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20화 (120/241)

120화.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

지혁이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하고 얼마 후.

경기는 이미 승부의 결과가 정해진 것처럼 원사이드하게 흘러갔다.

데이비드가 조금씩 상승하는 스트로크의 위력에 빠르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잘 쳐줘봐야 100위 근처의 실력을 가진 선수의 한계였다.

빅3와 비슷한 수준의 지혁과 그럭저럭 볼 만한 대결을 펼치려면 적어도 세계 랭킹 30위 안에는 들어야 가능했으니 말이다.

쿵!

[아웃! 게임 리 5-2.]

라인을 크게 벗어나는 데이비드의 백핸드 스트로크.

나름 카운터를 노린 모양이지만 현격한 기량 차이를 극복하긴 무리였나 보다.

애초에 코트 좌우를 공략하는 타구를 쫓아가는 것조차 벅차했으니 제대로 된 반격이 힘든 게 당연했다.

“······데이비드가 이렇게까지 압도당할 줄이야. 아카데미의 수석이 같은 또래에게 패배하는 상황은 1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역시 세상은 넓구나. 우리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어.”

“글쎄. 이번 경우는 예외로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골든 보이는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선수잖아. 테니스 역사에서도 드문 불세출의 천재를 일반적인 범주에 넣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지. 아무리 미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유망주라고 해도 그와 비교하면 평범한 재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어.”

“과연 차기 빅4의 라는 건가. 이 정도 재능과 실력을 가져야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선수가 될 수 있나 보네.”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절대자나 다름없었던 데이비드가 열세에 처하는 모습에 새삼스레 지혁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실감했다.

아무래도 막연했던 최정상급 선수의 실력이 이번 경기를 계기로 꽤 뚜렷해진 것 같았다.

이건 고만고만한 주니어 선수들 사이에서 절대 얻을 수 없는 감각이니 상당히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서브 리.]

체어 역할을 맡은 코치의 신호를 전해듣고 여덟 번째 게임을 준비하는 지혁.

마지막이 될 게 거의 확실한 순간이라 구경하는 사람들의 집중도는 더욱 상승했다.

여기서 경기가 끝나게 되면 한동안 천재들의 대결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쪽의 재능이 월등히 커서 치열한 모습을 보는 건 불가능했지만 아카데미에서 이것보다 흥미진진한 매치는 없었다.

탕!! 탕!! 탕!!

5-2의 스코어에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서일까.

데이비드는 몸에 걸릴 부하를 생각하지 않은 채 오버페이스를 하며 전력을 쏟아부었다.

격렬한 움직임은 분명 후유증을 가져오겠지만 챌린저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오. 실력이 전체적으로 많이 늘긴 했구나. 확실히 미국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이유가 있었어.’

비록 올해 괴물 같은 행보를 보여준 지혁과 비교하면 초라했지만 다른 탑랭커들을 기준으로 하면 상당히 놀랄 만한 성장이었다.

그렇게 한층 날카로워진 스트로크를 받아내며 내심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을 때.

쿵!!

예고도 없이 옆구리를 꿰뚫는 위닝샷이 나왔다.

라인 위로 정확하게 떨어진 타구에 감탄한 건지 코트 주변에서 와!하는 탄성이 작게나마 들렸다.

‘뭐지? 여기서 내가 실점할만한 틈을 보였었나?”

데이비드의 실력은 전부 파악하고 있어서 의도하지 않은 포인트를 허용한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원한다면 베이글로 끝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한 방이 있다는 건가······. 재미있네.’

오랜 경험상 이런 예상 밖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선수들이 프로들 중에 아주 가끔씩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탑랭커 반열에 언제가 되었든 올라갔다.

‘제대로 가다듬기만 한다면 50위 위로 순식간에 치고 올라오겠어. 과거에 20위 대에서 머물렀었지? 그러면 성장 한계를 가장 낮게 잡아도 그 정도는 되겠구나.’

지금은 그때보다 실력이 상승하는 속도가 훨씬 빠른 듯하니 이대로 5~6년만 지나면 10위 대에 진입한 미국 국적의 선수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상황의 가장 큰 원인은 나겠지? 그것 말고 커다란 영향을 줄 만한 변수가 없을 테니까.’

아무래도 데이비드는 5개월 전에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선수에게 패배하고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나 보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정점이었던 천재에게 더 큰 재능을 가진 존재가 떡하니 나타났으니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신기한 건 그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성장의 동력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말로 하는 건 쉽지만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닌데 이것만 봐도 앞으로 그가 승승장구할 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음······. 아카데미에 머무르는 동안 자주 경기 상대를 해줘야겠어.’

공연히 적을 키워주는 꼴이 될 수도 있지만 아직은 크게 위기감이 느껴지는 수준이 아니라서 괜찮았다.

게다가 랭킹이 높아져서 그랜드슬램에 데뷔해주면 지혁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환영이다.

멤버가 고착화 된 상위 시드 명단에 약간의 균열만 주더라도 제법 큰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세트 리 6-2.]

데이비드는 경기에서 나름 좋은 모습을 보이며 분발했지만 결국 승리는 지혁에게로 돌아갔다.

아무리 그가 오버페이스를 하며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고 해도 두 사람 사이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실력 차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노력과 근성만으로 극복할 격차가 아니었다.

얌전히 구경하고 있던 학생들도 그걸 잘 알고 있는지 이런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냈다.

“······.”

주변의 납득하는 모습과 다르게 잔뜩 굳은 표정으로 눈썹을 파르르 떠는 데이비드.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지간히 분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그 탓에 수건을 전해주려던 몇몇 여학생들도 눈치를 보며 코트 밖에서 멈칫거렸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 보네.’

