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52화 (152/241)

152화. 예능

“이번 대결의 승자는······대연고 학생들입니다!”

믿고 있었던 에이스들마저 처참하게 패배하자 출연진들의 자신감은 급격하게 하락했다.

적은 가능성이라도 있어야 희망을 가질 수 있을 텐데 도무지 승산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우···. 역시 선수들은 다르구나. 상대가 안 돼.”

“실력 차이가 너무 심하잖아. 전국대회에서 이런 상대를 만나면 절대 못 이길 거야.”

“시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했는데 18주도 부족하겠는데?”

연예인들은 지난 한 달간 훈련을 정말 열심히 했기에 좀처럼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짧은 시간 안에 테니스를 마스터한다는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인지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축구 특집에서 나름 좋은 성과를 얻어서 큰 기대를 했지만 아무래도 전부 착각이었던 것 같았다.

“저기···. 이지혁 선수랑 경기를 한 번만 해볼 수 없을까요? 기회만 주신다면 저희는 약식이라도 얼마든지 괜찮아요.”

그렇게 출연진들이 패배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숨을 쉬고 있을 때.

학생들 쪽에서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 들어왔다.

사전에 얘기하지 않았던 돌발 상황이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촬영장의 분위기가 묘해지자 학생들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 사회 경험이 전무한 미성년자였기에 어른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자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한 모양이다.

“잠시 끊고 갈게요.”

어색한 상황이 도저히 가라앉지 않자 촬영을 멈추고 지혁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담당 PD.

그는 혹시라도 지혁의 심사가 뒤틀릴까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괜히 이번 일로 관계가 나빠지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선에서 그 사태를 감당하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이지혁 선수, 학생들이 한 말은 그리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존 계약대로 진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지혁은 처음에는 당연히 PD의 말을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잔뜩 기가 죽은 학생들을 보고 결정을 잠시 보류했다.

솔직히 약식 경기는 팬 서비스 차원에서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사소한 부탁이었다.

어차피 길어봤자 2게임 분량이라 체력적으로 문제가 될 일도 없다.

그러니 옛날 추억을 살릴 겸 기분전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닌데 해주죠. 그리고 이 경기를 수업으로 생각하면 코칭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물론 코너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면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아,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이지혁 선수가 원하시는 대로 하시죠. 최대한 의견에 맞춰서 진행하겠습니다.”

잠시 후, PD를 통해 지혁의 허락이 전해지자 학생들은 기쁜지 커다란 환호성을 질렀다.

우상으로 생각하던 존재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모양이다.

그들은 감히 지혁에게 이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직 프로조차 되지 못한 유망주들이 어떻게 세계 최고 반열에 올라선 전설적인 선수를 이길 수 있겠는가.

한국 랭커들과 정점을 다투는 김성규조차도 그런 망상을 하지 않는데 고작 아마추어 신분으로 주제 넘는 경쟁심을 불태울 리 없었다.

***

지혁과 대연고 학생들의 경기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시작되었다.

연예인들이랑 한 대결은 몸풀기밖에 되지 않아서 체력 소모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선수들 간의 수준 차이가 극심한 만큼 지혁은 연예인 팀을 상대하던 학생들 이상으로 핸디캡을 가져가야 했다.

이런 제약이라도 걸어두지 않으면 애초에 승부 자체가 제대로 성립하지 않았다.

[레디. 서브 이지혁.]

두 번씩 하기로 한 서브는 동전 던지기로 지혁이 먼저 선수를 가져가게 되었다.

저벅저벅.

공격 순서가 정해지자 알아서 자리를 찾아가는 선수들.

베이스라인에 도착한 지혁이 반대편 코트 쪽으로 고개를 천천히 들자 두 명의 학생이 보였다.

단식에서 이질적인 장면이지만 가능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사전에 2:1로 경기를 진행하기로 합의를 봤다.

이렇게 되면 상대 측도 수비 범위가 절반으로 줄어들 테니 부담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여기서 중앙으로 보내면 쉽게 끝나겠지?”

아마 고속 서브를 T존에 때려 넣기만 해도 상대는 패닉에 빠져버릴 확률이 높다.

고등부 수준에서 아무리 빠른 서브를 겪어봤자 210km 전후의 속도가 최대치였으니 말이다.

‘일단 가능하면 모든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내버려 두자. 경기 자체는 언제든지 끝낼 수 있으니까.’

탕!!

지혁은 상대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힘을 빼고 라켓을 휘둘렀다.

원래 임팩트를 할 때 공이 터질 것 같은 굉음이 코트를 가득 채웠는데 속도가 떨어지니 위력도 덩달아 약해졌다.

대연고 학생들은 어떻게든 한 포인트라도 따내고 싶은지 전력을 다해 뛰어다녔다.

인원이 더 많다는 자신들의 강점을 살려 위닝샷을 성공시킬 생각인가 보다.

‘하하. 왠지 장난을 치는 것 같네. 이렇게 될 줄 조금은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쉬운데?’

얼마 전까지 조코비치, 나달, 바브린카 같은 괴물들을 상대하고 와서 공격이 어떤 곳으로 오더라도 마치 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느낌이다.

이런 식의 스트로크는 솔직히 몇 시간이라도 받아낼 자신이 있었다.

지혁은 여유가 넘쳤기에 간간히 트릭샷까지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웃! 5-0.]

그렇게 위닝샷에 집착하지 않고 버티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스코어가 차곡차곡 쌓였다.

