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23화 (123/241)

123화. 광저우 아시안 게임.

[게임 니시오카 3-3]

어느새 중반을 훌쩍 넘어간 정민과 니시오카의 결승전.

관중들은 주니어 선수들의 경기치고 수준이 너무 출중한 것에 놀란 건지 상당히 놀란 반응이었다.

과연 유명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1, 2위를 다툴만한 실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실력이 상당한데? 특히 정민이라는 선수는 앞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요즘 한국에서 지혁이를 제외하면 마땅한 투어급 선수가 나오지 않았잖아.”

“확실히 저 정도 재능이면 포스트 이형석이 되어줄 수도 있겠어. 몇 년만 더 지나면 그랜드슬램 참가자가 한 명 더 늘어나는 건가.”

보디가드 겸으로 동행한 지혁의 코치들은 관중석에서 정민의 플레이를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거의 전멸하다 시피한 한국의 유망주 풀에서 드디어 기대할 만한 선수가 나온 게 기쁜 듯했다.

지혁과 작년에 은퇴한 이형석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ATP랭킹 100위 안으로 진입한 국내 선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아마 코치님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거예요. 제가 보기엔 니시코리와 비교해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 것 같거든요.”

“와. 지혁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현실로 이루어질 확률이 높겠는 걸.”“세계적인 선수들이 두 명이나 나오면 테니스 불모지인 한국의 환경도 조금은 바뀌려나. 솔직히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면이 많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잘 됐어.”

지혁의 확신이 담긴 대답을 듣고 눈을 빛내며 더 큰 관심을 보내는 코치들.

그 덕분일까 경기는 코치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조금씩 기울어갔다.

니시오카가 3세트부터 스코어에서 밀리기 시작하면서 열세에 처한 것이다.

원래 플레이 타임이 길어질수록 순수한 기량 싸움이 되는 것을 생각하면 누구의 재능이 더 뛰어난지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임 세트. 매치 정. 6-3, 4-,6 7-6.]

와아아아!

마침내 정민의 승리로 돌아간 결승전.

학생들과 외부인들은 장장 100분에 걸친 사투 끝에 경기 결과가 나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뜨거운 박수 세례를 보냈다.

비록 숙련도만 따지면 미숙한 부분이 많았지만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감각적인 샷에서 정민의 천재성을 충분히 느꼈기 때문이다.

“오후는 고등부의 결승전이 시작하니까 그것도 마저 보죠.”

“좋지. 걔들은 거의 프로나 다음 없으니까 이번에는 제대로 된 경기를 볼 수 있겠네.”

“어차피 결과는 뻔하지 않겠어? 한 명이 너무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잖아.”

“하긴 저도 그가 패배하는 장면은 떠오르진 않아요. 그래도 기분전환 삼아 보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지혁과 일행들은 오후에 열리는 마지막 경기까지 전부 관전했다.

최종적인 결과는 모두가 예상했듯이 데이비드가 1위였다.

애초에 ATP랭킹 130위를 이길 수 있는 학생이 아카데미에 존재할 리 없었으니 말이다.

전 세계를 범위로 잡아도 손에 꼽히는 유망주에게 솔직히 누가 패배를 안겨줄 수 있겠는가.

물론 지혁이 나선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정식으로 등록된 학생도 아닌 데다가 현역 랭킹 6위의 괴수가 어린애들 싸움에 나서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천재들이 이렇게 많다니, 닉 볼리티에리의 저력이 정말 어마어마하구나. 괜히 ATP랭킹 1위를 밥 먹듯이 배출한 게 아니었어.”

“2000년대 중반에 샤라포바를 배출한 이후로 성과가 부진하다고 말이 조금씩 나오긴 했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앞으로 명성을 이어가는 건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네. 지혁이가 이곳에서 코칭을 받게 돼서 다행이야.”

코치들은 지난 며칠 간의 경기를 통해 마음 한 편에 품고 있던 걱정을 해소할 수 있었다.

예전에 비해 성과를 내지 못해서 내심 퇴물이 된 줄 알았는데 출중한 주니어 선수들의 실력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바쁜 일도 모두 지나갔으니 다시 훈련에 집중하자. 닉도 내일부터 코칭이 가능하다고 했었지?”

“네. 그동안 편하게 쉬어서 컨디션도 최상으로 올라왔어요.”

“여기서 머무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조금만 더 참아. 게다가 네가 복귀전으로 삼은 아시안 게임도 이제 한 달이면 시작해. 그때가 되면 실전을 치를 수 있을 거야.”

“ATP250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회라서 조금 아쉽긴 하네요. 웬만하면 첫 대회는 마스터즈 이상이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마침 파리 오픈도 11월에 열리잖아요.”

“군면제 걸려있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올해가 지나고 내년 1월이 되면 질리도록 대회에 참가할 수 있을 거야.”

답답한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위로하는 코치들.

지혁은 처음부터 다른 선택권이 없었기에 빠르게 단념했다.

‘시기가 애매해서 복귀 타이밍이 어긋났지만 그만큼 준비를 철저하게 할 수 있으니까······.”

어차피 어플의 포인트도 전부 모으지 못한 상태였다.

신체 능력을 다시 한계까지 만들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테니 내실을 다지는 기간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게 훨씬 더 충격적인 메이저 대회 복귀전을 만들어 줄 테니 말이다.

호주 오픈에서 부쩍 상승한 실력을 경험하고 놀란 반응을 보일 상대 선수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

3개월 후.

지혁은 11월이 되자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개최일보다 이주 정도 빠른 출발이었지만 여러 사정들을 고려하면 일찍 합류하는 게 맞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필요한 잡음을 만들기 싫으면 괜히 꼬투리 잡힐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스포츠 선수에게 가장 치명적인 군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에 변수를 만들기 싫었으니 말이다.

