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43화 (143/241)

143화. 호주 오픈

“하앗!”

쿵!!

[게임 바브린카 3-2.]

프로들 사이에서 최강이라고 평가받는 백핸드 위너로 게임을 가져가는 바브린카.

아직 경기 초반에 불과했지만 지혁은 지금까지 했던 호주 오픈 경기들과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고 있었다.

[아, 바브린카의 백핸드가 오른쪽 코트를 절묘하게 꿰뚫네요. 엄청난 위력의 스트로크입니다.]

[수비에 강점을 가진 이지혁 선수가 비슷한 공격으로 몇 번이나 실점을 허용한 걸 보면 운은 아닌 모양입니다. 코트 전방위를 노리는 실력이 예사롭지 않아요.]

[바브린카의 경기력을 보면 오늘이 그 날인 것 같지 않습니까? 이 선수는 유별나게 출중한 실력을 보일 때가 가끔 있잖아요.]

[그런 것 같네요. 아무래도 이지혁 선수가 조금 고전을 할 듯합니다.]

지혁의 무난한 승리로 돌아갈 거라 예상했던 경기는 바브린카의 예상치 못한 활약으로 인해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1세트 중반이 넘어갔음에도 스코어가 팽팽하게 유지되자 관중들도 이질감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브린카가 이렇게 잘했었나? 골든 보이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적어도 탑10 안의 네임드 선수라야 가능할 텐데.”

“이러다가 준결승에 진출하는 선수가 달라지는 거 아니야?”

“이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그럴 수도 있겠지.”

드르륵. 퉁!

백스핀이 걸린 채 네트를 한 끗 차이로 넘어가는 공.

분명 바브린카의 드롭샷은 성공 확률이 낮은 걸로 알려졌는데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실수가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페더러의 한 손 백핸드와 조코비치의 수비력을 합친 듯한 플레이에 지혁은 스트로크 대결에서 전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게 들어온다고? 진짜 잘 풀리는 날인가 보네······.’

사실 이런 상황을 겪어보지 않는 것도 아니다.

기복이 심하기로 유명한 바브린카는 잘 풀리는 날에는 빅3들조차 당해내지 못하는 괴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원래 한 손 백핸드를 공략하는 방법으로 간단하게 승리를 얻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런 생각을 접어야 할 것 같았다.

[게임 바브린카 5-3.]

결국 지혁은 바브린카의 파상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브레이크를 먼저 허용했다.

그 환상적인 공수 밸런스에 해설자들도 크게 놀란 건지 경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와! 장난이 아닌데요? 저희가 아까 전에 말했던 가정이 맞았던 모양입니다. 마지막 백핸드 위너는 페더러가 연상되는 샷이었어요.]

[원래 바브린카는 포핸드 숙련도가 떨어져서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받았는데 그것도 상당 부분 보완했네요. 아직은 탑10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공략당할 수준은 절대 아니에요.]

[이지혁 선수, 이대로 기세가 넘어가면 위험합니다. 분위기를 타면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몰라요.]

[이제 1게임만 더 내주면 1세트가 종료되는 상황이라 여기서 승부를 뒤집기는 힘들 겁니다. 현명하게 2세트를 준비하는 게 더 나을 거예요.]

지혁이 자신보다 랭킹이 10위나 낮은 바브린카에게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자 한동안 걱정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전초전이라 생각한 게 오산이었어. 오늘의 바브린카는 페더러보다 더 힘든 상대야. 이렇게 빨리 위기가 닥칠 줄이야.’

전력을 아끼며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것을 드디어 알아차린 지혁.

그는 빅3를 상대한다는 생각으로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러다가 정말 8강에서 탈락할 거라는 위기감이 닥쳤기 때문이다.

***

1세트의 마지막 서비스게임은 아쉽게도 지혁의 차례가 아니었다.

바브린카는 서브에 강점이 있는 선수가 아니었기에 에이스에 집착하지 않고 스트로크 중심의 플레이를 고집했다.

