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17화 (117/241)

117화.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

기대 이상의 흥행을 얻으며 성공적으로 종료된 이벤트 매치.

지혁은 일본에서 일정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심 니시코리와 합동 훈련을 하며 무뎌진 감각을 가다듬고 싶었지만 8월 중순에 마스터즈 대회가 개최되는 탓에 서로의 스케줄이 어긋났기 때문이다.

‘이번 마스터즈는 신시내티 오픈이라 내 목적지와 같은 미국이긴 한데······. 그래도 거리를 생각하면 따로 약속을 잡는 건 어렵겠지.’

투어를 따라다니면서 경기 파트너 역할을 할 수도 없으니 일찌감치 단념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본격적으로 대회 본선이 시작되면 체력을 관리하느라 바빠서 제대로 상대해주지도 못할 테니 말이다.

최대로 잡아도 이틀에 1~2시간의 훈련이 한계일 텐데 그 정도면 굳이 따라갈 이유가 없었다.

‘그 시간에 다른 대안을 찾는 게 훨씬 낫지. 그동안 너무 바빠서 하지 못했던 일들도 많으니까. 이제 부상도 전부 회복되었으니 원래 계획대로 일정을 진행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선택일 거야.’

그렇게 지혁이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며 상념에 잠겨있을 때.

한창 이동하고 있던 차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창밖의 풍경을 보니 어딘가 익숙한 주차장이 보였다.

불과 몇 달 전에 일주일이 정도 지나다녔던 터라 아직 기억에 남아있는 광경이었다.

“코치님, 벌써 도착한 거예요?”

“그래. 애초에 숙소에서 먼 거리가 아니었잖아. 약속 시간이 다 되어 가니까 이제 내리자.”

달칵.

자동차의 문이 열리자 우르르 내리는 지혁과 일행들.

그렇게 한자리에 모두 모이게 되니 무려 10명에 달하는 대인원이 만들어졌다.

필요한 직종의 전문가들을 한 명씩 고용하다 보니 어느새 이만큼이나 숫자가 늘어난 것이다.

쓸데없이 많아 보인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기술, 투어 스케줄, 컨디션, 전략, 분석 등 전부 각자 맡고 있는 역할이 있었다.

게다가 이건 다른 상위 랭커와 비교하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메이저 대회에서 기존보다 딱 1경기만 더 이기더라도 스폰서 금액이 수억에서 수십억이 왔다갔다하는데 투자를 아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투어 비용을 대는 것이 힘들 정도로 수입이 간당간당한 선수가 아니라면 이렇게 하는 게 당연했다.

탕!! 탕!! 탕!!

부지 안으로 걸어갈수록 조금씩 들려오는 임팩트 소리.

아직 낮이라 그런지 지혁이 가는 방향 쪽에서는 한창 훈련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의 소리가 들렸다.

펜스를 너머 흐릿하게 보이는 모습은 거리가 멀어도 열정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과연 미국에서 고르고 고른 유망주들 다운 모습이었다.

한국이었다면 테니스 특성 학교에 한 명이 있으면 다행인 수준의 주니어 선수가 이렇게나 많다니.

이런 인프라가 바탕이 되었기에 매번 세계 랭킹 1위를 배출하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괜히 니시코리가 일본이 아닌 이곳에서 배출된 게 아니었다.

‘음······.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는 거의 5개월 만이구나. 나중에 다시 방문할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시즌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도중에 다시 오게 될 줄이야.’

분명 3월에는 몇백 명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숫자가 절반은 부족해 보인다.

아마 원정을 나갈 실력을 가진 주니어 선수들이 대부분 경험을 쌓기 위해 외부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다.

저벅저벅-

차에서 내리고 10분 정도 걸었을까.

지혁과 일행들은 드디어 약속 장소에 거의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지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많은 훈련장이 있었음에도 길을 헤매는 일은 없었다.

“저기 보이네. 저 문으로 들어가면 돼.”

코치가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자 고개를 끄덕이며 훈련장의 문을 여는 지혁.

10명이나 되는 불청객이 갑자기 등장하자 훈련을 하고 있던 아카데미의 장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시선을 던져 왔다.

닉 키즈와 IMG 키즈 같은 핵심 인원들이 훈련하는 곳까지 외부인이 들어오는 경우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면 아무래도 아카데미 측에서 정보를 들은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이번 약속을 한 달 전에 잡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야기가 세어나가지 않았구나.’

“······잠깐 저기 가운데 있는 사람, 골든 보이 아니야?”

“뭐? 지금 일본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니시코리 케이랑 친선 경기를 치렀잖아. 우리도 영상으로 봤었고 말이야.”

“아니, 정말이야! 네가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 저번에 왔던 모습 그대로라고! 그리고 닮은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 판박이야! 저렇게 잘생긴 얼굴을 헷갈릴 일은 없다고.”

“아! 진짜야! 정말 골든 보이가 맞는 것 같아!”

“아카데미에 다시 방문했다고? 어디!?”

“롤랑 가로스 결승전에서 나달을 어떻게 이겼는지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 잘 됐다!”

“이번에도 연습 경기를 받아주려나?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한 번만이라도 지도를 받아보고 싶은데······.”

웅성웅성.

학생들은 입구에서 훈련장 내부를 살펴보고 있는 인물의 정체를 순식간에 알아차렸다.

