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60화 (160/241)

160화. 첫 윔블던

롤랑 가로스 결승전이 끝나고 며칠 후.

지혁은 무서울 정도로 몰려드는 섭외 요청을 전부 뒤로 하고 영국으로 이동했다.

2주도 남지 않은 윔블던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익숙하지 않은 잔디 코트에 최대한 적응하려면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잔디는 클레이와 완전히 정반대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걸 차고 경기를 해야 된다는 거죠?”

“맞아. 아마 엄청 가벼울 텐데? 무게가 20g 정도라고 들었거든.”

“일단 거슬리는 느낌은 거의 없네요. 그래도 정확한 건 직접 시험해봐야 알겠죠. 훈련 조금 했다고 고장나진 않겠죠?”

“9억이 넘는 물건인데 설마. 이렇게 비싼 시계는 처음 보는데 몇 억을 주고 사는 이유를 알겠네. 진짜 멋지다.”

코치는 지혁의 왼쪽 손목에 있는 시계를 부러운 눈으로 보며 말했다.

한 눈에도 정밀한 기계식 설계를 생각하면 격렬한 경기를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리차드 밀 같은 초고가 시계 브랜드가 그렇게 허술하게 일을 할 리가 없었다.

실제로 담당자도 직접 부딪치지 않는 이상 문제가 생길 확률은 아주 낮다고 말하며 내구성에 대한 자신감을 표출했었다.

‘이게 내 손에 들어오다니. 아직도 얼떨떨하네. 여기는 원래 나달이 스폰서 계약을 맺는 회사인데.’

몇 억을 가뿐히 넘는 가격 때문에 과거에는 감히 차 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지금은 맞춤 제작으로 몇 개나 협찬을 받게 되었다.

이것만 봐도 지혁이 스포츠계에서 얼마나 거물이 되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최고 중에 최고가 아니면 이런 계약을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최근 스포츠계의 동향과 테니스계에서 지혁이 차지하는 지분을 생각하면 크게 이상한 것도 아니지만.

“윔블던까지 익숙해져야 하니까 간단한 랠리나 해보죠. 아무리 스폰서 물건이라도 경기력에 지장이 생기면 안 되니까요.”

지혁은 묘한 눈빛으로 손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무심하게 말을 툭 내뱉었다.

그러자 코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이질감이 느껴지거나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개선해준다고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최대한 네 의견을 반영해준다고 했거든. 리처드 밀도 만약 네가 윔블던에서 시계를 차고 경기하는 모습을 많이 기대하더라. 중국 수요가 폭발할 거라고 예상하던데?”

“그럼 다행이고요.”

잠시 후, 라켓을 챙겨 코트 위로 올라가는 지혁.

IMG 매니지먼트가 준비한 훈련장은 천연 잔디가 파릇파릇하게 심어져 있었다.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신경을 정말 많이 써줬다.

물론 지금까지 지혁이 벌어다준 천문학적인 돈을 생각하면 이건 당연한 대우다.

“생각보다 잔디가 멀쩡하네요?’

제대로 된 경기를 몇 번만 하면 베이스라인 주변이 흙바닥으로 변하는데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코트를 사용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모양이다.

“네 전용이니까. 내년에도 여길 사용하면 돼.”

“숙소 섭외나 교통편도 그렇고 정말 편하네요.”

“그래서 거대 매니지먼트랑 계약하는 거지. 만약 한국 회사랑 계약했으면 고생 좀 했을 거야. 솔직히 그쪽은 아직까지 주먹구구식이니까.”

지혁은 베이스라인에 서서 바닥을 발로 스윽스윽 문질러봤다.

확실히 최근 하드 코트와 클레이 코트에서만 경기를 해서 감촉이 생소하다.

꽤나 미끄럽게 느껴지는 게 여기 고속 서브가 내려 꽂히면 처리하기 쉽지 않을 듯했다.

‘바운드 높이가 많이 낮아질 것 같네. 왠만하면 플랫 서브를 중심으로 플레이하는 게 좋겠어.’

주변의 전반적인 환경을 파악하고 있을 때.

오늘 훈련을 도와주기 위해 같이 동행한 지혁의 코치들이 테니스공을 건네주었다.

외관이 아주 깨끗한 게 전부 새물품인 것 같았다.

아마 최대한 경기와 비슷한 조건을 만들어주려고 하는 거겠지.

공기압이 차이나면 라켓 컨트롤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이 가게 되니 말이다.

휙- 쾅!!

허공으로 토스된 공은 굉음을 내며 반대편 서비스 코트에 떨어졌다.

“”와···.“”

아직 몸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음에도 코치들은 놀란 목소리를 내었다.

“장난이 아닌데? 윔블던에서 저 서브를 제대로 받아낼 선수가 있을까?”

“거의 없겠지. 아마 상위 랭커도 고생 좀 할 거야.”“평소랑 비교하면 속도가 특출 나게 빠른 것도 아닌데 역시 잔디 코트인가?”

“윔블던이 빅 서버들의 천국이라고 하더니 이번 대회는 정말 수월하겠어.”

“장기전도 거의 없을 거라 체력적인 부담도 거의 없겠네. 나달이나 조코비치하고 다시 재회하면 재밌는 상황이 나오겠어.”

훈련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여러 가지 분석을 쏟아내는 코치들.

230km가 넘는 무시무시한 서브가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떨어지자 사람들은 저절로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드디어 지혁에게 어울리는 최고의 무대를 만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긴 불규칙 바운드 같은 돌발 변수가 상당히 많이 일어나는 윔블던은 타고난 피지컬과 천재적인 재능이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쿵!!

지혁은 T존을 때린 서브가 미끄러지듯이 바운드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공이 마구처럼 들어갔기 때문이다.

