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18화 (118/241)

118화.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

지혁은 닉에게 본격적인 코칭을 받기 전에 간단하게 실력을 점검받기로 했다.

지난 5개월 사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로 짧은 기간이라면 눈에 띄는 변화가 없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지혁이 그동안 만들어낸 성적만 보더라도 상당한 기량 상승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연습 파트너를 구하지 않는 걸 보니 서브를 먼저 하려는 것 같네. 골든 보이는 뛰어난 서버로 유명하던데 정말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대단할까?”

“당연히 그렇겠지. 230km 전후의 타구 속도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현역 선수들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잖아. 게다가 라켓 컨트롤까지 합치면 어지간한 빅 서버보다 훨씬 나을 거야.”

“진짜 부족한 부분이 없는 녀석이긴 하구나. 보통 선수들은 한쪽에 특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야. 나이가 어린 선수들은 특히 더 그렇고.”

“원래 상위 랭커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렇잖아. 공략당할 만한 약점이 있으면 어떻게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겠어. 경쟁자들과 부딪치면서 자연스럽게 완성형 선수로 거듭난 거겠지.”

학생들이 이런저런 평가를 하고 있을 때, 지혁은 마침내 준비 운동을 마치고 베이스라인에서 비스듬히 선 채 서브의 사전 동작을 했다.

그 모습에 훈련장의 말소리는 뚝하고 끊어졌다.

과연 소문만큼 그랜드슬램 우승자의 실력이 대단한지 궁금한 모양이다.

아카데미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페나조가 이곳에 올 일은 없으니 오늘 같은 이벤트는 이번이 아니라면 두 번 다시 생기지 않을 확률이 높다.

휙!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허공으로 토스되는 공.

정점에 도달하고 난 후, 느릿하게 하강한 궤적은 곧이어 반대편 T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타구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시선을 놓쳐버린 것이다.

““······.””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고 나서 침묵에 휩싸이는 훈련장.

아무리 미국에서 손에 꼽히는 유망주들이라고 해도 이 정도 수준의 서브를 본 적은 처음이었다.

고작 주니어 선수에 불과한 학생들이 어디에서 230km에 달하는 속도를 경험해보겠는가.

그랜드슬램 상위 라운드에서나 볼 법한 엄청난 수준의 서브를 말이다.

‘오. 속도가 더 늘었는데? 피지컬이 올라간 효과가 확실히 있구나.’

지혁은 부상을 전부 회복하고 나서 어플을 통해 힘을 가장 먼저 상승시켰다.

이때까지 한계가 뚫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인트를 모으기 위해 꾸역꾸역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인내의 시간은 쓰고 고달팠지만 결과적으로 얻게 된 보상은 너무나 달콤했다.

“227km! 시작부터 속도를 제대로 뽑아주네. 라인을 공략하는 라켓 컨트롤도 그렇고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 날인가 봐.”

“맞아. 워밍업만 된다면 지금보다 구속이 더 나오겠어.”

학생들이 경악하는 반응을 보이자 마치 자신이 칭찬을 들은 것 마냥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코치들.

지혁은 그런 주변의 분위기를 눈치챘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아무래도 아직 시험해 볼 기술들이 한참이나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쾅!! 쾅!! 쾅!!

“플랫은 그만하면 됐네. 이제 다른 것들도 보여주게.”

경이적인 실력에 집중을 하느라 정지 화면처럼 멈춰있던 훈련장은 닉의 목소리로 인해 드디어 정적이 깨졌다.

그렇게 지혁은 탑스핀, 슬라이스 등 가장 기본적인 서브 기술들을 선보였다.

제법 준수한 실력이었지만 주력으로 사용하는 샷이 아닌 터라 확실히 숙련도가 아쉬운 면이 군데군데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트위스트 서브인가. 메이저에 데뷔하고 나서 거의 버려진 기술이라 조금 낯설게 느껴지네. 워낙 쟁쟁한 선수들이 많아 트릭샷과 같이 봉인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반격을 당하기 딱 좋아서 그렇지 화려한 퍼포먼스와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을 양학하는 용도로 이것 만한 게 없었다.

트위스트 서브를 자주 사용하던 당시에만 하더라도 이 기술로 인해 별명까지 생겼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만큼 팬들이 좋아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인지도가 빠르게 올라간 원인에도 이게 제법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솔직히 천재적인 재능을 어필하는데 신기한 기술들을 사용하는 것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휙!

토스를 하자마자 아치 형태로 급격하게 휘는 지혁의 허리.

자세나 공의 낙하 위치가 둔감한 사람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달랐기에 코트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사람들은 뭔가 새로운 게 나올 거라는 예감을 강력하게 받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빗나가지 않았다.

드르르륵- 탕!!

서브는 강력한 역회전이 걸린 채 반대편 서비스 코트에 떨어졌다.

속도가 느려 리턴을 하는 게 간단해 보일 것 같았던 타구는 바운드 직후, 정반대 방향으로 튀어 올랐다.

만약 그 자리에 사람이 있었다면 안면에 정통으로 맞았을 확률이 높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간담이 서늘해지게 만들 수는 있겠지.’

와아아아아!

물리법칙을 벗어난 신기한 장면에 환호성을 지르는 학생들.

현역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그들에게는 천부적인 재능과 기교의 조화가 합쳐진 능력이 더 확실하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아마 시간이 지나 베테랑 선수가 된다면 화려한 잔재주보다 투박한 기본기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다행히 녹슬진 않았네. 반년 넘게 처박아 둬서 몇 번 정도 아웃되는 걸 각오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어플의 도움이겠지?’

