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44화 (144/241)

144화. 호주 오픈

[게임 리 5-4.]

지혁은 1세트의 승리를 기점으로 유리한 상황을 그대로 굳혔다.

경기의 내용 자체는 거의 대등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선수들의 결정력이 큰 차이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제 세트 스코어가 2-1이니 앞으로 지혁이 한 번만 게임을 따내면 호주 오픈 준결승 진출을 확정시킬 수 있다.

[아무래도 길었던 8강전의 승부가 여기서 마무리될 듯하네요. 여기서 경기를 뒤집기는 힘들어 보여요.]

[네. 저도 이 해설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바브린카는 랭킹에 비하면 훌륭한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결국 이지혁 선수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요.]

[아마 포인트 하나에 승부가 달려있을 때마다 매번 슈퍼 플레이가 나오다 보니 별다른 방도가 없을 겁니다.]

[이게 정상급 선수의 자질이라는 걸까요. 견고했던 기존의 구도를 깨고 빅4에 들어갈 천재 선수라 역시 뭔가 다릅니다.]

통. 통. 통.

마지막 서비스게임이 막 시작할 무렵.

지혁은 확실한 쐐기를 박기 위해 지금까지 꺼내지 않았던 라켓을 들고 나왔다.

몸에 상당한 부하가 걸리지만 그동안 이 방법으로 재미를 톡톡히 봤었다.

갑자기 서브의 속도가 달라지면 리턴을 하는 선수의 입장이 꽤나 힘들어지니 말이다.

휙!

더 강력한 공격이 날아올 걸 예상하고 주의 깊게 지혁의 자세에 집중하는 바브린카.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지혁의 플랫 서브는 가뿐하게 에이스를 따내었다.

오로지 속도와 파워에만 집중한 노림수가 제대로 먹혀들어 간 것이다.

[피프틴 러브.]

[SERVE SPEED: 237km/h]

아무리 컨디션이 좋은 바브린카라도 237km나 되는 서브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는 건 힘든 모양이다.

[서티 러브.]

T존의 라인을 아슬아슬하게 때리고 코트를 빠져나가는 지혁의 두 번째 에이스.

아웃이라 생각한 바브린카가 체어 엠파이어에게 챌린지를 요청했지만 결과가 뒤바뀌는 일은 없었다.

“237km? 속도가 저기까지 올라간다고? 리의 서브 실력이 언제 저렇게 된 거야?”

“갑자기 저런 것도 아니야. 얼마 전 페더러와 슈퍼 매치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그래. 라켓을 교체한 것도 있고 속도 자체는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겠어. 그런데 저 소름 끼치는 컨트롤은 대체 뭐야? 분명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위력을 높이는 대신 정확도가 엄청 떨어졌잖아.”

“그라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지. 지금 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는 골든 보이니까.”

“아···.”

자세한 설명도 없이 골든 보이라는 한 마디에 갑자기 이해가 간다는 반응을 보이는 남자.

이때까지 지혁이 만들어낸 수많은 기적들을 생각하면 확실히 이번 일이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었다.

데뷔 1년 차에 그랜드슬램 최연소 우승이라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달성한 희대의 천재에게 불가능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마 지금보다 더 대단한 실력을 보여줬어도 ‘이지혁’이란 이름 하나 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을 것이다.

[포티 피프틴.]

세트 포인트를 남겨두고 최후의 발악을 하는 바브린카.

하지만 이 지경까지 와서 경기를 뒤집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쾅!!

결국 지혁은 전광판에 238km를 찍으며 호주 오픈 8강전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번 대회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그 무시무시한 속도에 관중들은 열화와 같은 함성과 기립 박수를 보냈다.

리! 리! 리! 리! 리!

[마침내 이지혁 선수의 호주 오픈 준결승 진출이 확정되었습니다! 이제 적어도 작년 이상의 성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는 선수가 아니에요.]

[조금 난관이 있긴 했지만 어느 정도 예정된 결과였습니다. 요즘 바브린카의 주가가 높다고 해도 이지혁 선수가 쌓은 커리어와 명성에 비하면 달과 반딧불만큼 차이가 나니까요.]

