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58화 (158/241)

158화. 리벤지 매치

이미 서로의 실력에 대해 충분할 정도로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결승전은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흘렀다.

지혁과 나달이 치열한 스트로크 대결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리버스 포핸드와 베이스라이너의 장점이 가장 부각되는 클레이 코트라서 더 그런 것도 있었다.

만약 이번 경기가 잔디 코트였다면 랠리의 시간이 이렇게까지 길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탕!!

특유의 기합 소리를 내며 포핸드를 치는 나달.

왼손잡이 특성상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백핸드를 노리는 장면이 계속 연출되었다.

나달은 지금까지 이 방법으로 페더러에게 상당한 재미를 봤었다.

한 손 백핸드와 양손 백핸드를 자유자재로 스위칭하는 지혁에게는 거의 통하지 않는 수법이었지만 말이다.

[아! 오른쪽 코트를 노리는 나달의 다운 더 라인을 막아 냅니다! 골든 보이가 나달을 상대로 완벽한 코트 커버력을 보여주고 있어요. 경기 초반부터 정말 흥미롭습니다.]

[허······. 클레이의 황제와 대등한 경기력이라니 준결승전의 조코비치가 떠오르는 활약이네요.]

[확실히 작년과 비교가 되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긴 했죠. 전문가들과 탑랭커들 사이에서도 완전무결한 선수가 되었다는 평이 주류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조코비치도 결국 나달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클레이에서 그는 무적이나 다름없어요.]

해설자들은 경기를 주의 깊게 살펴보다가 조심스럽게 나달의 우세를 점쳤다.

비록 지혁이 작 년 롤랑 가로스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전통의 강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흙신, 라파엘 나달이었기 때문이다.

[세트 나달.]

1세트의 결말은 해설자들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주 간발의 차이로 지혁이 패배한 것이다.

털썩.

“후우···.”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벤치에 주저앉는 지혁.

비록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지만 지혁의 표정은 그리 바뀌지 않았다.

애초에 단기전을 생각하고 경기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차피 승부가 결정되는 건 후반이 될 거야. 지금은 한, 두 게임에 집착하지 말고 경기를 최대한 길게 끌고 나가면 돼.’

불과 이틀 전에 조코비치와 6시간에 달하는 사투를 벌였으니 아무리 나달이라도 멀쩡할 리 없었다.

경기가 길어지게 되면 지금의 좋은 경기력도 결국에는 파국이 날 게 뻔했다.

지혁은 그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조급한 마음을 다스렸다.

[게임 리 1-1.]

[게임 나달 2-1.]

[게임 리 2-2.]

[게임 나달 4-2.]

나달은 2세트가 시작하고 나서 지혁을 연신 몰아붙였다.

보통 나달의 플레이 스타일이 상대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수비에 힘을 쏟다가 결정타를 날리는 걸 생각하면 쉽게 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그는 장기전이 되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지혁의 전략은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간단한 작전이었으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나달이 듀스까지 가는 접전에서 끝내 게임을 얻어냅니다. 이번 세트도 브레이크를 먼저 성공했어요.]

[전체적인 상황이 꽤 좋습니다. 그런데 어딘가 조급해 보이네요. 나달과 어울리지 않는 플레이가 많습니다. 지금처럼 유리한 구도가 나왔으니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지만 말이에요.]

[골든 보이가 이대로 무너지는 건 아니겠죠? 그러면 기대와 다르게 너무 허무한 결말인데요. 팬들이 엄청난 명경기가 될 거라 기대했잖아요.]

[하하하. 작년 롤랑 가로스 결승전을 말하는 거죠?]

[맞습니다. 많은 시청자분들이 그 경기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으니까요.]

[저도 많이 아쉽지만 그 정도 명경기가 만날 때마다 매번 나올 수는 없죠. 저희는 좋지만 선수들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이 다시 반복된다면 부상의 위험이 너무 커요. 골든 보이도 승리의 대가로 시즌 아웃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시청자들은 경기가 지혁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자 조금씩 패배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서 도저히 우승하는 그림이 연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ㅡ 역시는 역시인가. 하긴 흙신한테 이기는 게 쉬울 리 없지···. 작년에 이긴 게 기적이었음.

ㅡ 그래도 다치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 다음 대회에서 복수하면 됨.

ㅡ 솔직히 조코비치 떨어트릴 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 ;; 롤랑에서 나달은 올타임 넘버원임. 20대 중반 시절의 페더러도 못 이겼는데 이지혁한테 아직 무리지.

ㅡ 코트가 잔디였으면 무난하게 이겼을 텐데 너무 아쉽다 ㅠㅠ

ㅡ 한 달만 기다리면 윔블던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자 그때 다시 만나면 제대로 복수해줄 수 있음.

[세트 나달.]

결국 2세트마저 나달에게 빼앗겨버린 지혁.

그 절망적인 상황에 관중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결승전을 구경하러 온 탑랭커들은 그들과 생각이 달랐다.

“저거 의도적인 것 같지?”

“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저렇게 쉽게 무너질 녀석이 절대 아니지.”

“우리가 눈치챌 정도면 나달도 이미 알고 있겠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그에게 선택권이 없어. 골든 보이의 전략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최대한 빨리 끝내는 수밖에.”

“3-0이라. 나는 오늘 경기가 싱겁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아마 다음 세트는 느낌이 많이 다를 거야. 리가 본격적으로 세금을 걷어들일 테니까.”

***

선수들이 120초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시작한 경기.

지혁은 2-0으로 밀리고 있는 선수답지 않게 평온한 얼굴이었다.