필사적인 노력을 했음에도 6-2라는 스코어로 경기가 끝났으니 화가 날 법도 하다.

문제는 이것조차 사정을 봐준 결과였다는 거지만 말이다.

아마 그도 이게 지혁이 최선을 다한 결과가 아님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 비참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거겠지.

‘위로는······필요 없겠지. 멘탈이 약한 선수도 아닌 것 같으니 가만히 내버려두면 알아서 회복할 거야.’

지혁은 괜히 쓸데없는 말로 자존심을 자극하지 않도록 자리를 피해주며 월리엄스와 연습 경기를 바로 이어서 시작했다.

원래 10~20분 정도 휴식을 하는 게 정석이었지만 완전히 녹초가 된 데이비드와 다르게 현재 그는 적절하게 워밍업이 되어있는 상태라서 굳이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월리엄스가 첫 서브를 하고 대략 30분쯤 지났을 무렵.

쿵!!

[세트 리 6-0.]

두 번째 경기도 마침내 끝을 맺었다.

ATP랭킹이 130위인 데이비드와 다르게 월리엄스는 고작 300위 대에 불과해서 마치 탑랭커가 주니어 선수를 상대하는 듯한 상황이 펼쳐졌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제야 앞선 경기가 그나마 치열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좋은 성적을 가지고 아카데미에 복귀한 두 선수는 첫 날부터 패배의 쓴맛을 보게 되었다.

***

아카데미에서 부지런히 시간을 보내길 대략 50일.

지혁은 그동안 닉에게 전담 코칭을 받으며 간간히 외부 활동을 했다.

그 덕분에 포인트를 적지 않게 모을 수 있었다.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몇몇 사람들은 돈에 취해 훈련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고 쓴소리를 했지만 사실 이런 선택이 실력을 빠르게 상승시키는데 가장 유리했다.

트레이닝으로 완성단계에 올라선 지혁의 피지컬을 보완하는 건 고작 3개월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직 목표치를 달성한 건 아니지만 지금도 변화가 체감될 만큼 상당해. 앞으로 얼마나 남았지?’

[이지혁]

근력: 78▲ 민첩: 75▲ 체력: 75▲ 신장: 188cm▲

서브(A), 포핸드(A+), 백핸드(A+), 풋워크(A), 외모(A-), 트릭샷(A-), 찰나(A)

[206,404포인트]

현재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어플을 불러들인 지혁.

그러자 몇만 단위로 추락한 포인트와 눈에 띄게 상승한 능력치가 보였다.

‘예전처럼 한계는 80이겠지? 그러면 앞으로 근력 2, 민첩 5, 체력 5를 합쳐 총 12를 더 올리면 되니 필요한 포인트양은 대략 240만인가······.’

솔직히 엄두가 나지 않는 무시무시한 양이었다.

무려 240만 포인트라니, 마스터즈나 그랜드슬램을 참가하지 않고 단기간에 모으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수치였다.

‘130만 포인트를 모으려고 몇 달 전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사실상 아시안 게임까지 전부 80까지 맞추는 건 불가능하겠구나.’

다행히 지금 실력으로 우승하는 게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다.

그랜드슬램이라면 대진에 따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어서 상당히 아쉬웠을 테니 말이다.

“일단 20만 포인트가 모였으니까 능력치를 한 번 올릴 수 있네. 이번에도 근력을 올리는 게 맞겠지?’

지혁은 미리 계획을 정해 놓았기에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고 어플을 사용했다.

[근력이 1 상승하셨습니다.]

화아악-

“음······.”

알림과 동시에 몸속에서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열기.

근육이 재정렬되는 느낌에 신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분명 능력치가 지금보다 훨씬 낮았을 땐 자극이 훨씬 작았지만 이제 수치가 고작 1이 변하더라도 적응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후······.”

어느 정도 이질적임 감각이 가라앉자 지혁은 감았던 눈을 드디어 뜰 수 있었다.

주먹을 쥐어보거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봐도 요란했던 것과 달리 특별히 체감되는 건 없다.

아마 직접 서브를 해보거나 정확한 수치를 제어 봐야 뭔가 알아내는 게 가능할 것이다.

‘거의 보름 만에 올린 능력치니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바로 시험해볼까.’

서브나 스트로크 속도가 1km라도 올랐으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코칭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했겠지만 마침 개인 훈련 시간이라 아무런 제약 없이 훈련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기쁜 마음이 겉으로 세어 나와서 일까 발걸음이 저절로 가벼워졌다.

빈 코트가 있는 장소를 찾아서 자리를 잡는 지혁.

그가 개인 훈련을 하는 것처럼 보이자 비록 처음 아카데미에 왔을 때에 비하면 적지만 그래도 상당한 숫자의 학생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워낙 자주 있던 일이라 이제 신경이 분산되지도 않는다.

어차피 집중하고 있는 동안 접근해서 맥을 끊는 짓을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두 자신들의 연고지에서 알아주는 테니스 천재들인 만큼 기본적인 매너는 장착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감히 지혁 같은 거물의 심기를 거스르는 바보는 없겠지만 말이다.

“오늘은 서브 연습을 하는 건가?”

“리의 고속 서브는 언제 봐도 경이롭던데 230km를 뽑아내는 선수는 거의 없는데 마침 잘 됐어.”

“우리도 저걸 참고해서 조금씩 수정해보자. 골든 보이의 서브는 검증된 최적의 자세일 테니까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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