애초에 트위스트 서브는 연습으로 얻은 기술이 아니어서 지금 생각이 십중팔구 맞을 것이다.

그렇게 지혁은 예상보다 자신의 상태가 좋은 것 같다고 생각되자 한층 편안해진 마음으로 테스트에 임할 수 있었다.

굳이 조마조마하게 걱정하지 않아도 기본을 해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

지혁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들이 워낙 다양했던 탓일까.

실력 점검은 1시간을 훌쩍 넘어가 버렸다.

3세트 경기를 한 번 진행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의외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전혀 지루한 표정이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신기하고 흥미로운 볼거리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아마 이들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테니스 선수라서 그런 걸 수도 있었다.

지혁이 보여주는 모습에 대한 숨겨진 의미나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저 녀석은 대체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 거야. 상위 랭커와 빅3는 전부 저런 괴물이라는 건가? 만약 그게 맞다면 우리 같은 선수들은 도저히 희망이 없다는 거잖아. 저 규격 외의 녀석을 정면으로 붙어서 어떻게 이겨.”

“······그랜드슬램 우승을 그저 운으로 차지한 게 아니었구나. 이 정도 실력이면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배워야 할 게 정말 많을 것 같아. 앞으로 3개월 간의 시간이 기대되는 걸. 우리가 모르는 비결이라도 있나 주의 깊게 관찰해보자. 혹시 알아? 골든 보이만의 특별한 훈련 방법이라도 있을지 말이야.”

탕!!

“그만! 이제 충분 해.”

한 손 백핸드를 끝으로 마침내 종료된 테스트.

시작할 때와 다르게 닉의 표정이 붉게 상기된 걸 보면 지혁의 실력이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아마 그는 어떤 식으로 코칭을 해야 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잔뜩 들뜬 것 같았다.

이 정도 재능이라면 무엇을 해도 전부 빨아들이는 게 가능할 테니 말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테니스를 현실에서 재연할 수 있는데 지도자의 입장에서 싫을 리 없었다.

물론 전설적인 테니스 코치의 기준은 평범한 사람들과 차원이 다르겠지만 지혁의 재능도 일반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범재들에게 몇 년이 걸리는 변화도 천재에게 한 달도 걸리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마냥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리, 너에게 맞는 훈련 스케줄을 짜는데 시간이 필요하니 본격적인 코칭은 내일이나 이틀 뒤부터 하도록 하지. 일본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피로가 쌓였을 테니 오늘은 푹 쉬게.”

닉은 앞으로 꽤나 바빠질 거라 말하며 휴식을 권했다.

어차피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철저한 분석과 계산이 필요했기에 당장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5개월 전에는 일정이 너무 촉박해서 전체적인 틀만 잡아줬지만 이번에는 시간도 넉넉하니 그때와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게 맞았다.

“아뇨. 제 컨디션은 최상이에요. 기왕 코트에 들른 김에 여기서 훈련을 하다가 숙소로 돌아갈게요. 휴식은 재활을 하는 동안 정말 질릴 만큼 했거든요. 당분간은 쉬는 것보다 코트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네 생각이 그렇다면 말리진 않으마. 그랜드슬램 우승까지 한 선수가 자신의 몸 관리를 하지 못하는 초보적인 실수를 하진 않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닉을 포함한 코치 몇 명은 훈련 스케줄을 짜기 위해 바쁜 걸음으로 훈련장을 떠났다.

그렇게 지혁 혼자 코트 위에 덩그러니 남게 되자 열기가 느껴지는 뜨거운 눈빛들이 한꺼번에 집중되었다.

장애물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사라지자 학생들이 접근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리, 괜찮다면 내가 훈련을 도와줘도 될까? 닉하고 대화하는 걸 들어 보니 연습 경기를 하는 걸 원하는 것 같은데 말이야.”

수십 명이 서로를 경쟁자 보듯이 경계하길 잠시,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먼저 지혁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 게 지난 번에 아카데미에서 본 학생인 것 같았다.

뭐, 금전적인 지원을 100% 받을 수 있는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의 장학생은 숫자가 고작 30~40여명에 불과해서 대부분 아는 얼굴이긴 했다.

원래 정해진 역사 대로라면 5~6 년 뒤에 프로 세계에서 만나는 주니어 선수들도 제법 있었으니 말이다.

“아!”

아주 잠깐 망설이는 기회를 빼앗기게 되자 아차하는 표정을 짓는 학생들.

하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가 되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지혁이 제안을 흔쾌히 승낙해버렸던 것이다.

아쉬운 한숨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지만 몸이 한 개뿐이라 모든 사람들의 바람을 충족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예쓰! 지금 라켓을 가져올 테니까 바로 시작하자. 몸은 안 풀어도 되겠어?”

“방금까지 테스트를 해서 괜찮아.”

탕!!

얼마 후, 훈련장에서 다시 들리는 임팩트 소리.

이날, 지혁은 학생들의 적극적인 도움 덕분에 만족할 만큼 연습 경기를 할 수 있었다.

비록 실력이 탑랭커들과 비교하면 어설픈 면이 많은 건 분명했지만 전 세계에서 수위에 드는 명문 테니스 아카데미의 장학생들이라서 그런지 랭킹 300~400위쯤은 찜 쪄먹을 숨은 고수들이 많았다.

300위면 당장 한국에서 개최되는 실업팀 대회에서 우승권 내에 진출하는 게 가능한 수준이었다.

이대로 국적만 바꾼다면 한국에서 서열이 네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지혁은 한 명씩 실력을 시험해 보면서 엄청난 인프라 격차에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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