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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36화 (136/241)

136화. 비시즌기

쿵!

절묘한 코스를 때리고 코트밖으로 빠져나가는 지혁의 포핸드 위닝샷.

연습 경기를 마무리 짓는 그 결정구에 테니스장은 복잡한 분위기가 흘렀다.

사람들이 예상치를 한참이나 벗어난 상황이 눈앞에서 재연되자 좀처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작 고등학생 선수가 프로를 이길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혁의 승리를 확신했던 건 그의 정체를 알고 있던 지연밖에 없었다.

“······너 정체가 뭐야? 이 정도 실력이면 이미 프로에 데뷔하고 남았을 텐데 너 같은 녀석이 주니어 선수에 있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어.”

대명대 선수는 지혁이 절대 무명의 아마추어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 의심이 담긴 눈빛을 보내왔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렀을 무렵 압도적인 실력과 어딘가 익숙한 외모에서 무언가 떠올랐던 것일까.

남자의 입에서 어어하는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눈이 찢어질 듯 커진 걸 보니 마침내 진상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사람들은 그가 완전히 넋이 나간 모습을 보이자 패배의 후유증을 심하게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음······. 들켰나 보네. 역시 경기까지 하면서 숨기는 건 힘들었나.’

밤이라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를 했는데 상대방이 집요하게 시선을 주니 모자로 얼굴을 가린 것도 소용이 없어졌다.

애초에 허술한 변장이라 한계가 뚜렷했지만 말이다.

“이···이지혁 선수 맞죠?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갑자기 괴물 유망주가 뚝 떨어질 리 없는데 말이에요.”

눈에 띄게 공손해진 태도로 물어오는 남자.

그는 그나마 눈치가 있는지 주변에 들리지 않을 크기의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여기서 아니라고 부정해봤자 믿지 않을 테니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을 것이다.

끄덕.

“허억!”

지혁이 미세하게 고개를 움직이자 바로 앞에서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면서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게 아무래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것 같았다.

우상으로 삼고 있던 존재를 처음으로 마주했으니 지금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도 약간은 이해가 되었다.

“어째서 여기에···?”

“아는 동생이랑 테니스를 하러 왔죠. 마침 거리도 가깝고요. 그런데 제 정체는 비밀로 해주세요. 곤란한 상황을 피하고 싶거든요.”

“아,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남자는 이상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연신 손사레를 쳤다.

그 부자연스러운 행동에 지연과 그의 친구도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챈 건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거야? 혹시 둘이 서로 아는 사이였어?”

“오빠, 그······들킨 거죠?”

“맞아. 그래도 비밀을 지켜주기로 해줘서 괜찮아.”

“비밀이라고? 너희들 혹시 유명한 얘들이야? 나만 모르는 건가······.”

“야! 잠깐 이리와 봐!”

경기를 했던 대명대학교 선수는 자신의 친구가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건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손짓했다.

앞으로 한국에서 프로 생활을 10년 넘게 하게 될 텐데 괜히 테니스계의 거물에게 미운털이 박히면 그것만큼 최악의 경우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테니스가 개인 스포츠라고 해도 지혁쯤 되면 위치가 애매한 프로 정도는 간단하게 묻어버릴 수 있었다.

“너까지 왜 그래?”

“후우···. 멍청아, 아직도 상대가 누군지 모르겠어? 빨리 얼굴을 확인해 봐. 네가 어제도 보고

싶다고 말했던 사람이 있으니까.”

다른 구경꾼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대화를 나누는 두 남자.

친구는 결정적인 힌트를 들은 덕분에 의미심장한 말이 무슨 뜻인지 순식간에 알아차렸다.

“허억! 서···설마.”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했어?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지금 상황이 알려지게 되면 우리에게도 좋을 게 없으니까 조심해.”

“알았어. 크윽.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경기를 하자고 하는 건데. 골든 보이하고 테니스를 하다니 수십억 짜리 경기를 공짜로 했네.”

“그러게 나처럼 적극적으로 움직였어야지. 국내 랭커들 중에서도 이런 행운을 얻은 사람은 거의 없을 걸. 이지혁 선수는 워낙 바쁘게 움직이는 스타니까.”“지금이라도 경기를 부탁해볼까? 세계 최고의 선수가 치는 스트로크를 직접 받아보고 싶은데.”

“방금 경기가 끝났는데 당장은 어렵지. 두 사람이 테니스장에 더 머물면 기회가 생길 수도 있으니 비밀 엄수나 확실하게 해. 사람들 때문에 떠나버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 말이야.”

그렇게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한 두 남자는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비밀을 철저하게 지키기로 마음 먹었다.

***

옆에서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후.

지혁은 분위기가 잠잠해지자 지연에게 방금 전 경기에 대해 상세히 물어봤다.

애초에 이번 대결은 그녀를 위해 승낙한 것이라 관전을 통해 얻은 게 없다면 이때까지 했던 모든 행동들은 헛수고가 된다.

물론 바보도 알아차릴 수준으로 컨셉 플레이를 했으니 그런 일은 절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지연의 출중한 재능이라면 오히려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겠지.

