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55화 (155/241)

155화. 리벤지 매치

선수들이 1세트를 막 시작했을 무렵.

중계권을 따낸 방송국의 해설진들은 흥분된 어조로 침을 튀겨가며 멘트를 던지고 있었다.

지혁과 델 포트로, 두 천재의 대결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지 엄청난 관심이 몰렸기 때문이다.

고작 20살의 나이로 US 오픈에서 우승한 델 포트로와 그걸 넘어서 최연소 그랜드슬램 우승 기록을 갈아치운 골든 보이.

최근 테니스계에서 이만큼 흥미로운 빅 매치는 없었다.

어제 있었던 네임드 선수들의 경기들조차 1만 석이 넘는 좌석을 전부 매진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쾅!!

[델 포트로가 에이스로 서비스게임을 지켜냅니다. 역시 서브에 강점이 있는 선수예요. 상대에게 여유를 주지 않고 몰아치는 실력이 여전하네요. 강력한 서브를 서비스 코트에 때려 넣는 게 압박감이 여기까지 느껴지고 있어요.]

[네. 그는 198cm라서 타점이 상당히 높기로 유명하죠. 골든 보이도 작은 키는 아니지만 타고난 피지컬에서 제법 차이가 납니다. 엄청난 장신으로 부족한 컨트롤이나 테크닉을 완벽하게 보완해냈어요.]

[게다가 2년 전에 당한 부상의 후유증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명경기를 기대해봐도 되겠어요. 과연 세계 최고의 천재들이 어떤 플레이를 보여줄까요.]

[두 사람이 지금까지 이뤄놓은 업적들이 있으니 최소한 저희를 실망시키진 않을 겁니다.]

코트를 교체하고 나서 지혁의 차례로 돌아간 서브.

델 포트로는 스트로크에서도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여줬다.

무식한 체구 탓에 풋워크가 느리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어지간한 서브에 필적하는 160km 중반의 포핸드와 뛰어난 경기 센스 때문에 주도권이 어느 한쪽으로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남미의 황제다운 훌륭한 밸런스다.

이런 사기 같은 스펙을 가지고 있었으니 어린 나이에 페더러를 꺾고 정상의 자리를 탈환할 수 있었겠지.

페더러가 그랜드슬램 결승전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패배하는 경우는 나달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없었던 만큼 델 포트로의 자질은 의심할 여지가 조금도 없었다.

촤아악- 퉁!

지혁은 사이드라인을 노리는 상대의 포핸드를 걷어내기 위해 클레이 바닥에 슬라이딩을 하며 라켓을 뻗었다.

다행히 라켓에 공을 맞출 수 있었지만 발이 미끄러지며 몸이 코트 밖으로 벗어난 역효과가 났다.

최대한 빨리 몸의 균형을 잡고 베이스라인으로 돌아가는 움직였는데도 불리한 상황을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델 포트로가 강력한 포핸드를 비어있는 자리에 정확하게 꽂아 넣었기 때문이다.

[서티 올.]

경기가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 상황에 숨을 크게 내뱉는 지혁.

해설자들은 그 모습을 바로 캐치하고 상당히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골든 보이가 방금 짜증을 내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잡혔네요. 탑랭커들 사이에서 냉정하기로 유명한 선수인데 평정심이 흔들린 모양이에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요?]

[아마 스트로크에서 우세를 점할 거라고 생각한 게 완전히 빗나가서 그럴 겁니다. 설마 델 포트로가 랠리에서 이 정도 퍼포먼스를 보여줄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길었던 공백이 있었음에도 전체적인 실력이 한층 더 성장해서 돌아왔네요. 마치 2년 전 US오픈에서 기적을 만들어냈을 때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 당시 천재적인 플레이와 동물적인 감각으로 상위 랭커들을 줄줄이 격파했었죠. 확실히 그 모습이 연상되는 플레이긴 합니다. 요즘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는 골든 보이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 있으니까요.]

‘하···. 이런 선수를 봐준다고 생각했었다니 웃기네. 재수 없으면 패배할 수도 있겠어.’