[네. 그랜드슬램 최연소 우승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천재만이 가능한 업적입니다. 그걸 한국의 어린 유망주가 고작 만 16세에 불과한 나이로 달성한 거고요.]

마치 정해진 결과였다는 듯이 말하는 해설자들.

하지만 상세하게 들여다보면 그리 쉬운 경기가 아니었다.

오늘 바브린카가 보여준 실력은 절대 빅3에 밀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좋은 경기였어요. 이번에는 제가 운이 더 좋았네요.”

지혁은 16강까지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지친 모습으로 악수를 건넸다.

비록 풀세트를 소화하진 않았지만 경기의 밀도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후우···. 아니. 내가 부족한 탓이지.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만이었나 봐.”

지혁이 녹초가 된 만큼 상대 선수인 바브린카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 보였다.

베이스라이너는 올라운더보다 훨씬 더 많은 활동량이 요구되는 터라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수비에 집중하다 보면 풋워크 거리가 자연스레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본인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니에요? 오늘 경기에서 보여준 실력이라면 탑10안에도 얼마든지 올라올 수 있을 거예요. 빈말이 아니라 제가 위기감을 느꼈을 정도니까요.”

“···탑10?”

아직도 긴가민가한 건지 헷갈리는 표정을 짓는 바브린카.

그는 지혁이 농담이 아니라는 듯 진지한 반응을 보이자 이제야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을 조금 가지게 되었다.

그저 상대가 좋지 않아서 패배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은 것이다.

애초에 지혁을 이 정도로 몰아붙일 수 있는 선수는 빅3와 탑10을 제외하면 없었다.

“······준결승 상대는 페더러였지?”

“네. 페더러의 대진을 봤을 때 탈락할 리 없으니까요.”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너한테 더 유리한 것 같네. 그럼 남은 경기도 잘해 봐.”

바브린카는 그 말을 끝으로 코트의 자리를 비워줬다.

패자가 더 이상 지혁의 시간을 뺐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관중들도 승자 인터뷰를 반짝이는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었고 말이다.

“호주 오픈을 기점으로 빅4가 되겠구나······. 시간문제이긴 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이야.”

그렇게 넋두리를 하며 바브린카가 경기장의 출구 쪽으로 사라지자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기자들이 코트로 달려왔다.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경기를 보여준 여파인지 그들과 관중들의 얼굴은 아직도 상기되어있었다.

***

[역시나 반전은 없었다. 이지혁, 3-1로 바브린카를 완벽하게 격파.]

[다음 상대는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 과연 슈퍼 매치의 복수를 할 수 있을까?]

[해외 언론들이 이지혁의 서브에 극찬을 쏟아낸 이유, 프로 선수들은 속도와 컨트롤의 조화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고 평가.]

[4강 진출을 확정 지은 선수들이 가장 경계하는 선수 1위에 등극한 이지혁.]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 ”리는 이미 빅3와 동등한 반열에 도달했다. 조만간 빅3가 아닌 빅4가 될 것“]

[로저 페더러, ”리? 그는 분명 시대를 지배할 재능을 가진 선수다. 하지만 정상의 자리를 탈환하기에는 아직 시기가 너무 이르다.“]

[이지혁, “준비는 완벽하다. 다음 경기는 슈퍼 매치의 결과와 완전히 다를 것.”]

ㅡ 오늘 경기로 이제 확실해졌네 ㅋㅋㅋ 이지혁 부상 100% 회복한 거 맞음.

ㅡ ㅇㅈ 3시간이면 꽤 장시간 경기인데 경기력 저하가 전혀 안 보였으니까. 오히려 실력이랑 체력이 더 늘어난 느낌이다.

ㅡ 서브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피지컬이 상승한 거 확실하다. 작년 경기랑 비교해보면 풋워크 속도부터 비교가 안 됨.

ㅡ 저기서 더 성장한다고? 이지혁이 진짜 역대급 재능이긴 하네 ㄷㄷㄷ 그런데 지금 상태로 페더러한테 리벤지 매치 성공할 수 있을까?

