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51화 (151/241)

151화. 예능

“230km!”

지혁은 네 번째 서브를 서비스 코트에 넣고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호주 오픈의 여파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구속이 이 것밖에 나오지 않을 리 없었다.

‘기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하는 게 낫겠지. 어차피 이제 다 밝혀진 수법이니까.”

“잠시만요.”

갑자기 서브 시연을 멈추는 행동에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짓는 출연진과 촬영진들.

하지만 그런 반응은 코트 옆에 놓아둔 가방에서 새로운 라켓을 꺼내자 전부 해소되었다.

지혁이 두 종류의 라켓을 사용한다는 건 이미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점수를 얻게 해주는 기술은 열렬한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서브는···중앙에 넣는 게 좋겠네.’

갑자기 라켓을 바꾼 만큼 아마 컨트롤이 상당히 떨어졌을 것이다.

괜히 아웃이 나오는 뻘쭘한 상황을 피하려면 어느 정도 타협을 하는 게 맞다.

“하앗!!”

쾅!!

“236km/h!”

지혁은 처음으로 기합을 지르며 코트 중앙에 서브를 꽂아 넣었다.

한층 더 빨라진 속도에 사람들은 환한 표정을 지으며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짝.

“네! 과연 세계 최고의 선수다운 실력이었습니다! 진짜 경기장에 있는 듯한 긴장감이 느껴졌어요!”

“······그러니까 저런 걸 저희가 받아야 한다는 거죠?”

“에이 잘못 맞으면 죽을 수도 있겠는데 말도 안 돼요. 뼈가 부러지는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정말 죽는다고요.”

“정수야, 너 운동 신경 좋잖아. 한 번 해봐. 저번에 축구 특집에서 엄청 잘했잖아.”

“아, 형! 그냥 제가 공에 맞고 실려가는 장면을 보고 싶다고 하세요. 그리고 테니스는 키가 큰 사람이 유리하다고 했으니까 이번에는 형이 나서세요.”

“나는 오늘 몸이 안 좋아서. 무릎이랑 어깨가 시려서 힘들 것 같아.”

출연진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덤터기를 쓰지 않으려고 온갖 핑계를 대며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촬영 후반에 프로와 경기를 하는 코너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항상 있는 정규 코너라 담당 PD가 그냥 넘어갈 일은 거의 없었다.

“김성규 선수, 프로의 시선으로 봤을 때 저게 얼마나 대단한 건가요?”

MC는 지혁의 서브 시범이 끝나자 선생님 역할을 맡고 있는 국내 랭킹 2위의 성규에게 질문을 빠르게 던졌다.

그가 현직 테니스 프로인 만큼 일반인들보다 더 정확한 얘기를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선생님도 서브가 엄청 빨랐죠.”

“시범을 보여줄 때 분명 210km까지 찍었어. 분명 같이 온 선수분이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서버라고 하셨는데.”

“확실히 눈으로 거의 안 보이긴 했지.”

자신의 실력을 칭찬하는 얘기가 들려오자 창피한 듯 얼굴을 붉히는 성규.

평소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던 모습을 생각하면 그건 상당히 의외의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지혁과 자신이 비교되는 상황이 많이 어색한 모양이다.

국내 랭킹은 고작 2위 차이였지만 세계 랭킹은 무려 300위 넘게 차이가 났으니 말이다.

“제 실력이 많이 부족해서 이지혁 선수의 실력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힘들어요.”

“에이 벌써 밑밥을 까신다. 최대한 감안하고 들을 테니까 그냥 느낀 걸 솔직하게 얘기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지혁 선수의 서브는 적어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수준이에요. 속도와 컨트롤 모두 제가 경험한 선수들 중 최고입니다.”

“혹시 비교할 선수가 있나요?’

“일단 한국에는 없죠. 그나마 해외로 눈을 돌리면 페더러, 마린 칠리지, 앤디 로딕 정도가 있을 것 같네요.”

테니스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알법한 스타 선수들의 이름이 언급되자 출연진들 사이에서 와!하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만약 예전에 이런 말을 들었다면 조금이라도 의심을 하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그들은 지혁의 실력을 직접 눈 앞에서 경험해봤기에 성규의 평가는 사람들에게서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자! 그럼 시범도 끝났으니 이제 수업에 들어가죠.”

PD가 녹화 전에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달라고 신신당부를 했기에 촬영은 평소처럼 잡설로 빠지지 않고 진행되었다.

어렵게 섭외한 지혁에게서 조금이라도 쓸만한 장면을 뽑아낼 생각인 것 같았다.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5%에 머물던 시청률을 폭등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다.

그렇게 출연진들은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라선 지혁과 조금이라도 접점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했다.

테니스가 워낙 힘든 스포츠라서 몰래몰래 게으름을 피우던 것과 완전히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삼십여분.

지혁은 미리 전달받은 대로 출연진들에게 코칭을 해주고 있었다.

딱히 프로가 아닌 일반인들이라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었다.

수준 높은 기술을 가르치긴 너무 이른 상태라 아주 기초적인 자세만 교정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선수 레벨에 들어가려면 최소한 십 년은 테니스를 쳐야 도달할 수 있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꾸준한 훈련을 거치지 않고 한, 두 달 만에 테니스를 잘하게 되는 건 아무리 피지컬이 좋아도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탕!

‘꽤 잘하는데? 배운 기간을 생각하면 꽤 재능이 있는 편이야. 방송에서 운동 신경이 좋다고 하는 게 그냥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었구나.’

뚱뚱한 체구의 정수는 어울리지 않게 민첩한 모습을 보여줬다.