분명 지혁의 승률은 90% 이상인 건 맞지만 무적인 건 아니다.

빅3가 아닌 다른 선수들과 붙었을 때도 가끔 지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이때까지 참가한 마스터즈 대회들도 8강, 준결승, 결승에서 탈락하는 일이 우승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았지 않은가.

지혁은 1세트부터 위기감이 느껴지자 안일했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며 경기에 진심으로 임하기로 결심했다.

꽈악-

라켓을 강하게 쥐며 자세를 약간 바꾸는 지혁.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 걸 반대편 코트에 있던 델 포트로도 알아차렸지만 대비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잠시 후, 공이 허공으로 휙! 하고 토스되자 지혁의 서브 자세가 그림 같은 아치 모양을 만들어냈다.

탕!!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 상황에서 엄청난 속도로 스윙 궤적을 그리는 라켓.

곧이어 서비스 코트에는 백스핀이 잔뜩 걸린 트위스트 서브가 떨어졌다.

달라진 마음가짐과 그간 포인트를 투자해 등급이 오른 영향일까.

지혁의 서브는 마치 만화처럼 역방향으로 튀어 오르며 델 포트로의 가슴을 강타했다.

퍽!

플랫 서브보다 수십km 느린 데다가 허리를 뒤로 꺾어서 다행히 정타는 피했다.

애초에 얼굴 같은 급소가 아니라서 큰 부상을 당할 확률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델 포트로는 이 상황이 어이없는지 뒤로 넘어진 상태로 눈을 크게 뜨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갑자기 공에 맞을 줄 몰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제대로 마음을 먹은 지혁의 실력은 서비스게임을 주도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골든 보이가 슬슬 본격적으로 붙어볼 생각인가 보네요. 경기의 느낌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잘 사용하지 않는 기술들도 꺼내 드는 걸 보니 델 포트로를 자신의 맞수로 인정한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는 절대 만만하게 볼 선수가 아니에요. 만약 리가 없었다면 세계 최고의 유망주 자리와 다음 시대를 지배할 선수는 그가 되었을 테니까요.]

[그나저나 랠리가 거의 막상막하네요. 두 사람의 플레이 스타일이 워낙 확실한 편이라 멋진 장면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네. 힘과 기술의 대결이 흥미진진합니다. 과연 누가 1세트에서 먼저 승리하고 기세를 가져갈 수 있을까요.]

[아마 높은 확률로 먼저 브레이크를 성공하는 쪽일 겁니다.]

***

선수들이 기세 싸움을 하던 1세트는 어느새 후반부에 도달했다.

지혁과 델 포트로는 탑랭커들 사이에서도 피지컬이 최상위에 들어가는 편이라서 관중들의 눈은 잠시도 코트를 벗어날 수 없었다.

코트 좌우를 반복하는 강력한 스트로크에 지루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경기가 길어지자 선수들의 타고난 테니스 센스가 관중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타다다다! 탕!!

바운드 지점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며 라켓을 휘두르는 델 포트로.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스트로크로 보였지만 공은 네트를 한 끗 차이로 넘어왔다.

네트와 공의 높이가 작을수록 처리하기 힘들어지는 걸 생각하면 이건 완벽에 가까운 포핸드였다.

거기에 속도까지 페더러를 연상할 정도로 무시무시해서 지혁의 입장에서 처리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제대로 된 스윙 각도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경기력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혁도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어서 상대도 똑같은 압박을 받고 있겠지만 말이다.

퉁!

그렇게 경기가 무난한 상태로 계속 지속되고 있을 때. 지혁은 갑자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플레이를 보여줬다.

포핸드로 페이크를 주며 다리 사이로 공을 친 것이다.

트위스트 서브처럼 아주 가끔씩 사용하는 트릭샷이었다.

이것도 랭킹이 높아지면서 후순위로 밀려났었는데 기술의 등급이 상승하면서 실전에서 써먹을 수준이 되었다.