지금까지의 경기는 전부 의도적인 패배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모든 전력을 다했다면 1세트 정도는 반드시 가져왔을 것이다.

지혁과 나달의 실력 차이는 아주 미세한 수준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플레이어 레디. 서브 리.]

“하앗!”

쾅!!

[피프틴 러브.]

[SERVE SPEED: 236km/h]

와아아아아!

[오! 골든 보이가 드디어 아껴놓은 무기를 꺼냈습니다. 이제 물러날 곳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에요.]

[이번 세트에서 지면 경기가 끝나 버리니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수 없겠죠.]

[개인적으로 너무 늦었다고 생각됩니다. 진작에 저랬으면 좋았을 텐데요.]

[음···. 뭔가 노리는 게 있을 겁니다. 무작정 저런 선택을 하진 않았을 거예요.]

[한동안 서비스게임을 지킬 수 있겠지만 경기에서 승리하려면 브레이크를 성공해야 합니다. 나달의 코트 커버력을 뚫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고속 서브가 나왔으니 아마 다른 공격적인 기술들도 많이 보여줄 겁니다. 그러면 나달도 3세트의 승부를 100% 장담할 수 없어요.]

그렇게 해설들의 우려가 담긴 시선을 받으며 치러진 3세트.

지혁은 경기에서 1, 2세트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모든 포인트를 양보하지 않고 집요하게 지켜나간 것이다.

퉁!

라켓에 부딪치고 간발의 차로 네트를 넘어가는 드롭샷.

나달은 베이스라인에서 앞으로 빠르게 달려 나왔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촤아악-

통. 통. 통.

클레이 코트에서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바운드 소리.

지혁의 페이크샷은 완벽하게 나달을 속이는 데 성공했다.

운으로 얻은 위닝샷이 아니라 정교한 기술이 받쳐주었기에 가능한 득점이었다.

[게임 리 3-1.]

우와아아아아!

‘풋워크가 초반보다 많이 느려졌는 걸. 역시 조코비치랑 붙은 후유증이 금방 회복될 리 없지. 슬슬 한계를 보이는구나.’

어떻게든 숨기려고 해도 사람의 체력은 한계가 있다.

만약 지금 상태로 5세트까지 간다면 아마 나달을 이기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탕!!

서브를 돌려받은 지혁은 서비스게임을 하던 도중 왼쪽 베이스라인을 노리는 나달의 다운 더 라인을 신기와도 같은 플레이로 받아쳤다.

쫓아가는 게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나달은 예상치 못한 일격에 다시 한번 위닝샷을 허용했다.

그 믿기지 않는 슈퍼 플레이에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관중석 1열에서 들려왔다.

지혁을 응원하는 팬들의 눈빛도 점점 반전되는 상황에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바···방금 그거 봤어? 저 상황에서 저런 샷이 가능하다고? 받아낸 것도 신기하지만 각도가 정말 예술적이었어.”

“미친 코트 커버력이야! 골든 보이가 드디어 진짜 실력을 보여주는 건가? 하긴 이름값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너질 선수가 아니긴 했지.”

웅성웅성.

관중들은 경기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에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생길 거라 느꼈기 때문이다.

쿵!!

[포티 러브.]

마치 데자뷰처럼 똑같은 자리에 다시 한번 스트로크를 때려 넣는 지혁.

나달은 스코어가 크게 밀리게 되니 오히려 활동량을 줄이고 체력관리에 들어갔다.

오늘 경기에서 처음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나달이 갑자기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3세트에 들어가자 공수가 뒤바뀌었어요.]

[아······. 이제야 경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습니다. 초반에 열세에 처했던 건 전부 골든 보이의 전략이었어요.]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리가 나달을 상대로 장기전을 노린 거예요. 어쩐지 경기가 이상하게 길어진다 했습니다.]

[설마요. 조금만 삐끗하면 경기에서 패배하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는데요? 그건 너무 비약이 아닐까요?]

[지금 모습을 보면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니 높은 확률로 제 생각이 맞을 겁니다. 골든 보이는 장기전이 벌어지면 무조건 이긴다는 확신이 있는 거예요. 정말 엄청난 자신감입니다.]

그렇게 경기의 분위기는 빠른 속도로 기울었다.

지혁이 무서운 속도로 스코어를 쌓아나간 것이다.

이때까지의 부진이 완전히 잊혀지는 활약이었다.

[게임 리 4-2.]

[게임 리 5-2.]

[세트 리.]

세트 스코어 2-1.

경기는 분명 나달에게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선수들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나달이 어딘가 쫓기는 듯한 분위기였다면 지혁은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추격당하는 느낌이겠지.’

자신도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적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경기는 대부분 결말이 좋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구도가 만들어졌어. 이제 이대로 굳히기만 하면 돼.’

사실상 4세트를 가져오면 나달은 더 이상 반항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승부는 다음 세트의 결과에 전부 달려있다.

지혁은 확실하게 쐐기를 박기 위해 힘을 아끼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러다가 정말로 골든 보이가 이기겠는데?”

“롤랑에서 2연패를 하면 작년의 우승도 운이 아니라는 거잖아. 그러면 올해 랭킹 1위는 리가 되는 건가?”

“허···. 18살에 ATP랭킹 1위라고? 만약 정말로 그게 현실에서 실현되면 최연소 기록이 다시 한번 경신되겠네.”

“그랜드슬램도 최연소 우승도 그렇고 기록 분쇄기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네. 나달을 전략과 테크닉으로 찍어 누르다니 진짜 괴물 같은 재능이야.”

“나는 아직 성장기가 끝나지 않은 선수라는 게 더 무서워. 이대로 시간이 몇 년 정도 지나면 과연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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