상대 쪽이 공격적인 플레이를 시도하다가 스스로 자멸한 덕분이다.

“쟤들이 우리하고 경기했던 선수들이 맞아? 갑자기 실력이 너무 떨어져 보여.”

“이지혁 선수가 완전히 가지고 놀고 있잖아. 공격을 하지 않는데도 알아서 점수를 상납하네.”

“대체 다리가 얼마나 빠른 걸까. 코트 커버력이 저 두 명보다 오히려 더 넓은 것 같은데.”

출연진들은 대연고 학생들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장면에 통쾌하다는 반응이었다.

벽으로 느껴졌던 상대들도 지혁 앞에서는 전부 평등해졌기 때문이다.

약식 경기가 너무 짧아서일까.

지혁의 스코어는 10분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5-0까지 도달했다.

이제 다섯 번만 더 득점하면 이 짓도 끝이다.

‘수비는 이쯤 하면 되겠지. 그럼 나도 슬슬 공격을 해볼까?”

가장 먼저 시험해볼 건 역시 트위스트 서브다.

실전에서 사용하는 건 오랜만이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대놓고 공을 이상하게 쥐는 모습을 보여주자 대연고 학생들도 뭔가 다른 게 올 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게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드르르륵. 탕!

“어어어!”

털썩.

역방향으로 튀어 오르는 서브에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 학생.

그 신기한 모습에 감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상대가 멍한 표정으로 전의를 완전히 상실해 보이는 게 이제 경기는 이것으로 끝난 모양이다.

싸울 마음이 없는 상대와 경기를 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도 없었다.

[게임 세트. 매치 리!]

결국 10-0으로 종료된 약식 경기.

지혁은 경기 상대를 어린아이 손목을 비틀 듯이 아주 간단하게 제압했다.

대연고 학생들이 연예인팀을 압도적으로 몰아붙이던 게 전혀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활약이었다.

10-0이라는 노골적인 스코어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나하는 반응을 보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짜 천재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감히 따라 하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고난이도 기술의 향연에 학생들과 김성규 프로는 넋을 잃은 채 지혁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정말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하는 눈빛이었다.

“······이게 골든 보이라 불리는 이지혁의 진면목인가? 천재가 경기하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빅3를 전부 꺾은 게 운이 아니었네. 저 녀석은 진짜 테니스를 하기 위해 태어난 녀석이야.”

“전문가들이 이지혁을 이레귤러라고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 쟤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괴물이나 다름없어.”

“재능의 벽이 이렇게 높다니···. 내가 그랜드슬램의 문턱을 단 한 번이라도 넘을 수 있을까.”

대연고 학생들은 이번 패배가 충격적인지 상당히 어두운 표정으로 한탄하며 촬영장을 떠났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존재를 눈으로 보게 된 탓인지 어깨가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초청된 사람들이 한꺼번에 사라지자 지혁은 갑자기 공간이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쾌적해진 환경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자 어느새 다음 코너를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

예능적인 비중이 높은 코너와 실용적인 훈련을 모두 소화했을 무렵.

지혁은 이벤트성 코너를 마지막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갑자기 야구 스윙이랑 테니스 스윙 이야기가 나와서 간단하게 실험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타다다다!

MC가 멘트를 하는 동안 멀리서 누군가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막내 스태프가 야구 배트와 야구공을 구해서 촬영장에 가지고 온 것이다.

“이지혁 선수, 여기요.”

지혁은 전달받은 배트를 가볍게 쥐어봤다.

생전 야구에 취미가 없었던 탓인지 낯선 감각이 느껴진다.

그래도 뭔가를 휘둘러 맞추는 종목이라 테니스와 완전히 관계가 없는 건 아니었다.

부웅! 부웅!

시범 삼아 배트를 한 손으로 휘두르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혁은 몇 번 자세를 고치더니 곧이어 백핸드 자세를 취했다.

양손으로 치는 테니스 자세와 좌타자의 스윙이 상당히 흡사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런 방식으로 야구를 했다는 여자 테니스 선수의 소식을 건너 건너 들은 적이 있었다.

효과는 직접 확인해봐야겠지만 기분상으로는 상당히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이지혁 선수, 준비는 다 됐나요?”

“네. 한 번 해보죠. 저도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타석에 들어서는 지혁.

만에 하나 야구를 못하더라도 질책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테니스 선수가 자기 종목만 잘하면 되지 다른 스포츠에서 실력이 좋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사람들의 기대를 한참이나 뛰어넘을 만큼 잘해봤자 주종목이 아니라면 결국 프로 이하의 실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터라 솔직히 큰 의미를 가지긴 어려웠다.

“그럼 갑니다!”

투수 역할을 맡은 남자는 미리 경고를 하고 난 후 공을 던졌다.

어깨가 꽤 강한지 구속이 상당하다.

물론 200km를 가볍게 넘기는 탑랭커들의 서브와 비교하면 느려 터졌지만 말이다.

콱!

축발을 강하게 디디며 테이크백을 하는 지혁.

마치 전력을 다해 양손 백핸드를 휘두르는 것처럼 허리가 회전하자 나무 배트가 자동적으로 몸을 따라나갔다.

딱!!

지혁은 임팩트되는 순간 야구공이 두둥실하고 떠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야구를 거의 처음 해보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본능적으로 이건 제대로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핸드를 칠 때 가끔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배트에 맞은 야구공이 엄청난 비거리를 자랑하며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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