올해 개최된 롤랑 가로스의 우승 덕분에 지혁은 단순히 미래가 기대되는 유망주에서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로 발돋움했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들은 2, 3, 4등이 아닌 1등 만을 기억하기 마련이었다.

‘분명 몇 달 전에 왔을 때는 이 정도로 환영해주지 않았는데 인지도가 많이 높아지긴 했나 보네.’

물론 그 당시에도 스타를 대하는 느낌이긴 했지만 지금 반응은 그걸 한참이나 넘어섰다.

마치 우상을 보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모든 테니스 선수들이 평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그랜드슬램 우승을 비슷한 나이로 달성했으니 이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월리엄스랑 데이비드는 없구나. 역시 알짜배기들은 전부 투어를 다니고 있나 보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라 그리 실망이 들진 않았다.

ATP랭킹까지 가지고 있는 이름 있는 기대주들이 시즌 중에 놀고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다 데이비드는 지난 5개월 간 랭킹이 240위에서 140위까지 튀어 올라서 단지 아카데미에 국한된 게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슈퍼 루키였다.

지혁이 데뷔 1년 3개월 만에 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괴물이라서 그렇지 이 정도 성장세면 어지간한 네임드 선수와 비교해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

이건 차후 빅3급으로 성장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재능이라는 의미였다.

‘뭐, 부족하지만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수십 명에 달하는 A급 유망주들이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훈련 파트너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탑랭커와 하는 훈련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겠지만 코치들을 파트너로 쓰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아무리 쌓아 놓은 커리어가 대단해도 현역 선수의 경기력을 따라가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지.’

지혁이 입구에서 가만히 서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카데미 측 인물이 다가왔다.

“리, 오셨군요.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닉이 기다리고 있어요.”

“빨리 만나보고 싶네요. 혹시 제가 늦진 않았겠죠?”

“네. 제시간에 딱 맞추셨습니다. 레슨이 막 끝났거든요.”

덕분에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을 하며 안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남자.

훈련장의 공간이 한정되어 있었기에 이동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리, 드디어 왔구나. 늦었지만 롤랑 가로스에서 우승한 걸 축하한다. 클레이에서 나달을 상대로 승리하다니 나를 비롯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어. 경기력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고.”

닉은 무려 5개월 만에 재회하자마자 칭찬부터 했다.

몇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주니어 선수들을 프로로 데뷔시킨 그에게도 이번 일은 꽤 인상적인 일이었던 것 같았다.

그가 가르친 선수들 중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피트 샘프라스, 앤드리 에거시, 짐 쿠리어조차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나마 기존의 그랜드슬램 최연소 우승자인 마이클 창이나 성별은 다르지만 마리야 샤라포바가 비슷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테니스 팬들이라면 이름을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로 하나 같이 전설적인 선수들이라 같이 묶이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라인업들이었다.

“다시 코칭을 받고 싶다고 아카데미에 연락을 했었지? 그런데 손목 부상은 전부 회복된 건가? 물론 니시코리 그 녀석을 이기는 걸 보긴 했지만 확인차 다시 물어보는 거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만큼 멀쩡해요. 만약 의심되신다면 직접 시험해보셔도 되고요.”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지혁.

닉은 이런 대답이 돌아올 줄 예상하고 있었는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몸이 멀쩡하지 않았다면 자신을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재활을 하는 것도 바쁜 상황에서 프로들도 녹초가 되는 하드 트레이닝을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저번에 했던 훈련을 이어서 하면 되겠군. 그 당시 5일밖에 시간이 없어서 찜찜했는데 마침 잘 됐어. 이번에는 아카데미에 얼마나 있다가 떠날 건가?”

“복귀 시기를 11월의 아시안 게임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중간중간 계약 때문에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겠지만 나머지 시간은 전부 여기에 있을 거예요.”

“그럼 넉넉하게 잡으면 3개월이겠군. 그 정도면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겠어.”

웅성웅성.

두 사람의 대화를 훔쳐 듣고 있던 학생들은 3개월이라는 말을 듣고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현재 테니스계에서 가장 핫한 선수와 90일을 같이 보낼 수 있다는 건 정말 어마어마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와 비슷한 급으로 묶이는 지혁의 훈련을 근처에서 구경하기만 해도 적지 않은 소득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들었어!? 11월까지 여기서 훈련을 한다고 한데!”“와······. 3달 동안 아카데미가 난리가 나겠어. 그나마 절반 이상이 원정 경기를 나가서 다행인가.”

“그래도 우리에겐 좋은 일이잖아. 만약 골든 보이와 친해진다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글쎄. 네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걸. 너도 알다시피 슈퍼 스타들은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벽을 단단하게 치잖아. 그게 골든 보이라고 다를 것 같지 않아. 얼마나 접근하는 사람이 많겠어.”

학생들은 친해지기 어려울 거라는 의견에 대부분 동의했다.

저번에도 일주일 가량 머물렀지만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일은 한 명도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은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적게나마 있었다.

“훈련을 바로 하려나 본데? 정말 빅3와 동급의 실력인지 한 번 구경해보자.”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데 당연하지.”

훈련장은 어느새 모든 학생들이 움직임을 멈춘 채 한 장소로 고개가 전부 돌아갔다.

오랜만에 방문한 지혁이 과연 얼마나 성장해서 왔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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