‘플랫 말고 다른 것도 시험해보자. 경기가 끝날 때까지 한 가지 기술만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

탕!! 탕!! 탕!!

“역시 탑스핀 서브랑 트위스트 서브는 위력이 많이 떨어졌네.”

“그래도 충분히 써먹을 수준은 되네. 냉정하게 득실을 따졌을 때 우리에게 이득이야. 원래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편도 아니었으니까.”

“서브를 한정으로 하면 그렇겠지 하지만 스트로크가 변수인데.”

“리버스 포핸드의 위력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거지?”

“그래. 탑스핀 스트로크는 지혁이의 주무기잖아. 전력 누수가 없을 수 없지.”

“워낙 다재다능한 녀석이라서 괜찮을 거야. 준비해둔 전략도 있고.”

최근 지혁이 파죽지세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었기에 코치들 사이에서는 금방 긍정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더 어려운 상황도 극복해냈는데 솔직히 이 정도 패널티는 문제도 아니었다.

***

지혁은 윔블던 본선이 개최되기 전까지 훈련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으로 시계를 차고 경기하는데 걱정이 있었지만 적응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리차드 밀이 자신감을 가지고 장담한 게 허풍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도 정교한 톱니가 뻔히 보이는데 전자시계도 아닌 것이 어떻게 고장 나지 않고 버티는지 모르겠다.

특별히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 남은 계약기간 동안 계속 착용해도 될 것 같았다.

웅성웅성.

그때 조용하던 훈련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에 도착하고 지금까지 외부인의 출입이 한 번도 없었던 걸 생각하면 생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혁과 코치들은 뭔가 알고 있는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던 일을 계속했다.

“아!”

그렇게 점점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입구에서 탄성이 들렸다.

가냘픈 목소리에 은근슬쩍 고개가 돌아가는 코치들.

그러자 기사나 TV에서나 보던 1티어 여자 아이돌과 유명 개그맨 두 명의 모습이 보였다.

한국의 공중파 방송국이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기 위해 영국에 방문한 것이다.

“와···. 저기 이지혁 선수가 진짜 있어요.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너무 떨려요···.”

“저기 훈련을 하고 계시네. 우리가 방해가 되는 건 아니겠지? 윔블던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걱정이네.”

“그런데 실물을 보니까 느낌이 엄청 다르네요. 키도 엄청 크시고···.”

“큭. 잘생겼지?”

“···네.”

“어지간한 배우들도 저 옆에 서면 오징어가 되는데 당연하지. 오죽하면 중국이랑 일본에서 황태자, 왕자 같은 오글거리는 별명이 붙었겠어.”

“아마 테니스 선수가 아니면 엄청 유명한 배우가 됐을 걸? 저건 일반인으로 남을 얼굴이 절대 아니야.”

속닥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출연진들.

촬영팀은 지혁이 훈련을 마칠 때까지 얌전히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1시간이 훌쩍 넘어갔지만 지루한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가 훈련을 그들이 어디서 경험해봤겠는가.

쾅!!

서브를 마지막으로 라켓을 내려놓는 지혁.

구경꾼들은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구나. 경기를 하면 더 대단하겠지?”

“저는 저걸 사람이 쳤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그냥 번쩍하니까 땅에 떨어지던데요?”

“얼마 전에 열린 롤랑 가로스에서 다른 선수들이 저 서브를 받아내던데 그 사람들은 전부 초인들인가.”

“너 설마 로저 페더러하고 라파엘 나달을 말하는 거야? 그 사람들은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선수들이야. 평범한 선수가 아니라고. 연봉만 거의 천억이 넘어갈 걸?”

“천···천억 이요? 테니스 선수가 그렇게 많이 벌어요? 순수입이 그 정도면 거의 중견기업 아닌가···?”

“원래 테니스가 부자들의 스포츠잖아. 시청자나 관중들도 대부분 상류층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스폰서 단가도 차원이 다른 거지.”

“하긴 어딘가 고급스러운 이미지긴 하죠. 이지혁 선수도 귀족 같은 느낌이니까요.”

“야, 그건 잘생겨서 그런 거고.”

출연진들은 지혁이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저벅저벅.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촬영팀의 고개가 휙! 하고 돌아갔다.

“아! 이지혁 선수! 팬입니다!”

“저도요! 저는 대회도 전부 챙겨보고 있어요!”

“이렇게 촬영에 동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윔블던 동안 잘 부탁드려요.”

“저희가 갑자기 영국으로 찾아와서 방해가 됐을까 걱정이네요. 만약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 얘기해주세요. 대회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맞습니다. 촬영보다 윔블던이 우선이죠!”

전혀 친분이 없음에도 친근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지혁은 그들의 높은 텐션 탓에 정신이 없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연예인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확실히 뭔가 달랐다.

“훈련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와! 역시 넓은 마음씨! 잘생긴 사람은 역시 달라!”

“지연아, 너 이지혁 선수한테 작업 걸고 있는 거야? 아이돌이 그래도 돼?”

“내버려 둬, 한창 좋을 때인데 그럴 수도 있지. 여자 연예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상형 1위잖아.”

“그···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그냥 팬이라서···.”

“아니. 흑심이 느껴지는 눈빛이었어. 나이도 19살 동갑이지? 이번 기회에 친구 자리라도 노려봐. 우리랑 사는 세계가 달라서 여자친구가 되는 건 힘들 테니까.”

아이돌인 지연은 주변에서 놀리는 말에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그 반응을 보면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닌 모양이다.

지혁은 힐끗거리는 시선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여기서 뭔가 말을 하기 애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윔블던 기간 동안 심심할 틈은 없을 것 같았다.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니 이것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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