탕!!

위닝샷이 될 법한 백핸드를 걷어내는 지혁.

각오를 새롭게 다졌음에도 공을 받아내는 게 만만치가 않았다.

한 손 백핸드는 양손에 비해 위력이 훨씬 떨어지는 게 정상이었지만 특이하게도 바브린카의 백핸드는 주력인 포핸드와 속도가 거의 동일했던 탓이었다.

‘탑스핀 스트로크도 전혀 안 통하니까 웬만하면 백핸드 쪽은 피하는 게 낫겠어.’

그것 말고도 무기는 차고 넘치니 괜한 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피프틴 올.]

“후······.”

부쩍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서브를 기다리길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브린카가 공을 휙! 하고 토스했다.

탕!!

테니스 선수치고 작은 183cm의 키 탓일까 서브의 속도는 200km가 채 되지 않았다.

아무리 코스가 날카로워도 이 정도 위력으로 빅3와 동급인 지혁에게 에이스를 얻는 것은 무리였다.

곧이어 랠리에 들어가자 난타전을 벌이는 두 선수.

바브린카의 플레이 스타일이 베이스라이너인 걸 생각하면 수비적인 자세를 취하는 건 그가 되어야 했지만 정작 경기는 치명적인 공격을 주고받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퉁!

스트로크 횟수가 15구를 넘어가자 위태로운 상황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는지 먼저 슬라이스를 사용한 바브린카.

희귀한 한 손 백핸드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덕분에 그조차도 처리하기 힘든 절묘한 코스로 날아갔다.

퉁!

지혁은 흐름을 끊는 상대의 공격에 똑같은 방식으로 되돌려주었다.

그렇게 두 선수가 플랫 성향의 스트로크 대신에 슬라이스를 보내는 걸 선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괴한 장면이 나왔다.

양 쪽 코트를 하늘하늘한 모습으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마치 장난처럼 느껴졌지만 테니스를 직접 쳐본 사람들은 저 스트로크들이 얼마나 대처하기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피프틴 서티.]

하아···.

끈질기게 이어지던 대결이 마침내 종료되자 경기장에서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한꺼번에 들렸다.

[아! 결국 이지혁 선수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대결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경기의 수준이 정말 높네요. 마지막 위닝샷도 바브린카의 실책으로 생긴 게 아니었어요.]

[공격을 하는 입장에서 먼저 포인트를 앞서가는 경우는 처음인데요. 잘하면 브레이크가 나올 수도 있겠어요.]

해설자들은 지혁이 끈질긴 사투 끝에 포인트를 얻어낸 모습에 뭔가 느낀 건지 슬쩍 긍정적인 평을 내놓았다.

그리고 지혁은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게임 리 5-4.]

와아아아아!

브레이크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1세트.

바브린카는 마무리할 기회를 놓친 게 짜증나는지 신경질을 내며 벤치로 들어갔다.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걸 보면 화가 많이난 모양이다.

‘휴······. 아슬아슬했어. 아주 조금만 삐끗했어도 게임을 내줬을 거야.’

그래도 이제 서브권이 넘어왔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스코어가 5-5만 되면 듀스에 들어가니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건 이제 시간문제였다.

단기 결전은 바브린카보다 지혁이 훨씬 나으니까 승부의 무게추는 절반 이상 기운 거나 다름없었다.

지혁은 한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며 열 번째 게임을 준비했다.

***

[게임 리 6-6. 타이브레이크.]

경기는 지혁이 예상한 대로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했다.

어떤 선수도 7-5의 스코어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선수들이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여줬습니다. 1세트부터 정말 치열하네요.]

[그래도 불리하던 상황에서 동점이 되었으니 이지혁 선수가 더 유리해졌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바브린카는 결정력을 딱히 증명한 적이 없으니까요.]

아직 타이브레이크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지혁의 손을 들어주는 해설자들.

바브린카도 다 이긴 경기가 여기까지 온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레디. 서브 바브린카.]