ㅡ 냉정하게 따지면 많이 힘들지 ;; 슈퍼 매치 관전한 사람이라면 잘 알잖아. 경험이나 기술의 숙련도가 너무 현격하다. 아직 2년은 이름.

ㅡ ㅇㅇ 롤랑처럼 코트가 클레이였으면 모르겠는데 하드 코트는 어렵지.

ㅡ 4강에 남은 게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이지혁이라니 이번 준결승은 볼거리 장난 아니네 ㄷㄷㄷ 진짜 미친 라인업이다.

이번 호주 오픈은 신기하게도 빅3와 지혁이 최종적으로 남게 되었다.

테니스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사인방이 붙게 되자 호주 오픈은 자연스레 더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여기서 우승하는 선수가 2011년을 주도할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

준결승전이 시작하기 하루 전, 연습 코트.

지혁은 연습 파트너로 닉 아카데미 출신의 데이비드 해리슨을 불러들였다.

탕!!

그림 같은 궤적을 그리며 라인 위를 가격하는 백핸드 위너.

관중석에서 얌전히 구경을 하던 팬들은 명불허전의 실력을 직접 목격하고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와. 골든 보이의 실력이 이 정도였어? 정말 장난이 아니잖아?”

“페더러가 한 달 전에 리를 이겼다고 했지? 도대체 그는 얼마나 대단하다는 거야?”

“그래도 이벤트 경기라서 모든 전력을 다하진 않았을 거야. 물론 골든 보이의 기량이 미세하게 떨어지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야.”

그렇게 팬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훈련을 하기 잠시.

선수들은 휴식을 할 생각인지 벤치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1세트도 소화하지 않는 걸 보니 내일 경기를 대비해 무리하지 않을 계획인 모양이다.

“64강에서도 느꼈지만 여전히 무시무시한 백핸드구나. 이걸로 도움은 좀 된 거야?”

“네. 혼자 스트로크 연습을 하는 것보다 상대가 있는 게 훨씬 좋네요. 데이비드는 강력한 샷을 추구하는 선수라서 제 의도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요.”

“내 미숙한 실력 때문에 기대에 못 미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그나저나 너 정도 되니까 준결승에 올라오는 건 아무것도 아니구나. 대부분의 선수들은 평생 동안 도달하지 못하는 곳인데 말이야.”

데이비드는 아카데미에서 봤던 지혁과 괴리감이 드는지 상당히 낯선 표정을 지었다.

학교가 아닌 냉정한 프로 세계에 나오게 되니 서로의 격차를 제대로 체감한 듯했다.

그도 나름 인지도가 있는 네임드 유망주였지만 관중석을 채우고 있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팬들은 전부 지혁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겉으로 보는 것과 다르게 쉽지 만은 않았어요. 어제 경기는 정말 위험했거든요.”

“확실히 바브린카의 컨디션이 좋은 날이긴 했지. 그래도 결국 너한테는 안 됐잖아. 이제 비슷한 나이대의 유망주와 20대 초반의 선수들은 사실상 너를 넘어서는 게 불가능해졌어. 2000년 초반 페더러가 샘프라스를 제압하며 2대 황제로 급부상했을 때처럼 말이야.”

지금 상황이 불만인 건지 불만을 제법 토해내는 데이비드.

하지만 결국 본인의 실력이 부족한 게 문제라는 듯 그는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프로에 데뷔하기만 하면 금방 상위 랭킹으로 올라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부 내 자만이었어.”

“첫 메이저 대회 데뷔라서 그럴 거예요. 올해 남아있는 기회들이 많으니까 판단은 연말에 내려도 충분해요.”

“그래. 단기간에 성과를 낼 거라고 욕심내면 안 되겠지. 나는 너처럼 상식 밖의 재능을 가지고 있진 않으니까.”

그렇게 미국 최고의 유망주는 지혁이라는 거대한 벽을 마주하고 과거보다 몇 년이나 빨리 현실을 직시했다.

여기서 좌절하게 되면 원래 역사보다 어중간한 선수가 되겠지만 지금의 고난만 극복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니시코리가 지혁을 만난 이후로 승승장구를 하며 상위 랭커들을 줄줄이 격파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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