웅성웅성.

국가대표 선수단이 훈련하고 있는 건물로 지혁이 들어서자 조용하던 실내 코트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한국에서 그의 위상은 아직까지도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거기다 이들은 현역 테니스 선수였으니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테니스계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다시피한 그들이 언제 ATP랭킹 6위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겠는가.

만 16세의 나이로 드라마틱한 그랜드슬램 우승을 이뤄낸 지혁의 현재 인기는 페더러와 비교해도 그리 부족하지 않았다.

이루어 놓은 업적만 두고 보면 아직 격차가 상당하지만 어린 나이와 출중한 외모 버프를 받아서 프리미엄이 잔뜩 붙은 것이다.

‘최소한 3주는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조금 시달리겠네.’

여자 단, 복식과 남자 복식으로 출전하게 될 선수단 멤버들은 같은 국가대표임에도 지혁을 마치 연예인 보듯이 선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길 잠시. 침묵을 깨고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번 아시안 게임의 국가대표 감독을 맡은 고영민 감독이었다.

비록 레전드 선수인 이형석과 비교하면 커리어가 크게 밀리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국내에서 알아주는 실업팀 지도자였다.

“네가 그 유명한 이지혁이구나. 어제 귀국했다고 들었는데 선수단에 빨리 합류해줘서 고맙다.”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지혁은 초면부터 반말을 들었음에도 나이가 서른 살 이상 차이나다 보니 그다지 불쾌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고영민 감독과는 과거에 적잖은 인연이 있어서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당시에 ATP랭킹 90위를 찍으며 정민에 이어 국내 2위를 달리고 있을 때 질리도록 겪어봤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훈련을 시키지 않는 합리적인 사람이었지.’

능력도 없는데 꼰대인 감독이 상당히 많은 것을 생각하면 이번 인사는 상당히 괜찮았다.

물론 최악의 경우에도 지금 지혁의 영향력이라면 상대방의 헛짓거리를 대부분 막아낼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를 대체할 선수가 없는데 단식경기에 누굴 대신해서 내겠는가.

혹시나 선수단에서 배제되었다는 소식이 언론에 나가기라도 한다면 가루가 되도록 욕을 먹고 갈아치워 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실업팀 활동을 해보지 않았으니 국가대표 선수들은 전부 처음 보는 거겠지? 앞으로 데이비스컵이나 올림픽에서도 자주 만나게 될 테니 지금 인사를 해두자. 내가 한 명씩 소개시켜주 마.”

그렇게 지혁은 고영민 감독의 배려로 선수단과 통성명을 했다.

워낙 실력과 인기가 넘사벽으로 차이가 나서 텃세는 조금도 느낄 수는 없었다.

질투도 어느 정도 비벼볼 상대에게 나오는 거지 한국 최고의 스포츠 스타에게 개수작을 부리는 건 어떤 선수도 감히 생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면 이제 이름도 알았겠다. 다시 훈련을 시작하자. 아, 그러고 보니 지혁이 너는 올해 중순에 부상을 당했었지? 재활은 전부 끝난 건가?”

“일주일 전에 다시 진단을 받아봤는데 전부 회복되었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게다가 직접 연습 경기를 하면서 확인해봤으니 걱정하시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고영민 감독은 이미 지혁의 최근 행보를 꿰고 있었기에 이런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저 확인차 마지막으로 물어본 듯 그는 별다른 사족을 붙이지 않고 코트가 있는 방향으로 손짓했다.

“이지혁 선수? 이쪽으로 오면 됩니다.”

안내를 받아 비어있는 코트에 자리를 잡은 지혁.

코치는 일단 전체적인 실력을 파악하고 싶었는지 다른 선수들이 하고 있는 훈련을 시키지 않고 서브, 스트로크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이건 당연히 거쳐가야 하는 절차라 거부할 이유가 없다.

‘워밍업이라 생각하면 되겠네.’

지혁은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스트레칭을 한 뒤에 라켓을 챙겨 베이스라인 끝에 섰다.

그러자 실내 코트가 마치 정지화면이라도 누른 것처럼 뚝하고 멈추었다.

반짝반짝거리는 눈빛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무나 뻔하다.

페더러, 나달을 이기고 롤랑 가로스 우승을 한 기린아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한 거겠지.

통. 통. 통. 통.

평소처럼 익숙한 루틴을 진행한 뒤, 공을 허공으로 휙! 던지는 지혁.

188cm의 장신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자 선수들은 거기에서 어마어마한 힘을 느꼈는지 숨을 헙하고 들이쉬었다.

쾅!!

폭발하는 듯한 굉음과 동시에 반대편 코트에서 모습을 드러낸 공.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에 실내 코트는 찬물을 뒤집어쓴 듯 싸늘해졌다.

경악한 표정을 짓는 걸 보면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

“······.”

‘힘을 최대치로 올린 보람이 있네.’

아직 예열이 되지 않아 100% 전력이 아닌데도 220km를 훌쩍 넘는 속도가 나왔다.

‘이 정도면 공식 경기에서 속도가 어디까지 나올지 기대되는 걸.’

지혁은 훈련보다 실전에서 더욱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만큼 신기록 갱신을 충분히 노려볼 만했다.

‘그런데 이 서브를 받아낼 수 있는 선수가 얼마나 있을까. 니시코리를 제외하면 딱히 떠오르는 선수가 없는데.’

싱거운 대회가 될 게 뻔하다고 생각되자 왠지 기운이 빠진다.

준비했던 모든 걸 보여줄 수 없으니 보람도 자연스레 줄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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