공을 라켓에 제법 정확하게 맞추는 게 반사 신경이나 몸의 유연성도 수준급이다.

물론 전문적으로 운동을 배운 사람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어릴 때부터 운동을 배웠기에 일반인의 범주에 넣으면 안 된다.

‘역시 가장 실력이 좋은 건 저 사람이구나. 예전에 엄청 유명한 야구 선수였다고 했지?’

국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이름을 꽤나 날렸다고 했는데 워낙 TV를 보지 않는 데다가 야구에 관심이 없어서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백핸드를 보면 어째서 그가 레전드 선수라고 하는지 납득이 갔다.

테이크백부터 팔로우 스윙까지 마치 전문적으로 배운 것처럼 깔끔하게 궤적을 그리는 모습이 내공이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단순히 백핸드뿐만이 아니라 풋워크의 완성도도 상당히 높다.

아마도 그는 프로 시절 높은 반사 신경과 움직임이 많이 요구되는 포지션으로 선수 생활을 한 것 같았다.

“예능 치고 실력이 괜찮은 편이죠? 저도 처음에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방송이 2주쯤 지나고 깜짝 놀랐어요.”

“네. 자세도 좋고 경기 센스가 상당하네요. 코칭을 정말 잘해주셨어요.”

오늘 한정으로 보조 코치 역할 맡게 된 성규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여유가 생긴 건지 은근슬쩍 지혁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시안 게임을 통해 안면이 조금이나마 있어서 다가오는데 비교적 부담이 적었던 모양이다.

물론 어쭙잖게 선배 노릇을 하진 못했다.

두 사람의 격차는 프로와 아마추어 이상으로 났기에 오직 국내 경력만 믿고 밀어붙이는 상황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질투나 시기도 어느 정도 급이 맞아야 성립하는 법이다.

“총 18주 동안 촬영인데 최종 목표는 전국대회예요.”

“음···. 그러면 우승은 힘들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고교 선출들이 지도자부로 빠져도 어릴 때부터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꽤 많이 출전할 테니까요.”

상위 라운드까지 올라오는 아마추어 선수들은 대부분 준프로 수준에 가까운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출연진들이 3세트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는 건 사실상 어려웠다.

“그래도 아직 3개월이나 시간이 있으니까 괜찮은 성적은 얻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네요.”

“한 경기라도 이기는 걸 목표로 잡아야죠. 그것만 해도 충분해요.”

그렇게 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이 제법 지났을 때.

촬영장 밖에서 번잡한 발소리가 들렸다.

스태프들이 따로 이동하는 게 아니니 지혁 말고 다른 손님이 있는 것 같았다.

“와! 연예인들이다. 진짜 유명한 사람들 많네.”

“촬영 끝나고 사인받아야겠다. 요즘 테니스 인기가 높아지니까 이런 특집 방송도 생기네.”

“야, 저기 저 사람 이지혁 닮지 않았냐?”

“설마. 그냥 잘생긴 남자 아이돌이겠지.”

“진짜인 거 같은데 저기 국내 랭킹 2위인 김성규 선수가 옆에 있잖아.”

“······정말 이지혁이라고!?”

웅성웅성.

코트 주변은 초청받은 고등부 선수들로 인해 지혁이 처음 촬영장을 방문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실업팀에 들어가서 프로가 되는 게 인생의 목표인 그들에게 지혁은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같은 또래의 유망주가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를 연달아 꺾는 활약을 보여주는데 우상으로 삼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프로 선수들조차도 빅3를 마치 테니스의 신처럼 떠받드는 경향이 있지 않는가.

‘경기 파트너로 고등부 선수를 초청했구나.’

지혁은 선망하는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고 금방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저 앳되어 보이는 얼굴로 쟁쟁한 프로들을 제치고 공중파 방송에 나오는 건 저들이 주니어 선수일 가능성밖에 없었다.

예상한 대로 진행자는 그들의 정체를 대연고의 2학년 선수들이라고 소개했다.

“저희들은 오늘 이 학생들과 친선 경기를 할 겁니다. 지금까지 선생님들에게 배운 걸 최대한 활용해서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해주세요.”

“네? 고작 한 달 배운 걸로 그게 가능해요?”

“그냥 경험을 쌓는 용도겠지. 우리가 선수를 어떻게 이겨. 그런데 2학년이라고 하더니 덩치가 엄청 크네. 유명한 테니스 명문고 학생들이라서 그런가.”

“일단 해보자. 핸디캡이 있는 상태라면 이길 수도 있잖아.”

출연진들을 패배할 게 너무나 뻔한 상황에 불만을 가진 건지 투덜거리며 경기를 준비했다.

그렇게 삽시간에 주변이 정리되자 곧 단식 대결이 2코트 씩 시작되었다.

탕! 탕! 탕! 탕!

촬영장에서 시끄럽게 들리는 임팩트 소리.

친선 경기의 상황은 당연하게도 고등부 선수들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승부가 전혀 성립되지 않는 모습이지만 처음부터 지금의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아웃!”

“아웃!”

“네트!”

출연진들은 실전에 들어가자 절반 이상의 포인트를 실책으로 날려버렸다.

연습에서 잘만하던 기술들도 변칙적인 수를 약간 섞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숙한 상태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두 명의 에이스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재능을 가진 학생들에게 요행으로 이기는 수법이 통할 리가 없지.’

털썩. 털썩.

하나, 둘씩 녹초가 된 모습으로 코트 위에 쓰러지는 출연진들.

모두가 예상했듯이 약식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고등부 선수들은 퍼펙트가 나왔음에도 이게 당연한 결과라는 듯 여전히 평온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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