“저랑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을 보여준 게 맞죠? 어떤 부분이 치명적인 약점인지 정말 질리도록 봤어요. 오빠가 제시한 개선점을 따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단시간에 해결하긴 힘들 거야. 이런 문제는 인내심을 가지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

“음. 솔직하게 말하면 다시 재연할 엄두가 나지 않아요. 오빠는 다른 사람들이랑 완전히 다르니까요. 아마 평범한 재능으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실 거예요. 누구나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지연은 자신과 비슷한 수준으로 피지컬을 억제한 채 남자 프로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이때까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아마 직접 눈으로 경험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오직 테크닉만으로 여러 조건에서 우위에 선 상대를 쓰러트리는 건 말이 쉽지 현실에서 적용하는 건 극도로 어려웠으니 말이다.

“아직 1세트 정도는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할래?”“오빠만 괜찮으면 계속하고 싶죠. 오늘이 아니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잖아요.”

“그럼 짧게 경기나 하다가 돌아가자.”

지혁이 곧바로 떠나지 않는다고 결정을 내리자 이때다 싶었는지 대화에 끼어드는 대연대 선수들.

“저희가 도울 만한 일이 없을까요? 어떤 훈련이든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싶어요.”“아까처럼 경기를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요. 이번에는 이 녀석이 아닌 제가 나설게요. ATP랭킹도 제가 더 높거든요.”

프로에 데뷔한 고급 인력들이 무상으로 자원 봉사를 자처하자 지혁은 내심 잘됐다고 생각했다.

한쪽이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지도를 하는 것도 괜찮았지만 기량이 비슷한 선수와 붙는 것도 상당히 좋았기 때문이다.

“제 훈련이 주목적이 아니라서 이제 단식은 됐어요. 복식 경기라도 괜찮으면 도와주실래요?”

“물론이죠. 저희 둘이 팀을 먹으면 될까요?”

“네. 저는 지연이랑 하면 숫자도 딱 맞아서 빈 자리도 없을 거예요.”

별다른 설득을 하지 않고도 성사된 복식 경기.

그들은 서로의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각자의 위치로 이동했다.

***

탕!

지혁은 백핸드 위너를 물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성공시키며 라켓을 거둬들였다.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복식 경기의 스코어를 일일이 세고 있던 게 아니라서 여기서 끝내버려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쯤에서 그만하죠.”

““아···.””

모든 결정권을 쥐고 있는 지혁이 경기를 종료하겠다고 전하자 주변에서 아쉬운 반응이 돌아왔다.

스트로크를 주고받는 것만으로 상당한 공부가 되었을 텐데 이제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도  끝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도움이 됐어요.”

“아니에요. 오히려 저희가 크게 배웠는 걸요. 사람들이 왜 골든 보이라고 하는지 알겠던 걸요. 세계 최고의 천재다운 실력이었어요. 다음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그건 힘들겠죠?”

“이제 일정이 바빠져서 개인 시간을 내는 건 어려워요.”

“역시···.”

대연대 선수들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도 직접 거절의 말을 듣자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실력과 커리어 차이를 생각하면 이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에 심각하게 좌절한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그 대신 며칠 뒤에 잡혀있는 경기의 티켓을 드릴게요.”

“티켓요? 아! S증권 슈퍼 매치!”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벤트 내용의 이름을 알고있는 걸 보니 이미 미디어를 통해 홍보가 되었나 보다.

하긴 투자 금액을 생각하면 아무런 광고를 하지 않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100억이 넘는 섭외 비용은 장난처럼 쓰기엔 너무나 막대했으니 말이다.

“티켓을 주시면 무조건 보러 가야죠! 저희도 예약을 시도했는데 경쟁이 너무 심해서 실패했거든요.”

“페더러하고 이지혁 선수의 경기라니···. 미니 그랜드슬램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당일 날 열심히 응원할게요.”

“네. 좋은 좌석이니 기대하고 오셔도 될 거예요.”

지혁은 두 사람의 연락처를 받았다.

나중에 매니지먼트 직원에게 전달하면 알아서 티켓을 전달해 줄 것이다.

“이제 할 일은 전부 마쳤으니까 돌아가자.”

“네.”

그렇게 공용 테니스장을 벗어나는 지혁과 지연.

외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고급 세단이 보였다.

훈련이 끝날 때까지 수행 인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연은 이미 이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지 어색한 표정이었다.

평범한 중산층 집안의 여학생이 수행 인원을 주렁주렁달고 다닌 경험이 있을 리 없으니 이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텅!

잠시 후, 두 사람은 세단의 넓직한 뒷자석에 앉아서 목적지로 이동했다.

“오빠, 오늘 지도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도움은 됐어?”

“네! 솔직히 최근 들어서 막막했는데 이제 그런 느낌이 전부 사라졌어요. 훈련만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위로 도약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에요.”

“잘 됐네. 너도 조만간 프로에 데뷔할 거니까 열심히 해. 기왕 첫 참가를 하는 김에 높은 성적을 얻는 게 좋잖아.”

“그렇긴 하죠. 그나저나 제가 첫 대회에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 같아요?”

“대진만 잘 받쳐주면 4강까진 올라갈 수 있을 거야.”

“4강···.”

지연은 안목이 굉장히 뛰어난 축에 드는 지혁이 기대 이상의 예측을 내놓자 믿기지 않는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국내 여성 프로들의 수준은 남성 프로들과 다르게 꽤나 쟁쟁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하위 등급의 대회인 서키트의 랭킹 제한을 생각하면 알짜배기들은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고 전부 제외되겠지만 신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것도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실업팀에 합격한 성인 선수들조차 서키트 예선전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아마 이번에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다면 그녀는 언론에서 커다란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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