그렇게 휴식 없이 바로 재개되는 타이브레이크.

이제부터 서브를 2개씩 주고받는 터라 경기가 훨씬 긴박해질 것이다.

여기서 한 번만 삐끗하면 어렵게 쌓아 올린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다.

지혁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집중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빅3가 아니면 사용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내 오산이었던 모양이네.’

역시 그랜드슬램 8강까지 올라온 선수가 쉬울 리가 없었다.

탕!!

얼마 후, 준비를 마친 바브린카가 경기를 재개했다.

[바브린카! 1-0.]

[리! 1-2.]

[바브린카! 3-2.]

선수들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기로 각오했기 때문일까.

타이브레이크의 점수는 빠른 속도로 치솟았다.

단 한 번도 서비스를 빼앗기지 않은 채 경기가 지속된 것이다.

[리! 5-6. 세트 포인트!]

“후···.”

그토록 기다렸던 스코어가 마침내 만들어지자 긴장을 풀기 위해 숨을 가다듬는 지혁.

여기서 한 포인트만 따내면 이제 1세트가 종료된다.

물론 상대가 서비스를 무사히 지켜내면 지옥 같은 듀스에 들어가겠지만 말이다.

“하앗!”

바브린카도 지금이 중요한 갈림길인 걸 아는지 전력을 다해 라켓을 휘둘렀다.

그 덕분에 서브의 속도도 부쩍 빨라졌다.

탕!! 탕!! 탕!!

이번 포인트는 절대 실점을 허용하면 안 되는 터라 지혁과 바브린카는 몸을 아끼지 않고 코트를 뛰어다녔다.

부상의 위험이 있는 허슬 플레이가 계속해서 나온 것이다.

‘지금!’

하지만 그렇게 긴박하게 이어지던 랠리도 파국을 맞이할 때가 왔다.

지혁이 지난 몇 달 동안 봉인해두었던 찰나를 꺼냈기 때문이다.

순수한 기량이 빅3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온 상태에서 이런 무기를 꺼냈으니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너무나 뻔했다.

만약 상대가 우주방어를 자랑하는 나달이나 조코비치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탕!!!

소름 끼치는 궤적을 그리며 사이드라인을 가격하는 지혁의 포핸드.

바브린카는 자신의 왼쪽을 엄청난 속도로 관통하는 공을 따라갈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위닝샷을 허용했다.

[인! 세트 리 1-0.]

우와아아아아!

[바···방금 보셨습니까? 제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샷이었어요.]

[···지금 리플레이가 다시 나오네요.]

중계화면에서 지혁의 포핸드가 나오자 해설자들은 입을 떡 벌렸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샷이 나올 줄 몰랐던 것 같았다.

[천재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위닝샷이었습니다. 이지혁 선수가 레전드들에게 역대 최고의 재능을 가진 유망주라고 평가를 받는 건 전부 이유가 있었어요. 이런 플레이는 천재적인 재능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합니다.]

[네. 아직도 의문을 품고 있던 사람들도 이 장면을 보고 나면 부정을 하지 못하겠네요.]

상식을 한참이나 넘어서는 지혁의 실력 행사에 소름이 끼치는지 가늘게 몸을 떠는 해설자들.

지혁은 그런 무시무시한 짓을 저질로 놓고도 여전히 평온한 표정이었다.

‘예상보다 체력을 많이 소모할 것 같네.’

나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놨는데 이렇게 경기가 끝가지 진행되면 그것보다 결과가 좋지 않을 듯했다.

다음 경기가 페더러와 하는 경기라는 걸 생각하면 그리 좋지 않은 소식이다.

역시 철두철미한 작전을 세워도 실전에 들어가면 계획대로 진행되는 일이 없었다.

바브린카가 호주 오픈에서 빅3에 밀리지 않는 실력을 발휘할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이대로 경기를 내주기 싫다면 지금 같은 방식으로 플레이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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