아마 몇 달 전이라면 지금 같이 깔끔한 샷이 나오지 않았겠지.

[서티 포티.]

와아아아아!!!!

ㅡ 와···. 미쳤다. 방금 이지혁 뭐한 거냐? 도대체 공이 왜 저기 있는 거지···

ㅡ ㄹㅇ 어쩌다가 들어간 거냐? 델 포트로 표정보소 ㅋㅋㅋ 아까 트위스트 서브에 당했을 때랑 데자뷰 느껴지네 ㅋㅋㅋㅋㅋ

ㅡ 매운맛 한 번 보더니 정신을 못차리네 ㅋㅋ 아 이지혁 처음 상대해보냐고 ㅋㅋㅋ

ㅡ 갑자기 저러면 상대가 조코비치라도 못 받지.

ㅡ 그런데 이지혁 경기 느낌이 많이 변했는데? 역대급 천재라서 그런가 플레이 스타일이 엄청 자주 바뀌네.

ㅡ 아직 보완할 점이 있다는 거겠지. 그 기간이 미친 듯이 빠른 것뿐이고. 이게 재능 차이인 듯.

돌발적으로 사용한 트릭샷으로 먼저 점수를 앞서 가게 된 지혁은 그대로 경기의 분위기를 굳혔다.

첫 번째 브레이크를 성공하면서 마침내 1세트를 가져간 것이다.

[세트 리.]

대부분의 경기는 첫 세트를 이기는 선수가 높은 확률로 이기는 만큼 이건 상당히 유의미한 결과였다.

아마 남은 경기에서 지금 상태를 유지하면 큰 문제없이 준결승에 진출하는 것도 어렵지 않겠지.

관중들도 경기의 전체적인 구도가 어느 정도 맞춰지자 승부의 추가 많이 기울었다고 판단했다.

역시 빅4에 합류하면서 최강자 반열에 들어간 지혁이 이길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델 포트로의 위상도 테니스계에서 굉장했지만 골든 보이의 명성은 그것조차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

3세트 중반.

어려움 없이 탄탄대로일 거라고 생각했던 경기는 사람들의 예상과 약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경기 시간이 쌓이면서 변칙적인 수에 기댄 지혁의 플레이가 점점 통하지 않았던 게 원인이었다.

애초에 ATP랭킹 3위까지 치고 올라갔던 천재에게 사도가 계속 먹힐 리 없었다.

괜히 탑랭커들이 요행에 기대지 않고 정석적인 방법을 고집하는 게 아니다.

오랜 경험상 극 후반이 되면 경기의 승패는 결국 선수들의 순수한 실력으로 결정되었다.

[세트 델 포트로.]

냉정한 목소리로 3세트를 마무리하는 체어 엠파이어.

델 포트로는 어렵게 얻은 승리가 기쁜지 크게 포효하며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지혁의 응원으로 묻혀있던 그의 팬들이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절망적인 상황이었는데 이번 세트로 인해 승리의 가능성을 본 모양이었다.

비전문가의 시선이었지만 그들의 판단은 나름 정확했다.

[아······. 골든 보이가 결국 경기의 마침표를 찍지 못했습니다. 쉴 틈 없이 계속 몰아쳤는데 이제 공격 차례가 넘어갈 것 같네요.]

[네. 3세트 스코어가 6-3으로 끝났으니 반격을 하는 장면이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할 겁니다. 한 번 분위기를 타게 되면 경기가 순식간에 뒤집어지는 일도 많으니까요.]

[그나저나 장기전이 되면서 델 포트로의 부상 회복이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난전을 펼치면서 왼쪽 손목을 사리는 게 들통이 나버렸어요.]

[거의 티가 나지 않는 수준인 걸 보니 심리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승패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거예요.]

[글쎄요. 리가 저걸 집중적으로 공략하게 되면 모르죠. 어쨌든 저것도 약점이니까요.]

[음······.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전략이긴 합니다. 모양이 빠지겠지만 경기에서 패배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테니 말이에요.]

[아마 궁지에 몰린 상황이 생기면 그런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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