······. 이게 세계 최고의 재능이라는 건가. 앞으로 저 녀석을 넘어서는 유망주가 한국에서 나오긴 할까.”

“이런 실력을 가지고도 롤랑에서 패배 직전까지 갔었다니, 페더러하고 나달은 얼마나 대단하다는 거지. 빅3의 벽이 정말 높긴 한가 보네.”

지혁이 훈련장에 도착한 지 아직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선수들은 마치 다른 세계의 존재를 보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평범한 팬들에 비해 아는 것이 월등히 많은 탓에 느끼는 바가 컸던 것이다.

‘워밍업도 됐으니 슬슬 백핸드도 사용해보자. 균형만 맞으면 이벤트 경기를 나가는 것도 괜찮겠어.’

행복 회로를 돌리며 포지션을 변경하는 지혁.

반대 방향으로 서야 하는 만큼 본래 느긋했던 풋워크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탕!

잠시 후, 라켓을 맞은 타구는 라인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그 어이없는 실수에 실내 코트는 썰렁한 분위기가 잠시 흘렀다.

“······한 손 백핸드라. 그보다 밸런스가 엉망이네. 저러면 스트로크 컨트롤이 흔들리는 게 당연하지.”

“멀쩡한 줄 알았는데 왼손이 문제였구나. 엄살이 아니었어.”

“오른손만 가지고 플레이하느라 불필요한 풋워크도 상당히 많아. 아무래도 위력에 비해 손해가 막심한 스타일이 강요되는 모양이네.”

“저런 경기력으로 그랜드슬램을 참가하는 건 확실히 무리죠. 괜히 베이글 세트로 망신을 당하는 것보다 기권하는 게 현명한 선택인 것 같아요.”

이제야 의문이 풀린 건지 고개를 끄덕이는 선수들.

제멋대로 날아다니는 백핸드는 프로의 샷이라 말하기 부끄러울 수준이었다.

아마 프로에 갓 데뷔한 풋내기도 이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적어도 셋에 두 번 이상 아웃을 당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통증은 그럭저럭 견딜 만 한데. 어색한 자세가 발목을 잡는구나.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벤트 매치는 힘들겠어.’

물론 매니지먼트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한다면 얼마든지 경기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패배를 당할 게 뻔한 일을 태연하게 저지를 생각은 없었다.

비공식 경기라도 승률이 떨어지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당분간 스트로크 훈련에 집중하자.’

어차피 최악의 경우라고 해봐야 400만 포인트가 모이는 순간 전부 해결될 것이다.

그러니 그때가 될 때까지 나쁜 습관이 몸에 각인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만 해줘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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